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현충일(顯忠日) 입니다. 국가(國家)를 지키다 산화하신 분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특히나 1950년 6월 25일 발생한 남북한의 비극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은 분들을 특별히 기억하는 날입니다.
현대사(現代史)에서 무수한 사람이 죽은 한반도 최고의 비극이며 남북한 모두를 페허로 만들어 버린 6.25
과연 6.25는 왜 일어난 것일까요?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김일성이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하여 쳐들어 온것일까요? 제가 신도(神道)를 모르지만 기록에 나온대로 설명하면 6.25는 동학(東學)의 해원(解寃)이었습니다.
증산계열의 기록중 6.25에 관하여 언급한 것은 많지 않습니다.
“김제에 나가 대전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수원(佳水院)에서 하룻밤을 세우고 이튿날 식전에 대전에 도착하니 온통 인심이 들떠 정신들을 잃을 지경인데 북한 공산군이 남침을 개시하여 벌써 서울까지 밀고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다. 불시의 명령을 내리신 뜻을 그제서야 깨달은 우리는 서울방면으로부터 물밀 듯 내려오는 피난민 틈에 끼여 겨우 기차에 올라 대구에 내리게 되니 그곳의 교중 형재 이교태(李敎台)의 장자 종회(鍾會)의 집을 찾아서 가니라. 그 집에서 저녁 진지상을 올리고 예를 드리니 성부께서 말씀하시되 『큰일이로다 대구는 최수운(崔水雲)이 참사를 당한 자리라 수운은 대혁명 사상가로서 나라를 개명(開明)시키고자 하는 사상을 가졌음으로 이번 일도 그가 하는 일이라 하시며 내일은 수운을 위하여 치성준비를 갖추어 달성공원(達城公園)에서 치성을 드리되 창호지에다 이 난리가 대구로부터 부산까지는 범치 못하리라고 써서 설상(設床) 앞에 펴놓고 치성 예를 올린 다음 소화(燒火)하라』 고 명령하시니라. “ – 화은당실기(華恩堂實記)
우리는 보은(報恩)도 해야하고 지금(只今) 세태(世態)가 요란(擾亂)한 것도 갑오년(甲午年) 동학란(東學亂)의 보복(報復)으로 해원(解寃)시키는 난잡(亂雜)이니 내년(來年)까지 가야 끝이난다.
선생님(태인 미륵불교의 창교자 수산 정인표:鄭寅杓)께서 세존님(世尊任)에게 주달(奏達)하시대 근일(近日) 남조선지대(南朝鮮地帶)에는 인명살상(人名殺傷)이 과다(過多)하여 인심(人心)이 흉흉(洶洶)하오니 성현(聖賢)의 시대(時代)에 여차즉(如此則) 장래하여호(將來何如乎)이까.
세존님(世尊任)께서 전명부(全明夫)를 명소(命召)하시니 명부응명(明夫應命)하시며 즉시(卽時) 선생님(先生任)께 호방책(好方策)을 청문(請問)함으로 선생님(先生任)께서 이 소요(騷擾)가 갑오란(甲午亂)의 해원(解寃)인데 도금(到今)은 빈부귀천(貧富貴賤)도 상당(相當)히 균형(均衡)되었으니 이에서 그치면 해원(解寃)은 족(足)하다 하시고 – 경인(庚寅 1950)년 9월 심삽일 설법기
왜 동학(東學)의 해원(解寃)이 남북한 간에 끔직한 전쟁(戰爭)일까요. 우리 모두는 각자 마음속에 천주(天主)님을 모시고 있다는 말하는 동학(東學)이 어찌 이런 전쟁을 신도(神道)에서 일으킨 것일까요?
대순전경(大巡典經)에 기록된 대로 동학(東學)을 했던 사람은 모두 왕후장상(王侯將相)을 기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어서. 그 한(恨)으로 그냥 전부 죽이려 한것일한것 일까요? 보천교(普天敎)에서 해원(解寃)을 못한 것일까요? ? ?
동학(東學)을 하면서 왕후장상(王侯將相)의 꿈을 꾸신 분들도 상당하겠지만, 대동세계(大同世界), 신분적인 차별이 없는 사회, 강자(强者)가 약자(弱者)를 평생 복종시키는 봉건제. 이런 선천(先天)의 못난 세상을 없애려고 한 동학(東學)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한반도에는 봉건제도가 공공연히 남아 있었습니다. 묶은 질서. 이 질서를 청산하지 못하면 남조선(南朝鮮)은 새로운 출발을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者)는 먼저 망(亡)하고 들어서야 하느니라
이 묵은 봉건적 질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구습.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날려버린 것이 6.25 입니다. 물론 이 전쟁으로 인하여 원한(寃恨)도 생기고 가슴 아픈 사연, 수많은 죄없는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큰 해원(解寃)판으로 인하여 남조선(南朝鮮)은 오천년(五千年)이상 지속되어 왔던 신분제(身分制)를 완전히(99.99%) 벗어났습니다. 한반도(韓半島)가 먼저 크게 망(亡)하고 새로운 토태에서 새롭게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폐허에서 시작하여 지금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발전된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묵은 봉건제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 출발을 하는데 6.25란 전쟁은 피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이런 변혁의 과정에서 전쟁 내지 내란을 피한 나라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도 노예문제를 두고(명목상이고 실제 이유는 다른것이다란 주장도 있습니다) 남북전쟁을 벌였습니다.
과연 전쟁을 피할 방법은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을 열어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남녀(男女), 신분(身分)에 따른 차별을 멀리하고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서로 도와주었으면 전쟁은 피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말 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결국 현실에서 전쟁(戰爭)을 피할 방법은 없었으며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6.25때 희생된 모든 영령들이 편히 쉬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6.25의 폐허를 딛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어 낸 아버님 세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3HLFkYyVy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