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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케-우닌니의 <길가메쉬 서사시>
배철현(세종대, 고대근동학)
I. 들어가는 글
가. 메소포타미아
나. 길가메쉬 서사시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헌들
II. 길가메쉬 서사시의 주제
III. 신-레케-우닌니(Sin-leqe-uninni)의 자료
가. 표준판본의 편집경향
나. 신-레케-우닌니
IV. 두 질문
V. 두 질문에 대한 대답: 통과 의례
VI. 나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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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글
가. 메소포타미아
길가메쉬 서사시(Gilgamesh Epic: GE)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지금의 이락지역에서 발견된 기원전 2600년부터 쐐기문자로 쓰여진 토판 문서에서 발견된 이야기이다. 메소포타미아는 인간이 활동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은 동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와 서쪽으로는 이란의 고지대사이에 위치하여 충적토 선상지를 만들었다. 최근의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기원전 4000-3000년에는 페르시아 만의 높이가 지금보다 1-2 미터정도 높아 해안선이 우르(Ur)나 에리두(Eridu)근처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두 강이 반 호수의 남부와 아르메니아의 아아랏 산에서 발원되어 가져오는 침적토로 기원전 1500년에는 해안선이 우르와 바스라(Basra)사이까지 내려왔다.
바빌로니아를 지나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이 페르시아 만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두 강이 변덕스럽게 경로를 바꾸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이곳에서 살아남아 저착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농사를 지어야했고 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기 위해 수로가 필요했다. 이들은 대규모 수로 공사를 위한 강력한 중앙 집권이 필요하게 되어 주전 3000년대 중반에 도시국가를 건설하여 농사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한다. 이 경제 활동을 돕기 위해 기원전 8000년부터 내려온 사용되던 물건을 표시했던 물표(token)를 대치 그림글자를 진흙 토판위에 새긴 쐐기문자(cuneiform)를 창안한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은 대개 민주적이고 온순하다. 신들의 최고 결정기관인 ‘신들의 모임’(UKKIN: puḫur ilāni)에서 상-하원이 의견을 개진하여 결정한다. 이들은 특히 자원이 풍부하지 않아 장거리 교역이 경제의 주요 수단이었다. 궁전에서 혹은 긴 무역 여행에서 그들은 단순 오락을 위한 문학 장르들, 특히 두 주인공간의 '갈등과 대결'을 구전 내용을 수메르어로 쓰기 시작했다.
메소포타미아 문헌들은 후대의 다른 문헌들과는 다르다. 시대에 따라서 한 이야기에 대한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한 판본이 이야기 줄거리의 중요한 요소를 생략할 수도 있고 어9떤 경우에는 생략된 것이 많아 다른 판본의 도움 없이는 이해할 수 없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중의 이야기가 항상 확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7세기 니느웨(Nineveh)에서 발견된 [이스타르의 지하세계로의 하강]이라는 최근 판본은 그 원형이 되는 [이난나의 지하세계로의 하강]인 수메르어 판본의 반정도 분량이다.
이런 문헌들과 동시에 구전도 계속 되었다. 문헌으로 남기는 주된 이유는 반드시 일관성있는 연결된 이야기를 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쓰여진 이야기들은 여러 용도에 사용되었다. 제의에 사용되어 권위를 주거나 혹은 현상의 기원을 밝혀주기도 하고, 관습이나 주문의 중요성을 말해주기고 하였다. 이런 작품을 쓴 저자는 주로 주문-사제였다.
표절과 개작은 메소포타미아의 문학작품의 특징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를 도서관에 소장하고 후대 서기관들의 습작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일종의 ‘정경화' 작업이 카사이트 시대에 본격화되었다. 앗시리아 제국의 투쿨티-니눌타(Tukulti-Ninurta)가 기원전 13세기 바빌론을 침공했을 때 바빌론 신전에 딸린 도서관 을 노획하였다. 거의 모든 신전들이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기원전 7세기 니느웨를 수도로 정한 앗시리아의 왕들은 그들이 노획한 바빌로니아에서 가져온 작품들을 모았다. 이같은 약탈과 필사본때문에 앗시리아와 바빌론에서 거의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들이 발견된다.
메소포타미아 신화나 서사시는 메소포타미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주변국가의 언어들, 즉 히타이트어 , 후리어, 엘람어, 히브리어등으로 쓰인 것이 발견된다. 특히 아카드어가 기원전1500년부터 500년까지 이집트, 아나톨리아, 이란 등에서 국제 공용어로 쓰였기 때문에 아카드어 문헌을 각각의 나라에서 서기관을 교육시키는 교재가 되었다. 또한 그들의 장거리 무역과 각 나라에 무역소의 설치로 아카드어 이야기가 주변국가의 문헌들, 특히 구약성서의 [창세기],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와 [오딧세이], 헤시오드의 [신통기]와 [일과 날들], 그리고 [아라비안 나이트]등의 이야기와 공통된 부분이 발견된다.
