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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시대구분론 |
- 최성락, 2001,『한국 고고학의 방법과 이론』, 학연문화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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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222 신광철 |
Ⅰ. 머리말
1. 시대 구분 - 커다란 문화적 변화를 기준으로 설정
2. 시대 명칭 - 일반적으로 문화적인 특성을 암시
└──- 각 연대는 변화되는 시점의 연대를 결정할 뿐, 절대연대는 제시하지 않음
Ⅱ. 연구사
연구자 |
연대 |
저작 제목 |
논점 |
비고 |
藤田 亮策 |
1948 |
「朝鮮の石器時代」 |
석기시대-금석병용기-낙랑시대-삼국시대 |
최초의 시대구분 |
한국 문화의 정체성 및 외래문화의 영향을 강조 | ||||
남북한 |
1960 |
구석기시대 유적의 발견(북한-굴포리유적, 남한-석장리유적) |
독자적인 연구가 시작 | |
도유호 |
1961 |
『조선원시고고학』 |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의 확인 |
일본학자 주장 부정 |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구분 |
북한의 고고자료에 기인 | |||
김원룡 |
1964 |
「한국문화의 고고학적 연구」 |
┎ 초기철기문화 - 중국+북방문화 전파 철기시대 ┨ ┖ 김해문화 - 낙랑(한대)문화 전파 |
김해패총 · 토기 언급 |
김정학 |
1967 |
「웅천패총연구」 |
김해문화 대신 웅천기 주장 |
웅천패총을 표준유적으로 판단 |
김원룡 |
1973 |
『한국고고학개설』 (초판) |
김해문화 ┒ ┠ 原三國時代(서력기원전후~A.D 300) 웅천기 ┚ |
새로운 용어 및 시대구분 제시 |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삼국시대 | ||||
1977 |
『한국고고학개설』 (2판) |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삼국시대 |
초기철기시대가 청동기시대 후기로 편입 | |
과학백과사전출판사 |
1977 |
『조선고고개요』 |
원시사회(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노예사회(고조선)-봉건사회(삼국 이후) |
삼시대법+유물사관 |
김정배 |
1979 |
「한국고고학에 있어 서 시대구분문제」 |
시대구분에 역사성이 내재해야 한다고 하면서 사회 · 경제적인 시대구분의 필요성을 역설 |
구체적인 대안 제시하지 못함 |
西谷正 |
1982 |
「韓國考古學の時代區分について」 |
구석기시대-즐문토기시대-무문토기시대-원삼국시대-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 |
일본식 시대구분법 적용 |
시간적 범위의 확대 | ||||
한국고고학회 |
1986 |
「한국고고학 시대구 분의 제문제」 |
각 시대의 시기구분에 대한 논의 |
시대구분의 개념 및 방법론에 대한 토론 없음 |
김원룡 |
1986 |
『한국고고학개설』 (3판) |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
연대 추가 각 연대 보정 |
임효재 |
1993 |
「선사시대 남북한 시대구분의 비교」 |
북한고고학이 주체사관에 입각하였음을 지적 |
남북한의 연구성과 비교 |
노혁진 |
1987 |
「시대구분에 대한 일견해」 |
구석기문화기-즐문토기문화기-무문토기 · 요령청동문화기-세형동검 · 초기철기문화기-삼국의 정립 |
삼시대법을 부정 새로운 구분법이 기존 방식과 큰 차이가 없음 |
1994 |
「한국 선사문화 형성 과정의 시대구분」 |
수렵어로채집문화기-무문농경 · 요령청동문화기-한국식농경문화기-국가형성기-삼국시대 |
새로운 개념 도입 절대연대근거 부족 | |
Nelson |
1993 |
the archaeology of Korea |
수렵채집인-초기마을-거석 · 도작 · 청동기- 철기 · 교역 · 개발-삼국시대 |
신개념 도입 연대비정 상의 문제 |
노혁진 |
2000 |
「한국고고학에 있어서 문 화와 시대의 용례 문제」 |
인류학, 역사학과의 연계가 필수적임을 지적 ‘문화’와 ‘시대’의 용어를 혼동하고 있음을 지적 |
