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 고양이
김해리
무언가 사랑하면 밤처럼 깊어져
온통 말갛던 노노라는 표정
노노라는 운명으로 바뀌어
건물 숲에 가려진 고양이 말이야
어둠을 건너보지 않은 너는
눈 오는 저녁을 만지작거리다
내일을 뒤척이고
본성이 사라진 눈빛은 식욕을 잃고
둥글게 말리는 생각 끝에서 잠들고 말지
눈이 쌓이는 소리만으로도
여러 겹으로 사고가 생겨나는 날에는
이번엔 꼬리만 보았다고
연신 손을 비벼대는 나는
그러니까 발자국도 울음도 남겨선 안된대
땅거미가 소식을 물어 나르기전에
주변을 배회해서도 안 되는 거지
야윈 동공은 더는 자라지도 날렵하지도 않아
새벽은 외톨이처럼 먼데
허공을 차오르다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칼바람과 질끈 동여 맨 허기로
시나브로 잠식하는 것들을 견더야 해
어쩌다 너는 밤을 건너는 중이고
다시 태어나도 우린
지구별에 떨어진 고양이니까
2023년〈인천문단〉 52호에서
작약의 감정
김해리
빗소리에 꽃잎이 닿으면
수요일이 되는 방식을 믿기로 해요
바람의 흰 등은
탈출을 궁리하는 자세로
잃어버린 요일을 복구해요
내일은 비요일
붉은 파동으로 망명을 타진할 것이고요
우리는 무른 목덜미에 서식하는
입김 한 장의 간격이 필요했던가요
그치지 않는 비처럼
자갹자갹 일렁이는 감정
마침내 자기야로 변주되는
불온한 예감은 들뜬 적막처럼
지키지 않은 약속처럼
캄캄한 나의 바깥을 기웃거려요
눅눅해진 눈빛으로
창밖 사소한 기미를 엿보는 것도
수요일의 방식
자꾸만 밖으로 번지는 당신을 위해
내 안의 꽃을 지우기로 해요
2023년〈학산문학〉 11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