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발도르프교육의 이해를 위해 4 -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문재현)

[장유정]

<민들레> 19호 86∼109쪽에 실린 글입니다.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의 대안인가

;문재현(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www.maul.or.kr 소장)

1. 여는 글

슈타이너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은 몇 번의 계기를 통해 변화를 겪었다. 슈타이너 교육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였다. 슈타이너 교육이 막 소개될 때 나는 서울 신촌에 있는 '우리어린이집' 교사들과 꾸준히 관계를 맺고서 아기 어르는 소리, 아이들 노래(전래 동요), 대동놀이, 교육과정의 지역화 등에 대해 초청강연과 연수를 하면서 지원하던 중이었다. 그때 마침 슈타이너 교육 연수를 받은 교사가 있어 인지학, 팔 년제 담임, 오이리트미, 에포크 수업 등에 대해 들었는데, 시간표에 대한 태도라든가 이야기, 노래교육을 강조하는 것이 내 문제의식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그래서 우리 교육자원으로 참고할 만한 것을 연구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그 뒤 슈타이너 교육을 열성적으로 수용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를 책이나 직접 만남을 통해 알게 되면서 슈타이너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은 우려로 바뀌었다. 그들의 생각이나 태도가 슈타이너 교육에 대해서는 구도적인 열정으로 추구하면서도 우리의 현실과 문화에 대해서는 그 학습의 중요성을 언급할 뿐 몸과 마음은 거기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는 지금까지 우리 문화를 연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육내용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온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 경우 아기 어르는 소리와 전래 동요를 복원하고 내 몸에 익히는 데까지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시풍속과 의식주 생활의 경우는 인간 사회의 리듬과 전체의 리듬, 생태적 리듬, 다른 나라의 사례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해야만 그 전모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지난 몇 년간 겨우 그 가닥만 잡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몇 년을 더 노력해야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를 몸에 깊이 새기는 것은 기본이고 그 문화의 관성을 벗어날 수 있는 시야와 힘을 갖고 있을 때 시대에 맞는 연구와 실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슈타이너 초등학교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슈타이너 교육이 단순히 이론적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제도로 정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대중문화나 고급문화와 달리 유치원과 초등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일정한 삶의 방식과 행위 규범들을 몸에 새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문화적 영향은 더 심각하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문화와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문화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그들이 고려하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자료를 모으고 슈타이너 교육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도 검색해 보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던 중 우연히 어떤 이와 얘기를 하다가 슈타이너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했더니 글로 한번 정리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슈타이너 교육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망설였지만 우리 문화자원을 복원하고 그것을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들려고 십여 년 동안 노력해온 내 입장을 드러내는 것도 의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2. 대안교육운동의 한계와 슈타이너 교육 

슈타이너 교육 이론과 방법을 확산시키려고 하는 시도는 그 주체들의 생각이 어떠하든 사회적으로는 대안교육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자원 가운데 하나로 슈타이너 교육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1990년대 이후 펼쳐지고 있는 대안교육운동은 성과와 함께 한계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한계를 슈타이너 교육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으므로 여기에 대해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안교육운동의 성과라면 무엇보다 국가주도 아래 억압되었던 사람들의 자주적인 교육참여 욕구가 활성화된 것이다. 또 다양한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교육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한계 또한 많이 지니고 있다. 

첫째 중산층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인지 계급·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적 시도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학 진학이 중산층 이상 학생들에게 훨씬 더 유리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자립형 사립고, 영어 조기교육이나 초호화판 유치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빈부 격차로 인한 심각한 사회적 분열이 교육영역에서 더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다면 교육개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지배 조건을 재생산하기 위한 전략의 들러리가 될 가능성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이우학교나 일부 교회에서 설립하거나 준비하는 대안학교 모습에서 그 위험성은 현실화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우학교는 한 사람 당 이천만 원의 출자금을 내고 설립을 준비중이고 설립 후에도 기금과 기부금을 통해 학교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학교가 대안학교로 자리를 잡으면 사회적 의제 설정의 힘과 정치 경제적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아닌 대다수 사람들의 경우 대안학교를 만들기도 어렵고 대안교육이라는 사회적 실험의 혜택도 누리기 어려워질 것이다.

