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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으로 영생을 소유하라(2243.2024.3.31 부활주일)
시85:6-9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4년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신줄 믿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말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입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신앙이 핵심이며, 기초이며, 중심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유를 누릴수 있고, 십자가에서 영생을 얻을수 있고, 십자가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십자가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고, 십자가에서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십자가에서 치료를 받을수 있고, 십자가에서 승리를 걷을 수 있고, 십자가에서만 첫사랑을 회복할수 있고, 십자가에서만 헌신 삶을 영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를 참석하신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에게 영,혼,육의 회복과 축복을 되찾는 부활의 영광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말씀 하신 대로 삼일 만에 죽음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부활의 기쁨과 소망이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 영원토록 충만한 은혜로 날마다 역사하기를 축복합니다. 하루하루가 고단한 날들이지만 우리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생명의 문으로 담대하게, 당당하게 한걸음씩 나아가셔서 우리 주님이 반겨 맞아 주시는 영원한 그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시는 면류관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축복합니다. 종려 주일, 그리고 고난 주간은 비통함과 슬픔의 시간이었지만 우리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비통함은 기쁨의 눈물이 되고, 슬픔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야 말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신 것이 부활의 역사입니다.
기독교의 최고의 축제는 부활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부활의 믿음으로 얻은 구원의 확신을 잘 지키고 끝까지 간직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시는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신앙과 생활이란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고 확실하게 돌아가신지 사흘 만에 확실하게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못 믿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권능의 주시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처녀에게서 아들을 낳게도 하시고 마른 막대기에서 싹이 나게 하시며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시며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며 홍해를 갈라 그 사이로 이스라엘이 지나가게 하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살리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 이미 예언되고 약속된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죽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자기의 눈으로 본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론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 오백 여명이나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로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출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후 오늘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임과 동시에, 우리 각자에게 이루어진 현실적인 사건이 지난 주간
에 걸쳐 오늘 새벽까지 이루어졌습니다. 무덤에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증인들인 여인들에게 하신 첫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서 겹겹이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지내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하신 첫 메시지가 무엇인지 상주감리교 성도는 아십니까?
마28:5절,요20:19절‘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두려워합니다. 그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에서 무려 365번이나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인간들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이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데서 오는 죄성 중 하나입니다. 매일 매일 찾아오는 두려움이란 인간의 삶의 행복을 앗아가는 가장 무서운 사탄의 전략적 무기입니다. 두려움이란 인류의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시작되면서부터 인생여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둠이 두렵습니다. 칼이 두렵습니다. 뱀이 두렵습니다. 사고가 두렵습니다. 남편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내가 두렵다고 합니다. 무슨 생각으로 웃으시는지 웃어도 두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이기며 살아가게 하는 능력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우리의 신앙 속에서 효력을 나타내고 있는 중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구원 받은 자들이 믿음으로 살아갈 때 믿는 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실제적인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냥 교회 다니는 것,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차원이 아닙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믿되 부활신앙을 가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활신앙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에 관한 가장 중요한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다른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신앙이 존재할 수 없고 성립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신앙이 생기고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부활의 시작이요 부활의 기원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음을 믿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살아가노라’,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내 삶에는 이런 예수님의 살아계심의 역사가 이루어지노라’는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과 함께 우리가 믿는 부활신앙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효력을 나타내는지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는 교리로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부활신앙이 내 삶에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1.부활신앙은 믿는 자에게 참된 기쁨이 넘치게 합니다.
