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피리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 (人寰) 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 인환(人寰) : 인간의 세계
* 기산하 (幾山河): 산하가 그 몇 해인가
<해설> ?1955년 한하운 시인의 제2시집 [보리피리]에 수록된 표제시이다.
평생을 나병으로 고통받은 시인인 한하운의 시는 인간의 고통과 절망이 극한적 상황에서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가, 인간의 구원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나병이라는 천형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의지는 적극적이고 전투적이기보다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갖는데, 그것이 그의 시에서 뿜어내는 서정이며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겉으로 보기에는 낭만풍의 시인 듯하지만, 실은 천형인 나병으로 일생을 암담하게 살다간 시인의 인간 존재에 대한 절규가 담긴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천형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청운의 꿈과 연인을 버리고 방랑하면서 한맺힌 생을 살았으며, 그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
이 시는 유년 시절에 대한 향수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불던 보리 피리에 대한 추억이 시인을 고향의 언덕으로 이끌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와 지나간 것에 대한 동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에 대한 그리움, 성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그리움이다. 인간의 세계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 인간 세계에 대한 편입 욕망을 숱한 방랑의 세월에 묻어두고 눈물짓고 있는 것일까. 천형이라는 나병 환자로서의 비애, 성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 고향과 유년에 대한 그리움, 방랑의 한이 고향의 언덕을 눈물의 언덕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시 전편에 애잔하게 흐르는 보리 피리 소리는, 방랑 생활의 극도의 애절함과 좌절감을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피리를 부는 행위는 천형의 병을 앓고 있는 서정적 자아가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행위라 할 것이다. 또한 '피 ㄹ 닐니리'는 서정적 자아의 좌절감과 애절함을 피리 소리에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뛰어난 처리라 할 것이다. (현대시 목록, 인터넷)
* 시인 한하운과 서울신문기자 오소백(부분)
1953년 10월15일 오후 ‘서울신문’ 편집국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청년이 나타났다. 오소백은 시청 출입기자를 통해 그가 유명한 문둥이 시인 한하운이란 것을 알고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사회부 차장 문제안에게 한하운에 관해 정확히 취재하도록 지시했다. 마침 얼마 전에 한 주간신문에서 한하운이 실존인물이 아닌 유령인물이라 하여, 화제를 모은 일이 있었던 터라 알리바이와 확증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하운은 운동선수처럼 몸이 튼튼해 보였다. 시인은 기자의 물음에 답한 후 앉은자리에서 한 편의 시를 썼다. ‘보리피리’였다. 오소백을 비롯한 사회부 기자들은 한하운이 돌아간 뒤 시를 보고 매우 놀랐다. ‘보리피리’를 낭독하며 모두 좋은 시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한하운이 만진 펜에 레프라(leprae·나병)균이 붙었다고 소란을 피운 통에 오소백은 원고지로 펜을 똘똘 말아 휴지통에 내던졌다. 그리고 10월17일자 신문에 “하운(何雲) 서울에 오다, ‘레프라 왕자’ 환자수용을 지휘”라는 3단 제목으로 한하운에 관한 기사와 그가 쓴 시 ‘보리피리’를 실었다.
‘서울신문’은 문둥이 시인이라는 특이한 인물에 대해 떠돌던 소문을 해소하는 동시에 그의 근황을 소개하면서 천형(天刑)으로 여겨지던 문둥병에 걸린 불우한 인간이 보리피리 불며 산과 들을 방랑하는 모습을 노래한 시를 특종으로 내보낸 것이다. (정진석/외국어대 교수, 신동아 [정진석의 언론, 현대사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