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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페] 염불의 원리와 공덕
염불수행의 원리염불은
자신의 본성이 부처임을 믿고 자기 마음 가운데서 부처를 찾는 것이다. 이것은 염불만의 일이 아니고 불교의 모든 수행의 목표이다. 그런데 염불이 탁월한 점은 이행도라는 것이다. 이행도의 뜻은 앞서도 말했듯이 실행하기 쉽고 증득하기 쉽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염불을 통해 소원이 성취되고 장애가 사라지며 무생법인을 얻고, 극락왕생하며 성불하는 원리가 무엇인가. 이것은 모두 불보살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자비심과 우리가 불보살님을 그리는 마음이 만나서 얻어지는 것이다.
대세지 법왕자가 그 동안 五十二 보살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여쭈었다."나는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항하사겁 전에 부처님이 출현하시니 이름은 무량광이시며, 열 두 부처님이 한 겁 동안에 계속하여 나셨는데, 그 마지막 부처님이 超日月光이시라. 그 부처님이 나에게 염불삼매를 가르치시기를 '마치 한 사람은 專心으로 생각하거니와, 한 사람은 전심으로 잊기만 하면 이 두 사람은 만나도 만나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요, 만일 두 사람이 서로 생각하여 생각하는 마음이 함께 간절하면 이 생에서 저 생에 또 저 생에 이르도록 몸에 그림자 따르듯이 서로 어긋나지 아니 하느니라. 시방 여래께서 중생 생각 하시기를 어미가 자식 생각하듯 하거니와 만일 자식이 도망하여 가면 생각한들 무엇하랴. 자식이 어미 생각하기를 어미가 자식 생각하듯이 하면 어미와 자식이 세세생생에 서로 어긋나지 아니하리라. 만일 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염하면 이 생에서나 혹은 저 생에서 결정코 부처님을 뵈올 것이며 부처님과 서로 멀지 아니하여 방편을 쓰지 않고도 저절로 마음이 열리는 것이, 마치 향기를 쏘이는 사람이 몸에 향기가 배는 것 같으리니 이것이 향광장엄이니라' 하시더이다. 나는 본래 인행 때에 염불하는 마음으로 무생법인을 얻었고 지금도 이 세계에서 염불하는 사람을 인도하여 서방정토로 가게 하나이다. 부처님이 원통을 물으시니 나의 경험으로는 이것 저것을 가리지 말고 육근을 모두 가져다가 항상 염불하되 깨끗한 생각이 서로 계속되어 삼마제를 얻는 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능엄경>아이가 어머니를 잃어 버렸을 때 아이가 스스로 찾는 것보다는 어머니를 부름으로써 그 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쉽게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어머니는 자식을 잃어버리면 자식이 찾는 것 보다 더 절실하게 아들을 찾는 것처럼 우리의 어버이이신 불보살님은 우리를 애타게 찾고 계시니 우리가 마음을 다해 그분을 만나고자 하면 곧 우리 앞에 나타나실 것이다. 다만 찾고나면 우리의 근본성품이 곧 아미타부처님과 다르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한치의 간격도 없이 중생심이 머물던 바로 그 자리가 법신. 보신. 화신의 체성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이 마음이 부처요, 이 마음이 부처를 이루는 것이며, 삼세제불이 모두 이 마음부처를 증득한 것이니라. 육도중생이 본래 부처인 줄을 왜 모르는가? 다만 미혹해서 염불하기를 좋아하지 않음이니 지혜로운 자는 이를 알아서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룬다. 앉으나 누우나 항상 부처를 여읜 것 아니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부처를 잊지 않나니 옷 입고 밥 먹는 것도 부처요, 어느 곳을 가나오나 모두 다 부처일세. 가로도 세로도 모두 부처요, 생각 생각이 또한 부처이며 마음 마음이 다 부처일세. 손을 놓고 활발히 집으로 돌아가서 부처를 보라! 근본성품의 둥근 광명이 본래 공(空)한 체성의 부처님(空佛)이요, 한 번 굴려 한 생각을 요달하면 그 이름이 곧 부처로다. 항상 머물러 멸하지 않는 까닭에 무량수불이라 하나니 법신 . 보신 . 화신의 체성은 조금도 부처님과 다를 바 없다네.다만 욕심과 분노와 질투로 스스로 자기 부처를 상하게 하고, 주색잡기로 천진불(天眞佛)을 그르치며, 너다 나다 시비하여 육근으로 부처를 물리치도다.아! 한 생각 돌이키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 부처를 구할건가? 지옥 . 아귀 . 축생의 세계에서는 영원히 부처님 법을 듣지 못하리니 정녕코 서로 권할지니, 따로이 부처를 찾고자 애쓰지 말고 은밀히 빛을 돌이켜서 자기 부처에게 귀의할지어다.
