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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부흥을 위한 기도의 동기
출애굽기 33:12-17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모세는 자신에 관한 한 개인적인 확신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자신과 백성들을 위해 능력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셋째로 그는 교회와 그의 메시지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예외적으로 특별하게 확증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째서 모세가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 기도했는지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그의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분명히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상황을 온전히 바로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가 그처럼 부단하게 잘못되어 나가는 것이 바로 이 의도와 동기의 영역에서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는 여러분에게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촉구하는 바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째서 부흥을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해야 합니까? 첫 번째로 주어진 대답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관심, 바로 그것입니다. 13절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바로 그것이 동기이며 이유입니다. 모세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 출애굽기32:11-12에서도 이와 같은 한 예증이 발견됩니다. ···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
여러분은 모세의 관심을 아십니까? 그는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명성과 영광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 그는 말합니다.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그는 사실상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예가 이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 하나님께서 홍해를 통과시키셔서 그들을 이끌어 내셨는데 광야에서 그들을 내버려 두시려 하신단 말씀입니까? 그러면 애굽 사람들이 무어라 하겠습니까? 다른 족속들이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실패했습니까? ···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과 영예가 바로 이 전체 상황에 관련되어 있다고 하나님께 떼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 여러분은 시편에서도 이러한 차원의 간청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선지서들에서도 여전히 부단하게 나타납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닙니까? ··· 우리는 하나님이 특별한 백성입니다. 어째서 어둠 가운데서 불러내사 그 기이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셨습니까? 그를 찬미하고 그의 탁월함과 덕을 선전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세상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 신앙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표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 우리의 첫 번째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점이 거의 언급된 적이 없음을 말씀드린다고 하면 너무 지나칩니까? 물론 오늘날 교회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심은 무엇에 대한 것입니까? 오늘날의 관심은 통계나 수자에 있습니다. ··· 그들은 교회를 채우고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끌어 모으는 방편과 방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 우리의 태도는, 교회가 오히려 하나의 인간적인 조직인 것 같은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 그러나 모세의 일차적인 관심은 ···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시편79편 기자가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10절)’라고 말할 때 그 기자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아시겠습니까? 이방 사람들은 ··· 비웃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일차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영예와 이름입니다. 우리의 제도들이나 우리의 성공이나 실패가 문제가 아닙니다. ··· 실로 이것은 시편 전체를 통해서 어느 곳에서나 줄기차게 발견되는 위대한 주제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어서 접근 방식이 너무 주관적이고 언제나 우리 자신들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흥을 위한 기도의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영예와 그 이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부흥이라는 전체 문제의 진수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기도들을 훑어보십시오. 그러면 언제나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당하고 마음이 편치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크신 하나님을 마땅한 대로 경배하지를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변호하시고 일어나사 그 원수들을 흩어버리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요점입니다.”
2. 교회 자체의 영예를 위하여
“그런 다음에 두 번째 요점-그것은 언제나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기도 제목으로 나와야 합니다-은 교회 자체의 영예를 위한 관심입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인애어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놀라운 몇 가지 조짐을 보여주셨습니다. ··· 모세는 단순히 개인적인 축복을 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전체가 이 축복에 관련될 것이지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그에 대한 놀라운 실례를 다시 얻게 됩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잠깐 멈춰 보십시오. 기절을 하여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는 큰 영혼의 고뇌를 안고 있습니다-‘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러나 그 다음에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32:30-32).’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축복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함시키지 않으신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백성을 지워버리리라. 내가 너에게 한 민족을 만들려 한다.’ 모세는 말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지워버려 주시옵소서. 이 백성이 없으면 저도 더 이상 나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중보의 기도입니다. 그 사람은 교회 전체의 상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복락을 받지 않는다면 자기의 개인적인 삶이나 복락이나 형통함은 자기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습니다.
··· 제가 볼 때 여러분과 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을 잠깐 잊고 교회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단체를 염려할 단계에 이르기 전에는 부흥에 대해서 어떠한 소망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우리는 우리의 난제와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난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중보기도에 어떤 자리를 차지합니까?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정 이상으로 나아갑니까? 우리는 세상 앞에 서서 세상을 위한 오직 유일한 소망은 기독교라고 말합니다. ··· 만일 그것을 알고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면 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묻고 싶습니다. 교회가 이것을 전할 능력을 갖되,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이 모든 아성들이 무너져 내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에서 완전히 압도당할 그러한 방식으로 전할 능력을 갖기 위해서 얼마나 자주 기도합니까?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들이 성령의 권능으로 옷 입기 위해 드리는 기도의 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서 중보기도를 드립니까? ··· 모세는 자기 자신보다도 이 점에 더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혼자만 약속된 땅으로 올라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혼자만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독교회에 관해서 다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출발하고, 우리 자신의 필요와 난제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을 그저 우리에게 해답을 제시하시는 대리인쯤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 복음전도나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과 그 영광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 만일 복음전도의 동기가 교회를 채우려는 데에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실패합니다. 물론 교회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 개념을 다시 되찾아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개념도 되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위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간청해야 합니다.”
