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01
가을 단풍이 들 무렵이면 바다에 살던 연어가 동해안 하천으로 몰려든다. 산은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들고, 하천은 연어로 붉게 물든다. 연어가 알을 낳으러 강으로 오면 몸 색깔이 붉은 혼인색으로 바뀐다. 성스러운 번식을 위해 예복을 갖추려는 듯.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은 광어(넙치)나 우럭(조피볼락)이겠지 하는 생각과 달리 최근 한 조사에서 고등어와 연어가 선정됐다. 연어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물고기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10여 년 전 노르웨이와 칠레에서 대량 수입되면서 우리 입맛이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빛깔부터 남다른 주홍색 연어 살은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돋는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탓에 비싸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연어 스테이크나 회는 유명 호텔 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뷔페 식당에도 다 있는 약방의 감초가 됐다.
연어 소비량이 빠르게 늘자, 공급이 달렸다. 대안은 광어나 우럭처럼 양식으로 수요를 맞추는 것이다. 얼마 전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 가두리 양식장에서 기른 연어 500t이 출하됐다. 연어를 기르려면 수온이 낮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주변 바다는 수온이 높아 그동안 양식이 어려웠다. 그러나 수심 25m까지 내려 수중에서도 양식할 수 있는 가두리를 개발해 적정 수온인 15~18도를 맞출 수 있었다. 바다 수온은 수심이 깊어지면서 낮아지기 때문에 표면보다는 깊은 곳이 차다. 양식에 성공한 연어는 노르웨이에서 생산하는 대서양연어가 아니고 은연어 같은 태평양연어 종류다. 은연어는 최대 길이가 1m가 넘고 무게는 15㎏까지 나가며 수명은 최장 5년이다. 대서양연어에 비하면 크기가 작고 수명도 절반정도밖에는 안 된다. 그러나 대서양연어보다 지방이 적어 담백해 우리 입맛에는 더 잘 맞는다. 연어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번 국내 양식 성공으로 향후 수입대체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연어는 참으로 신비한 물고기다. 모천회귀, 즉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오는 습성이 있다. 연어의 이런 습성을 이용해 우리나라에서는 자원관리 차원에서 1967년부터 동해안 하천을 찾는 연어를 포획한 뒤 인공수정해 부화한 치어를 방류해왔다. 우리나라에 사는 연어의 한살이를 살펴보자. 가을에 하천으로 올라온 암컷 연어는 알을 낳고 수컷은 알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부화한 새끼 연어는 겨울을 나며 몸길이 5㎝ 정도까지 자란다. 이듬 해 봄에 더 넓은 세상을 찾아 바다로 나간다. 동해를 거쳐 북태평양으로 나간 새끼 연어는 베링해와 알래스카 부근 바다에서 3~5년 동안 자란 후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하천을 떠난 연어가 모두 돌아올 수는 없다. 2만여㎞에 달하는 험난한 대장정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회귀에 성공할 확률은 1000분의 1도 안 된다. 연어의 짝짓기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의식이다. 번식을 마치면 후대를 위해 죽음을 맞이한다.
참고할 지형지물이 전혀 없는 망망대해에서 산란을 위해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의 능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위치를 찾는 위성항법장치(GPS)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도 요즘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길치가 되고 마는데. 연어의 회귀 능력에 대해서는 후각, 지구 자기장 등 여러 설이 있다. 새끼 연어가 하천을 떠나 바다로 갈 때 강물 냄새를 기억했다가 돌아온다는 것이 후각설이다. 연어의 남획, 강의 오염, 댐 건설로 인한 수로 차단 등은 연어의 귀향을 방해한다. 연어를 보니 우리 모습이 대비된다.
요즘 우리 사회는 길을 잃고 어수선하다. 가야 할 곳이 안 보인다. 방향타를 잡은 조타수가 없는 배는 난파한다. 연어는 오리무중 바다에서도 길을 잘 찾는데, 자신을 희생하는 연어 한살이에서 지금 우리는 어떤 지혜와 교훈을 얻어야 할까.
김웅서 /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한국해양학회장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