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다드의 서, 제12장 창조적 침묵에 대하여
3일이 지나자, 우리 일곱 사람은 마치 거역하기 힘든 명령을 받기나 한 것처럼 한데 모여 독수리 둥지로 향했다.
스승은 우리가 올 것을 이미 알았다는 듯이 우리를 맞이했다.
"잘 왔구나, 그대들의 둥지로, 내 갓난 새들이여. 미르다드에 대한 그대들의 생각과 소망을 말해다오."
미카욘이 말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생각, 단 하나의 소망은 미르다드 곁에 있으면서 그분의 진실을 느끼고, 그분의 진실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혹 우리도 그분처럼 그림자 없는 자가 될지 모르니까요. 그분의 침묵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우리가 뭔가 그분을 분노케 한 것은 아닌지요?"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 동안 침묵한 것은 그대들을 내게서 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대들을 나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기 위해서다. 그대들이 나를 분노케 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 말하자면 '침묵'의 거역할 수 없는 평화를 아는 자는 그 누구도 분노하지 않으며 분노케 할 수도 없다."
미카욘이 말했다.
"말보다는 침묵이 낫다는 것입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말은 최선의 경우라도 정직한 거짓말이다. 한편 침묵은 최악의 경우라도 드러난 진실이다."
아비말이 말했다.
"미르다드의 말조차 정직하긴 하지만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겁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렇다. 자신의 '나'가 미르다드의 '나'와 똑같지 않은 자에겐 미르다드의 말조차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대들의 모든 생각이 하나의 채굴장에서 캐낸 것과 같아지고, 그대들의 모든 욕구가 똑같은 우물에서 길어낸 것 같아질 때까지는 그대들의 언어는 정직하다 해도 거짓말이다.
미르다드의 '나'와 신의 '나' 가 하나이듯이 그대들의 '나'가 미르다드의 '나'와 하나일때, 우리는 진실이 가득 찬 무언의 침묵 속에서 완전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대들의 '나'가 미르다드의 '나'와 똑같지 않기 때문에, 나는 부득이 언어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대들의 무기인 언어로 그대들을 정복해 나의 채굴장, 나의 우물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대들은 세계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내가 그대들을 진압하고 정복했듯이 세계를 정복하고 진압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그대들은 '지고의 의식 ' 의 침묵속으로, '말씀'의 채굴장 속으로 '성스러운 이해'의 우물 속으로 세계를 이끌 준비를 갖추게 된다.
미르다드에게 정복될 때 비로소 그대들도 난공불락의 강력한 정복자가 될 것이다. 세계 역시 그대들에게 완전히 항복할 때 비로소 끊임없는 패배의 불명예를 불식할 것이다.
그러니 싸움의 준비를 하라. 방패와 갑옷을 닦고, 검과 창을 갈라. 침묵으로써 큰북을 울리고, 깃발을 치켜올리라."
벤눈이 물었다.
"큰북을 울리는 손이자 깃발의 게양자인 침묵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내가 그대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침묵은 끝없는 확장이며, 거기에서는 존재하던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고 존재하지 않던 것이 존재하게 된다. 그 침묵은 외경스런 공허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소리가 생겨났다가는 없어지고, 모든 유형의 것이 만들어 졌다가는 파괴된다.
거기에서는 모든 자아가 씌었다가 지워진다. 거기에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공허,
이 확장을 침묵의 명상 속에서 건너지 못하면, 그대가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그대의 현실이 모든 현실과 어떻게 한데 연결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대들이 낡고 옹색한 껍질을 벗어던지고 속박이나 구속됨없이 행동하기 위해서 나는 그대들에게 이 침묵 속에 거닐게 하고 싶다.
그대들의 걱정이나 공포, 정욕이나 욕구, 선망이나 번뇌를 그 침묵 속으로 추방하고 싶다. 그렇게 할 때 그런 것들은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가며, 그대들의 귀는 그런 것들의 끊임없는 절규에서 해방되고, 그대들의 옆구리는 그런 것들이 찔러대는 날카로운 통증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무기를 그 침묵 속으로 던져 버리고 싶다. 그대들의 그 무기로 만족과 기쁨을 사냥하길 바라지만, 실제로는 불안과 슬픔 이외에는 아무것도 사냥할 수 없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그대들이 어둠과 숨막히는 자기의 껍질에서 빛 쪽으로, 그리고 자아의 자유로운 공기 속으로 빠져나오게 하고 싶다. 내 그대들에게 추천하는 것은 말로 피로해진 혀를 단순히 잠시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침묵이다.
내가 추천하는 것은 무뢰한이나 악당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찬 침묵이 아니라, 실로 풍부한 대지의 침묵이다.
내가 추천하는 것은 알을 품은 암컷의 끈질긴 침묵이지, 다른 암컷처럼 알을 낳으면서 짹짹 울어대는 것이 아니다. 알을 품은 암컷은 '신비의 손'이 스물 하루 동안 부드러운 털에 덮인 자기 가슴과 날개에 기적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침묵 속에서 꼼짝 않고 기다린다.
알을 낳고 울어대는 암컷은 둥지에서 날아올라 자기가 알을 낳았다는 것을 요란하게 떠들어댄다.
벗들이여,
요란스런 미덕에 주의하라. 부끄러움으로 입을 다물듯이 영예에도 입을 다물라. 요란스런 영예는 침묵하는 불명예보다 더 나쁘다. 요란스런 미덕은 침묵을 지키는 부정직보다 더 나쁘다.
많은 말을 하지 말라.
천마디 말 중에서 정말 할 필요가 있는 것은 한마디, 단 한 마디뿐일 수도 있다. 그 밖에 언어는 정신을 가리고, 귀를 먹게 하고, 혀를 피로하게 하고, 게다가 마음을 눈멀게 만드는 데 지나지 않는다.
정말로 할 필요가 있는 말을 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리라!
천 마디 말을 쓴 것 중에서 정말 쓸 필요가 있는 말은 한 마디, 단 하 마디일 수 있다. 그 밖의 것은 잉크와 종이의 낭비이며, 빛의 날개로 비상할 시간을 주는 대신 납으로 만든 발을 질질 끄는 시간을 준다.
정작 쓰일 필요가 있는 말을 쓴다는 것은 정말로, 아아, 정말로 어려운 일이리라!
벤눈이 말했다.
"기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승 미르다드여.
우리는 기도할 때 아주 많은 말을 하고, 아주 많은 것을 간구하도록 가르침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간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일은 좀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