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소리>와 그 반향(反響)
-신종섭의 근작에 부처
80년대 신종섭이 주로 다루었던 산 그림은 풍경으로서의 산 즉 모티브로써 선택된 산이었다. 감동적으로 바라보는 산, 감정이입으로서의 산이었다.
산을 많이 그리는 작가들의 작품과 적어도 그리는 태도에 있어선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강렬한 색채 대비와 밀도 높은 마티에르의 구사가 두드러졌다. 단조로운 대상이면서도 색채의 독자성이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풍부한 회화성을 내장한 것으로 조만간 대상에 속박되지 않는 자체의 형상화를 꿈꾸고 있었던 것으로 인상되었다는 것이다.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의 화면은 놀라울 정도의 변모를 보이는데 그러니까 이 변모는 이미 80년대의 산 그림 속에 예감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갔다.
그의 변모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구상에서 추상으로라는 수식에 대입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완전한 추상의 단계라고 보기보다는 반추상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변모는 단순한 자연스러운 추이로서의 그것이기보다는 혁신이란 차원에서의 그것이다. 산은 산이되 단순한 풍경으로서의 산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에 들어와 독특한 육화(肉化)의 역역에 도달한 또 다른 현전(現前)이다. 나이70대에 이르면서 이 같은 자기혁신을 도모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이 연령대의 작가들에서 발견되는, 이미 이루어진 자기 세계에 안주하는 경향과는 전혀 다른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가 왜 산에 집착하는 지는 최근 한 미술잡지에서의 인터부에서 밝히고 있다. “산에서 얻은 감흥을 작품화할 때 각 봉우리들은 작은 산이지만 크게 보면 그 봉우리들이 모여서 하나의 산을 이룬다는 점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각 봉우리들의 울림이 모여서 마치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것과 같았죠. 그러한 울림들을 모아서 산의 웅장함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이 언술은 그의 변모의 심경이랄까 내역을 가장 진솔하게 대변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울림이란 단어가 그의 작품에 접근하는데 주요한 키워드란 사실에 접하게 된다. 울림이 모여서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장면이야말로 그의 변모를 웅변으로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가 구체적인 산 그림을 그릴 때와 현격히 달라진 것은 바로 산이 만드는 거대한 울림에 함몰되는 감동의 결정에 기인한다. 이는 단순한 외면적인 변화의 양상이 아니라 내면에로의 심화의 한 양상임이 분명하다. 그의 <산의 소리>는 독립된 화면으로 나타나지 않고 연작의 형식을 띤다. 그것도 근작은 가로 5미터에 이르는 대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연작은 지속되는 창작의 형식을 말한다. 각각 독립된 화면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로 연결되는 전체로서의 화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시장은 색채와 형태가 만드는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된다. 그것은 전체로서 오는 감동이다. 그의 근작들이 금강산 체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감동은 더욱 특별한 것이 된다.
한국인에 있어 금강산은 전 시대를 관통하는 원초적인 희귀의 대상에 다름 아니다. 특히나 조선 시대, 근대적 자각 현상으로 진경산수(眞景山水)가 등장했을 때 그 첫머리에 놓인 것이 금강산이었다.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는 한국인의 염원을 담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근대기를 대표해주는 소정 변관식의 금강 시리즈는 한국미의 한 전형을 이룬 것으로 우리들의 뇌리에 아로새겨져 있지 않은가.
신종섭의 <산의 소리> 연작은 이 같은 금강산 사생의 역사적 문맥에 닿음으로써 진정한 작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의 <산의 소리>연작 앞에서면 소정과 겸재로 이어지는 한국 자연으로 향했던 뜨거운 정념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한 정념이 우리 시대로 연계되는 생생한 체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2017. 8.
오광수(미술평론가, 뮤지엄 산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