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온고지신(溫故知新)
'나무 닭을 만들어서
벽 머리에 깃들였네
이 닭이 울거들랑
그제사 임이 늙으소서'
개성 오관산 영통사라는 절 밑에 홀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문충 이라는 사람이 수 십리 떨어진 곳으로 일하러 다니느라 하루 종일 어머니를 공양치 못하게 되자 마음이 늘 편치가 않았는데 어느 날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늙어 가시는 어머니의 용안(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하고 거칠어진 손을 바라 보다 세월을 탓하고 슬피 울면서 나무를 다듬어 닭을 만들고 부른 이 노래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실천을 해야 할 일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겨야 할 것을 일러주는 노래이며 또한 나의 도장경영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뀌게 한 노래로서 이 노래는 고려 말엽의 유학자 이제현(李齊賢)이 한문으로 번역하여 곡조를 악부에 올린 오관산곡 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 곡이다.
언제부터인가 기억은 안나지만 도장에서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아버지는 어김없이 나를 호출하셨다.
틈틈히 익힌 나의 지압과 안마 실력을 아버지는 추켜 세우시며 효자는 따로 없느니라 하시며 지압과 안마를 원하셨다.
때로는 너무 피곤하여 옷도 못 벗고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곤 하였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버지는 우스개 소리로 나의 약점을 간파하시고는" 이런 불효자 같으니.."하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졸면서 건성으로 안마를 하곤 했었다.
때로는 불평도 하면서....하지만 이 오관산곡을 접하며 문득 나는 그런 불경스런 효행을 후회하며 반성했다.
옛부터 효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 중에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악인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수련생들이 실천해야할 첫째를 孝行(효행)으로 정했다.
그리고 수련도중 휴식시간과 마무리 시간을 적절히 이용하여 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수련생과 대화를 나누고 효의 실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나는 태권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이후 가장 보람된 일을 경험했다.
그것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도장을 세운 탓에 우리 가족의 생활은 어려웠지만 워낙 알뜰하고 검소한 아내는 힘들다는 내색 없이 내가 태권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는 덕에 나는 신념을 잃지 않고 태권도를 지도하며 생활하는 가운데 97년의 봄날에 성재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관장님! 오늘은 꼭 시간을 내셔서 저랑 차를 한잔 하셔야 합니다.”하기에 궁금해 하며 찻집에 도착하니 자리에 앉기도 전에 성재 아버지는 나의 두 손을 꼭 잡고는 이내 눈물을 글썽 인다.
성재 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것은 성재를 입관시키기 위해 도장에 왔을 때였다.
초저녁인데도 술이 과하여 몸을 잘 가누지를 못하며 ‘성재가 많이 맞고 다니고 툭하면 울어 속이 상해서 왔습니다.’ 하며 강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찾아온 성재 어머니를 바라보니 부부싸움을 하였는지 심상치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성재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관장님! 성재를 가정사정상 태권도를 가르칠 수가 없네요."하는 것 이였다.
그래서 실례인 줄 알지만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냐고 하니 머뭇거리던 성재의 어머니는 “성재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다보니 봉급의 대부분이 술값 갚느라 늘 생활이 어려워요”하는 설명 끝에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순간, 할 말을 잃은 나는 어제 도복을 받아 들고 좋아라 들떠서 나가던 성재의 모습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파왔다.
한참을 생각하다 나는 “ 성재 어머니! 수강료는 나중에 형편 되시거든 주십시오. 그리고 성재에게는 아무 말씀도 하지 마시고 도장에 보내 주세요.라고 말하며 수강료와 도복비를 돌려주니 성재 어머니는 죄송하다며 힘없이 사무실을 나갔다.
그렇게 나가는 성재의 어머니 등 뒤로 나는 다짐받듯이 성재를 꼭 보내주십시오. 라며 힘주어 말했다.
