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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68회)
개성 사람들의 두문동 정신. 선죽교 참배(상)
김삿갓은 진봉산으로 철쭉꽃을 찾아 떠났다.
과연, 진봉산 철쭉은
변계량이 읊은 시 처럼 천하에 절경이었다.
제법 험한 산 전체에 철쭉꽃이 얼마나 많이 피어 있는지 ,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산 전체가 훨훨 불타오르는 듯했는데
가까이 와 볼수록 더욱 놀라왔다.
철쭉꽃은 진달래꽃과 비슷하면서도 취향은 크게 달랐다.
진달래 꽃의 빛깔은 청초한 연보랏빛이어서
순결 무구한 숫처녀를 연상하게 하지만 ,
철쭉꽃은 꽃송이 자체도 풍만하려니와
빛깔도 농염하기 짝이 없어
진달래 꽃과 견주어 보건데,
한창 무르익은 삼십대 여성의 육체가 연상된다.
진봉산에 피어 있는 꽃은 오직 진달래와 철쭉 뿐이었다.
진달래 꽃이 한물 가자,
철쭉꽃이 때를 만난 듯이 황홀하게 피어 있었다.
김삿갓은 마치 옷을 벗고 잠자리에 누워 있는
여체를 어루만지듯 철쭉 꽃송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보았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시 한 수가 읊조려졌다.
[지난 밤 봄바람이 동방에 불어 들어
비단 이부자리 곱게 깔아 놓았소
이 꽃이 피는 곳에 새들도 울고 있어
그윽한 그 자태가 더욱 애를 끊노니]
진봉산 철쭉에 넋이 나간 김삿갓,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한 발길을 옮기다 보니
개성의 진산인 송악산이 멀리 바라보였다.
그러자 김삿갓은
'5백년 옛 도읍지를 이제야 보게 되었구나!'하며
감개가 무량해진다.
송악산 기슭에는 수목이 무성하였다.
저물어 가는 산길을 걸어가며 송악산 높은 봉우리를 올려보다
문득 고려조 충신이었던 야은 길재吉再의 옛 시조가 머리에 떠올랐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 길재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이성계는 고려를 망하게 하고
조선왕조를 창업하자 백성의 추앙을 받던
정신적 지도자인 세 사람을 회유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고려조의 지조를 지켜왔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쪽 같은 절개는
지금도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태조의 다섯째 아들 정안군
(후일 조선조 3대 태종)이 주석酒席에서
포은 정몽주의 심경을 아래와 같은 시詩로 떠봤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다.]
그러자 정몽주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안군의 교묘한 회유를
일도 양단一刀 兩斷의 절개로 응수한 것이었다.
이러한 대쪽같은 정몽주의 일편 단심의 표현은
야망을 꿈꾸고 있는 정안군과 그의 추종세력에게는
전혀 받아 들일수 없는 것이었다.
주석이 파한 뒤, 포은 정몽주는 죽음을 예감하고
말 안장에 거꾸로 앉아 집으로 돌아갔다 한다.
그리고 선죽교에 이르러 마주친
조영규趙英珪의 철퇴에 맞아 숨을 거두었으니,
세상에 그런 충신이 어디 있으랴 생각되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어원은 개성 사람들, 아니 고려조에 충성해 오던
문신文臣 72명과 무신武臣 48명이
이성계가 고려를 거꾸러뜨리고
새나라 인 조선 왕조를 창건하자,
그날로 만수산 두문동 골짜기로 들어가
풀뿌리를 캐어 먹으면서도
새나라(조선)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성계는 그들의 항거에 크게 당황하여
온갖 회유책을 써보았지만
그들 누구도 새로운 왕 이성계에게 회유되지 않았다.
이에 크게 진노한 이성계는
만수산 사방에 불을 질러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불을 질러 버리면
불길에 견디지 못하고 두문동에서 뛰쳐 나오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문동에 숨어 든 고려조의 망국 지사들은
만수산 전체가 큰 불덩이가 되었음에도
불에 쫒겨 나오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杜門不出)
이 때문에 개성에는
두문동 정신 이라는 새로운 말이 생겼고
이런 정신적 영향으로 개성 사람들은
조선 왕조에서 벼슬을 사는 사람들은 없었다.
따라서 조선왕조에서는 인재人材를 등용할 때
서북西北사람을 배척하게 되는 전통이 만들어지게 됐다.