교회에서 그 교회의 신자들을 중심으로 대안학교를 설립하거나 준비하는 것도 대안교육의 미래를 위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현재 교회의 모습과 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볼 때 한 교회에서 세우는 학교는 교육에 관한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국가 이상으로 침해 할 가능성이 있다. 교사와 학생의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교육내용 역시 그 교회가 속한 교파의 입장에 의해서 선택되거나 침해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아이도 그 아이의 어머니가 속한 교회에서 대안학교를 설립한다고 준비단계로 운영하는 방과후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학교수업뿐만 아니라 평일에는 피아노 교습, 주말에는 방과후 학교를 다니느라 늘 피곤해 하고 짜증을 잘 내는 데다가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더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 아이의 부모한테 아이의 생활을 말해 주면서 아이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교회를 위해 아이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양상들에 대해 옳게 대응하려면  대안교육운동은 이제 교육의 자유와 학교선택의 자유뿐만 아니라 그 실천이 가져올 사회적 결과, 곧 어떤 사회세력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IMF 이후 사회적 양극화가 교육에 가져온 심각한 폐해를 극복하고, 점점 더 사회적 지위가 하락하고 있는 대다수 민중들을 위한 교육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개인의 자아실현이나 학교선택의 자유 못지 않게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자아실현을 위한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문제, 즉 교육의 지역화에서 보이는 한계이다. 대안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지역사회에 뿌리 내린 학교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국에서 학생을 모아서 운영하는 방식이나, 친한 사람들이나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인위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방식으로는 참다운 지역화, 곧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환경, 사회·문화환경과 긴밀히 결합된 사람을 길러낼 수 없을 것이다. 지역화는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학교의 기능과 역할이 발휘될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와 교사 학생이 교육주체로 나설 수 있는 환경과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유아교육 단계에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대안교육운동은 아직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지역기반과 문화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또 하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대안교육의 식민성 문제이다. 대안교육의 이론가인 고병헌 교수는 '신자유주의와 대안교육의 식민화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대안교육이 식민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수용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대안교육운동 진영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대안교육운동 이론가들의 사고와 행동을 들었다.

'대안교육의 식민화'가 가능한 두 번째 근거는 대안교육운동 이론가와 실천가들의 사고와 행동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대안교육에 관심을 보이거나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이론가와 실천가들 가운데에는 외국의 대안교육 이론과 사례, 특히 방법을 탈맥락적으로 우리 상황에 적용하려고 한다든지, 외국에서 대안교육운동을 전개하였던 방식 그대로를 도입,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제도교육의 '형식'과 '내용'이 '식민화'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 제도교육의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한국의 대안교육운동이 외국의 제도교육 맥락의 뿌리에서 싹튼 외국의 대안교육 경험의 탈맥락적 적용으로 인한 '식민화'(제도교육의 식민화에 이은)의 과정으로 돌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병헌 교수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와 교육내용, 방법은 미국과 일본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우리 사회에 이식하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현실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가 생기게 된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해결을 위해 사회 내부에서 자원을 찾을 것이다.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다른 나라의 제도와 학문을 신중하고 깊이 있게 연구해서 수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특히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흔히 우리의 삶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문제를 뿌리째 부정하고 서양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행동에는 전통문화를 일거에 뿌리뽑을 수 있다는 반문화, 반인권적인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문화는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렇게 쉽게 뿌리 뽑히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우리는 삶의 95%를 과거로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경우 식민지를 거쳤기 때문에 자기 부정의 전통이 없었던 프랑스에 견주어 약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형성해온 긍정적 부정적 문화의 영향이 80%는 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있으며 제사를 지내고 있고, 인간관계의 기본 윤리는 품앗이와 유교적인 원리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 

문화는 단순히 책이나 유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몸짓, 표정, 예의범절 같은 구체적인 행동습성이나 성향으로 우리 몸에 새겨져 있는 행위양식이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고서는 어떤 진지한 사회적 실천도 학문도 불가능하다. 자신의 문화를 모를 때는 교육의 토대가 되는 사유와 상상력이 삶 속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공허한 논의에 빠지기 마련이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서 상상력의 빈곤을 말하는데 이는 교육이 건강한 삶의 터전을 떠났을 때 생기는 문제로서 그 근본적 원인은 식민성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교육이론과 교육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이러한 식민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을 찾을 때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우리의 전통과 현실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외국에서 중시되는 경험뿐만 아니라 그들이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 경험까지도 가져다 쓸 정도로 적극성과 개방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나아가 우리의 실천 하나 하나가 진정한 국제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인지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경험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학습과제이다. 

