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 소시집 단평
온화한 서정적 자연 감성의 결집
1. 자연 서정의 향취에 흡인된 시법
현대시의 발상이나 동기는 대체로 자연 현상에서 응시하거나 착목(着目)된 지점에서 어떤 체험과 합일하여 재생한 이미지들이 시적 상황으로 설정하여 작품을 전개하는 경우를 흔히 대하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신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형상으로써 자연스러운 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자연 사물에서 시인이 감응하거나 흡인되는 특별한 경험이 투영되어 미적(美的) 감성이나 친자연적인 풍성한 이미지의 창출은 모든 시인들이 호감(好感)을 갖는 대사문관이다.
여기 최명숙 시인의 소시집을 엮는다. 최명숙 시인은 아직 등단 경력이 일천(日淺)한 신인이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습작을 첨삭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날로 비상하는 작품의 발표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우선 자연 서정에서 취하는 소재와 거기에서 전개하는 시적 향취가 적절한 언어의 조합으로 그가 지향하려는 진실의 주제를 승화하는 시법이 정착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살며시 깃드는 / 졸음에 빠졌는데 / 한적한 오솔길 / 참나리꽃 가득하네 // 자주 오가던 / 외갓집 가는길 / 양떼구름 피어오르는 / 낯익은 그 곳 // 뻐꾸기 한나절 / 제 이름 불러대 / 도라지꽃 수런수런 / 속삭임 감미로워 // 어느새 신록 짙어져 / 손잡고 노닐다 / 초록물 흠뻑 들었네.
-- 「오수(午睡)」 전문
최명숙 시인은 소재의 취택이나 주제의 설정을 거창하게 원대한 위치에 두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소박한 사물에서 그의 시야에 포착된 만유(萬有)의 생명들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적한 오솔길’, ‘외갓집 가는 길’ 등에서 서로 마주친 ‘참나리꽃’, ‘도라지꽃’ 그리고 ‘양떼 구름’과 ‘뻐꾸기’ 등에서 그는 안온한 자연 서정의 향취를 지각(知覺)하게 된다.
이처럼 서정적 원형으로 순박하게 시와 연결시키는 감상적인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독일 작가 쉴러의 말처럼 시인이 순수한 자연으로 있는 동안에는 순정한 감성적인 통일체로서 또는 전체가 조화된 존재로서 행동하며 감성과 이성, 사물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수’를 통해서 ‘어느새 신록 짙어져 / 손잡고 노닐다 / 초록물 흠뻑 들었’다는 자연과의 동일체가 되어 그의 서정적 자아는 형상화하고 있어서 온화한 자연 감성이 시적으로 잘 흡인되고 있다.
다시 최명숙 시인은 작품 「길」에서도 ‘나풋나풋 하얀 억새 춤추고 / 뭇별 쏟아지는 언덕에 / 나뭇잎 사이로 달빛이 스민다’거나 ‘담담히 눈길 닿은 신작로 앞에 서면 /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 뒤돌아 살필 새 없이 밀려온다 / 겨울은 아직 저만큼 멀리 있는데.’라는 미지의 상념들이 발현하는 서정의 진미를 대할 수가 있다.
이러한 작품은 「여름일기」에서 ‘빛깔 고운 꽃잎 / 한편의 야무진 시어로 남아 / 소박한 복사꽃 분홍빛 닮은 듯 / 포닥거리는 나비날개로 파닥 거린다’ 그리고 「응시」에서도 ‘담녹색 이파리 하느작하느작 / 별밤 에워싸 맑은 향기 그윽하고 / 구름뒤에 숨어 들락날락 엿보는 초사흘 달 맵시 / 은근하고 아늑한 님의 품속 같아라’와 같은 어조로 그의 서정적 탐색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2. 그리움과 기다림의 원류
최명숙 시인은 이렇게 동화(同化)하거나 투사(投射)된 자연관에서 도다른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창출하고 있는데 그것이 기다림이나 그리움의 원류로 작용하고 있음을 주시하게 된다.
