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회 직후, 해외출장으로 참전기(?)가 늦어졌습니다. 박위원장께서 후기를 꼭 남겨달라고 하셨고, 저도 이제야 늦게나마 약속을 지킵니다. 모쪼록, 이 후기가 울트라를 처음 도전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씨름선수 울트라를 결심하다.
지난 겨울, 중마를 끝내고 자축연(?)에서 마라톤114의 태허형님 말에 솔깃해 버렸다.'100km, 야. 그거 별거 아니야. 중간 중간 걸으면서 천천히 뛰는건데 뭐'
음. 과연 솔깃했다.
97kg의 몸무게의 위용과 소주 주량 평균 5병의 파워만을 자랑하던 내가 우연히 시작하게된 마라톤으로 15kg을 감량하고서, 마라톤 풀코스 4번을 완주하고서 들은 말 한마디가 또 다른 자극제로 다가오고 있었다.
첫 풀코스를 3시간 59분에 완주하고서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음을 기억했다. 1년만에 풀코스 3시간 43분으로 차곡차곡 기록을 줄여가던 내게 울트라는 그냥 남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너 이러다 울트라도 뛰겠다는 소리를 들을라치면, '그건 미친놈들(?)이나 하는 거고'라며 받아치고 말았었는데.
회사 주변 동료들에게 의논을 해봤더니, 다들 미친짓이라며 만류한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말리면 말릴수록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단단해지는것 아닌가. 이것 참.
어찌하나 하던차에, 일단 신청이나 해보자고 신청해두었고 신청을 해두었더니 이미 목표가 되어버렸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울트라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에이 뭐 준비 안되면 말지 뭐'라고 위로도 했다가 '아니야, 밤새면서 달린다는 것. 한계에 도전한다는것 자체만으로도 멋있지 않은가'라며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대회 날짜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고, 일주일에 2-3회 정도 10km~20km를 5분 30초~6분주로 달리는 연습을 했고 대회 한달전 미사리한강마라톤 풀코스를 가방없이 4시간에, 대회 일주일전 충주마라톤을 가방메고 4시간30분에 연습주로 뛰어보았다. 마지막 풀코스를 뛰면서는 가방을 메고 뛰어서 그런지 30km이후 지점부터 지쳐서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가 막판에는 거의 걸어버려서 자신감이 완전 상실되어 버렸다.
대회 3일전. 코스를 자동차로 답사했다. 100km를 왕복하는데 차로도 거의 2시간 거리. 허리가 아파서 운전이 힘들 지경이었다. 아. 이 길을 밤새 뛰어야 하다니. 걱정80%, 기대20%. 천진암 코스는 내리막과 오르막이 계속 반복되고 높은 산도 하나 버티고 있고, 마지막 5km가 결정적인 살인언덕이었다. 막판엔 뛰지 못하면, 걷고, 걷지 못하면 굴러갈 생각이었는데 굴렀다가는 밑으로 도로 굴러 떨어질 지경이다.
답사후, 목표를 14시간으로 잡았다. 갈때 6시간, 올때 8시간으로 잡은것이다. 갈때 시간을 좀 벌어두고 올때는 지친 몸을 달래며 달래며 오자는 전략이었다.
2. 울트라를 준비하다.
(1) 울트라 가방은 전에 마라톤 동호회용으로 사두었던것을 활용. (2) 신발은 브룩스 제품으로 쿠션이 좋고 비교적 싼놈으로 구매해서 대회 일주일전 풀코스를 뛰면서 성능 점검 완료. 거기에 대회 당일 주최측에서 기념품으로 준비한 울트라 깔창을 넣었다(실제 대회에서 이것 도움을 많이 받은 듯) (3) 상의는 반팔하나, 긴팔하나 준비 / 바지는 쓸리지 않는 쫄쫄이가 최고 (4) 물통 2개, 간식으로 파워젤 10개, 쪼꼬바 2개 준비 (물통은 스트로우가 달린 물주머니를 준비할것을 추천, 매번 가방벗고 물을 마셔야 하는게 워낙 불편함) (5) 진통제(만약의 사태를 대비), 돈 5만원(간식비 -_-;;), 헤드렌턴과 깜빡이등을 준비. 그러면 준비 완료.