나. GE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헌들
GE는 기원전 2600년부터 그 원형이 되는 이야기들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아직 쐐기문자가 그림글자에서 음절글자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GE의 내용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이때부터 메소포타미아 남부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중문화권이 형성되었다. 수메르어는 지금까지 존재한 어떤 언어와도 연관이 없는 고립어이며, 인류 최초 문자가 표현된 언어이다. 또 다른 언어는 히브리어나 아람어와 관련이 있는 셈어중 가장 오래된 셈어인 아카드어이다. 수메르어와 아카드어가 메소포타미아인들에 의해 모두 사용되였다. 수메르어는 남쪽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사용되었고 아카드어는 북쪽에서 사용되었다. 수메르어는 사용하는 남쪽의 도시들은 다시 수메르라는 남단 지역과 아카드라는 북단지역으로 나뉜다.
기원전 2300년이 셈족계열인 사르곤왕이 등장하여 아가데왕국을 건설하고 아카드어로 쓰여진 쐐기문헌들이 행정문서로 사용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성서의 모세처럼 사르곤이 태어났다고 전한다:
여 사제인 나의 어머니는 아무도 모르게 나를 임신하여 낳았다.
그녀는 나를 역청으로 바르고 뚜껑을 닫은 갈대 바구니에 놓았다.
그녀는 나를 내가 스스로 헤어나지 못할 강에 띄었다.
강물이 나를 띄워 물긷는 사람인 아키에게 데려갔다.
이 전통에 의하면 이쉬타르 여신의 도움으로 사르곤이 세운 아가데 왕조는 100년 동안 메소포타미아 전 지역을 치리하였다. 수메르어가 구어로서는 기능하지 못하였지만 문어로는 사용되었다. 아가데 왕조 후, 남쪽 도시 우르를 중심으로 ‘우르 제 3왕조’가 나타났다. 이 왕조의 가장 유명한 왕은 슐기(Shulgi: 2094-2047)이다. 그는 정치적 수완을 지닌 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를 권장하는 왕이었다. 우르와 니푸르에 ‘에둡바’(Edubba)라고 불리는 서기관들을 훈련시키는 학교를 세워 그 때까지 구전으로 내려오는 수메르어 찬양시를 문전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다음처럼 그의 작품이 영원히 알려지기를 원했다:
영원히 이 토판문서의 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이 배움의 집은 계속될것이다.
우르 3 왕조와 뒤를 이은 ‘이신 왕조’시절에 수메르어로 쓰여진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이 당시 작품들은 후대 바빌로니아 학교의 정규 학습과정의 교과 내용이 되었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론이 함무라비왕(1792-1750년)의 영도아래 메소포타미아의 최고의 권력도시로 등장하면서 아카드어의 한 분파인 바빌로니아어가 등장하지만 수메르어는고전어로 학자들의 문어(文語)로 명성을 유지하였다. 서기관이 되려는 학생들이 바빌로니아어를 배우려할 때, 반드시 수메르어도 배워야 했다. 다음은 한 학생의 수메르어를 배워야하는 고충을 나타내는 내용이다:
문(問)지기가 “너는 왜 내 허락없이 나갔느냐?”라고 말하고 나를 때렸다.
수(水)지기가 “너는 왜 내 허락없이 물을 길었느냐?”라고 말하고 나를 때렸다.
수메르어 선생이 “네가 아카드어로 말했지!”라고 말하고 나를 때렸다.
내 선생이, “네 글씨가 엉망이다”라고 말하고 나를 때렸다.
서기관 견습생은 수메르어로 말과 글을 할 줄 알아야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수메르어로 쓰여진 방대한 문학작품들을 섭렵해야했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수메르어로 쓰여진 작품들은 이런 바빌로니아 견습생의 작품이다. 이런 토판문서들의 그들의 선생들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이 당시 니푸르와 우르에서 이런 문서들이 대량 출토되었다.
이러한 수메르어로 쓰여진 작품들을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판독,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중 길가메시와 관련된 5개의 독립적인 시가 발견되었다. 이들은 길가메쉬를 빌가메쉬(Bilgamesh)로 발음하였다. 이 수메르 문서들은 바빌로니아의 다른 작품처럼 수십곳의 박물관에 흩어진 수 백개의 파편 토판을 재구성하여 다섯 개의 이야기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빌가메쉬와 아까], [빌가메쉬와 후와와 A], [빌가메쉬와 후와와 B] [빌가메쉬와 하늘의 황소], [빌가메쉬의 죽음].
II. GE의 주제
GE는쐐기문자로 쓰여진 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길고 가장 정교한 작품이다. 길가메쉬라는 영웅이 명성과 불명을 운명적으로 추구하고, 단짝 친구를 만나 단짝이 되어 모험을 하고, 순간의 실수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잃게되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서사시이다. GE의 매력은 길가메쉬나 엔키두, 그 밖에 언급되는 인물과 이 서사시의 오래됨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독립적으로 시작된 이야기들이 하나의 서사시로 옮겨 왔는지 그 경위를 살펴볼수 있다는 점이다. GE의 원형들이 문헌으로 존재했을 때에도 계속해서 GE의 구전전통이 문헌 전통를 변화시켜왔다.