노오랑 국화 해질녘 향기 더하며 / 하늘은 잔잔한 호수에 잠겼다 / 꽃길 따라 하염없이 노닐다 / 붉으레 타오르 석양을 몰랐어라 // 석훈(夕曛)이 곱게 엉켜있는 은행잎과 / 섬돌 아래 거친 풀 아직 파란데 / 성급한 마음, 찬바람 스며 쓸쓸하고 / 불원간 오실 님 그리움 더욱 깊다 // 빛나는 꿈 함께 나누자던 속삭임 /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고 / 은근한 국화 향기 바람에 실려와 / 그윽하여 계절 깊은 줄 알겠네 // 들녘은 시나브로시나브로 / 주명(朱明)을 삼켜 기다림에 발효되어 / 송채(送綵) 받은 새악시 벅찬 설레임 / 날마다 낯빛 붉은 수줍음이 어린다
-- 「추색(秋色)」 전문
그는 우선 시적 연결 언어로 ‘국화’와 ‘호수’, ‘꽃길’ 그리고 ‘석양’ 등 다양한 상황(situation)이 펼쳐진고 있다. 여기에서 그가 천착하는 것은 ‘불원간 오실 님 그리움 더욱 깊다’거나 ‘주명(朱明)을 삼켜 기다림에 발효되어’라는 어조와 같이 ‘그리움’과 ’기다림‘에 대한 이미지가 가을빛(혹은 색깔)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빛나는 꿈 함께 나누자던 속삭임 /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고 / 은근한 국화 향기 바람에 실려와 / 그윽하여 계절 깊은 줄 알겠네’라는 ‘속삭임’이 ‘단풍’과 ‘국화 향기’로 서정적인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온화한 시법은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서 다시 감응할 수 있는 것은 시어의 선택에서 약간 생소하거나 잘 쓰이지 않는 한자말을 끄집어내어 시적전개에 효과를 가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석훈(夕曛)’이니 ‘주명(朱明)’ 그리고 ‘송채(送綵)’라는 시어가 비록 한자말이기는 하지만 상황의 이해나 전개의 흐름에 다양한 향방(向方)을 제시하고 있어서 주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는 제목 자체가 한자말인 ‘추색’이기 때문에 내용에서도 고상한 시어를 취택하지 않았나 하는 유추를 하게 된다. 시인은 언어의 예술가라는 고전적 개념에서 이를 절묘하게 응용하는 그의 언어 능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챙겨볼 것은 ‘가을’이라는 시간성에서 발현된 이미지이지만 ‘해질녘 향기’나 ‘타오르는 석양’, ‘석훈’, ‘단풍’, ‘주명’ 등의 시간은 시적 전개에 중요한 질감을 요구하는 시간성이 더욱 작품의 형성에 좋은 역할을 하게 된더.
이 밖에도 작품 「무지개」에서도 ‘고운빛 항라 저고리 섶 쓸어내며 / 줄곧 소란한 심사 얼레빗에 여민마음 / 기다림은 여름 기인 해거름에 지고’라거나 ‘위안 속에 깊이 간직한 반월 그리움 / 일곱 빛깔에 스민 간절한 소망이여’라는 어조에서 그의 간절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시적 진실이 잘 현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향수」에서도 ‘찰랑찰랑 물결은 애달픈 망향가 / 잔잔히 넘실대는 호수 깊은 곳엔 / 여전히 사무치는 절망이 잠겨있다’는 노스탈쟈에서 진한 연민의 그리움이 시적으로 승화하고 있다.
3. 관념적 이미지가 적시하는 메시지
최명숙 시인은 지금까지 외적인 자연 사물에 투영된 이미지를 중심으로 작품을 표출했는데 다시 내적인 관념 이미지에서 서정적인 주제를 현시하고 있음도 간과하지 못한다. 아침 햇살 맑은 유리창엔 성에꽃이 피었는데푸드덕 날개짓 요란한 까치 듣그럽게 우는구나다담(茶啖)에 가지런히 정성 담아 마음을 차려 내고니트숄 걸친 가녀린 어깨 너머 그리움이 응집되어까슬까슬 말라버린 잔디위로 봄기운이 어리는 듯 하여라.
-- 「설레임」 전문
그는 ‘설레임’이라는 내면의 감성을 소재로 하여 음미(吟味)하려는 메시지는 서정성이 잠재한 메시지를 적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지개’니 ‘공원’, ‘길’ 등 그의 시야에서 응시한 사물 이미지에서 심적인 울림이나 느낌이 표면화하는 관념이 표출되고 있어서 그의 시적 성향에는 내외적인 다변적 지향점이 상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이 ‘설레임’은 무엇인가 외적 충격에 의해서 내적인 심리적인 충동으로 변환하는 시적 정황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는 ‘아침 햇살 맑은 유리창엔 / 성에꽃이 피었는데 / 푸드덕 날개짓 요란한 까치 / 듣그럽게 우는구나’라는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감응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 작품에서 특징으로 주목하는 것이 시어의 도출이다. 앞에서도 ‘석훈’이나 ‘주명’ 같은 단어가 이목(耳目)을 끌었는데 여기서도 다음과 같은 시어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듣그럽게=떠드는 소리가 퍽 듣기 싫다
-다담(茶啖)=손님에게 내놓는 다과
-니트숄=뜨게질하여 만들어 여자들이 어깨에 걸친 천
-까슬까슬=살결이나 물체의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고 거칠거칠한 모양
그는 짧은 이 한 편의 작품에서 이처럼 새롭고 흥겨운 시어들을 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시창작법에서 누차 설득한 국어사전 완독(完讀)하기의 일환으로 체험한 언어의 훈련이 아닌가 하는 그의 노력을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우리 말을 무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시어에도 능통하다는 진리를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의 나열이나 언어의 구사만으로는 좋은 작품이 창작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좀더 깊은 사유의 결로(結露)로 지적인 주제의 작품이 창조되어야 할 것이다.
일찍이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가 말씀하셨듯이 ‘시경에 있는 삼백편의 시는 한 마디로 말해서 사악함이 없어야 한다(子曰 詩 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라는 시의 기본적인 위의(威儀)와 본령(本領)에 정도를 걷는 인본주의(humanism)에 근원을 두어야 할 것이다.(김송배 / 한국현대시론연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