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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 일터 위에 충만하게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존귀한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담고 존귀한 자녀가 된 자로서 우리 서로 축복하면 좋겠습니다. 존귀한 자녀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함께 고백합시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결국 출애굽하여서 즉 구원을 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준비하고 시행하신 것이 바로 10가지 재앙이었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완전히 성취하기 위한 마지막 도구로 장자의 재앙을 사용하게 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의 놀라운 사건을 영원토록 기억하고 그것을 기념하도록 하기 위해서 유월절 규례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그 장면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은혜를 입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유월절 규례는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라는 것이지 오늘 이 유월절 규례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많은데 세 가지만 주셔서 좀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거기에 앞서 먼저 1절, 2절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실까요? 1절,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하는 그 달 이제 너희 출애굽 하게 될 것인데 그 달을 달의 시작, 그 출발점으로 삼아라.
그렇게 명령하십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첫 유월절을 경험할 때는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정월이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지금까지 사용하던 태양력, 즉 애굽의 시간, 세상의 시간을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시간, 새로운 연대기로 들어가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유월절 규례를 말씀하기에 앞서서 먼저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 다시 말해서 너희 지금까지 애굽의 종살이 살았지 노예의 삶을 이제 끊어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제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거룩한 삶으로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출애굽이라는 것은 결국 더 이상 종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인 것이죠. 즉 변화된 정체성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해야 함을 유월절 규례를 설명하기에 앞서서 먼저 가르쳐 주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죄로 가능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던 모든 인생을 긍휼히 여기셔서 독생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저와 여러분들의 죄의 문제를 단번에 그리고 완전히 해결해 주셨다. 할렐루야.
이러한 구속의 은혜로 죄에서 해방된 성도님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거듭나기 전 부패한 삶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에 말씀하죠.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 할렐루야.
전에는 우리가 세상 풍조를 따라 살고,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며 살았다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사랑으로 허물로 죽었던 저와 여러분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놀라운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날마다 가슴에 새기고 믿음의 사람으로,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입으셨습니까? 몇 번 안 입으셨군요. 그런데 여기서 예배드리는 건 정말 훌륭한 거예요. 정말 훌륭한 겁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생활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그 어찌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큰 은혜를 입으면 그 태도와 삶이 바뀌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죠.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2절, 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암송하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의 실제가 되기를 소망하며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를 심령에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할렐루야.
물론 우리 인간은요 연약한 인간이라 유혹으로 인해서 욕심에 따라갈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유혹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는 항상 유혹이 존재하고 사단이 항상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지금도 살피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세 사람을 입으라는 건멸의 메시지를 주기에 앞서서 에베소서 4장 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을 주세요. 같이 읽어보실까요?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데
즉 유혹은 항상 있지만 유혹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진리이신 예수님 그 말씀이 성경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유혹이 있을 이유도 없고 그냥 죄된 인생을 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으니 그때부터는 말씀이 예수 생명이 내 안에 있으니 유혹이 오니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살아가는 생활의 현장 속에서 말씀이 한 번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의 기준이 말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시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약한 인간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삶에서 말씀이 나를 통제하지 않거든요. 사단이 나를 꿰는 대로 그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된다면 예수가 나의 삶의 생명이 되어서 기준이 된다면 그 어떤 사탄의 유혹이 올지라도 결코 넘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새사람을 입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변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2장 2절에 말씀하죠. 읽어보실까요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 안에 새로운 마음이 들어올 때에 이제는 세상을 본받지 않겠노라. 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늘 잣대를 대는 거예요. 이거 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게 말씀이 옳은 것인가 그 고민 앞에 내가 정답을 내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셔서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사시는 거룩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존경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서 제가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의 은총을 받으셨습니까? 이 시간 자신 있게 아멘 하셨다면 정말로 옛사람을 끊어낼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내 힘으로 안 된다면 하나님 그때 말씀 좀 생각나게 해주세요. 하나님, 그때 지혜를 주세요. 내 생각과 내 뜻과 내 판단대로 하지 않고 그때 그 순간에 하나님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말씀이 떠오르는 지혜와 능력이 있어서 그 위기를 넉넉히 이기는 성도의 삶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혹 아직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해서 아멘하기가 어려우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신 그 생명의 말씀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 말씀하신 그 권능의 말씀이 내 입술에도 고백되어지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시고 그로 인해서 생명이신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 되셔서 나도 아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근데 여러분 거룩한 성도의 삶은 그저 나 구원받았습니다는 인식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을 정확히 알고 기억할 때에 구원의 감격 속에 살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과정과 함께 그것을 기념하게 하기 위한 유월절이라는 것을 제정해 주신 거예요.