따라서 내가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외국의 사례나 이론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이다. 즉 어떤 이론을 받아들일 때, 우리 현실에 발을 딛고서 그것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 것인지, 어떻게 우리 사회에 수용해야 하는지 먼저 검토해 봐야 한다. 또 수용주체가 그것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우리 문화의 문맥과 맞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할 때(느낌과 분위기까지도) 그 문화요소는 외국 것이 아니라 우리 것으로 소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공간도 다르고 문화배경도 다른 슈타이너 교육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려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나무 하나를 외국에서 옮겨다 심을 때도 기후와 생태 조건을 깊이 연구해야 하는데 사람과 관계된 교육이론과 교육방법을 사람과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지 교육하는 사람들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3. 슈타이너 교육의 이해 

슈타이너 사상의 시대적 배경

현재 슈타이너 교육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슈타이너는 예언자, 영혼의 스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한 태도는 슈타이너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슈타이너 사상 역시 그가 살았던 사회와 시대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만이 슈타이너를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독일인이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크랄예백인데 당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땅이었지만 게르만인이었던 그는 독일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독일 문화에 깊이 심취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은 급격한 변화시기였다. 독일은 여러 나라로 분열돼다가, 비스마르크가 재상으로 있었던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 독일을 이루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던 것은 급격한 산업화였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후진국이었던 독일은 19세기 중반부터 철도와 중공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해 경제적으로는 영국을 능가하는 강대국이 되었다. 사람들은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향했고 도시 생활은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시골의 생활과는 다른 익명성, 물질적 가치관, 공동체 문화의 붕괴 등은 그 시대를 특징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사회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국민에게 의무와 봉사만을 요구할 뿐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독일제국의 가부장적 성격과 독일사회의 미성숙으로 인해 막혀 있었다. 가부장적인 국가는 국민을 다스리고 교육하고 부를 분배하는 역할은 물론이고 사회복지 문제부터 공동묘지의 규칙에 이르는 모든 것을 관장할 정도로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질린 청년들 중에는 기존 제도를 부정하고 경멸하면서 새로운 가치관과 생활 양식을 추구했는데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슈타이너 사상의 사회적 배경을 이룬다.

슈타이너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그가 사회적 이방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외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 요한 슈타이너는 사냥꾼이었는데 슈타이너의 어머니와 결혼하기 위해 그가 좋아하던 일을 버리고 철도 공무원이 되었다. 12시간 맞교대 노동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놀아줄 시간이 없었고 집에 오면 잠에 떨어졌으며 어머니는 거의 말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슈타이너는 밝고 활달한 가정 분위기가 아니라 외롭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더욱이 아버지가 계속 근무지를 옮겼기 때문에 그가 살았던 마을에서 그는 항상 이방인이었다고 한다. 친구도 없었고 이웃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비 체험을 했다는데 이모가 자살했을 때 그 광경이 멀리 있던 슈타이너에게 보였다고 한다. 또 학교에 다닐 때는 수학과 기하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역시 그가 현실 생활보다는 어떤 본질을 추구하는 성향을 형성시킨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슈타이너 신비주의의 사회적 토대는 무엇일까?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당시 청년들은 가부장적인 국가를 경멸하면서 새로운 생활 양식을 추구했는데 현실참여적인 사회주의가 그 한 흐름이었다. 그런데 귀족이나 일부 중상층 출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현실을 벗어나서 자신의 내면 속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보수적 성향을 띤 사람들이 있었는데 신비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신비체험과 신비주의가 모두 보수적 사상인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미륵사상이나 동학, 이슬람교의 수피즘, 서양 중세의 천년왕국설 같은 것은 종교적인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말을 완전히 장악하고 민중을 억누르고 있을 때, 태초의 순수함, 에덴동산, 미륵정토를 내세워서 말의 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혁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슈타이너 신비주의는 주류사회에 대한 강한 지향성, 엘리트주의, 교제 범위의 귀족이나 중상층 편향으로 인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가 사회주의, 사회 민주주의에 대해서 일관된 반대입장을 취한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슈타이너 교육의 토대, 인지학에 대해

현재 슈타이너 교육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8년제 담임이라든가, 오이리트미, 에포크 수업, 선 그리기와 같은 교육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을 뿐, 그 전제가 되는 인지학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는 이해의 어려움 때문인데,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인도의 베단타 철학·타잇티리야 우파니샤드, 헤켈의 진화론 등이 결합돼 있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생소한 느낌과 함께 여러 문화 체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슈타이너 학교의 교육활동은 슈타이너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그의 인지학을 알지 않고서는 그 본질을 깨달을 수 없다. 