3. 씨름선수, 드디어 울트라를 뛰다.
(1) 출발
출발시간은 저녁 6시. 친구의 도움으로 3시반쯤 대회장에 도착했다. 집에서 싸온 찰밥을 억지로 구겨넣었다. 울트라는 배고프면 뛸수 없다고 했다. 밥을 먹고 좀 쉬려고 했으나 대회본부에서 마이크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다 선수들이 한명씩 도착하니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긴장이 되니 그늘에 누워있어도 쉬는게 쉬는게 아니다.
정리하고 배번을 받았다. 196번 원기정. 가방과 배쪽에 배번을 달았다. 시간도 여유있고 매우 정성스럽게 달아맸다. 뛰다가 배번이 떨어지거나 덜렁거리기라도 하면 낭패다. 탄탄히 달아놓은 배번에 얼굴을 묻고 잠시 묵념. -_-;
다른 선수들 준비나 복장을 보니 다들 베테랑인것 같다. 뭐가 달라도 달라보인다. 나만 배불뚝이에 뭔가 엉성하다. 젠장.
대회 조직위원장께서 나를 알아보시고 반드시 완주할것이라고 격려해주신다. 오오. 이런 정감 넘치는 분위기 일 줄이야. 또 울트라 베테랑 박선후님(마라톤 114 마라숑님)을 만났다. 천군 만마를 얻은 느낌, 천천히 뛰신다기에 박선후님을 뒤쫒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심리적으로 안심이 된다.
200여명이 출발선에 모였다. 똥줄이 탄다. 스트레칭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카운트 다운과 함께 출발, 나는 마라숑님과 맨 뒤에서 천천히 출발선을 넘어선다. 그래, 이제 좌우당간 출발이다. 내일 아침, 반드시 이리로 돌아오자. 내 두 다리로.
(1) 24km지점 (1체크포인트)까지
출발부터 앞으로 굴러떨어질것 같은 내리막이다. 내려가는거야 뭐 부담없지만 내일 여길 올라와야 할 것을 생각하니 뭔가 답답하다. 10km지점까지는 내리막이 계속 연결되는데, 이사람 저사람과 인사하고 천천히 뛰다보니 별로 힘들지도 않다. 천진암계곡의 물소리가 굴러떨어지고, 나무그늘이 석양에 반짝인다. 쥑인다- 크아. 이맛이야.
10km가 지나자 몸이 따뜻해지고 땀도 나고 몸이 쭉 풀리는 느낌이다. 작은 언덕과 내리막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언덕은 빠르게 걷고, 내리막은 차고 내려간다. 조금 긴 언덕을 만나면 가방을 풀고 걸으면서 물을 마신다. 옆에 박선후님을 뵈니 빨대로 쪽쪽 쉽게 드시는걸 보니 부럽다. 다음엔 나도 저걸 꼭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후반부엔 가방을 풀어서 물을 마시는것 자체가 에너지 소비가 되더군요)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면서 남한강 물결을 반짝반짝 반사시킨다. 좋은 경치를 옆으로 보면서 아직은 즐거운 뜀뛰기를 하고 있으니 등쪽에서 무엇인가 찌익-하고 쾌감이 올라온다. 으흐흐흥 끄응- 언덕과 내리막, 커브길을 한참을 달리니 20km지점에서 시골 구멍가게가 나온다. 물통에 물도 보충하고 게토레이를 하나 사 먹는다. 시원하다. 일반 마라톤을 할때는 물을 많이 먹으면 안되지만, 게토레이와 물을 배부르게 먹었다. 어떤 선배님의 조언이었는데, 배가부르면 빨리뛰기 어렵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페이스 조절이되고, 에너지도 보충할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고, 다리가 빨리 움직여 준다. 같이 뛰던 박선후님께 먼저간다고 인사를 고하고 서둘러 앞서간다. 박선후님은 무엇이 그리 여유있으신지, '아- 난 여기서 쉬었다 갈꺼여-'한다. 베테랑이시라 그야말로 즐기시는 중이시리라.