이것을 날마다 생각해서 이기라는 거예요. 승리하라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 본문 3절, 이 11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자세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9번째 재앙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딱히 한 게 있습니까? 제가 성경을 아무리 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게 없어요. 그저 선택받은 백성으로 고센 땅에 있었기 때문에 재앙으로부터 피해진 것이죠. 하나님의 재앙이 임할 때 애굽 땅에, 즉 고센 땅 같은 애굽인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삶이 고되지 않았을까요? 여전히 그들은 노예였기 때문에 고된 삶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으로부터는 자유로웠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마지막 재앙은 달랐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것이 있다라는 것이죠. 즉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너희가 이것을 철저히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순종 여부에 따라서 구원이냐 심판이냐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어린 양을 잡으라는 거예요.
따라합시다.
어린 양을 잡으라 어린 양을 잡으라
이게 큰 핵심입니다. 여기에서 세 가지 아주 중요한 특징을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요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 잡으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4절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즉 이달 11일이 되면 각 가문마다 어린 양 하나씩을 잡아라 가족당 한 마리씩을 잡도록 그렇게 마련하라는 것이죠. 근데 한 가정의 식구가 너무 적어요. 둘밖에 없는데 한 마리 잡아서 못 먹잖아요. 다 먹을 수 없잖아요.
근데 이것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 잡으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뭔가에 의미가 있어서 잡으라 했는데 만약에 식구가 적으면 옆에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과 같이 맞춰서 그 한 마리를 다 소유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잡아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어린 양은 출애굽을 위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이 어린 양은 출애굽을 위한 매우 중요한 매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어린 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대입해보면 구원이라는 것은 각 사람에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는요 여러분 누군가를 내가 도와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부모가 아무리 믿음이 좋아 구원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구원으로까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데 자녀에게 아직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다면 정말로 생명 걸고 기도하셔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내 자녀가 나의 믿음보다 훨씬 더 좋은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해 주십시오.
가정마다 모여서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자녀들을 단속하고 그곳에서 같이 먹을 수 있는 자리와 환경을 마련해야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간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부모 세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내 믿음으로 자녀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 내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내 자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는 있다. 하나님은 도우시는 분이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하기에 내 자녀들을 위해서 더 좋은 공부, 더 좋은 세상에 살 그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가 저와 여러분들의 절박한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녀뿐만 아니라 나의 부모님이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 더 절박해지셔야 돼. 왜냐하면 육신의 기준으로 볼 때는 자녀 세대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떡을 손에 드시고 감사 기도를 드리십니다. 그리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십시오. 받아 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데 몸이니 먹을 때마다 나를 기억해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육신을 내어주셨기에 우리는 그것으로 참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생명으로 허락하신 이 말씀을 날마다 섭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섭취할 때마다 우리 부활의 주님을 기억하는 은총이 있어 날마다 그 은혜 가운데 살기를 소망하고, 더불어 이것이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 예수 믿지 아니하는 내 자녀, 내 부모도 동일한 은혜와 역사가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떡,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 우리 가정 가운데 아름다운 교재의 떡이 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날마다 기도하는 그러한 삶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회중들에게 그 양을 잡으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6절 말씀 읽어보실까요?
이달 열나흘 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여러분, 양을 잡는 자가 누굽니까? 이스라엘 회중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회중은 누구일까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죠. 즉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께 드릴 양을 직접 잡으라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명령을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는 이스라엘 회중이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 보시면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름에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려와서 처음 난 것들을 치실 때에 생명이 보존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반드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다는 조건만으로 생명이 보존되는 건 아니다라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양을 잡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 되었다는 것으로 영생을 보장받았다고 믿으시는 착각입니다. 실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예배자가 돼야 하는 것이죠. 레위기에 보면 제사법에 대해서 양과 소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자세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제물을 제사장이 잡아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사의 모원이라고 가르쳐주면서 제물을 가져온 그 사람이 직접 제물에 안수하고, 그 사람이 그 수송아지를 잡아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립니다. 또한 그 가죽을 직접 벗겨서 각을 뜬다라고 되어 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는 내가 며칠 동안 준비한 흠이 없는 제물을 가져다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직접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가 가장 기뻐받으시는 예배라는 거예요.
여러분, 주일날 오셔서 내가 주일날 말씀 잘 들었으니 예배 잘 드렸다고 생각하시면 죄송하지만 큰 우상입니다. 적어도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며칠 전부터 준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시고, 정결한 마음으로 미리 준비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그 기쁨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직접 나와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양을 잡아들이는 듯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오늘 예배 오기 전부터 준비가 되어져서 10분 전에 기도할 때에도 진심을 다해 기도하 찬양할 때, 내 마음과 정성과 열정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 눈을 번쩍 뜨시고 귀를 쫑긋 열어서 최선을 다해 들으시고,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는 것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에 정성껏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파송받는 그 자리까지 우리가 하나님께로만 집중되어져야 하는 예배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대계명과 대사명입니다. 이것만 잘 알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요. 대계명은 무엇입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대계명 10계명을 함축해 놓은 것이죠.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하는 것, 그리스도인들이 성도 간의 관계를 잘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오바예요.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게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전부라고 보시면 돼요.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마음 목숨 뜻 따라 합시다. 마음 목숨 뜻 이걸 함축적으로 말하면 뭘까요? 따라 합시다.