정확한 대안 제시 못함 기존 연대에 불신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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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
연대 |
저작 제목 |
논점 |
비고 | ||
신석기 및 청동기 |
안승모 |
1988 |
「신석기시대」 |
토기 · 마제석기 사용, 농경 발생 |
농경 발생 여부에 중점 | ||
윤무병 |
1972 |
「한국 청동유물의 연구」 |
무문토기의 발생에 따른 편년 부정 |
청동기시대 표지유물에 대한 논란 | |||
金延鶴 編 |
1972 |
『韓國の考古學』 |
무문토기 초기 유적에서 청동기 출토 |
무문토기를 기준으로 청동기시대 편년 | |||
초기철기시대 |
김원룡 |
1973 |
『한국고고학개설』 (초판) |
초기철기문화에 후기 청동기문화 포함 |
최초로 유입된 철기문화를 지칭 | ||
김양옥 |
1976 |
「한반도 철기시대 토기의 연구」 |
초기철기문화와 원삼국문화 사이의 차이점이 없음을 주장 |
문화 구분에 대한 반론 | |||
김원룡 |
1977 |
『한국고고학개설』 (2판) |
기원전후~300년까지의 원삼국문화를 초기철기문화로 표기 |
기존 견해를 수정 | |||
이남규 |
1982 |
「남한 초기철기문화의 일고찰」 |
철기가 유입된 시기부터 고총고분 발생 이전까지로 편년 |
김원룡의 견해를 수용 | |||
한영희 |
1984 |
「철기시대-주거생활」 | |||||
국사편찬위원회 |
1977 |
『한국사』1 |
철기시대라는 용어를 대신 사용 |
용어만 수정 | |||
최몽룡 |
1985 |
「역사학과 고고학」 |
청동기 후기(철기 1기)를 초기철기시대로 보자는 견해 |
문화적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을 대변 | |||
1987 |
「고고학 시대구분에 대한 약간의 제언」 | ||||||
김원룡 |
1986 |
『한국고고학개설』 (3판) |
초기철기시대를 철기문화로 정의 |
B.C 300~ A.D 300년 연대를 포괄적으로 확정 | |||
문제점 |
1. 초기철기시대의 개념 속에 청동기문화가 포함(ex. 세형동검, 점토대토기 등) 2. 철기가 처음 사용되었는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는지 구분이 불분명함 | ||||||
이종선 |
1989 |
「오르도스 후기 금속문화와 한국의 철기문화」 |
‘초기’라는 시대구분의 부적당함 그냥 철기시대로 부르자는 주장 |
· | |||
정징원 |
1989 |
「경남지방의 청동기 유적과 유물」 |
직접적인 언급은 없음 청동기 후기와 철기시대를 분명히 구분함 |
경남지방 청동기시대를 4기로 구분함 | |||
최몽룡 |
1993 |
「한국 철기시대의 시대구분」 |
초기철기시대의 잘못된 개념 지적 |
시대구분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실시 | |||
원삼국시대 |
김원룡 |
1973 |
『한국고고학개설』 (초판) |
고고학계 : 김해시대┒ ┠ 원삼국시대 명명 역사시대 : 삼한시대┚ |
서력기원 직후 2세기 또는 2세기 반 | ||
1986 |
『한국고고학개설』 (2판) |
서력기원 직후 300년으로 연대 확정 | |||||
원초삼국시대 or 원사 삼국시대의 의미 | |||||||
최몽룡 |
1988 |
「역사고고학연구의 방향」 |
‘삼국시대 전기’ 시대구분 주장 |
삼국의 성장 과정을 주목하여 그에 따라 시기구분을 함 | |||
1990 |
「전남지방 삼국시대 전기의 고고학 연구현황」 | ||||||
비판 |
최성락 |
1988 |
「원삼국기 토기의 변천과 문제점」 |
원삼국시대는 고고학을 잘 이해하지 못 한 상태에서 나온 시대구분임 |
대표유적이 불분명 문화적 변화를 고정시킴 | ||
한병삼 |
1992 |
「동북아 고대문화에 있어서의 원삼국 초기문화」 |
원삼국시대의 공간적 대상을 한반도 중부로 한정짓자는 견해 |
고고학계 스스로 시대구분의 모순을 인정 | |||
이현혜 |
1992 |
「원삼국시대론 검토」 |
역사학계와의 인식 상반(원사 vs 역사) 고구려를 제외한 지역에만 해당 원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문화내용이 불분명 |
시대구분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 | |||
최병현 |
2007 |
『한국고고학강의』 |
탄력적인 시기 설정을 강조 |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 |