GE에 대한 단편 비문이 현재의 중동지방과 박물관에서 계속 발견되고 길가메쉬에 대한 역사성도 점차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정보가 모두 다른 곳에 발견된 단편 비문들과 함께, 구약이나 고전 문헌처럼 GE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로는 사용될 수 없다. 사실 더 많은 단편 문서들이 발견되면 될수록 하나의 일관성이 있는 이야기로 만들기는 더 힘들다.
GE는 서사시로 구분되었다. 신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역사성이 있는 길가메쉬라는 인물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신화가 아니라 서사시로 구분된다. 내용 면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이자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때로는 하늘의 결정을 막기도 한다. GE가 예배 의식에서 낭독되어졌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 서사시가 왜 쓰여졌다는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으나 이 서사시의 이야기들은 아마도 각기 '재미'로 존재하였을 것이다.
수메르 종교학자 T. 야콥슨은 GE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규정지었다:
The Gilgamesh Epic is a story about growing up...Gilgamesh is fleeing death by fleeing of age, even maturity; he is reaching back to security in childhood. The loss of the plant...brings home the necessity for growing up, for facing an accepting reality.
GE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길가메쉬는 세월의 흐름, 심지어는 성숙을 피해 죽음으로부터 도망하고있다; 그는 유년기의 안전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그 (젊게 하는) 식물을 자기 고향으로 가져오지 못하게 되자, 그는 현실을 직면하고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성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야콥슨은 기원전 1200년경에 이전의 수메르 판본들, 바빌로니아 판본들, 고대근동에 흩어져 있는 판본들을 집대성하여 완성된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Standard Babylonian Version: SV)의 주제를 정확히 읽어냈다. SV는 이전에 전해 내려오던 <GE>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첨가하여 SV를 만들었다: 서론 부분, 홍수 이야기의 확대, 제 12토판,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메르어 판본들과 고대 바빌로니아 판본(Old Babylonian Version: OV)의 주제의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편집자이며 창작자인 구마사제인 신-레케-우닌니(Sin-leqe-uninni)의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GE는 위대한 문학 작품 일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전통, 관습, 그리고 세계관을 일러주는 문화적인 코드이기도 하다.
III. 신-레케-우닌니(Sin-leqe-uninni)의 자료
가. SV 편집의 경향
SV가 발견된 장소는 산헤립(Sennacherib: 기원전 688-681)이 건축을 시작하여 아수바니팔(Assurbaniphal: 기원전 668)이 완성시킨 니느웨이다. 이 근처 도시 님루드(Nimrud)에서도 글자의 신이며 마르둑(Marduk)신의 아들인 나부(Nabu)신의 신전에 딸린 도서관에서도 토판문서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하란(Harran)근처에 있는 술탄테페(Sultantepe)에서도 거의 같은 시기에 학교 습작문서가 발견되었다.
SV는 우선 수메르어로 쓰여진 이야기들의 개작이다. 동시에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민담들, 즉 창녀인 삼하트의 엔키두 유혹, 뱀이 껍질을 벗는 기원론적인 이야기, 그리고 이전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독립적인 자료를 배합하였다. 이런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이루었다. 이 자료들을 한데로 묶는 문학적인 방법은 크게 다음과 같이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길가메쉬는 항상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다.
둘째, 명성을 찾는 초기의 이야기가 후대에는 영생을 찾는 이야기로 변하였다.
세째, 본문을 이루는 제 일 토판부터 제 십일 토판까지는 서언과 결언을 링 콤포지션 (Ring Composition)을 이용하여 사용하였다.
넷째, SV IV와 VII에 나오는 길가메쉬의 꿈은 문장의 긴장감을 주며 동시에 다가올 사건들을 암시한다.
다섯째, 전통적인 숙어 표현과 직접 화법을 위한 숙어적인 표현들을 이용하였지만 원 자료들의 다양성 때문에 그런 표현들이 잘 나타나지는 않았다.
