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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중국불교의 특색을 중국 13종의 성립과 발전에 의한 종파불교로 보기도 하는데, 이중에서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판사상(敎判思想)이다. 교판이란 교상판석(敎相判釋)의 준말로서 불교의 경전이나 종파의 위상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교판론은 중국불교의 특징으로 꼽히는 것으로, 불교경전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안목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인도의 소승과 대승불교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모르고, 모두 다 동일한 부처님의 교설로 파악하였기 때문에 초기불전인 <아함경>과 여러 대승경전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점이나 괴리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생겨난 것이 교판론이다. 물론 인도불교에서도 다양한 교판사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에 와서 더욱 특징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는데, 천태지자의 5시8교(五時八敎) 등 여러 가지 교판론이 대두되었고, 특히 천태의 교판은 중국 교판설의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발전해 나갔다.
천태의 교판은 당시 남쪽 성실종 또는 열반종의 교판 3가지와 북쪽의 지론종과 삼론종의 7가지 교판을 모아 지의가 독자적으로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비교적 늦게 형성된 화엄의 교판사상은 지엄과 법장이라는 화엄종의 대표적 승려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조직되게 되는데, 화엄종이 성립되기 이전의 교판사상까지도 모두 포함하여 교판의 체계를 세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교판사상에 대한 제반사항을 서술함에 있어서 천태와 화엄의 교판이라는 두 가지 큰 범주를 기본으로 설명하되, 먼저 교판사상의 형성원인을 살펴보고, 인도불교로부터 역경삼장의 교판 및 남북조로부터 수대에 이르는 교판사상의 발전과정과 종류를 서술해보고자 한다. 그런 후, 천태와 화엄을 교판사상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살펴본 뒤, 양자의 교판이 지니는 입장차이를 간략히 서술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Ⅱ. 본론
1. 교판사상의 형성배경
석존의 입멸후 약 100여년이 지난 후, 계율에 대한 해석차이로 인해 근본분열이 발생하였고, 그것은 이후 지말분열을 거치면서 부파아비달마 불교라는 새로운 사상적 심화과정을 거치면서 각 부파마다의 독자적인 교리체계를 이룩해 내었다. 하지만 출가자 중심주의에 따른 괴리성이나 실천적 측면을 도외시한 학문적 심화경향은 대승불교라는 새로운 사상운동을 발생시켰고, 불탑숭배와 찬양, 힌두이즘과의 사상적 융합등에 따라 대승불교는 다양한 특성을 가지면서 발달해 나갔다. 특히 반야경을 시작으로 유마경, 화엄경과 같은 새로운 대승경전들이 출현하고, 용수나 제바와 같은 논사들의 활약으로 인도의 대승불교는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과 배경에 따라 다원주의적으로 발달해 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이 불교가 중국으로 유입되는 과정에 있어서는 상당한 혼란을 안겨주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상황속에서 발전과정을 거친 인도의 불교가 경전 성립의 전후를 고려하지 않고 중국에 전래되어 한역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인으로서는 다양한 만큼 서로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는 불교경전들에 대하여 어떤 사상적 체계를 세우려는 노력을 하였고 그것이 각 종파의 사상적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입장과 맞물리면서 교판사상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판 사상들 중에서도 특히 천태지자의 오시팔교(五時八敎)의 교판과 화엄종의 동별이교설(同別二敎說) 및 오교십종판(五敎十宗判)은 중국 교판사상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교판사상은 중국인들 나름의 문화적 우월성과 함께 무작위로 유입된 각 경전들의 내용과 지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불교의 진의를 독자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당시 중국불교의 필연적 요구에 따른 사상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2. 교판사상의 발전과정과 종류
1) 초기형태의 교판
교판론을 설명함에 있어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중국불교에서의 교판과는 달리 경전상에서도 교판과 유사한 원시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데, 주로 비유적인 형태를 지니면서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경전상에 나타난 교판의 원시적인 형태는 이후 중국불교에서의 교판설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밖에 중국의 역경삼장들이 출현하기 이전에 대승논사인 용수가『대지도론』에서 주장한 '대소이교설(大小二敎說)'(혹은 二藏敎說)이나 '현밀이교설(顯密二敎說)' 그리고 난행이행설(難行易行說)이 있으며, 계현의 '삼시교설(三時敎說)'과 지광의 '삼교설(三敎說)'등이 있다.