본문 6절‘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예수님께서 부활하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과 온 세상이 어둡고 절망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절망과 두려움으로 모두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따랐던 여인들도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잠시 예수님께 희망을 가져보았던 모든 무리들은 예수님께 실망을 하고 허탈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참된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은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기쁨과는 달랐습니다. 그 기쁨은 승리했을 때 맛보는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영적인 만족이 채워졌을 때 맛보는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기쁨이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서 기쁨을 앗아갑니다. 사탄도 어떻게 해서든 우리 안에 기쁨이 메말라 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기쁨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즐겁고 기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세상의 불타는 밤, 세상 화려한 곳으로 가보면 이 세상은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세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참된 기쁨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안타까운 몸부림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기쁨은 하나님께서 인간 본연에 심어주신 기쁨과는 다른 죄악의 짜릿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임재하셔서 샘솟는 기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은 코로나 때문에 사라지는 기쁨이 아닙니다. 그 기쁨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 중에도 누렸던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우리가 가장 신앙생활이 충만했을 때 직접 맛보았던 바로 그 기쁨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드리는 예배속에, 찬양속에, 기도속에, 사명을 감당하다가 힘든 중에도 내 안에서 소록소록 올라오는 바로 그 기쁨입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이 기쁨이 사라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기쁨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회복하신 기쁨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라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동안 한 순간도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그런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부활신앙에서 나오는 기쁨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믿음의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고난과 핍박과 외로움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는 많은 믿는 자들이 부활신앙에서 나오는 기쁨 때문에 넉넉히 그 믿음을 지키며 승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기쁨이 사라지고 있습니까? 환경 때문이라 생각하고, 문제 때문이라 생각하고, 저 인간 때문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주님의 기쁨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부활신앙이 희미해져서 기쁨이 메마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 주님을 더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쁨을 더 회복하고 싶다면,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더 친밀하셔야 합니다.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서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주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더 넉넉히 가지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지금 아무리 답답하고 어려워도 부활신앙에서 나오는 기쁨이 새록새록 솟아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답답한 현실보다 주님의 기쁨이 더 강하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불안한 마음과 절망감이 밀려올 때에도 그것들을 능히 물리치고도 남음이 있는 주님의 기쁨이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 안에 차고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2.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님은 절대 어리석은데로 돌아가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믿는 자에게 부활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기적을 볼 것을 약속하십니다. 믿음은 기적의 열쇠입니다. 막9:23절‘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신 주님이시며 그 믿음에 기적이 따라오는 것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믿음을 가진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주님은 분명하게 선언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질 때 죽은 자의 삶에 생명의 환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믿는자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믿음을 가질 때 두눈을 떳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믿음을 가질 때 죽은 딸이 살아났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믿음을 가질 때 건강한 친구를 돌려 받았습니다. 앉은뱅이가 믿음을 가질 때 ‘예수의 이름으로’기적을 만났던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의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아프면 여러분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치료하십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베드로는 물 위를 걷기도 하였으나 두려움이 그를 채울 때 그는 물에 빠져 버렸습니다. 믿음은 능력을, 두려움과 염려는 실족케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어두움의 무덤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절대 어리석은데로 돌아가지 않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은 이렇게 엄청나게 파도치는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셔서 주님의 크신 일을 이루어 놓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에게 믿음을 가지라 하십니다. 믿는 자에게 능력이, 부활의 능력이 임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새로운 믿음을 가졌고 선언함으로 죽은 오빠를 돌려받은 것입니다. 과연 믿음은 영적 파도입니다. 초강력 영적 파워입니다.(Super Spiritual Power) 기적의 단초입니다. 믿음을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로마의 백부장같이 인정받는 큰 믿음의 사람처럼 칭찬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큰 뜻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8절‘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예수님께서 3년 이상 제자들과 함께 합숙훈련을 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듣고 배웠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께서 행동하시고 살아가시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직접 경험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변덕스러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절대 죽지 않도록 지켜드릴 것이라고 장담을 했지만, 막상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서로 예수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겠다고 다툴 정도로 예수님께 집착했던 제자들도 막상 예수님을 버리고 숨어 버립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3년 동안 합숙훈련을 받으면 의리정도는 지킬 줄 아는 제자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한 순간에 변화가 됩니다. 배신자였던 제자, 비겁했던 제자, 변덕스러웠던 제자들이 한 순간에 딴 사람처럼 변했습니다. 이제는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변화의 터닝 포인트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배워서도 안 되는 것이 부활신앙을 가지니깐 변화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서 여러 가지 경험해서도 안 되던 것이 부활신앙을 가지니깐 이제는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키는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신앙은 이제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어리석은대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 절대 변덕스럽지 않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부활신앙이 확고하냐는 것입니다. 