인지학은 'Anthroposophy'라고 하는데 이는 '안트로포스(사람)'와 '소피아(지혜, 지식)'가 합쳐진 말이다. 인간에 대한 학문이란 뜻인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간의 정신적 본질에 대한 학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내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사항으로 요약을 해보았다. 이 요약은 내가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임을 밝힌다. 따라서 틀릴 수도 있고 인지학 바깥에 있는 나와 인지학자들의 이해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와 다른 독자적인 정신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한 정신세계는 현실세계처럼 관찰할 수 있고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린 사람만이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영적인 수련을 해야 하는데 슈타이너는 그가 쓴 책 '초감각적 세계인식'에서 수행자는 영적 스승이 제시하는 수행에 필요한 조건들을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물리적 신체와 정신,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리적 신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정신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영혼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슈타이너는 우리가 자세히 인간의 활동을 관찰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영혼을 파악할 수가 있다고 한다.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 기쁨, 고통 등의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로 영혼의 영역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식물의 삶의 법칙에 대한 인식은 정신에 속하는 것이다.

한편 슈타이너는 인간을 물질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체 네 가지 구성체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처음 탄생할 때 인간은 물리적 신체만 탄생하는 것이고 에테르체(생명체), 아스트랄체(감정체), 자아체는 막에 싸여 있다가 7년 단위로 막을 빠져나온다(탄생한다). 그러한 탄생은 신체적 증거, 곧 일곱 살에 영구치가 나오는 것, 14살 때쯤 돼서 성과 관련된 신체기관의 성숙으로 알 수 있다. 21살에 자아가 탄생하는데 이때는 신체적인 특징은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은 7년을 단위로 특징적인 발달단계를 거친다

1단계는 0세에서 7세까지로 이 시기에 배우는 것은 걷기 말하기 생각하기이다. 아이는 하나의 거대한 감각기관으로 외부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므로 이 시기의 교육적 원리는 모방과 본보기이다. 2단계는 7세에서 14세까지이다. 이 시기에 특히 발달하는 것은 감정으로 교육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림과 음악 같이 상상력과 관계된 것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존경하는 사람을 따르려고 하므로 교육의 원리는 교사의 권위가 된다. 3단계는 14세에서 21세까지로 이 시기는 추상적 사고의 발달이 특징이다. 2단계의 교육원리인 권위에 대해 아이들이 의문을 품게 되고 자유로운 사고를 발달시킨다. 이 세 가지 발달단계는 유아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 시기에 대응된다. 

교육은 성장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성장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죽으면 신체는 흩어지고 정신과 영혼은 영혼계와 정신계에서 자신을 정화하면서 새로운 탄생을 준비한다. 인간의 탄생은 그렇게 정화된 정신-영혼이 물질계로 하강해 신체라는 옷을 입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정신과 영혼은 지속적으로 진화한다. 인지학적 수련을 거친 사람은 신비체험을 통해서 이러한 윤회의 과정을 명료하게 알 수 있다 

한편 개인의 진화는 우주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인류의 진화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슈타이너는 인류 역사를 정신문명의 역사로 보는 독특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시대 구분부터가 특이한데 그는 인류의 역사를 크게 아틀란트 시대와 후 아틀란트 시대로 나누었다. 아틀란트는 유럽 전설에 나오는 대륙으로 높은 문명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부터 9천년 전 대서양 밑으로 가라앉아 그 주민 가운데 일부가 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인류 역사가 새로 시작됐는데, 고대 인디아 문명 시대에는 인간이 정신세계와 직접적으로 대화했지만 농사를 시작하고 물질적인 생활이 강화되면서 정신세계와의 직접적 교통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 뒤 그리스 철학의 발전 등으로 생각하는 힘이 생겼고 바로 생각하는 힘에 의해서 정신 생활과 직접 교통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그 진화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예수의 탄생과 부활, 즉 골고다의 신비이다. 예수는 정신적 힘을 땅으로 가져왔고 그로 인해 인간은 정신적인 것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슈타이너 교육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

서구문명 중심적 태도(인종주의적 사고)

슈타이너가 정신문명사를 서술한 것을 보면 세계를 유럽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등장하는 역사적 집단에는 인디안과 폴리네시아인, 아프리카의 흑인들, 극동 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사람들이 빠져 있다. 