2) 역경삼장의 교판
역경삼장이란 구마라집이나 보리유지와 같은 경전역경가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특히 5세기경 서역 출신인 구마라집삼장(350~409)에 의한 인도불교경전들의 방대한 역경작업은 중국인들에게 그 많은 경전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느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적 문제들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구마라집이나 보리유지와 같은 역경삼장들의 경우에도 이후 중국불교에 나타난 교상판석과 같은 체계는 아니더라도 교판론적인 경전관을 지니고 있었다. 508년에 중국의 북위로 건너와『십지경론』을 비롯하여『금강반야경』,『입능가경』,『무량수경론』등을 번역한 보리유지가 주장한 일음교설(一音敎說)은 대소승경전이나 대승경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리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주장된 것으로 중국 교판설의 맹아라고도 할 수 있다.구마라집의 일음설도 원측(613~696)의『해심밀경소』에 나타나 있다. 그밖에 구마라집의 제자인 도생은『법화의소』에서 경전 하나하나의 명칭은 들지 않았지만, 아함경을 선정법륜(善淨法輪), 반야경을 방편법륜(方便法輪), 법화경을 진실법륜(眞實法輪), 열반경을 무여법륜(無餘法輪)을 대표하는 경전이라고 하였다. 또한 승예는 삼장(三藏), 반야, 법화, 니원(泥洹:열반)의 4교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3) 남북조시대의 교판 (남3북7의 교판)
동진시대를 거쳐 남북조시대에 들어서면 강북에는 지론종과 섭론종, 강남에는 성실종 또는 열반종이 성립되어 본격적인 경전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실질적 의미의 교상판석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남3북7의 교판은 천태지자의『법화현의』제10권 '출이해(出異解)'에서 밝히고 있는데, 당시 남북조의 교판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삼종교상(三種敎相)이라는 교판론을 통해 종합, 정리하고 있다. 지의의 삼종교판에 대한 내용은 잠시 뒤에서 설명할 천태의 교판론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먼저 당시 남조의 3가지 교판론과 북조의 7가지 교판론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ㄱ. 남지의 교판 (남3)
1. 호구, 유급의 삼시삼교설(三時三敎說)
- 돈교, 점교(유상(有相), 무상(無相), 상주(常主)), 부정교
2. 종애법사의 삼교사시설(三敎四時說)
- 돈교, 점교(유상, 무상, 동귀(同歸), 상주), 부정교
3. 정림사(定林寺) 승유, 혜차의 삼교오시설(三敎五時說)
- 돈교, 점교(유상, 무상, 포폄억양(褒貶抑揚), 동귀, 상주), 부정교
ㄴ. 북지의 교판 (북7)
1. 북지사의 삼교오시설(三敎五時說)
- 돈교, 점교(인천(人天), 유상, 무상, 동귀, 상주), 부정교
2. 보리유지의 반만이교설(半滿二敎說)
- 반자교(半字敎), 만자교(滿字敎)
3. 광통의 사종판(四宗判)
- 인연종(因緣宗), 가명종(假名宗), 광상종(誑相宗), 상종(常宗)
4. 자궤법사의 오종판(五宗判)
- 인연종, 가명종, 광상종, 상종, 법계종(法界宗)
5. 기사름사의 육종판(六宗判)
- 인연종, 가명종, 광상종, 상종, 진종(眞宗), 원종(圓宗)
6. 북지선사의 이종대승판(二宗大乘判)
- 유상대승(有相大乘), 무상대승(無相大乘)
7. 북지선사의 일음교설(一音敎說)
이와같이 중국교판의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남북조시대의 교판론은 열반론의 개조인 혜관의 2교5시설이 그 시초를 이루면서 후대 교판사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석존의 일대교설을 형식, 즉 화의(化儀)로써 돈교와 점교로 구분하고, 돈교에 『화엄경』을 배대시켰다. 또한 다시 점교를 5시로 구분하여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유상(소승의 有를 보아 도를 얻는 법), 무상(반야경), 억양(유마경), 동귀(법화경), 상주교(열반경)로 구분하였다.