(발징화상의 <권념문> 중에서)
염불수행의 공덕염불은
불보살의 위신력에 감응하는 수행법이므로 다른 수행법과 비교할 수 없는 현실적인 위력이 있다. 염불의 이러한 위력 때문에 현실의 고난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많은 중생들에게 기도 성취의 문이 되었고, 수행자들에게는 수행 시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는 대치법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칭명염불에 대한 공덕은 많은 선지식들에 의해 강조되곤 하였다.
존호를 염하는 가르침은 경전에 널리 밝혀져 있거니와 실로 한번만이라도 염하면 진사겁(塵沙劫)의 죄를 소멸하고 십념(十念)을 갖추면 몸이 정토에 나서 영원히 위급한 환난을 구제하는 것이다. 업장이 녹고 원액(寃厄)을 소멸하여 길이 고통의 나루를 헤어날 뿐만 아니라 이 인연을 의탁한다면 마침내는 각해(覺海)에 도달하고야 마는 것이다.그러므로 경에도 "만일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탑묘중에 들어가서 단 한번 '나무불'을 일컬을지라도 모두가 그 인연으로 마침내는 불도를 이루게 된다" 하였고 또 "부처님의 명호를 받들어 지니는 이는 누구나 제불께서 호념하여 주신다"고 한 것이다.
<보적경>에서는 "높은 소리로 염불하면 마군들이 모두 두려워 흩어진다" 하였고
<문수반야경>에서는 "수행하는 이가 스스로 우둔해서 능히 관찰하지 못한다면 다만 생각과 소리만 계속 이어지게 하라. 그래도 반드시 불국토에 왕생할 수 있으리라" 하였다.또
<대품경>에서는 "만일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라도 염불을 한다면 곧 고액이 없어지고 그 복이 다함이 없는데 이를 것이다" 하였고,
<증일아함경>에는 "한 염부제의 온갖 중생을 사사(四事)로 이바지한다면 공덕이 한량이 없으리라. 그러나 만일 어떤 이가 착한 마음이 계속하여 부처님의 명호를 잠시 동안만이라도 염한다면 그의 공덕됨은 위의 비유를 훨씬 지나서 생각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하였으며 또
<화엄경>에는 "자재한 마음이 염불문에 머무르면 자기 마음에 있는 즐기고 싶은 것을 가히 따름을 알 것이니 온갖 부처님께서 언제나 그 모습을 나타내시기 때문이다"고 하였다.또 비석화상의
<염불삼매보왕론>에는 "큰 바다에서 목욕한 사람은 이미 온갖 냇물을 다 쓴 것과 같이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는 사람은 반드시 온갖 삼매를 한꺼번에 이루는 것이다. 또 마치 수정주를 탁한 물에다 넣으면 아무리 탁한 물이라도 맑아지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어지러운 마음에다 염불을 던지면 아무리 어지러운 마음이라도 부처를 이루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이 계합되었다면 또한 마음이나 부처랄 것이 없나니, 함께 없어짐(雙亡)은 곧 정(定)이요 함께 비추임(雙照)은 곧 혜(慧)다. 정혜가 이렇게 균등하다면 다시 어떤 마음인들 부처가 아니겠으며 어떤 부처인들 이 마음이 아니겠는가. 마음과 부처가 이미 그렇다면 어떤 경계, 어떤 반연일지라도 모두가 삼매 아님이 없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누가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 높은 소리로 염불한다고 다시 근심하리오. 그러므로
<업보차별경>에서는 고성으로 염불하고 송경(誦經)하는 수행에 열 가지의 공덕을 말하였으니 이른바 "능히 졸음을 막고, 하늘의 마군이 놀래 두려워하며, 음성이 시방에 가득 퍼지고, 삼악도의 고통이 멈추며, 다른 잡음이 섞여 들어오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되며, 용맹한 마음으로 정진하게 되고,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기뻐하시며, 항상 삼매가 현전하고, 반드시 정토에 나는 것이다" 하였다.
