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통조림의 추억 (인간이 감히 개밥을...)
글 / 長 山 박재도
삼십 여도를 오르내리던 이글거리는 태양이 머물다간 자리에 어둠이 서서히 몰려온다.
서늘한 바람도 약간 불어주니 스산한 느낌마저 들지만, 온종일 열 받은 정신과 육신은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 본능에 따라 집을 찾았다. 때마침 도우미 아줌마도 휴가 중이라 반기는 것은 나처럼 한낮 기온에 열 받아 후끈한 실내공기뿐이지만 나는 행복했다. 아! 해가 지면 말 못 하는 미물도 집을 찾지 않는가!
아무리 행복해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든가, 냉장고 안을 살피니 별로 찬이 없다.
마누라가 보내준 젓갈일랑 몇 가지 남은 찬들뿐이다. 힘없이 싱크대 찬장 문을 여니 꽁치통조림 2통이 확 눈에 띈다. 아! 아끼고 아낀다고 깊이 보관한 전달에 마누라가 보내준 위문품이다. 순간 마누라의 사랑에 에너지가 충전되어 생기가 돈다. 얼른 챙겨 아침에 해둔 찬밥 한술과 함께 먹으니 꿀맛과 함께 적셔오는 눈시울 사이로 꽁치통조림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때는 1971년 해군 일병으로 해상근무 중 육상근무 명령을 받아, 서해 최전방 백령도 행정구역상 정확한 주소는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 두문진 백령 별장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214 전탐기지) 당시만 해도 약 51년 전이니깐 참배고 픈 시절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해상근무 때보다는 꽤 나은 주부식이 나왔다. 그런데 꽁치통조림은 별미로 귀한 식품이었다. 우리 부대 백령 별장 안에는 해군에서는 귀한 독일에서 훈련받은 군견 두 마리가 있었다. 수놈 이름은 "브르나"이고 암놈은 "쥬리"다. 이놈들은 소속부터 달랐다. 당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 소속이며, 계급도 중사와 하사를 부여받은 놈들이다. 이놈들 하루 식사비용은 열나게 고생하는 우리보다 약 5배나 많았다. 그래서 이놈들은 하루 두 번 끼니때마다 꽁치통조림 1통에 귀한 달걀 2개를 밥에 넣어 비벼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놈들의 식사를 우리가 몰래 도둑질해 먹는 것이다. 감히 인간이 중앙정보부 개밥을.......
그날도 창고에서 이놈들의 식사인 꽁치통조림을 몇 개 훔쳐, 씐 김치를 덤숭덤숭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듬뿍 풀어 넣은 그야말로 꽁치통조림 김치찌개를 만들어서 서해지방의 명주인 와룡(인천 서해 북부지방 대표 소주) 소주를 잔도 없이 짬밥 양재기에 부어 마시고 있는데 비상이 걸린 것이다. 비상은 다름 아니라 술에 취한 졸병 한 놈이 화장실인 줄 알고 감히 기지장 방문 앞에다 거시기를 까고 한강을 만들다 들통나면서 꼬리가 잡힌 것이다. 아! 그날 저녁에 군인이 감히 중앙정보부 개밥을 훔쳐 먹은 대가는 개보다 못한 개새끼가 되어서... 그다음은 생각하기도 싫지만...
오늘 수저에 묻어나는 꽁치통조림 기름방울에 아롱아롱 비취는 아련한 추억을 지금도 잊지 못하며, 또한 우리는 레저문화가 시작 대면서 산이나 들로 나들이 갈 때 필수로 챙기는 식품이었으니까. 누구나 꽁치통조림의 추억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지 않았는가. 비록 지금은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먹거리가 많아 자주 찾지 않는 꽁치통조림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마누라가 보내준 위문품은, 이곳에서 항상 외롭고 쓸쓸한 나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고마운 마음에 촉촉이 적셔오는 눈시울 사이로 또 하나의 추억이 쌓이며 마누라가 비췬다.
* 이국땅에서 *
첫댓글 정말 그 시절엔 통조림이 귀했던 시절이죠
그 추억을 안고 부인께서 보내주신 꽁치 통조림
맛있게 드셨다니 사랑하오 하는 말이 나와야 되죠
소중한 가족의 마음입니다
무탈하신 한주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