4) 수대의 교판
淨影寺 혜원은『대승의장(大乘儀章)』「敎述義」를 통해 3가지 이설(異說)을 비판하여 성문장(聲聞藏)과 보살장(菩薩藏)의 범주를 이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다시 성문장을 분류하여 성문성문(聲門聲門)과 연각성문(緣覺聲門)의 두 가지로 나누었다. 또한 크게 분류한 성문장을 국교(局敎)로, 보살장을 점교와 돈교로 분류하였다. 이렇게 성문과 보살의 두 장(藏)으로 분류한 것이 소위 이교판(二敎判)이며,교(敎를) 보는 시점으로서의 종(宗)을 다시 열어서 상세히 한 것이『二諦義』에서 설해지는 사종판(四宗判)이다. 인연법을 일위성종(一位性宗), 가명법(假名法)을 이파성종(二破性宗), 부진법(不眞法)을 삼파상종(三破相宗), 진공법(眞空法)을 사현실종(四顯實宗)이라 하였는데 경론의 이름은 따로이 배대되지 않고 있으며, 입성과 파성의 두 가지는 소승, 파상과 현실의 두 가지는 대승을 뜻한다. 결국 앞의 두 가지는 소승법, 뒤의 두 가지는 대승법으로 나타낸 것으로, 성문장과 보살장의 분류와 마찬가지로 대소이승(大小二乘)의 분류와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교판은 경론의 이름에 따른 것이 아니라 경론의 뜻을 살펴서 논한 것이라 한다.
3. 천태의 교판
천태의 5시8교 교판론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역경가 이전의 논사인 용수 등의 교판적 분류등과 함께 위진남북조 시대 당시 남쪽의 성실종 또는 열반종의 교판 3가지와 북쪽의 지론종 및 삼론종의 7가지 교판을 모아서 지의가 독자적인 체계를 갗추어 형성된 것이었다. 이러한 5시8교의 교판론은 중국교판중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화엄교판과 서로 교학적 우열을 드러내며 정립되었다.
5시에는 통(通)5시와 별(別)5시가 있는데 통5시란 화엄에 법화가 있고 법화에 화엄이 있다는 식으로 각각 상통함을 드러낸 것이고, 별5시란 화엄에서 법화로 단계를 밟는 것으로 따로따로 살피는 것이다. 천태에서는 법화주의적 입장에서 통5시보다 별5시를 더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5시의 교판은 법화열반시를 맨 마지막에 둠으로써 법화경을 부각시키고 대소승 경전을 가르침의 내용의 난해함을 석존의 생애와 배대하여 대소승경전의 체계적 해석을 이루어 중생들의 이해력을 단계적으로 높이려는 의도에서 조직된 것으로 인도불교의 중국불교화라는 천태교학의 특징을 잘 드러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5시설
5시(五時)는 화엄시, 녹원시(아함시), 방등시, 반야시, 법화열반시의 5가지로 석존의 교설을 일생이라는 시간적 분류로서 구분해 놓은 것이다. 5시의 교판은『화엄경』(보왕여래성기품)의 삼조(三照)와 『열반경』(성행품)의 오미(五味),『법화경』(신해품)의 장자궁자(長者窮子)의 비유를 근거로 하고『법화현의』권제1上과 권제10下의 내용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화엄시는 석존이 성도하신 직후 최초 3∙7일간『화엄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이 화엄경의 교설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내용을 그대로 설한 것이기 때문에 마치 해가 떠서 높은 산의 봉우리를 비추이는 것과 같이 그 교설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고 높다. 또한 장자궁자의 비유에 따르면 부자아버지를 보고 궁자인 아들이 놀라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또한『열반경』의 비유에 나타난 우유의 다섯 가지 맛 중 유미(乳味)에 속하는 것으로 막 짜낸 순수한 우유이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따라서 다시금 일반범부의 수준에 맞는 교설의 가르침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아함시란 석존이『화엄경』을 설한 이후, 12년간 성문연각, 보살의 3승에게『아함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의 경전은 원시경전 혹은 소승경전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설법장소가 녹야원이었기에 녹원시라고도 불리며『화엄경』삼조(三照)의 비유에 의하면 햇빛이 심산유곡을 비추이는 때를 말한다. 따라서 비추는 범위가 좀 더 늘어난 것이다. 오미(五味)의 비유에서는 우유를 약간 발효시켜 쉽게 마실 수 있는 낙미(酪味)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장자궁자의 비유에 따르면 장자가 궁자와 같은 열등한 근성에게 알맞은 일을 시키며 유인하는 단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방등시란 아함부 경전을 설한 이후 석존이 8년간 방등경을 설한 시기이다. 방등경이란 일반적인 대승경전류의 총칭으로『유마경』,『금광명경』,『승망경』등의 경전을 지칭한다. 소승의 가르침에서 대승으로 옮겨가는 중간단계의 가르침으로 많은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보이고 있다. 즉 소승의 낮은 깨달음을 방편이라 설하고 비판하면서 본뜻인 대승을 열어 보이는 것으로 삼조(三照)의 비유에 따르면 지금의 오전 8시경에 해당되며 오미(五味)의 비유로는 낙미가 조금 더 발효된 생소미(生蘇味)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장자궁자의 비유로는 거지아들이 창고를 맡아서 관리하는 시기라 볼 수 있다.