또 논(論) 가운데서 묻되 "무엇을 인하여 한 번 염불한 힘이 능히 모든 업장을 끊는다 하는가" 함에 답하기를 "마치 한 개의 전단향이 능히 사십유순의 이란림(伊蘭林)을 뒤덮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면 어떤 이가 사자의 힘줄로 거문고의 줄을 만들어 쓰면 그것을 한 번 튕기는 소리에 나머지 줄은 모두 끊어지고 마는 것과 같으니, 만일 보리심 가운데서 염불삼매를 행한다면 온갖 번뇌업장이 단박에 단멸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였다.그러므로 알라. 부처님의 위신력이 가히 생각키 어려워 그 현통(玄通)함을 헤아릴 수 없음이 마치 돌이 쇠를 흡수함과 같고 물을 강하(江河)에 쏟아 붓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직 자비선근의 힘이라야 능히 이와 같은 일을 볼 수 있나니,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는 자는 참으로 신령스러운 감응이 환하게 밝을 것이다.
<만선동귀집>또한 옛적에 한 사람이 육조대사에게 묻기를 "염불에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하고 묻는 말에 육조대사 답하기를 "일구(一句),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이 만세의 괴로움을 뛰어나는 묘도(妙道)요, 불(佛)을 이루고 조사가 되는 정인(正因)이요, 삼계 인천(人天)의 안목이요, 마음을 밝히고 성(性)을 보는 혜등(慧燈)이요, 지옥을 깨뜨리는 맹장이요, 많은 올바르지 못한 것을 베는 보검이요, 오천대장(五千大藏)의 골수요, 팔만총지(八萬總持)의 중요한 길이요, 흑암(黑暗)을 여의는 명등이요, 생사를 벗어나는 방방(良方)이요, 고해를 건너는 배요, 삼계를 뛰어넘는 지름길이요, 최존최상의 묘문이며 무량무변의 공덕이니라. 이 일구, 나무아미타불을 기억하여 염념(念念)이 항상 나타나고, 시시로 마음에 떠나지 아니하며, 일이 없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고, 일이 있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안락할 때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병고가 있을 때에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살았을 때에도 이렇게 염불하고, 죽어서도 이렇게 염불하여, 이와 같이 일념이 분명하면 또 무엇을 다시 남에게 물어서 갈 길을 찾으랴. 이른바 오직 아미타불 지니고 다른 생각 없으면 손 튀길 수고도 없이 서방극락 가리라" 하였다.
<禪淨雙修集要>이와 같은 염불의 위력에 근거하여 천태 지자대사는 사람의 근기와 원력에 따른 오방편염불문을 제시, 일체중생이 미타의 대원해(大願海)에 들기를 염원하였다.
첫째, 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칭명왕생염불삼매문(稱名往生念佛三昧門)을 의지하여 닦아야 한다.
둘째, 무시이래의 업장을 소멸하기 바라는 사람은 관상염불염불삼매문(觀相滅罪念佛三昧門)을 의지하여 닦아야 한다.
셋째, 마음의 미혹을 여의기 바라는 사람은 제경유심염불삼매문(諸境唯心念佛三昧門)을 의지하여 닦아야 한다.
넷째, 세상의 욕망과 집착을 떠나기 원하는 사람은 심경구리염불삼매문(心境俱離念佛三昧門)을 닦아야 한다.
