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한자이야기(12)
김종환(金鍾煥)
학생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습니까? 그냥 알고 만나는 친구가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친구가 몇 명이나 됩니까? 여러분은 순수하기에 같은 동네나 같은 반에서 만나는 학생은 모두 친구로 생각하기에 대부분은 많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만나 얼굴만 보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그냥 아는 학생일 것입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란 고사성어에 나오는 관중(管仲)과 포숙(鮑叔 또는 鮑叔牙라고 하나, 다음에서는 鮑叔으로 함)의 사귐은 27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친구 사이의 우정이 정말 좋았음을 말할 때 사용하는 고사성어(故事成語)입니다. 이 고사성어는 관중과 포숙의 진정한 우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100년 전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위대한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이 <사기열전(史記列傳)>에 실으면서, 친구간의 진정한 우정을 이야기할 때 많이 사용해 왔습니다.
친구간에 우정을 주는 것과 받는 것을 넓게 본다면, 관포지교는 친구간의 우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관포지교(管鮑之交)는 친구 간, 즉 친구사이의 우정이라기보다는 ‘포숙의 일방적인 관중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관포지교(管 성관, 대롱관 / 鮑 성포, 말린고기포 / 之 어조사지 / 交 사귈교)
대롱관, 피리관管으로 읽히는 管자는 사람의 姓에 사용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성管’이라 새기면 됩니다. 管자의 윗부분은 대죽竹자입니다.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모양을 대나무 두 개만 가지고 그린 글자입니다. 그 밑의 한자 벼슬이름관官자는 관청관으로도 사용됩니다. 관청관官자는 집면宀자 밑에 글자가 있으나, 컴퓨터가 지원하지 않는 한자입니다. 그러나 그 뜻은 흙을 높이 쌓아놓았다는 뜻으로 흙무더기퇴堆와 뜻이 같습니다.
저린고기포鮑로 읽히는 鮑자도 사람의 姓에 사용하기에 성鮑라고 하면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두 가지의 훈과 음을 같이 알아두면 더욱 좋습니다.
어조사지之에 대해서는 새옹지마(塞翁之馬)에서 설명한 것을 기억하겠지요? 여기서는 ‘어조사 지’로 ‘~의 지’라는 뜻입니다.
사귈교交자는 위의 부분은 여섯륙六자입니다. 여섯륙(六)은 전에도 설명했지만 사람의 뜻입니다. 사람이 땅위에 서 있는 한자가 바로 설립立자가 됩니다. 밑에 있는 벨예乂자는 풀을 베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서 있는 사람이 다리를 서로 교차시킨 모습의 한자입니다. 그래서 두 발을 서로 교차시킨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두 발이 서로 사귄다고 생각했기에 사귈교交라고 합니다.
2000여 년 동안 ‘관포지교(管鮑之交)’의 풀이를 “관중과 포숙의 사귐이란 뜻으로, 시세(時勢)를 떠나 서로 친구를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일컫는 말”로 회자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管鮑之交란 포숙이 관중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일방적으로 끝까지 친구 관중을 이해하며 돕는 무한한 사랑이자 우정’인 것입니다.
管鮑之交의 故事成語를 이해하기 위해서 학생여러분에게 다음의 질문을 하겠습니다. 물론 관계되는 이야기를 두루 알면 좋겠으나, 그것은 여러분이 대학생이 되면 깊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제외하고, 관중과 포숙과 관계되는 일 가운데 학생여러분이 쉽게 이해하고 답할 수 있는 세 가지만 질문하니 여러분의 답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학생 여러분은 이런 친구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1)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을 더 많이 가져가는 친구
2) 공무원을 하면서 무능하다고 여러 번이나 퇴출을 당한 친구
3) 전쟁터에 나가서 3번이나 도망을 한 친구
위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했습니까?
포숙은 어려서부터 관중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며 베풀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포숙은 관중을 이해하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까지도 감싸주며 모든 것을 양보합니다. 그러나 관중이 포숙을 위해서 한 일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관포지교란 고사성어는 지금까지 그 뜻이 잘못 전해진 것입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管鮑之交란 포숙이 관중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용서하고, 양보한 일방적인 친구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管鮑之交란 관중이란 친구의 능력을 알아 본 포숙의 무한하며 헌신적인 사랑과 우정’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鮑叔의 일방적인 우정과 관중사랑이 있었기에, 管仲은 제(齊)나라의 재상(宰相) 즉 현재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고, 관중은 제(齊)나라 임금인 환공(桓公)을 당시 중국의 제후국 가운데 가장 강력한 임금으로 만들었습니다. 포숙이 없었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관중이 먼저 죽으면서,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하면서 언제나 나는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 나는 몇 번이나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래도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이 안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3) 싸움터에서 몇 번 도망쳐 온 적도 있었으나,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라고 변호한 것이다. 4) 공자 규가 후계자 싸움에서 패하여, 동료 소홀은 죽고 나는 치욕을 당했지만, 포숙은 나를 염치없다고 비웃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기보다 공명을 천하에 알리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을 鮑叔이다."
선생님이 앞에서 학생 여러분에게 물은 3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떻습니까? 학생마다 다르겠지요? 그러나 위의 3번까지 관중의 이야기를 읽으면, 관포지교(管鮑之交)란 고사성어가 관중과 포숙 사이의 서로 주고받는 우정이기보다는 포숙의 관중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우정이란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들지요?
학생 여러분은 서로를 위해주는 친구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정은 주고받는 것인지, 아닌지는 선생님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우정도 주고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친구에게 보내는 정이 있어야 친구가 보내오는 우정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친구에게 우정을 받기보다 친구에게 우정을 먼저주면 좋을 것입니다. 우정을 생각했다면 먼저 주고도 받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친구간의 마음가짐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제 이해가 됩니까?
선생님이 젊은 날에 쓴 ‘管鮑之交’란 제목의 詩입니다.
관포지교(管鮑之交)
어릴 때는, 내가 만나는
내 또래의 아이들은 모두 내 친구인 줄 알았다.
부모님이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시면
내가 아는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말씀드렸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나이가 더욱더 들면서부터는
누가 내 진정한 친구인지도
내가 누구의 진정한 친구인지도 말할지 못하는
치매환자가 되었다...
무서운 치매의 원인은,
내가 친구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학생 여러분은 이제부터 친구를 잘 사귀기 바랍니다. 좋은 친구를 잘 사귀는 비결은 먼저 자신이 사귀고자 하는 친구의 좋은 친구가 먼저 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가만히 있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포숙같이 마음이 넓은 친구가 되는 것이 제일 좋겠지요? 아니면 鮑叔같은 친구를 사귀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나 鮑叔같은 친구를 만나기란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선생님은 관포지교(管鮑之交)란 고사성어를 소개하면서, 관중은 참으로 친구를 잘 둔 행복한 사람이었고, 포숙은 정말 친구의 잠재능력을 알아본 마음까지도 넓은 분이기에 자신은 물론 자자손손 행복을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포숙의 자손들은 10대까지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선생님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몇 명일까? 또 선생님을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친구는 과연 몇 명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학생여러분에게 답을 할 수 없지만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작년부터 친구 이상으로 제가 존경하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그 분은 아마 포숙과 같은 분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보다 몇 살 많지만, 그분은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며,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시며, 나보다 더 나를 격려하시며, 나보다 더 나의 발전을 위하여 지도하시며 인도하십니다. 다음에 기회를 만들의 그분이 어떤 분인지 소개하겠습니다.
다음 호에는 타산지석(他山之石)과 연목구어(緣木求魚)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 있거나,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주기 바랍니다. (010-3337-3926) 선생님은 여러분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