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피로가 좀처럼 풀리질 않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농사 처음이 참 좋습니다. 논농사는 오랜만에 집에서 다시 해본 모자리가 잘 되었고 심어놓은 모도 잘 자랍니다. 무엇보다 풀이 예년보다 훨씬 적게 나서 좋습니다. 이미 전체적으로 한번 풀을 뽑아주긴 했지만요.... 지난 가을과 올 봄에 논에 정성을 들인 결과입니다. 지난 가을 논을 두 번이나 갈았고 올 봄에도 로타리를 두 번 하였습니다.
배도 처음 작황이 좋고 복숭아도 튼실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열매솎기며 봉지 씌우기도 처형들께서 일찍부터 서둘러 도와주신 덕분에 예년보다 일찍 마쳤습니다.
그러나 방해꾼도 있습니다. 작년 올해 심은 매실나무의 터져 나오는 싹을 고라니가 모조리 잘라먹어 가물에 많이 말라 죽었습니다. 자라는 나무는 봄에 싹이터 6월까지 쭉 자라야지 그때 싹을 잘라먹으면 생장을 멈추고 말라죽기 십상입니다. 옆에 뽕잎이며 명아주며 빵고라지 등등 맛있는 풀도 많은데 하필 매실싹만 골라서 잘라먹었으니 고라니에게 매실 싹은 특별식 이였나 봅니다. 더러 성한 나무에는 한삼덩굴이 감고 올라가 덩굴을 제거하다보면 여린 가지를 부러뜨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과일 나무 한포기도 제구실을 하도록 키우자면 수없는 보살핌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요즘 과일밭에 풀을 베다 보면 고라니새끼를 많이 발견합니다. 고라니도 자기 영역이 있어서 밭 한 뙤기에 한 마리의 어미가 새끼를 낳아 기릅니다. 풀이 심어놓은 어린 나무보다 크게 자라 숲을 이루었으니 고라니로선 더할 수 없는 서식장소입니다.
큰 기계로 풀을 베자면 혹시 새끼를 다치지 않을까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바퀴 밑에서도 발견되고 돌아가는 날 앞에서도 발견이 되지만 세 마리를 발견하는 동안 조금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일을 마쳐서 참 다행입니다.
유기농에서는 성목일 때는 알뜰히 풀을 베지는 않지만 어린 나무일 때는 풀을 제거해야 나무가 자랄 수 있습니다. 성목이더라도 열매를 솎거나 봉지를 씌울 땐 풀을 베어야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망초가 크게 자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밭에서는 고라니 새끼 땜에 날을 돌리지 않고 그냥 쓰러뜨리기만 하면서 지나갑니다. 어미 고라니는 가까이 가면 도망가지만 그 자리에 아직 걷지도 잘 못하는 새끼는 마냥 웅크리고 앉아있습니다. 손으로 옮겨주면 꾁꾁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찾습니다. 이때 새끼에게 사람 내음이라도 묻으면 어미는 새끼를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끼를 잡을 땐 풀로 감싸 잡는 것이 좋습니다.
10년도 더 전에 처음 사과나무를 심어놓고 어깨에 메는 예초기로 풀을 깎을 때의 일입니다. 보리가 익어갈 때가 사과는 한창 굵어질 때입니다. 또한 이때에 까투리는 알을 품고 새끼를 깔 때이기도 합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헉헉 더운 숨을 몰아쉬며 엄청난 기계소음으로 귀는 멍멍하고 땀으로 범벅이된 몸으로 풀을 깍고 있었습니다.
무심코 사과나무 바로 밑을 깍고 있는데 갑자기 풀더미 속에서 예초기 날에 무언가 퍼벅하고 둔탁하게 부딪히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기계를 멈추고 풀속을 헤쳐보니 아하 이런 ! 까투리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있다가 피하지 않고 예초기 날에 맞은 겁니다. 너무도 놀라고 당황스럽고 죄스럽고........
어미 까투리를 사과나무 밑에 묻어주고 과수원을 내려오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었던지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도 큰 충격으로 닥아 옵니다.
어미까투리가 품던 알은 집에 가져와 마침 알을 품고 있던 암탉 둥우리에 넣어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깨어서 모두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새들은 처음 본 사물을 엄마로 알아서 따라다닌다는데 꿩은 그렇지 않나봅니다. 어미 없이 홀로 살아가기가 너무나 어려웠을 텐데 그 꿩병아리 또한 무슨 몹쓸 운명이었는지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미는 몸뚱이를 동강내는 흉기도 피하지 않고 지켜준 소중하고 소중한 목숨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알면서 모르면서 해치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요? 사실 우리의 삶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다른 생명의 희생을 바탕으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월선생은 모든 생명은 하늘인데 내가 다른 생명을 먹는 것은 하늘이 하늘을 받아 모시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 또한 다른 생명을 위해서 온전한 밥이 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첫댓글사람의 셈법으로는 내 땅이지만 그건 사람의 셈법일 뿐이겠지요. 같이 산다고 하면 사람의 셈법을 적당히 버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생각 나름이기도 하겠지요. 참한농군님처럼 말입니다. 물이 불면서 강가 제방너머 논들이 물에 잠긴 것을 보고 농민들의 근심을 생각해봅니다. 원래가 홍수터였으니 그런가보다 해야지... 하면 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남말일 뿐이겠습니다. 그렇지만 길게 보면 완충지대를 완충지대로 남겨두는 일은 사람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인 듯 합니다. 옛말에 날로 계산하면 부족한 듯 해도 해로 계산해서 남는 장사를 하라했다지요. 사람의 일이나 자연을 대하는 일이나 지혜로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유기농도 다른 산 것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일은 쉽지 않군요. 하물며 저처럼 도시에서 화석연료의 기원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화석연료를 어마어마하게 태우고 사는 삶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월요일 아침 빗길에 2시간씩 버스를 타고 출근한 건 무얼 위한 것이었는지…. 고생스런 올 농삿일, 무탈하였으면 합니다.
첫댓글 사람의 셈법으로는 내 땅이지만 그건 사람의 셈법일 뿐이겠지요. 같이 산다고 하면 사람의 셈법을 적당히 버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생각 나름이기도 하겠지요. 참한농군님처럼 말입니다. 물이 불면서 강가 제방너머 논들이 물에 잠긴 것을 보고 농민들의 근심을 생각해봅니다. 원래가 홍수터였으니 그런가보다 해야지... 하면 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남말일 뿐이겠습니다. 그렇지만 길게 보면 완충지대를 완충지대로 남겨두는 일은 사람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인 듯 합니다. 옛말에 날로 계산하면 부족한 듯 해도 해로 계산해서 남는 장사를 하라했다지요. 사람의 일이나 자연을 대하는 일이나 지혜로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봄의 푸른 싻으로 부터 가을의 열매, 겨울의 뿌리까지 생명 아닌것이 없는데
다른 생명을 희생으로 주린배를 채우면서도 사람들이 연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은 것은 무엇때문 일까요
유기농도 다른 산 것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일은 쉽지 않군요.
하물며 저처럼 도시에서 화석연료의 기원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화석연료를 어마어마하게 태우고 사는 삶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월요일 아침 빗길에 2시간씩 버스를 타고 출근한 건 무얼 위한 것이었는지….
고생스런 올 농삿일, 무탈하였으면 합니다.
저도 가끔 살아있는 나무를 베거나 벌레를 잡아 죽일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다른세상이 있어 네가 나이고 내가 너라면
맞이해 주마 미안하다... (실제로 맞이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따뜻한 마음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
세상에 어쩌면 그리도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예~~
내마음을 보니 한 없이 부끄럽습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