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에 대하여
- 6세기 인도수학자 처음 사용, 유럽에선 지하 1층 위는 0층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건물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층을 올라갔는데도 내려 보면 다시 1층이어서 어리둥절하게 된다. 빌딩 로비가 우리는 1층에 있는데 그들은 0층이어서 그렇다.
사실 이게 더 합리적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건물 지하 3층에서 6개층을 올라가면 지하 2, 1, 지상 1, 2, 3, 4 이렇게 해서 4층에 도달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중간에 0층이 하나 더 있어 3층에 이르게 된다.
지하 3층을 '-3' 지상 3층을 '+3'으로 놓고 여섯층 올라가는 것을 '6'을 더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3+6=3'이다. 즉 유럽식이 수학과 더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0 이라는 표현이 나타난 것은 6세기 초 인도에서였고,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10세기 전후에 들어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특정 시대에 발달한 수학은 당시의 시대 정신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는 '공(空)'의 개념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0 이라는 수를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들 한다.
물론 인도에 앞서 메소포타미아나 마야 문명의 유물에도 0의 개념을 알았다는 흔적이 있다지만, 0을 분명한 하나의 수로 취급한 것은 인도 수학자들이 처음이다.
한편으로 서양 학문의 원조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 즉 진공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런 관념 때문에 동양에 비해 0의 등장이 늦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0이 늦게 등장한 것은 한 세기의 경계를 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21세기의 시작은 2001년이다. 하지만 2000이 1999와 전혀 다른 숫자로 느껴지기 때문에, 2000년을 21세기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 정서적으로는 더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2001년이 21세기의 새벽이 된 것은 기원전에서 서기로 넘어온 첫 날이 0년 1월 1일이 아니라 1년 1월 1일이어서다. 옛날 달력을 만들 때는 0 이 없어 1년 1월 1일이 시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날이 2001년 1월 1일이다.
테니스 경기에서는 0점을 '러브'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0의 모양이 달걀 같고, 프랑스어로 달걀을 뜻하는 단어 '러브'와 발음이 비슷해 그렇게 됐다는 것이 그 하나다.
또 귀족과 하인이 자주 시합을 했는데, 주인이 점수를 못 딸 때 '빵점'이라고 하기 민망해 '러브'라 했다는 얘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