다시 언덕과 내리막을 반복하다가 체크포인트가 나타났다.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머리통에 바가지로 얼음물을 부었다. 아직 힘들거나 지친것은 아니었지만 몸의 온도를 낮춰주는게 좋을 것 같았다. 물을 보충하고, 파워젤을 하나 먹고 다시 출발. 벌써 1/4이나 온것이 아닌가. 다시 힘이 난다.
(2) 50km 반환점까지
30km지점까지 내달린다. 중간중간 지인들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힘내라고. 정말 힘이 나는듯 하다. 지금까지는 잘 달려왔고, 앞으로 큰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달림이들도 이제는 거의 흩어져서 30~40m간격으로 띄엄띄엄 깜빡이만 반짝이기 시작하고 동네 개들이나 간간히 짖는다. 문제는 슬슬 힘이 들기 시작했다는것인데 큰 산을 넘어야 하므로 체력을 아껴두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1km정도를 걷는다. 걸으면서 만난 수퍼에서 사이다와 초코파이를 보충해둔다. 수퍼에서는 잔돈을 받으면 또 짐이 되므로 무조건 잔돈은 포기한다. 수퍼 쥔장들이 많이 좋아한다.
드디어 맞닥뜨린 해발 200m가 넘는 항금리 언덕. 오르막만 2km짜리. 잽싸게 걷자고 다짐하고 부지런히 발을 옮긴다. 언덕을 오르면서 다소 몸이 다운된다. 담배생각이 나서 얼른 하나를 물었다. 맛있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 오시는 어르신이 '아 이사람아, 울트라 하는 양반이 아직도 담배를 피워? 그래 맛있나? 허허'하신다. '네. 정말 너무 맛있네요. 크크.' 열심히 올라서 그런가 얼마 온것 같지 않은데 정상이다. 다리가 뻣뻣해지기 시작해서 스트레칭을 잠깐 한다. 반대편 언덕에서 올라오던 코란도 한대가 내옆에 서더니 창문을 빼쭉 내리고 어떤 아줌마가 내게 묻는다. '아저씨 지금 여기서들 뭐하시는거에요?' 별로 힘들지 않다는 표정으로 밝게 대답했다. '아. 네, 울트라 마라톤 100km 뛰는 중입니다.' 아주머니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면서 매우 놀라는 눈치다. 아마 속으로 미친놈들이라고 했을게 분명한것 같아서,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한수 더 지른다. '네, 다 미친사람들이죠. 핫핫'
이젠, 긴 내리막 40km지점까지 신나게 달렸다. 아마 킬로당 6분주 정도 되는 속도다. 내리막 끝부분까지 갔더니 출발쯤에 인사를 해주시던 갈종완님이 계신다. 처음 뛰는 사람이 잘뛴다며 칭찬을 해주신다. 체크포인트까지 동반주로 신나게 내지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칭찬을 들으니 힘이 좀 나는 듯 하다. 체크포인트를 통과하고는 많이 지쳐버렸다. 불야성을 이룬 러브호텔촌을 뛰면서 벌써 돌아오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화이팅을 외쳐주면서 속으로 많이 부러웠다. 아아. 나도 조금만 더가면 일단 반환점이다. 그것만해도 50km, 절반을 뛴거다. 42km지점쯤을 지나면서 지금까지 가장 길게 뛰었던 거리. 42.195. 그이상 뛰게된다. 근데 힘들다. 죽을 맛이다. 다리가 벌써 굳어간다. 쪼그려 앉기가 힘들정도다. 억지로 억지로 이제부터는 한발한발이 신기록이라고 생각하면서 반강제로 45km지점쯤 가니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콜라를 한모금 주신다. 아, 콜라가 이런맛이었나. 너무 맛있네 입맛을 다시다가 바로 옆에 편의점이 보인다. 편의점에서 꿀물음료 하나, 준비해간 초코바를 하나 먹으면서 반환점을 향한다. 꿀물과 초코바가 힘을 주는것 같다. 거기에 반환해서 돌아오시는 분들이 얼마 안남았다며 힘을 주신다. 다시 언덕과 내리막. 오르막도 뛰어보려고 노력한다.