※ 한국고고학상 드러난 문제점
1. 삼시대법의 개념과 의미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보이지 않음
- 당시 문화의 심층적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연구가 이뤄지지 못함
2. 원사시대(原史時代)의 구분이 부정확함
- 고고학과 역사학의 시대구분 접목이 관건
3. 한국고고학의 시 · 공간적 범위가 확정되어야 함
4. 각 시대의 연대비정에 제대로 된 근거가 제시되지 않음
Ⅲ. 시대구분의 개념과 명칭문제
지역 |
연구자 |
연대 |
내용 |
비고 | |
유럽 |
덴마크 (스칸디나비아) |
Suhm |
1776 |
덴마크, 노르웨이, 홀슈타인에서 일찍이 石, 銅, 鐵製 도구가 사용됨을 지적 |
|
Skuli Thorlacius |
1802 |
주로 무기를 분석하여 석기, 동기, 철기의 연속된 3시기 언급 |
| ||
Nyerup |
1806 |
국립고대유물박물관의 설립 주장 |
고유물 분류법을 모름 | ||
Simonsen |
1813~1816 |
석기시대, 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 - 각 시기는 정확한 경계가 없음을 지적 |
가장 잘 보존되는 동, 석제품이 발견됨을 지적 | ||
Thomsen |
1836 |
돌, 청동, 철의 순서로 유물 배치, 안내문 작성 |
| ||
Worsaae |
1843 |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 구분, 삼시대법 완성 |
톰센의 견해 보완 | ||
프랑스 |
Lubbok |
1865 |
석기시대 - 구석기 · 신석기시대로 분류 |
| |
Westropp |
1866 |
중석기시대의 개념을 제시 |
| ||
스웨덴 |
Montelius |
1912 |
형식학적 방법 완성 |
고고학 연구의 획기적인 틀을 마련 | |
· |
Fleure |
1924 |
같은 시대라도 다시 세분화되는 등 기존의 삼시대법 분류법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어짐 |
기존의 삼시대법 비판 - 고정된 시기구분 비판 | |
호주 |
V.G.Childe |
1925 |
식량채집자들, 농업혁명, 도시혁명의 문화요소 제시 | ||
영국 |
Piggot |
1965 |
다양한 모델이 존재하며 끊임없이 수정이 가해짐 | ||
Daniel |
1968 |
C14 연대측정법이 보편, 문화가 다양하게 설명됨 |
삼시대법의 비효율성 지적 | ||
· |
Phillips |
1980 |
삼시대법 그대로 적용 |
일부에서는 계속 사용 | |
Champion |
1987 |
문화 변천에 따른 시기구분을 제기 |
| ||
미국 |
Willy & Phillips |
1958 |
석기-고기-형성기-고전기-후기고전기 |
처음부터 삼시대법을 받아들이지 않음 | |
Willy & Sabloff |
1974 |
지역별로 다른 문화발전단계를 제시 | |||
중국 |
중국사회과학원고고학연구소 |
1984 |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 뒤로는 왕조로 시대구분 |
삼시대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지만 독자적인 시대구분법을 적용 | |
장광직 |
1986 |
구석기시대-초기농경기-신석기문화기-문명의 시작-초기문명기 | |||
일본 |
齊藤忠 |
1982 |
구석기시대(선토기시대, 무토기시대)-조몽시대-야요이시대-고훈시대 |
고훈시대라는 독특한 시기를 설정 | |
한국 |
김정배 |
1979 |
사회 · 경제적인 시대구분의 필요성 강조 |
삼시대법 탈피를 시도 | |
이청규 |
1982 |
세형동검은 청동기문화의 요소이므로 이것이 초기철기시대 구분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 |
남북한간 문화의 차이 고려 | ||
西谷正 |
1982 |
시간적 범위를 조선시대까지 확대 |
| ||
최성락 |
1984 |
삼시대법 탈피를 주장 |
| ||
김원룡 |
1986 |
시간적 범위를 통일신라시대까지 확대 |
| ||
이희준 |
1988 |
시간적 범위를 조선시대까지 확대 |
| ||
이송래 |
1988 |
고총고분 등장을 기준하여 철기시대-삼국시대로 구분 |
문헌이 아닌 고고자료에 의한 시대구분 주장 | ||
이선복 |
1991 |
삼시대법 사용 여부보다 각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더 중요하다는 견해 |