예수에 대한 그의 태도는 서구중심·기독교 중심적인 사고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잘 보여 준다. 그는 예수의 탄생을 인간 정신 문명 발달에서 유일한 사건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서구문명을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보편적 문명이라는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윤회설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이 불교를 서양에 이식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자신의 독자적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자신이 윤회전생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정신적 지각이 명료해졌을 때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친구가 {밀교적 불교}라는 책을 주었는데 그것을 통해서 신지학과 윤회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인간의 윤회에 대한 독자적인 결론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초월적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읽어낼 수 있다는 지구 역사의 기록인 아카식 레코드를 읽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독자적 깨달음과 이론화, 사회적 상식화는 다른 문제이다. 슈타이너의 활동은 신지학과 연결되어 있고 당시 신지학이 인도사상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있던 분위기 속에서 개념을 형성하고 논리를 전개했으므로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구나 내가 읽은 바로는 슈타이너의 인간관과 윤회설은 인도철학, 그 중에서도 베단타 철학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윤회설의 내용에서도 슈타이너는 개별적인 정신과 영혼의 윤회만을 인정했을 뿐, 동물의 윤회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서구의 개인주의적·인간 중심적 가치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시대를 살았던 대다수 백인들처럼 인종주의적인 사고,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독일인인 슈타이너가 서구 중심적 사고를 가지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사상이 자신이 태어난 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특별히 슈타이너만을 문제삼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 이러한 반문에 담긴 생각일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내가 슈타이너의 서구 중심적 사고를 문제삼는 것은 우리 교육의 미래를 준비하는 자원으로서 슈타이너의 사상, 삶과 태도를 따져보기 때문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단연코 문제가 된다. 서구 중심적 사고는 서양인이 서양문명을 소중히 여기고 몸에 새기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명을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면서 타 문화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제국주의적 태도와 함께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제3세계 식민지 지식인의 태도까지 포함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은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일이지만, 특히 다른 문화를 무시하고 파괴하던 제국주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 실천일 것이다. 그것은 인류애의 실현이고 국제화가 현실의 흐름이 된 오늘날에는 현실문제 해결과 인권·국제평화 교육을 위한 가장 소중한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현실참여 문제

슈타이너가 제국주의 시기를 살았기 때문에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의 인류애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가 제국주의 침략에 반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1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에도 그는 냉담한 태도를 취했는데 1915년 한 신교도 목사가 슈타이너와의 대화를 적은 다음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도대체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슈타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건들과 가까이 있는 모든 작용에서 우리는 손을 떼야 합니다. 신지학(인지학)을 연구하여 얻어진 지식 자체를 행동 속에 녹아들게 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다른 사람들의 권리가 부정당하고 있을 때 그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단지 인지학만을 언급하고 있다. 시대적 아픔에 공감하지 않고 그 상황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행동을 정당화 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 사상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 결여된 '차가운 관념의 구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슈타이너처럼 시대가 아파하고 있을 때, 정신적인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태도는 사람의 시선을 현실세계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함정에 빠진 사람은 사회적 삶의 구체적 총체성을 이해할 수 없어 세계를 향한 진정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피와 살로 된 인간의 현존을 어떤 유보도 없이 긍정할 때, 곧 사람들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히틀러가 활동할 때도 나치에 대한 반대운동을 하지 않았다. 히틀러가 온갖 테러를 통해서 반대자를 탄압하고 인종주의를 공공연히 선동하고 있을 때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 나치의 집권 시기에 슈타이너 학교가 폐쇄되었다고 반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과 후에 인지학자들이 나치에 반대하는 투쟁을 했다는 자료를 찾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삼중적 사회질서 운동을 들어 그가 현실문제에 참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사회관이라 할 수 있는 삼중사회론은 사회구성을 인간의 몸에 비유한 일종의 전체적 유기체론으로 사회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립과 갈등을 부정하고 통합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것인데, 이러한 유기적인 사회이론은 대개 보수적인 사회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삼중사회론 역시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당시의 독일 상황에서 보수적인 백인 중산층의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슈타이너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리가 따라야 할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슈타이너가 살았던 시대와 달리 생태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는 오늘날 천연역학농법(바이오 다이나믹 농법) 등은 사회적 실천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비과학적인 개념의 문제

