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아비달마집론 제5권
2. 결택분(決擇分)
2.1. 제품 ③[1]
3) 멸제
멸제(滅諦)란 무엇입니까?
모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아주 심오하기 때문이고, 세속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승의(勝義)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원만하지 않기 때문이고, 원만하기 때문이고, 장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장엄하기 때문이고, 유여(有餘)이기 때문이고, 무여(無餘)이기 때문이고,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니, 이 같은 차별에 연유해서 멸제를 분별하게 된다.
그 모양에 기인하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도에는 번뇌가 생겨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그 의(依)가 소멸되거나 소멸시키거나 또는 소멸된 성품이 바로 멸제의 모양이다.
세존께서
“안처와 이처 그리고 비처ㆍ설처ㆍ신처 및 의처에서 명색(名色)이 끝까지 소멸되어 남아 있는 것이 없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고, 또
“이리하여 너희들이 지금 이 같은 처(處)를 관찰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른바 여기서 처라고 말씀하신 것은 안처가 끝까지 소멸하여 색상(色想)을 원리(遠離)한 것이고 아울러 의(依)가 궁극까지 소멸되어 그 법상(法想)조차도 원리한 것이다. 이와 같은 도리에 연유해서 그 소연(所緣)이 나타나서 진여경계위(眞如境界位)에서 유루법이 소멸되는 것이 멸제의 모양이다.
아주 심오하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그 제행이 구경(究竟)에 이르러 적멸(寂滅)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같은 적멸에서 그들의 제행을 추론하더라도 다르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다르지 않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다르다거나 다르지 않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다른 것도 아니면서 그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희론(戱論)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치 가운데에서 만약 희론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바른 사고도 아니고 도도 아니고 진여도 아니고 또 훌륭한 방편에 의한 사(思)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세존께서
“이러한 6촉처(觸處)가 소진되고 욕(欲)을 여의어 일체가 소멸되고 고요하고 잠잠하고 사라진 것 등을 다르다고 말하거나, 다르지 않다고 말하거나,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다고도 말하거나,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희론이 없는 곳에서 도리어 희론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6처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가 가능한 여러 희론도 6처가 소멸되면 모든 희론이 끊어져 버리니 이것이 바로 열반이다.
세속에 기인하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세간도(世間道)가 그 종자(種子)를 끊는 것에서 소멸되어지는 것이다.
이리하여 세존께서 별도로
“그 같은 분(分)이 열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승의에 기인하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성스러운 지혜로 종자를 영원히 뽑아 내려는 것에 의하여 소멸되어지는 것이다.
원만하지 않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모든 유학 혹은 예류과(預流果)에 속하거나, 혹은 일래과(一來果)에 속하거나, 혹은 불환과(不還果)에 속하는 등의 유(有)가 소멸하는 것이다.
원만하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모든 무학, 즉 아라한과에 속하는 등의 유가 소멸하는 것이다.
장엄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혜해탈(慧解脫)하는 아라한의 유가 소멸하는 것이다.
장엄하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구분해탈(俱分解脫)하는 3명(明)과 6통(通)의 아라한의 유(有)가 소멸하는 것이다.
유여이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소멸해야 하는 의(衣)가 남아 있는 것이다.
무여이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소멸해야 하는 의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부처님과 보살이 열반에 머물지 않고 일체를 포섭하여 소멸시키는 것이다. 언제나 안정되게 머무르는 것으로 일체 유정을 이롭게 하고 안락케 하려는 일 때문이다.
차별에 기인하기 때문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남김없이 영원한 끊음[無餘永斷]ㆍ영원한 벗어남[永出]ㆍ기지개를 펴고 잠을 깸[永吐]ㆍ다하는 것[盡]ㆍ욕의 여읨[離欲]ㆍ소멸[滅]ㆍ적정[寂靜]ㆍ사라짐[沒] 등이다.
어째서 남김없이 영원한 끊음이라고 이름합니까?
그 밖의 다른 구절에 연유하는 까닭이다.
어째서 영원한 벗어남이라고 이름합니까?
모든 전(纏)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때문이다.
어째서 기지개를 펴고 잠을 영원히 깨는 것이라고 이름합니까?
수면(隨眠)에서 기지개를 펴고 영원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째서 다하는 것이라고 이름합니까?
견도(見道)의 대치(對治)에서 마침내 이계(離繫)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욕의 여읨이라고 이름합니까?
수도(修道)의 대치에서 이계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소멸이라고 이름합니까?
미래에 그러한 과보의 고통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째서 적정이라고 이름합니까?
현법(現法) 가운데에서 그러한 과보로 인한 마음의 고통이 영원히 행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째서 사라짐이라고 이름합니까?
그 밖의 모든 일이 영원히 소멸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무위(無爲)라고 이름합니까?
3상(相)을 여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보기 힘든 것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육안(肉眼)과 천안(天眼)의 경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전전(轉展)하지 않는 것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여러 취(趣)가 차별적으로 전향하는 것을 영원히 여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에 대해 수모를 겪지 않는 것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세 가지 애착을 여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감로(甘露)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온(蘊)의 마장(魔障)을 여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무루(無漏)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일체의 번뇌의 마장을 여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집(集)이라 이름합니까?
계율을 어기지 않고[無罪] 깨끗하게 즐거운 것에 의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삼각주(三角洲)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3계와 단절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널리 제도함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일체의 커다란 고난이나 재난ㆍ횡액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귀의(歸依)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허망하지 않은 그 의요(意樂)의 방편으로 의지하는 처소가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승귀처(勝歸處)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일체의 가장 뛰어난 성인의 성품으로 능히 되돌아감에 있어 의지받게 되는 처소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죽지 않는 것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죽지 않는다는 것은 태어남을 영원히 여의기 때문이다.
뜨거운 고뇌가 없는 것과 일체의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에 아주 뜨거운 고뇌로부터 영원히 떠나가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불타지 않는 것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일체의 근심ㆍ한탄ㆍ걱정ㆍ괴로움 따위의 여러 고뇌를 영원히 벗어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편안함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두려움을 벗어나 그 의지처에 머물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시원함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모든 유익한 일이 의지받는 처소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즐거운 일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가장 뛰어난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상서로운 길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그들이 쉽게 닦을 수 있는 방편에 의지하는, 증득을 위한 처소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근심이 없는 것[無病]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모든 장애로 인한 근심을 영원히 여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부동(不動)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일체의 어지러운 움직임을 영원히 여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열반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무상(無常)한 적멸의 커다란 안락함에 머무는 것[大安樂住]에 의지 받는 처소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무생(無生)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연속해서 태어나는 것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무귀(無歸)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지금 이후로는 차츰 생겨나는 것을 영원히 벗어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무조(無造)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전제(前際)의 모든 업번뇌(業煩惱)의 세력에 인도되는 바를 영원히 벗어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무작(無作)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현재의 모든 업 번뇌를 만들지 않는 것에 의지 받는 처소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같은 소멸을 불생(不生)이라고 달리 이름합니까?
미래의 상(想)이 상속되는 것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멸제에는 총괄적으로 네 가지 행상(行相)의 차별이 있으니, 멸상(滅相)ㆍ정상(淨相)ㆍ묘상(妙相)ㆍ이상(離相)을 가리킨다.
멸상이란 무엇입니까?
번뇌에서 이계하기 때문이다.
정상이란 무엇입니까?
고에서 이계하기 때문이다.
묘상이란 무엇입니까?
즐겁고 고요한 것을 일삼기 때문이다.
이상이란 무엇입니까?
언제나 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