다섯째, 생사해탈과 열반을 바라는 사람은 성기원통염불삼매문(性起圓通念佛三昧門)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출처: 달마넷
염불을 간절히 권하는 이유
-정목스님ㅡ
우리들은 선근공덕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된 부모, 형제, 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지금도 저의 뒷바라지에 지극한 정성을 쏟고 있는 불자님들 그리고 생계에 매달리면서도 이른 잠을 깨워 불공을 드리는 보살님들의 지성과 은혜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또한 멀리서 격려해 주시고 베풀어 주시는 은혜들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의 뜻이 이러하니 어떻게 복전을 담보로 보시를 권유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지혜 없는 방편으로 복을 구하라고 말하겠습니까? 시주의 은혜를 생각하면 이분들보다 의식주가 풍부하거나 사치스런 행위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세태를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직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이 사명이요, 더우기 스스로의 번뇌와 죄악이 누구보다 깊고 무겁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수행방편을 비난하거나 염불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저의 체험을 말할 뿐입니다. 저는 부모 형제의 눈물을 바라보며 출가하였으나 수행과정에서 다시 계정혜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세간에서 죄를 짓고 다시 출가해서도 죄를 지었으니 무척 괴로웠습니다. 자리이타를 말한다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업력이 범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함을 자각하고 염불을 선택하여 정진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 고뇌와 슬픔을 뛰어 넘는 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의 깨달음은 기쁨을 넘어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일순간의 사건인지를 검증하기 위하여 가난을 선택하여 수많은 날을 보냈습니다. 저의 감동은 부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았고 조사의 어록에 부합하는 의식의 혁명이요 생활의 변화였습니다. 저의 깨달음이 저 큰스님들의 경계에 미치지 못한다 하여도 결코 부끄럽지 않습니다. 자신의 업력에 상응하는 염불을 선택하여 믿음으로 정진하고 자비광명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 더없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염불과 인연이 있거나 제가 은혜 입은 분들에게 조심스런 마음으로 염불법을 전하고자 서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지성과 재화를 헛되이 버리지 않고 반드시 자비광명이 감응하는 생산적인 도를 일러주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염불을 권하는 진실한 뜻입니다.
염불행자는 다시는 윤회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위해 생업을 버리지도 않습니다. 염불은 이 시대의 범부가 실천하여 지혜와 공덕을 성취할 수 있는 참으로 생산적인 도입니다. 한가한 시간마다 부처님의 말씀을 진실한 믿음으로 독송하고,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있다는 마음으로 염불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좋은 도량, 신심있는 도반, 선지식을 만나기 진실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수행환경을 탓하지 말고 일상생활 가운데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법을 만났으니 윤회하는 업을 안고 내생까지 갈 것이 없습니다. 금생에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급하게 서둘지 마십시요. 하루 하루의 염불이 헛되지 않고 공덕이 되어 쌓이기 때문입니다. 염불행자는 먼저 부처님이 지혜로 말씀하신 염불법에 대하여 진실한 믿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 선택했으면 이곳저곳의 수행방편에 기웃거리거나 비난하는 말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염불행자는 범부의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탐진치를 끊겠다는 어설픈 생각을 버리시고 참회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염불수행은 죄악을 짓고 부끄러운 줄 아는 사람에게 깨달음의 계기가 오기 때문입니다. 생활하면서는 일체의 인연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자주자주 익히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자연히 수행의 경계는 깊어지고 지혜와 복덕이 증장합니다. 보다 넓고 깊이 공부하고자 하시면 [정토 지침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이 [아미타경]에서 "사리불아, 가히 적은 선근복덕 인연으로는 저 정토에 왕생할 수 없느니라" 하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느 때, 자신이 인생의 여로에서 자연과 뭇 생명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고 사는지, 스스로의 번뇌와 죄업은 어느 정도 되는지, 한번 진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체의 인연과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깊은 선근공덕의 소유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염불법을 만나면 반드시 기뻐하고 지혜와 복덕이 날로 증장할 것입니다. 정토경전은 오늘날의 범부를 위해 설하셨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죄악 깊은 제 몸을 구제하는 길이 있으니 믿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비광에 의지하는 염불법과 저 조사의 간절한 권유를 만나지 못했다면 제가 무슨 재주로 번뇌를 소멸하고 생사 해탈을 이루겠습니까? 염불법을 전하지 않고 제가 무슨 공덕으로 시주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까? 참으로 다행한 일이요 불가사의한 인연이었습니다. 다만 부처님께 한없이 감사할 뿐입니다. 저의 말씀을 인연있는 분들에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믿기 어려우시면 보시지 않되 비난하지 마십시요. 왜냐하면 저에 대한 비난은 감당할 수 있지만 대승경전을 비방하는 죄업이 너무 깊고 무겁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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