바빌론이 멸망한 후(기원전 6세기 말), 우룩에서 발견된 길가메쉬에 관련된 토판문서는 SV를 개작해 줄기리를 거의 찾을 수 없는 다른 이야기들이 쓰여졌다. 그래서 SV가 발견된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기원전 612년 신 바빌로니아와 메대왕국에 의해 함락한 후, SV의 줄거리를 간직한 이야기가 있었지는 알 길은 없다. 시리아의 우가리트나 아나톨리아의 하투사에서 발견된 토판 문서등 메소포타미아 밖에서 발견된 쐐기문헌들은 SV와 내용이 다르다. 저마다 문학적인 전통에 따라 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서기관을 만들기 위한 학교의 교과 과정의 자료도 일률적이지 못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메소포타미아 안에서의 GE의 내용이 정형화된 이유는 신전에 딸린 학교에서는 정확히 필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B. 신-레케-우닌니
기원전 7세기 니느웨에서 발견된 SV는 GE의 저자를 신-레케-우닌니(S?n-leqe-uninni)라고 적고있다. 그는 카사이트(Kassite: 기원전 16세기-11세기) 시대의 대 서기관이었으며 주문 사제였다. 그러나 그가 어떤 형식의 자료를 취하여 개작했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11개의 토판 문서로 나누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카사이트 시대에는 당시 우르, 우룩, 시파르, 니푸르, 바빌론의 신전 도서관에서 발견된 토판 문서들을 대대적으로 모아지고, 기록되고, 또한 개작되었다. 엔키두가 지하 세계를 방문하는 제 12토판은 신-레케-우닌니가 첨가한것이 아니라 기원전 7세기에 아마도 서언과 결언이 첨가된 후에 더해졌을지도 모른다.
신-레케-우닌니의 이러한 변화는 이미 길가메쉬 이야기가 담긴 단편적인 수메르어 판본에서 바빌로니아어 판본으로의 전승했던 기원전 19세기에 이미 있었다. OV은 바빌로니아 사회의 경험에 가깝도록 새로운 주제와 문학적 동기가 소개되었고, 국소적인 세계관보다는 인간의 보편적인 관심을 가진 주제를 강조하였다. 여기에 기원전 12세기경 신-레케-우닌니의 SV는 자기의 직업이었던 구마사제의 경험, 관심을 더하였다. 고대인들은 U그가 저자라고 하지만, 현대적 의미로는 저자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SBV의 첨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신-레케-우닌니의 창작이라는 증거가 의례에 관련된 용어들을 사용함으로 나타난다:
1. 나라의 기초인 [심연을 보고]
2.[...을 경험한 사람은,] 만사에 지혜롭다.
3.[길가메쉬는,] 나라의 기초인 심연을 본 사람
4.[...을] 경험한 [사람,] 만사에 지혜롭다.
5.[...]... 똑같이[...,]
6.그는 만사에 대하여 지혜의 모든 것을 [익혔다.]
7. 그가 경계가 삼엄한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덮혀진 비밀을 들추었다.
8.그는 대 홍수이전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가져왔다.
9.그는 먼길을 떠나 지쳤지만 쉼을 얻었다.
10.그의 모든 수고를 돌기둥에 새겼다.
J. H. 티가이는 이 서문이 메소포타니아의 서사시나 찬양시에 나오는 전통적인 주제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이 서문은 <길가메쉬 서시시>의 반이상 차지하는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길가메쉬의 노력과 영웅적인 전쟁을 소재로 한것이 아니라 길가메쉬의 노력의 결과인 삶에 대한 지혜를 찬양하고 있다. 바로 점에서 SBV는 OBV와 언어, 시학, 그리고 주제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SBV에서는 길가메쉬가 현자로 등장한다. 길가메쉬는 경험이 많고 슬프며 지혜롭고, 특히 고통을 통하여 지혜를 얻은 자였다. B. 포스터는 신-레케-우닌니는 지혜와 사랑과 섹스가 지혜를 얻는 중간 단계임을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포스터은 이런 분석은 그리스적이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성을 그들 삶의 일부라고 여겼고 성을 분리해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사하게 G. 부첼라티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후대 판본의) 길가메쉬는 이러한 자아발견의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SBV의 주제는 자신의 결점의 인식, 두려움의 인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질문을 하려는 마음가짐이다라고 전한다.
그러나 신-레케-우닌니가 그가 새로 첨가한 서문에서 말하려고한 내용은 길가메쉬의 신비한 지식의 습득이다. 제 1 토판 7행과 8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7. 그가 경계가 삼엄한것을(niṣirta) 보았을때(īmur-ma), 그는 덮혀진 비밀을 (katimtu) 들추었다.
8.그는 대 홍수이전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가져왔다.
신-레케-우닌니는 아시푸(ašipu)였다. 아시푸는 귀신을 쫓는 구마사제이다. 그는 사제의 길에 입문한 사람들만이 볼수있는(amāru) 전통적인 의식에 관련된 문서들이나 의식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신-레케-우닌니는 이 구절들을 통해서 두 단어인 보다(amāru)과 경험하다; 알다(idû)라는 동사가 대비시켰다. 이 두 동사는 사제의 비밀스런 지식을 채득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이다. 아카드어의 보다(amāru)라는 동사는 난해한 토판 문서(특히 의례문서)를 판독하다와 일반적인 의미의 보다가 모두 함축되어있다. 이 동사는 비가시적인 것과 가시적인 것을 모두 볼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다. 이런 구마사제의 기술은 전수 받은 사람에 의해 다음 사제 연수생에게 전수, 학습된다. 아시푸가 익혀야 될 내용이 바로 아시푸가 되는 과정에서 모든 심오한 지혜와 귀신 내쫓는 비밀 내용이라고 전하고 있다. 더우기 신-레케-우닌니는 자기의 삶의 정황을 SBV에 잘 반영하고 있다.
