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교(普天敎)의 차경석(車京石) 성도(聖徒)님께서 천자(天子)의 지위에 오르려 했다고 많이 이야기 합니다. 그 당시 기록과 연구논문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때 높은 지위의 사람이 이 종교의 참 목적은 조선독립의 운동이라는 내용을 밝히며 대정 13년 갑자(甲子 1924)년에는 조선이 독립하여 교주 차(車)씨가 계룡산을 도읍으로 제위에 오르고, 교도(敎徒)는 자격에 따라 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내용을 선언하고 자금의 모집, 부하의 조직을 맹세하게 한다』- 손재봉(孫在鳳)의 판결문(1921.11.26)
차경석이 국명(國名)을 ‘시(時)’, 교명(敎名)을 ‘보화(普化)’로 선포한 2차 고천제 당시 이를 지켜본 일반 교인들의 의견을 보면 “조선(朝鮮)의 왕위가 일제에 의해 끊겼으니, 다시 조선의 왕권(王權)을 복원시켜야 하는데, 보천교는 앞으로 가다오는 새 세상에 세울 나라 이름을 ‘시(時)’라 했고 그 나라를 통치하는 왕 또한 일본의 천황이나 중국의 천자(天子)와 격(格)이 같은 천자라 했으니, 이는 필경 조선의 독립(獨立)을 하려함이다.” (안후상 보천교운동 연구 30쪽)
이하는 저만의 상상입니다.
차경석(車京石) 성도(聖徒)님께서는 일제(日帝)로부터 독립하여 나라를 세우고 제위(帝位)에 오르려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립을 위하여 여러 독립단체에게 큰 돈을 남모르게 지원하신것도 같습니다.
만약 이 때 차경석(車京石) 성도(聖徒)님께서 조선(朝鮮)을 독립시키고 헌법(憲法)을 제정하여 민주적으로 국가의 지도자 및 관리를 임명하는 공화정(共和政)을 하자고 주장하셨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이 호응을 했을까요? 아마도 극소수의 지식인 몇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예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주 먼 역사에서부터 시작한 왕. 귀족(왕족), 신하, 양반, 평민, 노비 등의 신분제도가 뿌리박혀온 역사의 말기에 보천교(普天敎)는 일어섰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는 조선(朝鮮)과 조선의 왕(王)이 망했으니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왕(王)이 나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었습니다.
‘민초(民草)들이 스스로 일어서 우리들의 국가를 우리 힘으로 건설해 나기며,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는 사상은 그 당시 사회상으로 볼 때 그 누구도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입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관념은 그리 쉽게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그 당시는 제위(帝位)에 오르는 것 외에 딱히 달리 대안으로 생각할 정치제도 자체가 조선(朝鮮) 땅에 없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1914~1918)때에는 유럽의 상당수 국가도 기독교 왕정 국가였으며 이 당시 조선(朝鮮)을 강점한 아시아의 깡패국가인 일본(日本)도 천황제 국가였습니다.
차경석(車京石) 성도(聖徒)님께서 제위(帝位)에 오르려했다고 하지만 차경석 성도님의 욕심, 실수 이런 것 보다 그 당시 시대의 한계로 인하여 벌어진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외 다른 방법을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시대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보천교(普天敎)보다 그 다음에 발생하는 교단들인 것 같습니다. 교단사(敎團史)를 자세히(?) 보다 보면 선대(先代)의 문제나 업(業)이 후대로 가면서 확대 재생산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천교(普天敎)에서 제위(帝位)에 오르려한 시도가 있었고 이후 보천교(普天敎)에서 분파한 여러 교단(敎團)이 후대에 대두목(大頭目), 진인(眞人), 천자놀음에 휘말리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문제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역사를 청산할 때가 온 것이 분명한데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보천교(普天敎) 당시야 천자(天子)외에는 달리 대안도 없었으니 그럴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지금 세상이 계속 평등해지며 각자의 생명과 인격이 존중되는 사회로 가고 있는데 아직 천자(天子) 사상을 자신의 욕심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진인(眞人), 대두목(大頭目), 천자(天子) 놀음이 지속되는 부분은 ……….. 참고로 그 종단의 시작이 보천교(普天敎)가 아닌 종단의 경우 천자(天子) 놀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보천교(普天敎)가 사람으로부터 성금공사를 하며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며,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며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보천교(普天敎)는 더 많은 사람을 살렸으며 공산주의(共産主義) 사상으로부터 이 땅을 지키는데 큰 공로(功勞)가 있습니다.
보천교(普天敎)에서 발행한 보광(普光)을 보면 이 당시 공산주의(共産主義)를 대하는 보천교(普天敎)인의 시각이 분명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동학(東學)이 참혹히 망하고, 조선(朝鮮)도 망한상태에서 일반 민초(民草)들이 극단적인 공산주의나 극단적인 무력항쟁에 빠졌으면 아마도 그 당시 어마어마한 피가 이 땅에 흘렀을것입니다. 신통력을 행사하는 차경석(車京石)이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구한다는 희망과 비폭력이 기반인 종교(宗敎)에 사람들이 의지하면서 오히려 생명의 희생이 훨씬 덜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만주벌판에서 총을 들고 일제와 싸우다 쓰려져가신 독립군의 업적을 무시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며, 그 고귀한 희생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이 방법을 선호합니다. 제 스타일입니다.
제가 이 보잘곳 없는 글을 쓰는 이유는 보천교(普天敎)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너무 편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학자(學者)들이 보천교(普天敎)를 다양한 시각으로 연구하는데 우리 역시 보천교(普天敎)의 긍적적인 부분을 생각해보고 그 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입니다.
보잘 것 없는 글 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제의 꿈 배상
첫댓글 감사합니다.보천교에 대한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여러 종파가 서로 시시비비 합니다만 현재 증산사상을을 세계에 알리는
종파가 어디인가.에 마음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