| ||
전경수 |
1993 | ||||
최몽룡 |
1993 |
삼시대법 사용으로 식민사관을 극복 |
금석병용기 부정 | ||
노혁진 |
1994 |
삼시대법은 일본의 잔재라는 극단적인 주장 |
| ||
최정필 |
1994 |
신진화론의 사회발전단계설을 도입 |
각 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못함 | ||
한국고고학회 |
2007 |
남북국시대로 한정 - 영산강유역 추가(공간적범위 확대) |
기존 편년 고수 |
Ⅳ. 각 시대의 연대문제
시대구분 |
연구자 |
연대 |
저서 |
내용 |
비고 |
구석기 · 중석기시대 |
이선복 |
1988 |
「구석기시대」 |
신생대 4기 홍적세 시기인 1만년 이전으로 파악하는데 이견이 없음 |
유적의 시기 분류가 논란 |
배기동 |
1991 |
「구석기시대」 | |||
신 석 기 시 대 |
기존 한국학계 |
1970년대 초반 |
한국 신석기시대 상한을 기원전 3,000년대로 파악 일본의 C14 연대측정결과 무시- 기원전 3,000년경을 조몽문화의 개시기로 파악 | ||
최성락 |
1982 |
「방사성탄소측정연대 문제의 검토」 |
C14 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6,000년대까지 상한될 근거가 마련 |
C14 연대와 실연대와의 비교 | |
김원룡 |
1977 |
『한국고고학개설』(2판) |
조기-전기-중기-후기로 분류 |
| |
임효재 |
1983 |
「서해안지역의 즐문 토기문화」 |
전기-중기-후기로 분류 |
중부지역에 한정함 | |
안승모 |
1988 |
「신석기시대」 |
부산 동삼동유적 및 김해 수가리유적을 통한 신석기문화 편년 시도 |
지역별로 다른 구분이 시도 | |
청 동 기 시 대 |
기존 한국학계 |
한국 청동기문화가 시베리아 카라수크문화(B.C 1,200~700)에서 발원하여 뒤이은 타가르문화(B.C 700~200)의 남파와 연관이 있다고 판단. | |||
이백규 |
1974 |
「경기도 출토 무문 토기 · 마제석기」 |
남한지역 청동기문화를 전기 · 후기로 분류 |
토기 및 석기를 기준 | |
과학 · 백과 사전출판사 |
1977 |
『조선고고학개요』 |
무문토기의 개시기를 기원전 2,000년대로 파악 |
남한보다 이름 | |
최성락 |
1982 |
「방사성탄소측정연대 문제의 검토」 |
무문토기 사용개시를 기원전 1,300년으로 상한 |
C14 연대측정법 | |
이청규 |
1988 |
「광복 후 남북한 청동 기시대의 연구성과」 |
중국 요령지방 문화와 무문토기문화 초기 유적을 포함 |
공간적 범위의 확대 | |
하인수 |
1988 |
「영남지방 단도마연토기의 신고찰」 |
중기를 추가하여 중기에 송국리문화 설정 요령식동검문화도 포함 |
시대구분이 세분화 | |
윤무병 |
1989 |
「청동기 및 초기철기 시대의 한 · 일관계」 | |||
임효재 |
1993 |
「선사시대 남북한 시대구분의 비교」 |
공간적 범위를 중국동북까지 포함하여 청동기문화를 신석기시대 말기와 연결 |
북한의 연구성과 비판 - 타당성 결여 | |
Nelson |
1993 |
「the archaeology of Korea」 |
C14 연대를 이용하여 기원전 2,000년을 주장 - 이중구연토기를 무문토기로 오해 |
| |
철 기 시 대 |
기존 한국학계 |
북한 |
철기문화 개시기를 기원전 7세기경으로 파악 - 철기가 요령식 동검 시기에 이미 확인 『조선고고학개요』에서 기원전 5~4세기 · 3~2세기로 분류 - 출토 유물이 극히 적음 | ||
남한 |
일반적으로 기원전 4~3세기로 파악 | ||||
최성락 |
1982 |
「방사성탄소측정연대 문제의 검토」 |
철기시대 개시기를 세형동검 후반기로 비정 C14 연대측정 결과 - 남부 B.C 200년경 |
| |
1993 |
『한국 원삼국문화의 연구』 |
철기의 유입기-철기문화 개시기-철기문화 로 접어든 단계-철기문화 발전기 |
철기시대를 4기로 분류 | ||
삼국 시대 |
최성락 |
1995 |
「한국고고학에 있어서 시대구분론」 |
고총고분 발생을 기준 - 일본의 고훈시대와 다름 |
|
Ⅴ. 맺음말
1) 구석기시대
2) 신석기시대(B.C 6,000~1,300)
3) 청동기시대(B.C 1,300~300 · 200)
4) 철기시대(B.C 300 · 200~국가성립 이전)
5) 삼국시대(국가성립 이후~)
※ 참고문헌
金元龍, 1986,『韓國考古學槪說』(3판), 一志社
金貞培, 1979,「韓國 考古學에 있어서 時代區分 問題」『韓國學報』 14, 一志社
金廷鶴, 1967,「雄川貝塚硏究」『아세아연구』10-4, 고대 아세아연구소.