<GE> 제 9 토판 9-10행에서, 홍수에서 살아 남아 영생을 얻은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는 길가메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길가메쉬, 내가 자네에게 감추어 진것을 열어, 신들의 비밀들을 말할것이다.
여기서 감추어진 것(niṣirta)이란 의례 전문 사제, 학자 또는 현자들의 특별한 일련의 지식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다른 세계에 대한 지혜를 얻는 행위는 旽諛ú 의례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런 통과의례에 대한 내용이 서문 제 1 토판 9행에서 그 단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는 먼길을 떠나 지쳤지만 쉼을 얻었다.
특별히, 길가메쉬의 지식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수고’를 돌기둥에 새겼다(제 1토판 10행)라고 기록한다. 아카드어 mānaḫu는 이런 과정의 혹독함을 표현이다. 우트나피쉬팀은 홍수이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수메르 판본 [빌가메쉬의 죽음] 그대로 베낀 제 12 토판에서 길가메쉬는 사후세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길가메쉬의 이런 여행은 ‘모든 사람들이 결국에서 떠나야할 마지막 여행’인 죽음것이다. 이 여행이 바로 길가메쉬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통과의례 과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SV를 편집한 신-레케-우닌니는 사제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비밀 의식의 경험을 길가메쉬의 삶의 여정을 통해 반영하고 있다. 이 상징적인 신고식은 길가메쉬가 이제 성년으로 되어가는 과정 나타내고 있다. 야콥슨이 요약했듯이, 길가메쉬의 주제는 소년 시절에서 어른으로 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신-레케-우닌니가 구마 사제가 되기 위한 통과 의례를 GE의 주제로 상정했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에 먼저 대답하여야 한다.
IV. 두 가지 질문들
길가메쉬가 통과의례를 거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두가지 질문이 중요하다. 첫째, 엔키두가 죽은 후, 길가메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된다. 그리스 고전학자인 G.S. 커크는 그의 작품 Myth: Its Meaning and Functions in Ancient and Other Cultures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왜 길가메쉬는 친구의 죽음 후 문화 세계로 부터 자연 세계로 사라졌는가? 이런 주제가 얼마나 중요해서, 불멸을 찾아 우트나피쉬팀을 방문하는이야기의 기초가 되었는가? 길가메쉬가 세상과 문명의 이기를 부정한것은 자기를 부정한것이다.
T. 아부쉬는 길가메쉬의 불멸을 위한 여행을 애도 의례라고 해석한다. 길가메쉬가 문명을 상징인 우룩시를 떠나 광야에서 몸을 씻지도 않고 옷도 엉클어진 채로의 여행은 애도 의례의 단계라는 것이다. 이 애도 의례를 마치기 위해서는 목욕을 하고, 옷을 입고, 여자를 취하여야 한다. 커크과 같은 그리스 고전학자인 T. 반 노트윅은 길가메쉬의 여행을 애도의 어두운 단계이며 동시에, 새로운 탄생을 위한 첫 단계로 우리 안에 있는 망각의 구덩이에 빠져 간접적으로 죽는 행위이다라고 전한다. 엔키두은 길가메쉬의 야만성, 자연성을 상징하는제 2의 자아이다. 그러므로 엔키두를 애도하는 행위는 길가메쉬의 반쪽 자아를 찾으려는 시도이며 영적인 진화를 초래한다. GE의 주제는 바로 소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성년 통과의례가 상징하는 인생의 단계이다.
둘째, 길가메쉬가 통과의례를 성공적으로 마쳐 성년이 되었다는 증거는 있는가? <GE> 전체에서 길가메쉬는 청소년으로 나온다. 특히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하고 청소년기의 친구의 우정이 그를 지탱한다.
그러나 엔키두가 죽었을 때, 결혼을 하여 새로운 동반자를 맞이할 생각을 하지 않고, 다시 청년기의 상상 세계로 다시 도망하려 한다. 야콥슨은 심리학자 H. S. 설리반을 인용하면서 길가메쉬의 청소년기의 상징은 엔키두이며, 엔키두는 이성간의 교제를 통해 얻어지는 어른으로서의 삶을 억제한다.
야콥슨은 청소년기에 머물고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길가메쉬를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지적한다. 먼저 길가메쉬가 엔키두의 도래에 대한 꿈을 꾸고, 그의 어머니 닌순 여신이 그것을 풀이하는 장면이다:
제 일 토판
288.나의 아들아, 네가 본 도끼는 친구이다.
289.너는 그를 너의 아내처럼 사랑할 것이다. 너는 그를 껴안을 것이다.
290.그리고 나는 그를 너처럼 똑같이 만들것이다.