한참을 온것 같은데 반환점이 나오질 않는다. 반대편에서 오시는 분들께 물으면 대답이 한결같다. '네, 이제 다왔어요 조금마나 가세요~!' 처음엔, 정말 조금만 더 가면 되는줄 알았다. 다 거짓말이었다. 한참을 가야 했다. 어떤분은 500m만 가면 된다더니, 실제로 가보니 2km도 넘게 남아있었다. 막판 힘을 내서 뛰어보자, 반환점엔 밥이 있다고 생각하니 미친놈처럼 뛰어진다. 겨우겨우, 저 밑에 반환점이 보인다. 아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반환점에 도착하니 6시간 10분. 그리 나쁜 기록이 아니다. 거의 예상대로 왔다.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있는 순간. 부랄친구녀석 부부와, 우리 마누라가 서있다. 얼마나 반갑던지. 얼마나 힘이되던지. 20분만 쉬기로 하고 사골국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 억지로 억지로 퍼넣었는데 반이상 먹기가 힘들다. 속이 좀 울렁거리기도 하고 갈증도 나고, 담배도 피우고 싶다.
밥보다 맛있는 담배를 2가치 밤하늘로 날려보낸다. 후욱- 어쨋든 니코친도 내 에너지원이기에.
(3) 다시 출발점으로 가자 (76km지점까지)
20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잠깐 쉰것 같은데 6시간 30분 경과다. 마누라와 친구부부의 격려와 응원을 받으며 다시 출발. 아까 헤어졌던 갈종완님 일행도 출발하신다. 따라갈때까지 따라가보려고 뒤에서 따라간다. 밥먹은것이 힘이 되는 것인지, 담배 두가치의 힘인지 거의 58km지점까지는 크게 힘이 들지 않는다.갈종완님 일행이 먼저 차고 나가시는데 일부러 뒤따라가지 않는다. 지금 힘이 좀 있을때 아껴둬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다시 배가 고파져서, 편의점에 들러 바나나우유와 양갱하나를 들고서 걷기 시작했다. 바나나 우유와 양갱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먹고나서 60km지점까지 걸었다. 갑자기 확 지치는 느낌이다.
60km지점. 물을 한잔 먹고 나서 뛰려다보니, 앞으로 5km가 언덕이다. 63km지점까지는 얕은 언덕이지만 욕심부리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2km짜리 대형 언덕이 나오기때문에 차라리 에너지를 아끼면서 최대한 빨리 걷기로 한다. 이젠 주변에 주자들도 거의 없고 거의 나 혼자다. 걷는다. 걷는다. 어두컴컴한 시골 산길을 혼자 걸으려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난다. 힘들다. 이 힘든걸 왜 하고 있나 이런생각부터 지금 스스로의 모습이 장하기도 하다. 벌써 60%가 넘게 뛰어온것이 아닌가 말이다. 한발한발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흥분도 된다.