3. 이방 사람들을 위하여
“그런 다음 세 번째 이유는 모세가 밖에 있는 이방 사람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는 그들이 알기를 바랐습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이상이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동기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예와 영광과 하나님의 소유인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다음에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은 조롱하고 비웃고 있습니다. 그의 백성들이 연달아 일어나 말합니다. ‘오, 하나님 일어나셔서 저들을 침묵시키소서.’ ···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10).’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입니다. 그들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그 점에 대한 여러 실례들을 발견합니다. ··· 그것이 여기 이 성경에서 매우 강한 어조로 표현된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너무 강하여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저주를 발하는 시편들을 보고 고민에 빠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저주를 발하는 시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사람들이 가진 열심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 여기 하나님께서 선하심에도 불구하고 욕하고 배역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인이 있습니다. 그 시편 기자는 의분과 열심을 가지고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이것이 이 사람들을 설명하는 진정한 방식입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복수를 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영광과 그의 위대한 이름을 위한 열심으로 삼킨바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속에서 이러한 바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엇인가 우리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 때로 그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고, 하나님이 영원한 하나님이심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까? ··· 그 다음에, 그들이 죄를 깨닫고 각성하여 진실로 진리를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뒤따라옵니다. 그 바람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행하심으로 그들이 놀라서 ‘이 어찐 일이냐? ···’고 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부흥이 일어날 때 언제나 그러한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언제나 비웃던 사람들이 호기심만으로 쳐다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회심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모세는 지금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볼 때 우리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됩니다. ··· 우리가 진실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감화를 받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4. 기도의 방식
“제가 이해하기는 모세가 이러한 간구들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고무시킨 주요한 세 동기가 바로 그것들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만한 다른 것도 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방식입니다.”
1) 담대함과 확신
“모든 위대한 성경의 기도들 속에는 언제나 드러나는 어떤 요소들이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의 첫 번째 특징은 담대함과 확신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주저함도 없습니다. 고요한 확신이 있습니다. 저는 그 용어를 사용하여 거룩한 담대함이 있다고 말씀드리렵니다. 이것이야말로 언제나 승리했던 모든 기도의 정말 위대한 특징입니다. 물론 그것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기도가 열납된다는 확신이 없거나 지존자 앞에 나아갈 길을 알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기도할 수 없고 중보의 기도는 더더욱 드릴 수가 없습니다. ···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였고, 그는 확신하였고, 거룩한 담대함으로 담대해져 있었습니다.
··· 이것은 기도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성소로 나아갈 길을 알고 있습니까? 오직 한 길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4,15).’ ··· 그리고 그는 기도의 문제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 위대하신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늘로 들어가신 진리와 그에 관한 모든 진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해질 수 있는 오직 유일한 길입니다. 저 자신을 살펴보면 담대해질 수 없고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2) 논리적으로 따짐
“정말 가치 있고 흥미 있는 두 번째 요점이 있는데, 그것은 논리적으로 따지고 논증을 필요로 하는 요소입니다. ···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실로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게 따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 그런 다음에 16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신다면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 그는 하나님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하나님께 상기시켜 드렸습니다.
어떤 이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 옳은가? 주제넘는 짓이 아닌가?’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이러한 일들은 병행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에 대하여 그처럼 많이 말한 히브리서 기자는 경외심과 두려움으로 항상 그렇게 한다는 것을 동시에 상기시킵니다. ··· 이것은 어린 아이가 자기 아버지께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시 여러분에게 여러 세기에 걸쳐서 쓰임을 받았던(특별히 부흥의 시기에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의 전기를 읽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 이와 똑같은 거룩한 담대함과 이러한 논증과 이러한 따짐과 사리를 하나님께 늘어놓는 것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떼를 쓰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 그것이 그를 기쁘게 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약속을 들고 와서 떼를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3) 기도의 질서와 목표
“기도에 대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요점은 기도의 질서와 목표입니다. 분명한 간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여기서 희미하거나 정해지지 않은 평범한 기도를 드리고 있지 않음을 주목하십시오. ··· 이 시점에서 그는 이 한 가지 일, 하나님의 임재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교회가 바로 이 한 가지-부흥을 위한 기도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기까지는 행복감이나 위안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 우리는 이 한 가지의 짐만을 느껴야 합니다. 그것을 오직 유일한 소망으로 알아야 하고, 바로 이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며, 언제나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모세처럼 우리로 중보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십니다. ··· 우리가 지난 과거의 부흥의 역사 속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여기 이 모세를 사용하셨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세와 같은 중보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