다음은 엔키두가 우룩시에 와서 길가메쉬를 만나는 첫 장면이다. 엔키두는 길가메쉬가 우룩시의 왕으로서 새로 결혼하는 신부의 첫 날밤을 빼앗으려 가는 길을 막고 선다:
100.그는(길가메쉬) ‘우룩-우리’의거리에 서있다.
101.[...] 떠났다, 힘이 [...]
102.그는 [길가메쉬의] 길을 막았다.
[....]
109.이쉬하라를 위해 침대가 [준비되었다.]
110.신과 같은 길가메쉬가 (신랑을) 대신하여 [누울 것이다.]
이 부분은 SV가 많이 파손되었기 때문에 OV에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OV
P 159그는(길가메쉬) 신부와 누울 것이다.
P 160그가 먼저이고, 신랑은 그 다음이다.
P 161신들의 회의에서 그렇게 결정이 났다.
P 162그의(길가메쉬) 탯줄을 끊을 때, 그를 위해 그녀는 이렇게 운명 지워졌다.
.......
P 198결혼의 여신을 위하여 침대가 펴있다.
P 199길가메쉬는 그 소녀를 밤에 만나기로 되어있다.
P 200(엔키두가) 앞으로 나와 길에 섰다.
P 201그는 길가메쉬의 길을 막았다.
이 뿐만 아니라 <GE>는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젊음, 미숙함, 그리고 어리석음에 대해 백향목 숲을 지키는 후와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5 토판
85후와와는 입을 열어 길가메쉬에게 말했다:
86바보 길가메쉬는 천치 친구의 충고를 받아구나! 왜 내 앞에 왔느냐?
87엔키두, 아버지를 모르는 물고기 자식같은 이,
88자기 어머니의 젓을 먹지 못한 거북이와 자라의 자식!
그러나 후에 길가메쉬와 엔키두에게 속임수를 사용하여 후와와를 굴복시킨다. 후와와는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요구하면서도 길가메쉬에게 너는 아직 어리다(제 5 토판 145행)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길가메쉬가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책임 없이 행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길가메쉬는 무례한 행동을 한다. 그는 우룩시에 사는 여자들을 성적으로 학대할 뿐만 아니라 남자들을 괴롭힌다. 그의 이런 행동은 우룩시에 사는 여인들로 하여금 신들에게 항소를 하여, 신들은 엔키두를 만든다. 메소포타미아의 원통실린더에는 두명의 동일한 영웅들이 묘사된다. 길가메쉬와 엔키두 간에 우정은 <GE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하다. 이 두 친구의 유사성은 다음과 같다:
제 1 토판
80.그가(엔키두) 그의(길가메쉬) 마음과 같게 하라.
81.그들이 서로 서로 짝이 되게 하라.
제 2 토판
46.얼마나 그 젊은이(엔키두) 길가메쉬를 닮었는가?
청소년의 심리학적 특징들이 많이 발견된다. 길가메쉬의 성격은 경쟁적, 공격적, 인내성이 부족하고 무모하고 위험을 감수한다. 그가 성숙하지 못함은 후와와 괴물과 천사의 황소와의 무리한 싸움에 잘 나타나 있다. 도시의 장로들의 충고에도 아랑곳없이 원정을 떠난다. 길가메쉬의 어머니 닌순여신은 태양의 신 샤마쉬에게 다음과 같이 한탄을 한다:
제 3 토판
46왜 당신은 나의 아들 길가메쉬에게 불안한 마음을 심었습니까?
47당신이 그를 건드려서, 그가 여행을 가려고 합니다.
GE에서 길가메쉬는 야생황소로 언급된다(I.29, 52, 66, 193, 210). 이런 묘사가 전통적인 왕의 상징일 수도 있고 젊은이의 건방짐을 의미하는 은유일수 도 있다. 반면에 길가메쉬와 엔키두는 청소년이 가진 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창녀 샴하트가 엔키두와 성교를 한후 다음과 같이 엔키두를 묘사한다:
제 1 토판
207당신은 잘생겼어요, 엔키두! 당신은 신과 같아요.
길가메쉬를 묘사하는 단어들, kuzbu, dumqu, damqu, banȗ 그리고 inbu는 모두 성적인 의미가 있다. 특히 제 6 토판 시작에서 길가메쉬가 후와와를 죽인 후 목욕을 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제 6 토판
1 그는 그의 길게 딴 머리를 씻고 그의 무기를 씻었다.
2그는 그의 딴 머리를 그의 등뒤로 넘겼다.
3 그는 더러워진 옷을 벗어 던지고 깨끗한 옷으로 입었다.
4 그는 왕복을 입고 새시로 허리를 묶었다.
5 길가메쉬가 그의 왕관을 머리에Í 올려 놓았을때,
6 공주 이쉬타르여신이 길가메쉬의 아름다움을 욕정적으로 쳐다보았다.
