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도집경_보시_18. 자기 목숨으로 무리를 구한 사슴의 왕 이야기
예전에 보살의 몸이 사슴의 왕이 되었는데,
그 몸이 키가 크고 컸으며, 몸에 털이 오색이었으며, 굽과 뿔이 기묘하고 아름다워 뭇 사슴이 복종하니 수천의 무리가 되었다.
국왕이 사냥을 나가니, 뭇 사슴이 분산하여 바위에서 떨어지고 구렁에 빠지며, 나무에 부딪치고 가시에 찔리며, 부러지고 깨어지고 죽고 상하고 하며 죽은 것이 적지 않았다.
사슴의 왕이 보고 목메어 말하였다.
“내가 무리의 장(長)이 되어 가지고, 의당 밝게 생각하여 땅을 택하여서 놀아야 했거늘, 다만 좋은 풀만을 위하여서 여기에 머뭇거려 여러 어린 것들을 죽게 하였으니, 죄는 내게 있다.”
그리고는 곧바로 스스로 나라에 들어가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보고 말하였다.
“우리 임금님이 지극히 어지신 신 덕이 있으셔서 신록(神鹿)이 조회하러 온 것이다.”
곧 나라의 상서로 여겨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드디어 정전 앞에 이르러서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보잘것없는 축생이 삶을 탐하여서 나라의 지경에 목숨을 의탁하였다가, 졸지에 사냥꾼을 만나 벌레 같은 것들이 달아나다가, 혹 살아도 서로 잃어버리고, 혹은 주검이 낭자(狼藉)합니다.
하늘 같은 어지심으로 만물을 사랑하시는데, 실로 가련한 일이옵니다.
원컨대 스스로 서로 골라서 날마다 태관(太官)에게 바치겠사오니, 그 수를 알려 주옵소서. 감히 임금님을 속이지 않겠습니다.”
왕이 매우 기특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태관이 쓰는 것은 하루 하나에 불과한 것인데, 너희들의 사상(死傷)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만약 실지로 그렇다면 내가 맹세코 사냥을 아니하리라.”
사슴의 왕이 돌아와서 여러 사슴에게 이 뜻을 말하고 그 화와 복을 설명하니, 뭇 사슴들이 엎드려서 듣고 스스로 서로 차례를 매겨 먼저 갈 자를 정하였다.
매양 죽음에 나아감을 당하여 그 왕에게 하직하러 가면,
왕이 울면서 회유(誨諭)하였다.
“무릇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다 죽으니, 누가 그것을 면할 수 있으랴.
길을 갈 때에 부처님을 생각하며 어지신 가르침을 지켜서, 인자한 마음으로 저 사람의 왕을 향하여서, 삼가 원망함이 없이 하라.”
날마다 이와 같이 하였는데, 그 가운데 마땅히 가야 할 사슴이 잉태하여 몸이 무거운 것이 있어서 애원하였다.
“죽음을 감히 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산하도록만 기다려 주십시오”
다시 그 다음을 취하여 대신하려 하였다.
그 다음 차례가 머리를 조아리고 울면서 말하였다.
“마땅히 죽음에 나아가야 할 일이오나, 아직 하루 낮 하루 밤의 목숨이 있사오니, 때가 이르러서 죽는 것이라면 한스럽지 않겠습니다.”
사슴 왕이 차마 그 생명을 죽게 할 수 없어서, 다음날 무리 속에서 빠져나와 자신이 태관에게로 갔다.
요리사가 사슴 왕을 알아보고 곧 위에 알리니, 왕이 그 까닭을 물으매 위와 같은 사실을 대답하였다.
왕이 창연(愴然)히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어찌 짐승으로서 천지의 어짊을 품어 몸을 죽여서 무리를 건지는 옛 사람의 넓은 자비의 행을 밟는단 말이냐.
내가 사람의 임금이 되어 가지고 날마다 중생의 목숨을 죽여서 내 몸을 살찌게 하였으니, 나는 흉학(兇虐)함을 좋아하였고 승냥이와 이리의 짓을 숭상하였구나.
짐승인데도 저러한 어진 일을 하여 하늘을 받드는 높은 덕이 있구나.”
왕이 사슴을 제 처소로 돌려보내고, 온 나라에 칙명을 내렸다.
“만약 사슴을 침해하는 자가 있으면, 사람을 침해한 것과 같이 벌하리라.”
이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 왕 및 여러 관료들이 교화를 따르고 백성들이 인(仁)을 지켜 죽이지 않으니, 윤택이 초목에까지 미치고 나라가 드디어 태평하였다.
보살이 세세(世世)에 목숨을 위태롭게 하여 중생을 건지니, 공은 이루어지고 덕이 높아져서 드디어 높은 어른[尊雄]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사슴의 왕은 나였고, 국왕은 사리불이었느니라.”
보살은 자비로운 은혜로 저 언덕에 이르렀으니, 보시를 행함이 이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