반야시는 대승과 소승이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으며 모두가 空 임을 가르쳐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원만한 가르침을 설한 시기로 방등시 이후 22년간 설법하신 시기를 말한다. 반야시라는 명칭은 반야부경전에 의거한 것인데 세 가지 점교 가운데 마지막에 해당한다. 삼조(三照)의 비유로는 오늘날의 10시쯤에 해당하며, 오미(五味)의 비유로는 숙소미(熟蘇味)에 해당한다. 장자궁자의 비유에서는 장자가 병이 들어서 얼마 뒤 죽을 것을 예감하고 빈궁한 아들에게 창고의 금은보화를 마음껏 가져쓰게 한 단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법화열반시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이르시기 전까지 약8년간 설법하신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법화경』의 설법과 열반직전 설하신『열반경』의 교설을 총칭한 것이다.『법화경』이 총합통일적인 진리와 세계를 설명한 것이라면『열반경』은『법화경』을 설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중생이나 말세악견중생을 위해 부처님이 임종직전 하루낮 하루밤에 걸쳐 '실유불성(實有佛性)을 설법하신 것이다. 삼조(三照)의 비유에 따르면 해가 정오에 이르러 곳곳을 비추는 것이며, 오미(五味)의 비유에 따르면 우유가 완숙히 발효되어 제호미(醍醐味)가 된 것이다. 장자궁자의 비유에 따르면 장자가 궁자가 자신의 아들임을 널리 밝히고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는 단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8교설
8교(八敎)는 부처님이 가르침을 전달하고 중생이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구분한 '화의사교(化儀四敎)'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용으로 하여 구분한 '화법사교(化法四敎)'로 구분된다. 화의사교는 8교의 분류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의 형식에 따른 분류라 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교육방법에 따른 분류라고 할 수 있다. 화법사교란 8교중 부처님의 교설을 그 내용에 따라서 분류한 4가지의 것을 말한다. 장교(藏敎)와 통교(通敎)는 공관을 행하는 것인데, 장교가 공을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석공관인 반면에 통교는 공을 체득적으로 파악하는 체득관이라 한다. 별교(別敎)와 원교(圓敎)에서는 空-假-中의 3觀을 행하는데 별교가 공가중을 차례로 행하는 차제삼관인 반면, 원교는 공가중을 한마음에 관하는 일심삼관이라 할 수 있다.