청소년기의 특징 중에 하나는 자신의 부모에게 의지한다는 점이다. 길가메쉬의 어머니 닌순은 길가메쉬의 꿈을 해몽하고 길가메쉬가 엔키두와 함께 후와와 원정을 떠날 때, 길가메쉬의 알지 못하는 여행의 두려움을 들어준다. 길가메쉬는 일종의 마마보이처럼 묘사된다. 길가메쉬는 우트나피쉬팀에게 가기 전까지만 해도 성년이 되지 못한 소년이었다. 길가메쉬는 이쉬타르의 청혼을 거절함으로 성년이 되기를 거절했다. 반면에 엔키두는 영원한 소년으로 남는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을 낳지도 않았고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죽음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길가메쉬는 엔끼두가 죽자 내가 그와 같지 않은가? 나도 누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제 10 토판 72, 146, 242). 죽음이 이해 할 수 없는 인생의 큰 숙제이지만, 엔키두의 죽음은 길가메쉬로 하여금 죽음을 거의 부정하게 만든다.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죽음은 인간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길가메쉬는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고야 나서야 엔키두처럼 그도 죽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V. 두 질문에 대한 대답: 통과 의례
길가메쉬가 문명사회로부터 사라져 우트나피쉬팀을 만나러 가는 여행은 길가메쉬의 소년기에서 성년으로의 은유적인 통과의례이다. A. van Gennep의 Rites of Passage에 의하면, 이런 통과의례는 시간이나 사회적 위치의 변화나 경계를 넘나드는것을 의미한다. 이 의례에는 다음과 같이 3 단계가 있다: (1) 분리의식을 통한 예비단계(the preliminal stage): 길가메쉬 경우에는 우룩시를 떠나 유년기로 부터의 분리이다; (2) 위험과 모호함, 빼앗김과 고생을 통한 전환 단계(liminal and transitional stage): 길가메쉬는 우룩을 떠난 후,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이다; (3) 새로운 단계로의 통합단계(aggregation and integration of the individual into a new stage): 길가메쉬가 우룩으로 성인이 되어 돌아온다. 이러한 세 단계를 신-레케-우닌니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제 일 토판
(9)그는 먼길을 가서(제일 단계), 지쳤지만(제이 단계), 쉼을 얻었다 (제삼 단계).
그러므로 길가메쉬의 여행은 그의 흐릿하고 무형의 상태인 소년기에 대한 죽음을 의미하며, 이 죽음으로 그는 한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길가메쉬의 다시 태어남은 성년이 됨을 의미한다. 길가메쉬는 그의 친구 엔키두가 취한 자연에서 문명으로 여행을 반대로 한다. 그는 문명의 옷을 벗고 실제로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쓴다. 그러므로 그 자신을 반문명화한다. 그는 문명사회로 유리되어 여행을 시작한다.
이 전환단계는 GE의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판본과는 달리 결혼이나 아이를 가지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SV에서는 새롭고 신비의 지식을 얻음이 가 중요하다. 이 ‘리멘’기간은 슬픔의 기간이면서, 공포의 기간이기도 하다. 그는 사자를 보았을 때 떨었으며(IX.7), 전갈-사람과 그의 아내를 보고는 엄청난 전율이 그의 얼굴을 창백하게 하였다(IX 56). 슬픔과 고통(IX 215)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행을 계속한다.
길가메쉬는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기까지 수많은 강과, 문과 경계를 넘어야 했다. 그는 전갈-인간들이 사는 지역에서 전혀 모를 땅에서 길을 잃었고(IX 280-322), 바다를 건너 죽음의 강을 건넜다.(IX 102, 104). 성인이 된다는것은 위험하고 외로우면서, 분명 않은 여행을 해야만 한다. 길가메쉬가 이 여행을 마치고 우룩으로 돌아올 때는 성인이 되었다.
이 리미널 단계에서 길가메쉬는 죽은 자도 아니고 산 자도 아니다. 그는 중간단계이다. 그가 만나는 것들과 인간도 아니고 신들도 아닌 중간 단계들이다. 이 단계의 배경도 인간이 사는 곳도 아니고 신들이 거주하는 곳도 아니다. 그곳은 신화적이며 신비적 장소이다. 우트나피쉬팀은 땅의 끝에 있는 강들의 어구에 살고 있었다. 길가메쉬는 우트나피쉬팀을 만난 후 놀란다:
제 11 토판
2 내가 당신을 보니, 오 우트나피쉬팀이여!
3 당신의 모양이 다르지 않군요. 당신은 나와 같군요.
4 당신은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와 같군요.
우트나피쉬팀은 영원히 살기 때문에, 인간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신들과 같이 거주하는것도 아니다. 우트나피쉬팀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인 것 같다. 왜냐하면 길가메쉬의 잠을 날로 계산하기 때문이다(X 260). 길가메쉬는 또한 인간의 모든 것을 빼앗긴다. 그의 의상와 모습은 전혀 달라진다. 이런 모습의 길가메쉬에서 선술집 여주인인 신두리는 그가 후와와와 천상의 황소를 살해한 장사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제 10 토판
36만일 너와 엔키두가 산지기인,
37백향목 숲에 사는 후와와를 죽인 자이며
38산 등선에서 사자들을 죽인 자이며,
38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황소를 잡아
39‘하늘의 황소를 죽인 자이면
40 왜 너의 뺨은 쑥 들어갔고, 얼굴은 창백하며,
41너의 기운은 빠졌고, 너의 용모는 엉망인가?