가슴 조이며 오후 수련시간을 기다리니 수련 한시간 전에 성재는 하얀 도복에 흰 띠를 매고 도장 문을 들어섰다.
그렇게 시작된 성재의 수련 속에 두 번째 마주 친 성재의 아버지는 도장 근처의 대건청과 앞이었다.
모임이 있어 회식을 마치고 깊은 밤에 들어오는데 도장근처 대건청과 앞에서 성재 아버지는 한 손에는 막걸리를 두병 들고 인사불성이 되어 앉아 있었다.
깜짝 놀라 가까이 가서 부축해 일으켜 집으로 모셔다 주려고 하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갑자기 뿌리치며 “지금 나는 하소동으로 가야 혀...." 하고는 다시 주저 앉는다.
할 수 없이 성재네 집으로 전화했더니 성재어머니께서 나와 모시고 들어 갔다.
그리고 세번째인 오늘은 심상치 않게 눈물부터 보이다니.....
궁금해 하는 나에게 성재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 하는 것이였다.
몇 달전 성재를 도장에 입관시키고 난 그 날부터 성재는 아버지가 아무리 밤 늦게 들어와도 도복을 벗지 않고 기다리다 아버지에게 "안녕히 주무세요"하며 절을 하고 자는데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밤 늦게 잔 성재가 잠이 모자라 잘 일어나지를 못해 온 동네 떠날 갈 듯 엄마와 전쟁을 치른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기를 “ 그 못된 태권도 관장이 나를 아주 말라 죽게 할 모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성재아버지는 문안인사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성재의 문안 인사는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는 꾀를 냈다고 한다.
회사 동료와 술 한잔을 하다 잠깐 다녀온다고 하고 집에 들어가니 초저녁에 들어온 것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는 아내의 눈총을 뒤로 하고 성재에게 " 성재야! 이리 와서 문안인사 해라."하며 인사를 받고는 다시 나오려니 속내를 들킨 것 같아 그냥 나올 수가 없어 “성재야! 숙제는 다했니? " 하니
“오늘은 숙제 없어요 " 하기에 “그럼, 이리와 일찍 자거라." 하며 팔베개를 해 주니 성재는 모처럼 일찍 들어와 관심을 갖는 아빠가 좋은지 잠을 안자고 “아빠! 우리 관장님은 날아가는 파리도 발로 차서 잡아요. 그리고 아빠! 관장님이 저보고 인사 잘해서 예의 바르다고 하셨어요. " 하며 태권도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그냥 잠이 들었다고 한다.
잠을 자다 팔이 아파 깨어나서 보니 팔베게를 하고 잠이 들은 성재의 천진한 얼굴이 너무 이뻐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부모님 생전에 문안인사 한번 못드리고 돌아가시고 나서야 큰 절을 한 불효를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이 슬퍼져 베란다로 나와 소리 죽여 우는데 그것을 본 성재 엄마가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궁금해 하기에 한참을 울다 “ 여보, 그 동안 내가 잘못했소. 앞으로 술을 안마실 수는 없겠지만 이제부터는 될 수 있는 대로 술을 조금만 마시겠다."고 하니 아내는 그간의 힘에 겨운 생활이 서러웠는지 한참을 울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성재 아버지는 단 한번도 술을 마시지 않은 가운데 오늘이 꼭 백 일째 되는 날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나와 술 한 잔이 아니고 차를 꼭 한 잔 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그 날, 나는 내가 가는 이 길이 진정 보람된 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차 한 잔을 마시는 내내 그 어떤 말을 못하고 그저 식어 버린 차와 함께 눈물을 삼키고 말았다.
태권도의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 몸은 세월과 함께 수련에 힘겨워 하고 늙어 가시는 부모님께 불효는 점점 깊어 만 가는데 그 마음 달랠 길 없어 오늘은 옛 사람과 함께 오관산곡을 불러본다.
나무 닭을 만들어서
벽 머리에 깃들였네
이 닭이 울거들랑
그제사 임이 늙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