한참을 걷다보니, 드디어 거대 오르막이 시작된다. 일부러 빨리 걸었다. 이것만 넘으면 이제 종반부다. 가자. 가자. 얼마나 걸었을까. 왼쪽 발바닥이 따끔따끔해진다. 이런 젠장, 물집이 잡히는 모양이다. 언덕에서 빨리 치고 올라온게 화근이었던것 같다. 억덕 종반부에는 거의 다리를 절고 있었다. 아 이런 젠장. 벌써 물집이 잡히면 안되는데.
65km지점. 언덕 꼭대기에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양말을 벗어보았더니 왼쪽발 앞쪽에 500원짜리 동전만한 물집이 잡혀있다. 급한대로 손톱으로 물집을 터트려 버렸다.대충 물을 짜버리고 양말을 다시 신었다. 부탁한다. 나의 왼발.
이제 내리막을 뛴다. 뛰어내려간다. 물집을 째버렸더니 통증이 좀 덜하다. 뛰자, 뛰자. 내리막을 휘- 내려가고, 76km지점까지 잘 뛰어간다. 크고 작은 언덕은 걷고 평지와 내리막은 뛴다.
76km 체크포인트, 따끈한 오뎅을 준다. 마침 또 배가 고파진터라 완샷. 맛있다.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오뎅, 평생 처음이라. 고맙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두번이나 했다. 허기를 지웠다.
이제, 1/4남은거야. 그래. 다왔다. 다왔어. 스스로를 격려하고 다시 발걸음을 뗀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완주하면 충남 서산에서 술한잔 삽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뉘신가. 뉘신가. 어찌되었든 한잔 꼭 사셔야 할텐데. 꼭 완주할거라서.
(4) 100km지점. 골인지점까지.
오뎅먹고 1km이나 뛰었을까. 아까 물집잡힌 자리가 너무 아프고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걸어야 했다. 도저히 뛸수가 없다. 한참을 그렇게 걸었다. 걷고, 걷고, 걷고. 다리를 절으며 걸으니 속도도 안나는데다 왼쪽다리 종아리 근육이 뭉치고 오른 발목도 아파오기 시작한다.
급하고 속상한 마음도 모르는 소쩍새는 낭랑하게 운다. 소쩍- 소쩍-
한시간 가까이를 걸었다. 또 담배를 문다. 힘든게 아니라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누군가 예전에 그랬다. 유리밭을 맨발로 걷는 기분. 음. 이런 고통을 두고 그렇게 표현한것이구나. 어쩌면 그리 잘 비유를 했나. 정확한 느낌이다. 유리가 깨진 유리밭을 맨발로 걸으면 이런 통증이 있겠다 싶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80km지점을 통과했고, 어디쯤일까. 동녁이 튼다. 옆으로 남한강이 다시 반짝반짝 빛난다. 공기는 상쾌하다. 발바닥이 너무 아픈데, 아차. 그때 준비해왔던 진통제가 생각났다. 진통제가 효과가 있을까. 두알을 입안에 털어놓고 10여분을 더 걷다보니 확실히 통증이 줄어든다.
뛰어야지. 뛰어야지. 90km가 넘으면 또 긴 언덕이야. 지금 뛰어야 만회한다. 한발 두발 다시 뛰어본다. 생각보다 통증이 많이 줄었다. 끝도 없는 커브길, 한번 돌아나가면 또 커브길, 또 커브길 몸이 좀 나아지니 이젠 또 심리전이다. 짜증이 날 정도로 반복되는 커브길.
그래도 뛰어야지. 이 색히.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는 거야. 해보자구. 난 이미 85km가 넘게 왔어. 뛰면서 대략 20여명을 추월해 나간다. 다른 주자들도 지쳐보인다. 화이팅을 외치며, 수고하시라고 인사하며 달려나간다.
90km지점. 아침 7시 40여분. 열심히 가면 9시 이전(14시간)안에 들어가겠다. 힘내자. 힘내. 해가 완전히 떠서 벌써 따끈따끈해진다. 천진암 입구에서 자원봉사 아가씨가 건네준 쭈쭈바. 아- 오늘 여기서 먹는 음식들은 어쩜 그리 맛있는지. 꼬추에 털난 이후로는 먹지도 않던 쭈쭈바를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아마 아들놈이 한 입 달라고 했어도 주지 않았을 것 같다.