신비주의자는 대개 직관과 계시를 강조할 뿐 과학적 사고와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슈타이너는 자신의 견해가 과학적인 인식과 아무런 대립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과대학 박사 출신으로 당시로서는 높은 과학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던 슈타이너의 자부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비주의와 과학의 차이점을 모호하게 하는 그런 말은 그의 입장을 시대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더욱이 슈타이너의 이론이 도그마화 되어 탄력성과 개방성을 상실한다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수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과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슈타이너의 인식체계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중요한 발견들이 그가 죽은 후에 이루어졌다. 인류의 진화에 대한 발견들은 주로 1950－60년대 이루어졌다. 그러한 발견들에 의해 우리는 정신의 진화가 아니라 몸이 진화함에 따라 인간이 형성되었다는 것과 함께 정신의 탄생은 몸의 진화 과정의 일정한 단계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정신문명사에서 슈타이너가 시대 구분한 것과는 달리 인디아 문명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더 앞선 시대라는 것도 밝혀졌고 농사를 짓지 않았다고 그가 밝힌 기원전 7,000－5,000전 이전에 인디아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미 밀농사를 짓고 있었다. 

대뇌 기능의 이해, 특히 대뇌 변연계에 대해서는 1950년대 해마의 기능이 밝혀졌고 1990년대 이후가 되어서야 그 기능을 전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슈타이너가 말한 에테르체(생명체)의 작용은 유전자와 뇌간의 역할이고, 영혼영역, 아스트랄체(감정체)의 작용이라고 본 감정은 대뇌 변연계의 기능이며 정신적 영역, 자아의 작용이라고 본 기억과 이성적 사고는 대뇌 피질의 기능이다. 물론 이러한 기능과 정신 세계는 같은 것일 순 없다. 눈의 기능과 시각적 세계가 다른 것이듯이.

문제는 슈타이너가 현대 생물학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대뇌의 세 가지 구성 부분의 기능을 독자적인 실체라고 파악하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신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확립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지난 1세기에 걸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슈타이너 이론 속에 수용되고 있지 않다. 

슈타이너와 그 지지자들은 과학과 인문학의 발달이 괴테와 슈타이너에 이르러 그 정점에 이르렀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신념과 태도는, 과학과 인문학의 교육과정 구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4. 우리의 현실과 슈타이너 교육

슈타이너 교육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활동은 매우 활발하다. 또 대안교육 운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슈타이너 교육과 같은 외래문화가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열어 갈 수 있으려면 우리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우리 문화와의 심층적인 만남이 가능해야 한다. 과연 그러한 잠재력을 슈타이너 교육이 갖고 있는지 우리 현실에 비추어 살펴보자.

우리 문화와의 대화 가능성

어떤 사람들은 슈타이너 교육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 원리와 대화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러한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용자들이 우리 문화의 심층적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슈타이너 사상에 통달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사상을 우리의 일상언어로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말에는 공동체의 역사와 의미 지층이 담겨 있어 그 사회의 전통적인 사유체계와 문화적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할 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고 만다. 서양철학이 소개된 지 오래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생경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말과 말이 지닌 의미가 우리 문화구조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이 슈타이너의 사상을 이해하려 할 때도 생겨날 수 있다.

슈타이너가 사용하는 개념 가운데 물리적 신체 즉 물질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생기는 문제를 살펴보자. 슈타이너는 인간의 신체를 광물로 이해한다. 이는 인간의 실체는 정신이고 몸은 나 밖의 외부적 물질에 불과할 뿐이라는 서구의 주류 철학전통 안에 슈타이너 사상이 자리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서는 몸을 광물적인 물리적 신체로 이해하지 않는다. 몸은 정신적, 물질적 존재를 통합하고 있는 나 자체이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나 죽는다'라고 하고 유교에서도 정신 수양을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修身) 즉, 몸을 닦는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문화적 맥락과 전통을 부정하고 슈타이너의 물질체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문화의 근본을 이루는 사유체계가 무너져버릴 것이고, 우리들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 하는 데 많은 혼란이 생길 것이다. 