이 부활신앙을 가지게 되면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에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신앙을 가지게 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모두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부활신앙이 분명하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중에 부활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어서 흔히 ‘부활장’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믿음장’은 히11장, ‘사랑장’은 고전 13장과 요한일서 4장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장’은 바로 고전15장입니다. 고전15장은 온통 부활에 관한 말씀이며, 우리에게 부활신앙을 갖도록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부활에 관한 말씀을 길게 기록한 제일 마지막 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전15:58절‘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에 대한 모든 말씀을 하신 후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모든 믿는 자들에게 결론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이제는 견고한 믿음이 되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저와 여러분은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 때문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신앙을 가짐으로 문제 앞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신앙으로 말미암아 푯대를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믿음의 멋진 용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부활신앙을 가지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수 있는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부활이 되셨으니 우리를 부활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생명이 되셨으니 우리로 새 생명으로 살고 영생을 살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너무 많은 특권과 영광을 주시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부활의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죽음은 의미도 없는 것이고, 구원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진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완전한 구원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그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라자손이 지은 시로 구약성경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마치 신약성경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오늘 본문 속에는 메시아의 구속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자로 하여금 이 다음에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사는 땅에 영광이 머물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선지자들을 통해서 수없이 자주 메시아를 예언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메시아께서 오실 것을 예언한 수많은 말씀 속에는 메시아 왕국이 함께 합니다. 다시 말해서 메시아께서 오셔서 통치하시는 현장에는 놀라운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곳의 말씀이 있지만 한 곳만 소개하겠습니다. 사40:3-5절‘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이 땅에도 하나님 영광이 온전히 비취도록 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삶 가운데 죄악의 권세가 우리를 압박해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악한 사탄이 아무리 어둠의 권세를 가지고 우리 삶을 어둡게 만들어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는 영광이 비취게 될 것입니다.
부활신앙이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아는 신념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이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살아계셔서 지금 나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부활신앙만 가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서 어두움을 몰
아내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그 땅에는 놀라운 평강과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바람이 이생만이 아님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19절‘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부활신앙은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만 아니라 저 세상의 삶이라는 것을 믿고 그 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삶이 있고 천국이 있고 그 세상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그것이 올바른 삶이고 진정한 기독교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저 세상이 있고, 이 세상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저 세상에서 다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만 만족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그 나라에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부활신앙으로 저 세상을 바라보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도 부활한다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20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라는 말은 두 번째, 세 번째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따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도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5:22절에서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우리는 영과 육이 부활하여 온전한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을 믿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무슨 다음 세상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다음 세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진리는 그 다음세상에서의 삶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자입니다. 그 나라에서 진정 큰 자는 이 세상에서 종이 되어 섬기는 자입니다. 그 나라에서의 상급은 이 세상에서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부활신앙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동시에 이 세상이 정말 중요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안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충성하지 않으면 천국에서 상급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작은 자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겸손한 자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서 인정받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부활신앙 때문에 이 세상에서 대충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세상을 소망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대충 사는 것이 아니라, 저 세상을 바라보는 부활신앙 때문에 이 세상에서 더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더 충성하고 더 겸손하고 더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생명 되신 주님을 찬양하면서 더 힘 있게 우리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58절‘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서 이 시간 제가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을 위해서 선포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에게 모든 죄의 저주들이 끊어지고, 하나님의 축복의 문이 열리게 하시고, 성도들 가정마다 어둠의 권세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광의 햇살이 환하게 비추어 주옵소서, 성도들의 땅이 주님의 다스리심으로 말미암아 기름지게 하시고, 축복의 열매가 풍성하게 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그 뒤를 따라 부활할 것입니다. 그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전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바로 우리의 부활을 예고하고 보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건 앞에서 우리가 부활하여 영생의 삶을 살게 된다는 소망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이 소망과 축복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활신앙을 확신하고 부활의 소망을 확신합니다. 부활신앙으로 영생을 소유하고 영생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힘차게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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