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정신을 가진 의원들은 대리인인가? 대표자인가? 의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한국의 정치에서 의원들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은 지극히 부족하였다. 특히 일반 국민 사이에서 의원들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의 부재는 의원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의 부여와 관련이 된다. 지금 우린 대대적인 지방 선거를 앞둔 시점에 서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린 민주주의를 지키고 보수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의원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이 필요하다. 올바른 보수의 입장에서 의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과 함께 올바른 의원으로서의 가치관을 지니지 못한 출마자를 배제하고 올바른 의원으로서의 가치관을 지닌 의원을 선출함으로 보수의 정신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보수의 정신을 지키는 것은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명한 보수주의 창시자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는 ‘선출되는 의원들은 대리인이 아니라 대표자여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리인과 대표자는 다르기 때문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1774년 당시 영국의 제2의 대도시이자 순수한 개방 경선을 바라는 개방 선거구인 브리스톨(Bristol)을 대표하는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 의석을 6년 동안이나 지켰다. 그러나 선거구민들의 연속적인 신임을 받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 뒤의 의원 생활은 로킹엄 경의 독점 선거구인 몰튼(Malton)을 대표하는 의원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가 의원의 역할에 관한 유명한 성명을 발표한 것은 브리스톨(Bristol)에서였다. 그는 비록 브리스톨(Bristol)에서 계속 신임을 받지 못했지만, 의원의 역할에 대한 철학만큼은 충실하게 지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의원의 역할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와 철학의 발전은 뒷날 그를 영국 보수주의 나아가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빛나는 보수주의 정신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데 기여하였다. 비록 실패하였더라도 시류(時流)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철학에 대한 변함없는 성찰이 가져다 준 결과였다. 이러한 버크의 철학과 활동에 대하여 지금 우린 한번 성찰해 보아야 한다. 지금 출마한 의원들 상당수는 철학과 가치관, 민주주의와 국가의 발전, 국민의 미래보다는 당장의 당선을 위하여 국민의 이해관계에 편승하는 것을 무수히 본다. 그래서 온갖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하고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편승하여 국민을 갈라놓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의원으로서의 철학과 역할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선거에서 지켜야 할 절제와 규칙보다는 당선을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있고 최소한의 예의까지 저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행위를 하면서 자기편을 끌어모으기에 정신을 판다. 또 어떤 자는 무조건 자기의 이름만 알리면 된다는 식으로 한계를 벗어나는 홍보전에 뛰어든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그러한 사람들은 보수를 표방하나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며 결국 당선만을 위한 이기심으로 무장된 사이비 보수에 불과하다. 특히 그런 사람들이 활기 있게 전면에 나서는 것은 유권자들이 제대로 된 정치적 담론과 보수의 가치관보다는 표피적인 이해에 편승하도록 부채질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올바른 보수가 아닌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사이비 보수가 보수를 표방하고 당선되면 그는 보수의 정신이 지향하는 정치 활동보다는 이기주의와 정파에 편승한 정치 활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보수의 정신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것은 당사자는 물론 국민과 해당 정당과 정치그룹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비단 보수만 아니라 진보에서도 해당된다. 다시 보수의 정신을 지향하는 의원들은 ‘대리인이 아니라 대표자여야 한다’는 버크의 담론으로 돌아가 보자. 대리인과 대표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첫째는 책임감에 있다. 대리인은 자기가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대리하여 수행하는 사람일 뿐이다. 대리인은 위임자의 철학과 사상, 이익에만 충실할 뿐이다. 그런데 그 위임자인 국민의 철학과 사상, 이익에 충실하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다. 하지만 대리인은 대리의 임무를 수행하고 그 수행의 대가만 받으면 되는 철학과 사상이 부재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철학과 소신보다는 이해관계에 집중한다. 따라서 대리인으로서의 정치인, 대리인으로서의 의원들은 의회를 이해관계의 전투장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며 이익을 위해 국민을 저버릴 수 있다. 그러나 대표자는 자기 철학과 소신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결과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들은 당리당략이나 이해관계보다는 헌법적 가치와 법률을 존중하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더 걱정한다. 그것은 당장의 이해관계나 득표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다. 둘째, 대표자로서의 보수의 정신을 가진 의원은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존중하며 특히 절제와 예의를 존중한다. 따라서 이익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한다. 공동체와 공동조직의 규칙과 예의를 존중하며 문제가 있으면 혁명적 방법이 아닌 담론을 통한 개선의 방식을 택한다. 이 또한 대표자로서의 강한 책임감에 기인한다. 따라서 참된 보수의 정신을 가진 입후보자는 정직하여야 하며 규칙과 예의를 존중하는 자기 절제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기 위하여 공격성을 배제하는 합리적 이성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규칙과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보수를 표방하고 있으나 그는 분명 진짜 보수가 아닌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한국 정치에서 대표자가 아닌 대리인으로서의 의원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에 개탄한다. 그들은 국회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제대로 된 입법 활동보다는 당리당략과 이해관계에 편승하여 폭력배들이 하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뒷날 그 법안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는 담론과 관심이 없다. 당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 철학과 소신보다는 힘 있는 정치인과 정치 세력에 편승하여 정치적 안위만 구한다. 한국의 정치에서 이러한 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넘쳐난다. 그것은 국회의 혼란을 지속시키는 한 원인이다. 그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유는 그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뿐인데 국민 또한 그런 정치 그룹에 편승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국민이 자발적인 정치적 담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치적 담론의 부족으로 인한 이득은 순전히 정치적 패거리들이 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의원들은 이기적인 자기들을 지키기 위하여 국민에게 그 이기적인 의원들을 소환할 틈을 주지 않는다. 우린 지방 선거에서 보수의 승리를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보수를 표방한 대리인으로서의 정치인이 모두 당선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 올바른 보수의 정신을 가진 책임 있고, 헌법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대표자를 뽑는 일이다. 보수를 표방하지만 도덕성이 결여되었거나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 질서와 규칙을 파괴하는 사람, 헌법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에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은 배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올바른 보수의 정신을 영원히 가꾸고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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