노혁진, 2000,「한국고고학에 있어서 ‘文化’와 ‘時代’의 用例 문제」『先史와 古代』14, 한국고대학회
任孝宰, 1983,「西海岸地域의 櫛文土器文化」『한국고고학보』14 · 15, 한국고고학회
鄭澄元, 1989,「慶南地方의 靑銅器遺蹟과 遺物」『한국고고학보』12, 한국고고학회
崔夢龍, 1990,「全南地方 三國時代 前期의 考古學 硏究現況」『한국고고학보』24, 한국고고학회
崔夢龍 · 崔盛洛 編, 1997,『인물로 본 고고학사』, 한울아카데미
崔盛洛, 1995,「한국고고학에 있어서 시대구분론」『아세아고문화』, 석계황용훈교수정년기념논총, 학연문화사
한국고고학회, 2007,『한국고고학강의』, (주)사회평론
Glyn Daniel 著 · 金貞培 譯, 1992,『考古學發達史』, 신서원
첫댓글 수업시간에 정리한 글입니다. 고고학계에서 시대구분론을 두고 벌였던 논쟁을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고고학 전공자가 아니면 딱히 정리해서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올립니다. 참고하세요~^^ (숙제할 목적으로 가져가지는 않으시겠죠? 설마? 숙제 안 하면 본인 손해입니다.)
좋은 자료로군요. 퍼 가겠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숙제는 아니고 발표떄 예시형식으로 보여주려합니다 출처는 밝히겠습니다. 허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괜찮습니다. 별거 아닌데요 뭐~^^
감사합니다!!!
질문하나만요!! 일본시대 시대구분한 학자의 이름좀..... 해석을 못하겠어요 ....
일본 학자 어떤 분을 말씀하시는지 정확히 몰라서 2명 다 남깁니다. 위에 분은 등전양책(藤田亮策)-후지타 료사쿠, 아래 분은 서곡 정(西谷 正)-니시타니 타다시입니다. 후지타 쌤은 누군지 솔직히 잘 모르구요, 니시타니 쌤은 뭐 한-일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분이죠. 한국 고대사 혹은 고고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그 영향력도 무시 못 하는 대석학입니다. 암튼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혹시 이거 글을 보고 하나하나씩 어디다가 직접 타자쳐서 옮기시는 건 아니신지?? 필요하시면 한글 파일을 하나 보내드릴까요? 정확히 어떻게 사용하실지를 몰라서...연락 주세요~메일로 보내드려도 되니깐요.
우왕 친절한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설마가 사람잡는다고..옮겼답니다!! ㅋㅋ 좋은정보 얻어가는데 이정도 수고는 정말 숨쉬기보다 아무것도 아니죠!! 정말정말 알찬정보 감사합니다!!
헉! 이거 A4에서 옮기느라 원래 싸이즈에서 많이 줄었는데...그걸 다 옮기시다니! 헉! 대단하시네요. 다음에는 어떤 데에 사용하시겠다고 하시면, 제가 적절한 처리를 하겠습니다. 그 정도 수고는 숨쉬기보다 대단히 빡쎈 걸로 아는데...-.-; 암튼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