가) 화의사교 -돈(頓)교, 점(漸)교, 비밀(秘密)교, 부정(不定)교
돈교에서 돈(頓)이란 돈직(頓直)과 돈초(頓初)의 뜻이 포함되는데, 돈직은 여래가 깨치신 그대로의 내용을 설한 것이고 돈초는 화엄돈교가 부류로서는 최초에 놓인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는 돈초라는 점을 더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돈교의 모습은 『화엄경』에 주로 나타나지만 다른 곳에서도 돈교의 모습은 나타나고 있다. 즉 화엄시뿐만아니라 모든 대승경전과 아함시에서도 비밀로 설해지는 것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점교는 아함, 방등, 반야의 3시가 모두 해당하며 화엄돈교에 대비한 의미로서 점교로 불려진다. 비록 아함, 방등, 반야시가 점교에 해당하지만 위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돈교의 상(相)이 지니고 있으므로 원교법문이 가능해지는 것이며, 사종삼매의 설명에서 의지관이 10승관법의 원교지관에 해당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대지도론』63의 부처의 법륜을 현교와 밀교의 두 가지로 나누는 문장에 의거하여 지의가 새로이 세운 것이다. 이것은 특수한 근기에 대해 은밀히 교화하는 형식을 사용하며, 부처님의 설법내용은 동일하지만, 이것을 듣는 근성은 각별하기 때문에 이익이 같지 않은 것이므로 이 경우를 동체이문(同體異問)이라고 하는 것이 부정교의 일반적인 성격인데, 부정교와 같이 청중의 존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법을 함께 알지 못하는 설법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근기에 따라 이해하는 능력이 일정하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는 각각의 근기에 맞게 일정하지 않은 가르침으로 방편교설을 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부처님의 교화의 자재로움에 의한 것이라고 『법화현의』권1上에 설명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부정교는 화의와 화법적인 측면이 있는데, 후대에 부정교는 화의적 측면만을 강조된 것이 있다고 한다.
나) 화법사교 - 장(藏)교, 통(通)교, 별(別)교, 원(圓)교
장교는 단지 성문만이 아니라 연각이나 보살도 대상으로 하는 소승의 가르침으로, 성문에게는 4제(諦), 연각에게는 12인연(因緣), 보살에게는 6바라밀(波羅密)을 각각 설하는 것인데 주 대상은 성문이라 할 수 있다. 4아함부의 경전이 해당되며 공의 측면은 알지만 부공(不空)의 측면은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단공의 이치만을 밝혀 소승의 궁극적 깨달음인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는 가르침이다.
통교라는 명칭은 앞에서 설명한 장교에도 통하고 뒤의 별교와 원교에도 통하는 가르침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성문, 보살, 연각의 3승인이 모두 현상을 체득하여 공의 진리에 들어간다는 뜻에서 통교라 한다. 이것은 대승의 첫 관문으로서 장교와 별교, 원교의 중간에 있으면서 어떤 것으로도 전환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둔근기는 이승과 같고 예리한 근기는 별교와 원교에 든다고 하였다. 통교의 관법을 체공관이라 하고 설하는 진리는 무생사제라고 한다.
별교는 보살만을 대상으로 하되 단계적으로 계위를 설정한 가르침이다. 앞에서 3승에 대한 가르침과는 다르며, 공의 이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중도(中道)의 이치를 설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현상과 본체가 떨어져 있으므로 점차적인 수행을 통해 단계적으로 깨달아 가게 하는 가르침이다.
원교는 화법사교 가운데 최고궁극의 가르침이다. 원(圓)이란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원만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석존의 가르침중 가장 수숭한 것을 지칭하고 있다. 즉 유위의 경지가 아닌 무위적 경지를 이름하는 것이다. 끊고 없에는 관점이 아니라 현상 그 자체가 본질이며, 본질이 곧 현상이라는 회통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불교 궁극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교의 가르침에서 설하는 진리는 그런고로 무작사제(無作四諦)라 이름한다.
4. 화엄의 교판
화엄의 교판은 법장에 의해서 집대성되었다. 앞서 설명한 천태지의의 교판과 다른점은 최상의 위치에 법화경이 아닌 화엄경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천태교판을 포함하여 화엄교판이 나오기 이전의 교판을 통틀어 10종교판이라고 하며 『화엄오교장』에 잘 나타나 있다. 10종교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여기서 생략하기로 하고 본고에서는 동별이교설과 5교10종의 교판을 통해 화엄교판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동별이교판 (同別二敎判)
화엄교학에서는 일승을 나누어 동교일승과 별교일승으로 구분하며, 법화경을 동교일승에 해당시키고, 화엄만을 별교일승으로 교판하고 있다. 동교는 일승이 삼승과 융화해서 같다는 의미이며『오교장』에서는 일단 일승과 삼승이 있음을 분제승(分諸乘)에서 나누어 보이고, 이를 다시 실(實)로써 권(勸)을 이루며, 권이 실로 돌아간다는 융본말(融本末)로 회통시키고 있다.
