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서로 싸우지 말고 잘 살아 보자는데 그 꼴을 도저히 용인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6.25시절 북한군에 희생된 유족들이라면 왜 아니 그러겠는가.
4.19, 5.18희생자의 후손들이 공무원 채용에 불온세력으로 간주되어 채용결격대상으로 분류됨이 사실이었다면
태극기,성조기를 두르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일리가 없다.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연들에 대해 책임있는 잘,잘못을 가리기 힘들면 좌,우 .. 진보,보수..그저 편리하게 가르면 되는가.
6.25시절의 북한군에게, 또는 국군에게 억울한 누명으로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아픔과 후유증을 공감하여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이 이해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설픈 역사의 배설물에 자맥질했던 근현대사의 풍랑이 곧 4.16세월호 침몰과 4.19의거의 아득한 遠因인도 모른다.
'잘 살아'보는 것 못지않게 '바르게'살아가는 것이 절실한 세상이다.'미투'사건로 극단을 선택하여 유명을 달리한 피의자들은 적어도 궁정동 安家의 '그때 그 사람들'보다는 양심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 학급에서 도난사고가 발생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범인이 나오기까지 집에 보내지 않고
책상위에 꿇어 앉아 기다리게 하셨는데 날은 저물고 배도 고팠지만 친구들을 이제 믿지 못하겠다는 슬픔이 더 컸다.
땅거미가 질 무렵 드디어 범인이 자수를 했다. 전학 온 지 한 달의 과묵 왜소한 친구..녀석은 선생님께 혼이 났고
그 아이 어머니는 돈도 물어 주셨다.
그런데 몇 달후 놀라운 일을 알게 되었다. 돈을 도난 당했다던 그 친구는 거짓말이었다.
기성회비를 군것질에 까먹고 교실에서 잃어 버렸다고 소란을 피운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전학온 그 친구는..? 모든 친구들이 고통을 겪어 자신이 일부러 누명을 쓴 것이라 했다. 부끄러웠다.
우리들은 그 녀석을 도둑취급하고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후 그 친구와 친하게 되어 집에도 놀러 갔는데 그 친구가 라면도 끓여 주었다.
친구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셔서 어둑해야 돌아 오신다했다.
성년이 되어 그는 동창생중 제일 출세한 사람이 되었다. 행정, 사법고시를 패스하여 장터입구에 축하 현수막도 걸렸었는데..
호사다마 - 몇 년 후 서른도 되지 않아 요절하고 말았다.고생 끝, 이제는 아들덕 보겠다고 부러움을 사던 그 친구어머니는
그 후 시장에서도, 수십 년 잘 다니시던 교회에서도 사라지셨다.
지금도 종종 억울한 일들이 눈에 띄면 친구들의 고통을 오롯히 홀로 감당하려 거짓으로 고백했던 그가 떠오르고
세상사 '뿌린대로 거둔다'며 이웃의 불행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매도됨이 안타깝다.
대치중인 아직 나이 어린 전경들과 사납게 밀고 당기는 일촉즉발의 시위군중 사이에는
어느 정당의 책임있는 정치인도 리더도 계시지 않았다.
일제치하의 고독한 독립군, 6.25의 소년병, 4.19와 5.18의 민주화 운동, 그리고 6.10항쟁..
그때 그 시절, 강물과 같은 군중의 함성에 무임승차한 자들이 과연 누구인가.
겉으로 조용히 흐르는 강물일지라도 물의 깊이에 따라 유속이 다르고 수온도 다르다지만
우리를 이끌어 가는 모든 조직과 국가의 지도자에게 강물과 같은 유연함과 대범함이 있는가.
국가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그릇의 크기와 선한 행실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가 될 수는 없다.
일제치하의 고독한 독립군, 6.25의 소년병, 4.19와 5.18의 민주화 운동, 그리고 6.10항쟁..
그때 그 시절, 강물과 같은 군중의 함성에 무임승차한 자들이 과연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