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월곡리(月谷里)의 지명은 달아실마을을 한자로 표기하여 달은 달월(月)자로 쓰고 실은 골곡(谷) 자를 각각 써서 월곡리로 한 것이다. 월곡리는 달아실(월곡) 마을과 벼루굴(성골)마을, 버드나무골(류곡)마을, 양정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버드나무골마을은 예전에 버드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이렇게 부르며 한자로는 버들류(柳)자를 써서 류곡(柳谷) 이라 한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서일면(西一面),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능주군(綾州郡) 대곡면(大谷面) 류곡리(柳谷里) 로 기록되어 있다. 1913년에는 화순군(和順郡) 대곡면 류곡리, 1914년 행정구역개편때 오도면, 대곡면, 화남면을 합하여 도곡면으로 칭하면서 화순군 도곡면(道谷面) 월곡리(月谷里)(월곡리, 유곡리, 양정리) 로 편입되었다. 현재 월곡2리 이며 1개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산물(쌀, 보리), 특산물( ), 주소득원(쌀, 보리)
●성씨 : 제주梁(27), 남평文(13), 청도金(3), 창녕曺(2), 천안全(2), 하동鄭(1), 전주李(1), 광산李(1), 기계兪(1), 밀양朴(1)
●마을형성 버드나무마을은 동쪽으로는 곤지산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비어등, 남쪽으로는 해망산, 북쪽으로는 도곡평야가 펼쳐져 있고, 마을앞으로 유곡천이 흐르며 공수들, 갱보들이 있다. 마을의 방향은 대체로 서쪽, 북쪽을 향하고 있다. 이전에 공주이씨 李時敦( ? ~ ? ) 이 입향하였다고 구전되고 있는데 이를 입증하듯 집터에서 기와편이 출토되고 샘이 남아 있다. 후손이 모두 이거하였다. 1460년경 남평문씨 文尙行( ? ~ ? ) 이 경상도 단성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540년경 제주양씨 梁應台(1516~1546) 가 달아실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20년경 하동정씨 정순태(1904~1976) 가 이양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30년경 전주이씨 이동구(1886~1948) 가 청풍 입교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35년경 기계유씨 兪晋龍( ? ~ ? ) 이 한천면 괴목동에서 입향하였다. 1940년경 밀양박씨 朴貴萬(1905~1979) 이 도암면 봉동마을에서 입향하였다. 1970년경 천안전씨 전기충(1903~1980) 이 도암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75년경 창녕조씨 조기춘(1903~1986) 이 도암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80년경 청도김씨 김원식(1925~ ) 이 광주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80년경 광산김씨 김명철(1968~ ) 이 남평면 남평리에서 입향하였다. 동쪽으로는 달아실마을, 서쪽으로는 양정마을, 남쪽으로는 춘양면, 북쪽으로는 도곡평야가 있다.
●유물. 유적 삼현사터(三賢祠, 남평문씨, 여흥민씨, 제주양씨 삼성입향 향사터)
●민속놀이. 전설. 민담 ⊙남자는 모를 심을 때 상사소리를 했으며 김매기를 할 때는 사나기타령을 하고 농사를 잘 지어 장원을 한 집은 소를 태우고 온 동네가 농악을 치며 즐겼다. ⊙농악 :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하며 1960년대까지 행했으나 현재는 하지 않는다. ⊙칠월 백중에는 안주를 준비하여 하루를 쉰다. ⊙처녀들과 부인네들은 널뛰기, 그네타기, 강강수월래, 옥사장 등 여러가지 놀이를 1945년경까지 행했으나 현재는 하지 않는다. ⊙월곡리 전체를 중심으로 농민단체가 있었는데 이의 우두머리를 농민의 장이라 했다. 농사철에는 이 장의 명대로 농사를 지었는데 감히 장의 지시를 어길 수가 없었고 만약 어길시는 엄한 벌칙을 받거나 장이 누워있을 때 하루종일 그 옆에서 부채질을 해주어야 했고 또 2㎞가량 떨어진 곳에 가서 물을 길러오게 하였다. ⊙장흥위씨 종부가 위독하여 사경에 이르자 그 아들이 나주 영산포에 명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약을 구하려 말을 타고 보성재를 넘어 월곡리(달아실) 마을앞을 지나는데 이것을 본 문씨가 양반고을을 지나면서 말에서 내려 걸어가지 않고 말을 타고 간다고 끌어내려서 심하게 구타를 해서 실신상태로 만들어 못지나가게 하자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갔는데 수일후 모친상을 당하고 보니 천추의 원한을 품고 그 후손들에게 남평문씨하고는 혼인도 하지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온다.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앵소유지(鶯巢柳枝) : 꾀꼬리는 버드나무 가지에 집을 짓고 있는 형국이라 마을 이름을 류곡(柳谷) 이라 했다고 전한다. ⊙당상천(堂上泉) : 구전에 의하면 문시룡 집터에 당산나무가 있었는데 마을에 식수가 항상 부족하여 곤란을 겪던 중 한 스님이 지나면서 혼잣말로 저 당산나무를 베고 샘을 파면 많은 물이 솟는다고 하자 이 말을 들은 문시룡은 만약 당산나무를 베고 물이 나오지 않으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지겠냐고 물었다. 이에 그 스님은 자신있게 물이 솟아나지 않으면 자신의 목을 베라고 하며 대신 물이 솟아 오르면 많은 재물을 시주하라고 하였다. 이 말에 자신을 갖고 사람을 동원하여 당산나무를 베고 샘을 파니 과연 많은 물이 나와 그후로 식수걱정을 덜게 되었다고 한다. 이 샘이 지금도 있는데 이런 연유로 당산샘이라 부른다. ⊙산 등 : 해망산, 곤지산, 건지산(수반), 수박등 ⊙들 : 구름들, 공수들, 갱보들 ⊙골짝 : 가름골, 웃골 ⊙터 : 자갈삼굿터 ⊙샘 : 당산샘, 웃고랑샘 ⊙보 : 갱보, 가름보, 들보
●인물 ⊙문자수(文自修, 1420生 ~ ? 歿, 세조조 佐命功臣) ⊙문시룡(文始龍, 1716生~1770歿, 숙종조 戶曹正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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