별교일승이라는 것은 삼승에 별이(別異)하다는 의미로서 동교일승이 상대의 견해에 입각해 있음에 반하여 이는 절대의 견지이다. 법장은『오교장』에서 이 또한 과분불가설(果分不可說)과 인분불가설(因分不可說)로 나누고 있다. 그는 이리하여 천태교의를 차삼(遮三)의 동교라 하고, 화엄을 직현(直顯)의 별교라 하여 화엄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2) 5교10종판 (五敎十宗判)
가) 5교
법장은 일승이 삼승보다 수승한 이유를 오교십종판에서 밝히고 있는데, 오교판은 법(法), 즉 능전교를 오교에 분류한 것이고, 십종판은 이(理), 즉 소전의 종취를 십종으로 분류한 것이다.
먼저 5교(五敎)라는 것은 소승교, 대승시교, 종교, 돈교, 원교의 다섯가지를 말하는데, 소승교(小乘敎)는 <아함경>, <바사론>, <구사론>등의 설로서 인공(人空)을 설할 뿐이고 법공(法空)을 드러내지 못하므로 대승에서 이를 소승이라 낯추어 부른 것이다. 대승시교(大乘示敎)는 뢰아연기설의 유식을 설한 상시교(相始敎)와 중관의 공시교(空始敎)가 있다. 종교(宗敎)는 대승종극의 의미로 여래장연기설을 말하며, 돈교(頓敎)는 불이법문의 유마경설과 선종의 가르침이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원교(圓敎)는 원융무애 자재무진의 교설로서 삼승을 융섭하기 위하여 동교를 내세웠으나 원교의 주된 바는 별교라고 한다.
나) 10종판
십종판은 오교에서 담고 있는 이치에 의해 10종으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간단히 그 종류를 열거하면 독자부설 등을 아법구유종(我法具有宗)에, 설일체유부의 교설을 법유아무종(法有我無宗)에, 대중부의 교설을 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에 해당시키고 있다. 그리고 설가부의 교설을 현통가실종(現通假實宗)에, 설출세부의 교설을 속망진실종(俗妄眞實宗)에 일설부를 제법단명종(諸法但名宗)에 배대시키고 있다.
그리고 반야경 중론 십이문론등은 일체개공종(一切皆空宗), 종교에 해당하는 진덕불공종(眞德不空宗), 돈교에 해당하는 상상구절종(相想具絶宗), 별교일승의 법문인 원명구덕종(圓明具德宗)이 있다.
법장은 법계연기를 밝히기 위해 유식, 공관, 여래장불교를 차용하고 있는데 이를 화엄교판에서는 대승의 시교와 종교에 배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위에 돈교와 일승원교에 화엄을 포섭시키고 있는 지엄과는 달리 법장은 오로지 별교일승 원교의 화엄을 별립시킴으로서 화엄종이 자리를 굳히게 만들었던 것이다.
Ⅲ. 결론
지금까지 역경삼장 이전의 교판에서부터 여러 가지 교판 사상들을 거쳐 천태와 화엄에 이르는 교판까지를 시간적 순서대로 살펴보되 천태와 화엄의 교판을 중심적으로 살펴보았다. 중국으로 불교가 유입될 때, 인도에서 성립되고 발달된 엄청난 양의 불교교학적 결과물이 역경삼장들에 의해서 번역되면서 그 순서나 발달과정이 언급되지 않은채 유입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중국인들에게 불교를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하였다. 따라서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부처님의 교설을 하나의 체계를 통해 꿰어 보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그러한 시도는 삼교설, 대소이장설, 5시8교설 등 많은 교판사상이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난립된 교판사상이 수당대를 거치면서 천태지의와 화엄종의 지엄이나 법장에 의해 5시8교의 교설과 동별이교판, 5교10종판등으로 체계화되면서 중국 불교 나름의 특징적인 교설이 확립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교판론은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었으며, 불교교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진리로서 받아들이려는 포용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라 하겠다. 비록 현재에 와서 이러한 교판설에 대해서 진위여부에 대한 의견이나 위경여부에 대한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판설의 진위여부를 판별하기 이전에 우리는 왜 이러한 교판론이 대두되었고 각각의 특징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얻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사실이냐 사실이 아니냐가 아닌 불교를 포용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체계속에 녹이려 했던 노력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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