생명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명 걸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여러분 무엇으로 표현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 보면서 사랑합니다 그렇게 고백하실 거예요. 그건 예배입니다. 결국 이것을 함축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예배의 생명을 거십시오. 할렐루야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가 얼마나 좋은지 알 거 아니에요. 여러분 다 연애해 보셨잖아요. 연애할 때 최대한 적게 만나자 그러십니까? 너무 사랑하니까 최대한 적게 만납시다. 안 그러잖아요.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고 그게 연애 아니에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무엇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예배죠.
그런데 여러분 그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이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이 될 수 있는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 십계명에서 1계명 400여명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잖아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두지 말아라 말씀하잖아요.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 말아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 때 일컫지 말고 또 뭐라고 말합니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말씀하잖아요.
따라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대계명의 핵심은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찬양받는 그 예배에 생명을 거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인이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할 삶이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생명을 다해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여러분 생명을 다해 드리는 예배는 그럼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내 생명을 걸고 그분께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죠. 따라서 내 안에 예수 생명이 있는 자들은 예수 생명으로 살기에 나의 생명을 기꺼이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생명으로 살지 마시고 내 안에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우리 세 번째 말씀은요 재물의 피를 양을 먹는 집, 좌우 문서를 주와 인방에 바르라는 것이었죠 7절 말씀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 피를 양을 먹는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피 울타리 안에서 있어야 된다
라는 거예요. 이게 왜 중요합니까? 13절 말씀 같이 보실까요? 13절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려와서 재앙을 내리시기 위해서 두루두루 다니실 그때에 집은 인방과 좌우 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가겠다. 유월절이 너물월이잖아요 그래서 넘어가시겠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사자로 그 집에 들어가 치지 못하도록 하시겠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따라서 어린 양의 피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는 보호막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이 될 때까지 9가지 재앙은 우리의 삶의 현장 가운데 계속해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셔야 돼요.
하나님의 재앙이 이 땅 가운데 지금 애굽의 9가지 재앙이 내렸던 것처럼 여전히 이 땅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하나님께서 애굽의 친이 오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친히 오시는 그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오늘 찬양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오늘 마라나타 찬양을 했잖아요. 관련된 찬양을 주님이 오신 그때 하나님이 애굽에 친이 오셔서 심판하셨던 것처럼 주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그때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주 앞에 설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심판에서 면제되지만 예수 피가 없는 자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거예요. 죄인 된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에베소서 1장 7절에 말씀합니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고백하잖아요. 제가 앞에 말하면 여러분들은 뒤에 예수의 피밖에 없네라고 좀 외쳐보십시오. 나의 죄를 씻기는 나를 정케하기는 나의 죄에 속하기는 우리가 찬송으로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예수의 그 피가 나를 희게하고 그렇기 때문에 귀하고 귀한 것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고 고백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 기도를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그 잔을 돌려주십니다. 하나씩 따라준 게 아니라 잔을 하나 이렇게 해서 얹어 드시고 이거를 10개 제자가 돌려가면서 먹었어요.
그러면서 말씀하시죠.
이 잔을 마시라. 이는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린 새 언약의 피이라
그렇게 가르쳐 주셨다는 것이죠. 여러분 최후 심판의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이 세상에서 그에게도 이만큼 떵떵거리면서 살았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내세울 수도 있고요 자신이 쌓아왔던 선과 덕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예배에 잘 드리고 교회도 빠지지 않았습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심판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은 아니라는 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만 씻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말씀하잖아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도 말씀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의 삶을 얻으리라.
사망이 아담 한 사람에 의해서 모두에게 왔다면 죽은 자의 부활도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에게 임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유월절을 우리가 좀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월절은 마치 성찬과도 같고요. 우리의 예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예배 시간을 정말 소중히 여기시고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으로 나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제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 제가 성도가 많으니까 인원 수를 이렇게 체크했어요. 1층에 주무세요. 2층에 딱 올라가 보면 2층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어요. 2층에서 다 핸드폰 주식도 하고 뭐도 하고 그게 나는 보면서 과연 이게 예배인가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예배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데 고작 하나님 앞에 모여져서 핸드폰에 서서 왜요? 말씀의 기준이 없어서 내가 지금 핸드폰을 봐야 하는 시간인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시간인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나와 예배를 드리는 거죠.
과연 구원이 있을까요?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