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세월이 지나면서 제자들이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되면서 각자의 교리를 주장하게 되는데 이 시대를
불교사적으로 부파불교시대(部派佛時代)라고 합니다.
이 시대에는 18개 또는 20개 부파의 불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각 파가 각기 자기의 주장을 펴서 이것이 불교다 저것이 불교다 하여
논쟁을 많이 하였지만 모두 어느 한쪽에 집착한 변견이었으니
이것이 소승불교입니다.
그 주장들을 대체로 보면 영원한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유견(有見)과 없다는 무견(無見)으로 갈라졌는데 대중부(大衆部)
계통에서는 무견(無見)을 주장하는 파가 좀 있기는 있어도
상좌부(上座部) 계통에서는 모두가 유견(有見)을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부파불교인 소승불교시대에 있어서는 변견으로 근본을
삼았고 소승경전도 그 당시 자기네들이 편집하였고 또
전해 내려오면서 많이 가필(加筆)하고 개필(改筆)하였습니다.
이것이 저간의 사정이었습니다.
용수보살이 대승불교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삿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破邪顯正〕'는 것이었습니다.
즉 유견(有見)이 아니면 무견(無見)인 소승불교의 삿된 변견을
부숴버리고 부처님의 바른 견해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나선 것이
용수보살의 근본 목적이며 사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용수보살은「중론(中論)」과「대지도론(大智度論)」을
저술하여 부처님의 근본사상인 중도를 천양하였습니다.
중도! 이것만이 부처님의 정통사상이라고 주장하여 그의 제자
제바존자와 같이 부파불교의 추종자들과 논쟁을 벌여 변견을
부숴버리고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복구시키기 위해서 활약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승경전이란 시대적으로 봐서는 혹 부처님과
5.6백년의 차이가 있다 하여도 사상적으로 봐서는 부처님 근본사상을
정통적으로 계승한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승불교는 정통이 아니며 대승불교가 정통인 것입니다.
하나 덧붙일 것은 시대적으로 보아서 불교를 원시불교(原始佛敎),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불교(大乘佛敎)로 나눕니다.
원시불교를 다시 부처님 당시와 직계 자제들이 있었던 불멸 후
30년까지를 대개 근본불교(根本佛敎)라 하고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후
백년까지를 협의의 원시불교라 합니다.
부파불교란 곧 소승불교로서 불멸 후 1세기후부터 대승불교가
일어나기까지 4, 5백년 사이를 말하고 또 대승불교는 서기전 1세기
무렵부터 일어난 새로운 불교를 말합니다.
근본불교인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인 소승불교는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부파불교시대에 있어서는 유견 아니면 무견, 무견 아니면 유견의 변견으로
각기 자기 교설을 주장한 소승불교로서 중도사상이 없는데 반하여,
근본불교는 중도사상에 입각하여 모든 교설이 설하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소승불교는 부처님 사상을 오해한 변질된 불교이며
정통의 불교는 아니라는 것은, 요즈음 와서 학자들이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 근본불교사상에 대한 연구 공적이 제일 큰 사람은
우정백수(宇井伯壽) 박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첫댓글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사상인 중도사상을 담고 있느냐가 불설인지 아닌지를 알게 합니다. 부파불교 시대에는 有의 관점에서 철학적으로 밝혀내려는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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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파불교 시대에는 부처님을 절대적 존재로 인정하지 아니하였고 보통 사람으로서는 붓다가 될수 없다 하였지요.그리고 이 시대에는 자리(自利) 자각(自覺)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지요, 또 재가 불자의 신앙할동에도 비교적 무관 했으며, 실천 보다는 논의를 활발이 참구 하였지요, 부처님이 정한 계율은 지키기 보다는 보수적인 형식주의라 할까, 그래서 시대변화에 적응하려 하지 않았지요. 오늘날 우리가 부파불교를 공부하면서 부처님의 행적과 사상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나무묘법연화경()()()
모처럼 여유있게 처음부터 읽었습니다 다음에 시간내어 다시한번 보려합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