그밖에도 오이리트미와 우리 장단, 문자 배우기, 세시 풍속, 신화 등 많은 측면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슈타이너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슈타이너 교육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적 성찰 없이 일방적으로 그 방법을 수용하려는 태도와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심각한 문화적 충돌을 가져 올 수 있다. 분당 발도르프 유치원에서 교사와 보조교사, 부모와 교사간에 있었던 갈등 가운데 중요한 지점이 철학과 스타일 문제, 즉 민주주의적인 운영방식과 인권에 대한 태도와 함께 우리 장단 교육, 우리 현실에 맞는 슈타이너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사유 체계는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철학적 사유의 길을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슈타이너 입장에서 보면 나는 정신이고 몸은 나 밖의 외부적인 물질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슈타이너의 사상은 그의 표현으로는 윤리적 개인주의, 내가 볼 때에는 정치적 의미가 탈색된 내면적 자유를 위한 개인주의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 생각은 민들레 지난 호에 김희동 선생이 영국 에머슨 사범대학에서의 경험을 정리한 글을 보면서 더 굳어졌다. 그 글을 읽으면서 인지학자들이 공동체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공동체는 예수가 말한 것처럼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위해서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 양들이 다 나설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데 슈타이너 교육 관련 기관 가운데서도 가장 공동체적이라는 에머슨 사범대학의 교육과정이나 교수방법, 교수들의 행동양식은 그러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슈타이너가 말하는 공동체는 생활 공동체가 아니라 인지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일 뿐이고 오이리트미 등은 구성원의 마음과 행동을 통일하기 위한 하나의 종교적 의례, 문화적 규범에 가깝다. 오이리트미가 우주적 인간으로 사람들을 고양시킨다고 하지만 그 정도의 의미와 상징체계를 가지지 않은 문화는 없다. 단지 잊어버렸거나 정교하게 설명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 민족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문제

지금 우리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위기는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참여와 연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슈타이너가 현실 문제에 둔감했듯이 슈타이너를 공부하는 사람들 역시 현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 어려울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먼저, 슈타이너 이론의 자기 완결성, 폐쇄성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어쨌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여러 방면에 대한 관심을 통해서 독자적인 체계를 건설했는데, 개념이나 체계가 워낙 독특해서 다른 이론이나 체계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다른 이론을 현실적으로 인정할 뿐 이론적 대화는 불가능하며 현실과 통합도 어렵다. 슈타이너가 그랬듯이 그들은 현실의 여러 가지 모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정신적 본질, 곧 정신세계를 알 때만 가능하다는 말을 녹음기처럼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나라의 경우 사회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슈타이너 교육을 수용하는 경우가 있어 그들의 사회적 지향성과 행동 특성으로 인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와 그 사람의 삶의 요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슈타이너 이론 속에 내재된 행동 특성은 아니다. 

둘째, 슈타이너를 따르는 사람들은 슈타이너를 넘어설 수 없다. 슈타이너의 사상과 이론은 그의 체험을 반영한 것이고 백 년이 지난 지금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새로운 해석을 요구한다. 그런데 슈타이너 이론의 방대한 체계로 볼 때 거기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할 텐데, 내가 보기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그러한 길을 갈 리가 없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서는 시대와의 공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자기 삶의 중심을 세우고 자기가 처한 현실을 온 몸으로 껴안고 사랑하고 갈등하는 가운데 해결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집단은 새로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힘,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힘을 계발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 문을 활짝 여는 것은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낡은 교육 패러다임의 문제

현재 급격한 국제화, 정보화 흐름과 인류의 위기 상황은 학교 중심의 근대적인 교육체계가 아니라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교육 하면 학교 교육, 곧 일정한 시기(학생 시기), 특정한 공간(학교)에서 학문적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교육은 삶의 모든 시기 모든 생활공간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장치를 사회적으로 제도화하는 과정 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려면 평생교육과 통합교육 체계를 건설해야 하는데 그 출발점이 지역화교육이다. 즉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지속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삶의 의미를 공유하며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교육 실천에 전면적으로 담겨야 하는 데, 이럴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한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독단적인 태도가 될 것이다. 슈타이너 교육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슈타이너의 세계관은 지역공동체의 자연스런 삶 속에 녹아들기가 어렵다. 