이러한 고통은 성인 통과의례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이 고통을 견뎌내야 지만 성인이 되었다. 이 기간에 길가메쉬는 잠을 극복할 수 있나 시험을 받는다. 그러나 이 시험의 실패는 그가 반드시 거쳐 절감해야할 부분이다. 우트나쉬트팀의 아내는 길가메쉬가 불쌍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식물이 있는 곳을 가리켜 주지만, 길가메쉬의 어리석음으로 다시 한번 인간은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엔키두는 문명인으로 되었지만 길가메쉬는 좀더 지혜롭고 성숙한 인간으로의 변신하였다.
길가메쉬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대개 여자들이었지만, 이전의 이야기를 가리켜 준사람은 바로 남자인 우트나쉬프팀이었다. 이러한 지식은 오랬동안 구마사제들의 의식을 통해 전해내려왔다. 그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지식을 얻었다:
제 1 토판
7.그는 비밀을 보았고 감추어진ä 것을 드러냈다.
8.그는 홍수이전 시대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길가메쉬는 상징적인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한다. 우트나피쉬팀의 후계자로, 2/3가 신이며 1/3이 사람인 길가메쉬에게만 가능한 비밀을 알기 위해서, 마치 구마사제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것처럼 그는 심오한 지식을 소유해야한다. 그노시스(gnosis), 심오는 지식은 리미날러티의 특징이다. 이러한 비법을 전수받은 자는 그 자신이 변화되는것이다.
세번째 단계인 통합단계는 제 11토판 246-319에 분명히 나타난다.
제 11 토판
262.우르-샤나비는 그를(길가메쉬) 데리고
263.그는 길게 딴 머리를 깨끗이 씻었다.
264.그는 가죽을 던져, 바닷물이 그것을 가갔다.
265.그의 몸은 촉촉히 젓었고
266. 그는 그의 머리 장식을 새롭게 고쳤다.
옷이 다시 한번 경계의 표시가 된다. 길가메쉬가 처음단계에서 두번째 단계로 진입시, 사자의 가죽을 입은것처럼, 그가 다시 우룩시로 돌아가 그 문명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가죽옷을 벗고 버린 후, 왕복을 입는다. 그가 다시 우르샤나비와 함께 강을 건너면서, 세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豚목욕하는 일蘭µ 경계의 표시이다. 두번째 단계에서 그는 더러웠고 엉망이었다. 그는 이제 목욕을 함으로 문명으로 다시 돌아가려한다.
마지막으로 우룩으로 돌아온 자는 길가메쉬 혼자가 아니었다. 우룩시로 부터의 여행은 혼자였지만, 돌아올때는 길가메쉬와 우르-샤바니가 같이 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11 토판
322.길가메쉬가 우르-샤나비에게 말했다:
323.일어나라, 우르-샤나비여! 우룩의 성벽 위에서 왔다갔다 하여보라!
324.주춧돌을 조사해 보고, 벽돌을 살펴 보라!
325.그 벽돌들이 불에서 구어진 것들이 아니냐!
326.7명의 현인들이 기초를 놓은 것이 아니냐!
VI. 나가는 글
전통적으로 제 12 토판이 전체 토판과 연결성이 문제시되어왔다. 이 토판은 지금은 알려지지 않은 수메르 판폰을 아카드어로 그대로 베낀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제 12 토판은 세번째 단계로 진입한 길가메쉬의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신-레케-우닌니의전체 구조에 중요한 결론 부분일수도 있다. 여기에서는 가족과 자손들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 구마사제 신-레케-우닌니의 정상적인 성인의 이상적인 삶을 묘사한것이다. 특히 여기서 엔키두는 길가메쉬에게 지하세계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이 정보는 길가메쉬가 왕으로서 또한 지하세계의 재판관으로서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간접적으로 우리는 신-레케-우닌니가 묘사한 남자의 이상적인 삶을 옅볼수 있다. 그것은 소년기나 노년기가 아닌 이 두 기간의 중간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예술에서도 왕들은 어리거나 늙게 묘사된적이 없다.
SV는 이전의 왕조 비문의 주제였던 전쟁과 정복, 그리고 군사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것이다. SV에서는 OV의 싸움 장면에 간소화되었다. 기원전 1000년부터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대부분이 전쟁신에 관한것인데, 신-레케-우닌니는 이미 기원전 12세기에 오랜 전통인 군사적 영웅에 대한 반론을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위대한 전설적인 왕인 길가메쉬를 통하여 성숙함과 지혜의 왕을 찬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