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破卵)의 고백
금현
“뉴스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경기도 소재 에이플러스 백신연구소의 신입 연구원 두 명이 닭으로 변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연구원들은 달걀에 주입하던 백신을 음료수로 오인해 마셨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현재 두 연구원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로 경찰은 정밀 수사 중에 있습니다. 한편 질병관리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에이플러스 백신연구소의 백신 전반에 대한 역학조사를 의뢰했습니다. 에이플러스 백신연구소 측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입장 발표를 미루고 있습니다.”
양계장 안에 설치한 인공지능 모니터로 뉴스 속보를 듣던 닥치고 양계장주 치환은 공포에 휩싸였다. 에이플러스 백신연구소 태원 소장에게 빠르게 홀로그램 통화를 시도했다.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태원 소장은 식물기반 백신이 막바지 출시단계라는 정보를 접하고부터 더 조급해졌다. 명목상 공개 입찰 형식을 띄었지만, 브로커를 통해 낮은 단가로 우선 협상한 닥치고 양계장과 수의계약을 맺었다. 태원 소장 입장에서는 기존의 유정란 공급처보다 가격 면에서 착한 무정란 공급처인 닥치고 양계장이 유리했다.닥치고 양계장 쪽에서도 대환영이었다. 국내 생산 달걀의 99%가 무정란으로, 공산품이나 다름없는데다 전체 달걀 생산량의 70% 이상을 기업형 농장 몇 십 개가 차지한 탓에 개인 양계장은 가격 협상력이나 유통망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유정란과 영양소 차이가 거의 없는 무정란의 판로가 안정되어 치환은 한시름 놓았다.
유정란 백신에 암탉이 스스로 낳은 무정란을 주입하면서부터 이상기류가 감지되었다. 일부 연구원이 불규칙적으로 닭으로 변이했다. 최초 발견자인 소장도 어떤 화학 반응이 활성화되어 인간이 닭이 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극도로 불안해진 소장은 무정란 이상이라며 닥치고 양계장주인 치환을 몰아세웠다. 치환은 무정란의 지속적인 공급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인간 닭을 받기 시작했다. 윤리적 찜찜함은 애써 술로 덮었다. 정밀조사를 요구하는 연구원 가족의 요구가 빗발쳤지만,어쩐 일인지 금세 수그러들었다. 분명 대형사고였지만, 수완 좋은 소장이 돈으로 사람을 매수했을 거라고 치환은 짐작할 뿐이었다.
한동안 세간의 관심을 비껴갔던 에이플러스 백신연구소의 비밀이 순식간에 뉴스에 대서특필되었다. 치환은 닥치고 양계장까지 불똥이 튈까봐 조바심이 났다.소장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메시지를 남겼다.
“소장님, 더 이상 인간 닭은 못 받습니다. 같이 죽을 순 없잖습니까. 연락 주세요, 제발!”
닥치고 공장에 인간 닭이 있다고? 파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인간도 닭의 모습을 하고 있을 텐데, 어떻게 인간 닭을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인간에겐 우리 닭과 다른 어떤 표식을 달아놓은 걸까? 파란은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어졌다. 그러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인간 닭도 우리처럼 고통 받다 죽을 텐데. 괜한 참견이다 싶었다.
파란은 오히려 인접한 다정양계장의 닭이 부러웠다. 동물복지인증 산란계 양계장인 다정 양계장은 암탉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모래찜질과 바닥 쪼기를 했다. 횃대와 산란 상자를 제공받는 등 닭의 본성을 존중받았다. 스트레스가 적다보니 질병 저항력이 높았고, 예방 목적의 항생제나 성장촉진제를 투여할 이유도 없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닭을 신성시하는 풍습이 있었다. 제 시간에 우는 습성도 진리에 대한 비밀을 아는 예지의 동물로 특별하게 인식되었다. 닭의 붉은 볏은 승리와 용맹의 상징이었고, 야생 닭의 조상 격인 적색야계는 약 3000만 년 전에 탄생했다고 전해졌다. 2050년 파란을 비롯한 대다수 닭의 신세는 어떤가. 태어난 지 닷새 만에 납작하게 부리를 잘린 채 평생 태블릿 컴퓨터보다 작은배터리 케이지 공간에 갇혀 몸을 돌리거나 날개를 펴지 못한다. 가끔 양계장 안의 AI 모니터 안에서 치킨이나 소시지를 먹는 인간을 볼 때면 파란의 목은 서서히 조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