슈타이너 교육의 한계는 슈타이너 교수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교육을 담당할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앞으로의 교육상황이 학교중심의 형식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가르치는 비형식 교육을 요구한다고 할 때, 학교교육중심·교사중심의 슈타이너 교육은 낡은 패러다임에 속한다. 대안적 교육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지역공동체의 삶에 깊이 결합하여 공동체 전체가 학교요 교재가 되는 그리고 모든 사람이 교사가 되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내면화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실천을 해야 할까?

이제 우리 교육운동은 새로운 이론에 열광하기보다는 운동가들의 삶 속에서 인권과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거기서 생기는 즐거움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성숙한 생활운동, 조직운동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그러한 실천 속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교육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의 새로운 이론은 무조건 수용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검토하고 검증해야 한다. 자신의 문화를 성찰할 줄 아는 지혜는 사람에 대한 사랑(아이들에 대한 사랑) 다음으로 교육자가 갖춰야 할 자질이다. 

내 경우 현재 집중하고 있는 것은 누구를 가르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 즉 개인수준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다. 내 자신을 위한 설계도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내 가족, 마을사람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 사회역사 환경이 모두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수준 교육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족수준 교육과정, 마을수준 교육과정, 지역수준 교육과정, 국가수준 교육과정, 인류수준 교육과정을 내 삶 속에서 구성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앞에 차려져 있는 밥상 하나만 보더라도 조와 콩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에서 들어온 것인데, 벼는 인도에서, 보리와 밀은 서남아시아에서, 생강과 마늘은 중앙아시아, 옥수수와 고구마는 아메리카에서 들어왔다. 따라서 신토불이의 이데올로기로는 내 앞의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다. 나에게 밥상은 우리 문화뿐 아니라 인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창인 것이다.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 역시 내가 자연과 소통하고 공존하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식물, 새들과 비교를 통해 지구의 환경을 공부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내 집안 생활은 지난 수백 년 동안 강화되어온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것을 극복하는 실천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험의 장이다. 그래서 집안 식구 모두가 인권과 민주적 규범을 바탕으로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현실 속에서 생겨나는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면서 그것을 교육주제로 삼을 수 있을 때, 아니 그 자체가 교육과정이 될 때 대안적 교육의 길이 열릴 것이다. 나는 슈타이너 교육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 노력의 반만 우리 현실과 문화를 공부하는 데 투자한다면 자신과 우리 교육을 위해 더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5. 닫는 글

처음에는 이 글을 서로 다른 문화간에 생산적 만남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초점을 맞춰 쓰려고 했다. 그러나 현재의 조건에서는 그러한 글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슈타이너 교육의 수용자들이 슈타이너 사상의 이식에 관심이 쏠려 있을 뿐 그로 인한 결과와 과정의 문제점을 깊이 파악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에서 전통놀이와 세시풍속, 이야기를 가지고 교육과정을 구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화요소들이 삶의 맥락을 벗어나서 슈타이너 교육의 내용과 형식 속에 담길 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경험적이고 기능적 차원에서 우리 문화요소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구체적 사례를 가지고 글을 쓸만한 내용이 없었다. 그에 비해 슈타이너에 대한 신비화, 신성화가 위험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슈타이너에 대한 이해와 그의 사상이 우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강조한 것은 외래문화에 대한 배척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문화교류의 장 속에 있고 우리 문화요소 가운데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내 기본 입장은 필요할 경우 외국이 버린 문화요소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도 외래문화의 주체적 수용을 위한 기준과 접근법을 가질 때가 되었고 그것을 위한 연구와 토론을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이 먼저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두 달에 걸친 짧은 연구기간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슈타이너 교육에 대한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쓴 글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 또는 오해한 것도 있으리라고 본다. 이 점에 대해서 지적해준다면 좋은 공부의 기회로 삼겠다. 그러나 이 글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은, 내 실천을 통해 형성되고 검증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제기를 받는다 하더라도 분명한 내 입장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