90km가 넘어가자 벌써 다 도착한것 같은 느낌이다. 만나는 주자들도 얼굴에 화색들이 돈다. 다 왔다며 서로 격려한다. 그래, 이제 기어서라도, 굴러서라도 완주는 할 수 있다. 가자. 가자.
95km까지 뛰고 걷고를 반복. 다시 발바닥이 화끈거리는데다 이젠 오른쪽 발목에도 이상신호가 온다. 그래도, 가야지. 그래도 가야지. 되뇌인다. 이제 다왔다고. 조금만 더가면 끝이라고.
골인지점인 야영장 입구까지 또 5km이상의 언덕이 남았다. 이젠 지쳐 걸을 수 밖에 없다. 발바닥은 또 불이난 듯하고 장딴지는 내맘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얼마나 걸었나. 이놈의 골인지점은 왜이리 안나오나. 이거 거리 표시 잘못한것 아닌가. 괜히 부아가 난다. 이놈의 울트라. 다시 할 것 못된다고 생각한다. 한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해는 뜨거워지고, 발바닥은 엉망진창에 바늘로 계속 찌르는 듯한 고통, 발목과 다리는 이미 내것이 아니다. 걷기만 하는데도 땀은 계속 줄줄 흐른다. 이젠 천진암의 계곡이고 나발이고 풍경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얼른 골인지점에가서 쓰러져버리고 싶다.
골인지점인 천진암 '우산야영장 500m'이정표가 나타난다. 코 끝이 찡해진다. 그래. 99.5km를 왔다. 500m 포복으로 가래도 간다. 아니, 사실은 포복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다.
야영장 입구에 도착하니 이건 언덕이 아니라 절벽이 나타난다. 겨우 100여미터 남았는데. 울트라에 암벽등반 코스도 있다. -_-;;
겨우겨우 마지막 힘을 짜내서 절벽을 올라간다. 골인지점 10m, 딸과 아들놈이 팔벌리고 뛰어온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다. 드디어, 아들 놈 손을 잡고 골인점을 통과 한다.
내가. 해냈다.
마라톤 경력 2년만에, 풀코스 완주 6번의 미미한 경력을 가지고, 씨름선수의 체격으로,
해내고 말았다!
14시간 15분. 첫 울트라대회 공식 기록.
기념사진 몇장찍고, 박위원장님이 거봐라 할줄 알았다는 축하도 받고, 북어국밥에 막걸리 시원하게 한잔하고서 뒤돌아 보면서 자리를 떴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기절(?)하고는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부스스 일어나 절뚝절뚝 장애인이 되어 다음날 떠나는 중국출장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미친놈처럼 소리없이 웃고 있었습니다. .................................................... 주로에서 동반주해주신 여러분들, 격려와 화이팅을 주신 자봉님들, 조직위원장님 이하 준비Staff진 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 글은 천진암 울트라대회 완주기 펀글 입니다)
첫댓글 대단한분이시내여 나두 15kg감량하면 뛸수잇으려나 무지잘읽었읍니다 많은 도움도됐구여 ㅋㅋ 아참 난 하프도 안뛰어 봤지 켁 일딴 무조건뒤는 연습중 ㅎㅎㅎㅎ
터틀맨과 같이 연습을 해 보니, 하프는 눈감고 1:59분 완주할뜻, 원하면 2시간 이내 동반 완주 가능 합니다.
형님고맙습니다 그건쫌더지켜보구여 (내상태를여ㅎ)ㅎㅎ 전 진짜 잘해보구 싶어여
종단대회 500키로 지점에서 시간되면 자원봉사 부탁해도 되는지 ㅋㅋㅋ
네 시간돼면 당연희해야져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