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치워라~!”
허귀임 실비아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라자로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하였다. 마르타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이미 냄새가 나고, 더 이상 그 어떤 기적도 기대할 수 없음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 11,39-40). 하시고, “라자로야, 나오너라!” 하셨다.
라자로와 마르타, 마리아는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가족공동체・형제자매의 삶이 각자 고유한 모습을 지니고 자신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가정은 가장 작은 공동체이지만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는, 가장 소중한 공동체로써 부모・형제자매와의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사회화되며, 궁극적으로 올바른 신앙인으로서의 가치관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믿지만,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상처와 절망으로 하느님에 대한 왜곡·무지의 속으로 내몰릴 수도 있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가진 ‘두 얼굴’인 것 같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처는 두려움과 공포와 더불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큰 돌’이 주님과의 사이를 가로막았고 “돌을 치워라!” 하시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고, “라자로야, 나오너라!”하신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희망하는데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치워질 수 없는 ‘큰 돌’이 있다니, 어쩌면 나 자신이 가장 ‘큰 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온 가족들이 각각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함께 음식을 먹으며 대화할 시간도 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깊이 묵상할 시간이 없으니,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말씀의 의미를 모르니 실행이 뒤따르지 못해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며 하느님의 뜻을 알아도 실천할 용기가 없거나, 교회가치와 사회적가치가 충돌하는 경우를 만나면 더 깊이 알려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무관심해버리고, 양심의 가책이나 불안을 잊기 위해 순간의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찾아 중독되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해 가는 시점에서 예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기에 나를 대신하여 아파하고 눈물 흘리시며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시어 나의 주가 되신 주님 안에서 때로는 라자로처럼, 때로는 마르타와 마리아처럼 아름다운 사회적・가족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돕고 살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뜻을 알아 듣기 위한 노력으로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정한 시간에 기도하는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성찬례에 참여하고도 성찬의 삶과는 다른 방향으로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수 있도록 초대 해 주신 가톨릭교리신학원은 은총에 은총을 더해 주신 놀라운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 또한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나의 의무요 도리가 아닌가?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이들과 그들을 돕기 위해 수고하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우리 가족들의 회개와 일치를 위한 지향으로 우리 부부가 매일저녁 9시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모경과 함께 묵주기도 5단을 동시에 바치기로 약속하고 몇 개월째 실행에 옮기고 있는 요즈음에는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돌을 치워라.”하신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무덤을 막았던 돌을 치운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그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자리에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해 모여 있던 이웃들도 있었는데 말씀을 듣기만 하고 구경만 하는 사람도 있었는가하면 들은 대로 곧바로 행동으로 옮긴 사람도 있었으니 그 또는 그들은 그분의 제자들일 수도 있고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웃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행에 옮긴 누군가가 있었기에 라자로가 무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하느님과 누군가의 사이에 놓인 돌을 치우는 역할이 나에게도 부여되었음을 생각지도 못하고 나의 아픔과 상처에 짓눌려 울고만 있었던 날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주님 사이에 가로막힌 돌을 치워준 이들이 내 주변에도 많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고맙다는 인사를 한 번도 하지 않고 지나쳤을 수도 있는데 이름도 기억되지 않았음에도 묵묵히 좋은 일을 해온 주님의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 감사의 인사 전하고 싶어진다.
주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와 함께 해주셔서~!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저에게 바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과 아버지의 더 큰 영광을 볼 수 있도록 “돌을 치워라” 하신 말씀을 들었을 때 어설픈 앎이나 확신에 매몰되지 않고 당신의 말씀을 듣고 한 번에 ‘예’라고 응답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과 온전히 말씀 안에 머물 수 있는 은총도 함께 청합니다. 주님,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