이와 함께 개성 사람들은 호구지책으로
장삿길에 나서게 되었으니
흔히 "개성상인"이라고 하면
이익을 취하는데 영악함이 남달라서
지금까지도 개성 사람들을 흔히, "깍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익에 영악한 개성 사람들이지만
신용이 알뜰하고 셈이 바르기론 개성 상인을 따를 사람이 없는 것이다.
죽음의 도시와 다름없는 개성의 거리를 거닐다 보니
김삿갓은 문득 정몽주가 살해된
선죽교善竹橋를 찾아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죽교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보세요 말씀 좀 묻겠습니다.
선죽교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김삿갓이 지나가는 선비를 붙잡고 물어 보니,
사십쯤 되어 보이는 선비는 얼굴에 근엄한 빚을 띄며,
"포은 선생님이 운명하신 선죽교를 가시려고요?
이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라서
말만 듣고 찾으시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내가 앞장 설 터이니 따라 오시오."하며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길잡이로 나서주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이렇듯 외지에서 온
선죽교 참배객을 앞장서 인도하는 개성 사람들을 보건데
이곳 사람들이 정몽주 선생을 얼마나 흠모하고
사랑하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윽고 선죽교에 닿자마자 선비는
다리 앞에서 머리를 숙여 잠시 묵념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한다.
"포은 선생께서는 이 다리 위에서
이방원의 하수인 조영규라는 놈의 철퇴에 맞아 무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포은 선생께서 흘리신 성스러운 피는
이 다리 돌 속에 깊숙이 물들어
3백년이 지난 지금도 돌이 이렇게 붉습니다.
보십시요,
이게 포은 선생께서 흘리신 핏자국 입니다."
선비의 말을 듣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선죽교 돌에는
군데군데 핏자국이 남아 있는 듯이 보였다.
김삿갓은 붉은 핏자국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무심한 돌도 충신의 피를 알아 보는 모양 입니다.
그러나 이 다리에는
충신을 기리는 비각碑閣 하나 없는 건 왜입니까 ?"
그러자 선비는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나라에서는 포은 선생의 지조 굳은 충성심이 두려워
간신히 비석 하나만이 있을 뿐
비각조차 세우지 못하게 하였기에
누가 목숨을 걸고 비각을 세우려고 하겠소이까?"
선비는 선죽교에 비각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이렇게 말을이었다.
"조선 왕조가 되고 난 뒤에는
포은 선생님의 충성심을 누구도 찬양하지 못한답니다.
포은 선생님의 충성심을 모르는게 아니라
섣불리 찬양했다가는 목숨이 달아날까 무섭기 때문이지요.
내가 알기로는
석희박 이라는 무명시인의 시가 한 수 있을 뿐입니다."
[내 생각 : 꼭 오늘의 세태를 보는 듯한 생각에 가슴저며지고 이 역천혼돈의 시대, 그 한가운데를 살아 가면서도 권력자들의 눈치나 보며 아닥하고 죽은 듯 살아가고 있는 비겁한 지식인들이 떠올려지는 대목 ]
"그 시는 어떤 시옵니까 ? "
그러자 선비는 아래와 같은 시를 한 수 읊어 보였다.
[산천은 옛 그대로되 거리는 비어 있고
저녁놀 잠긴 곳에 물소리만 처량ㅎ구나
홀로히 말 세우고 옛 자취를 찾아 보니
한 조각 비석에는 "정충문"만 남아 있네]
망국의 설움이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처량한 시였다.
방랑시인 김삿갓 (69회)
선죽교 참배와 앉힘 술집(하)
김삿갓은 저물어 가는 선죽교 위에서
선비가 읊는 시를 듣고 문득 선비에게 말했다.
"많은 이들이 이곳 선죽교를 다녀 갔을 터인데
알려진 시가 고작 한 편밖에 없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렇다면 제가 즉흥시를 한 수 읊어 볼까요 ? "
선비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만약 한 수 읊어 주신다면,
저는 두고두고 마음속에 아로새겨 두겠습니다."
김삿갓은 잠시 시상에 잠겨 있다가
시를 한 수 읊었다.
고국강산 입마수 故國江山 立馬愁
옛 강산에 말 멈추니 시름이 새로운데
반천왕업 일공구 半千王業 一空邱
반천 년 왕업이 빈터만 남았구나
연생폐장 한아석 煙生廢墻 寒鴉夕
연기 어린 담장가에 까마귀 슬피 울고
엽락황대 백안추 葉落荒臺 白雁秋
낙엽지는 폐허에는 기러기만 날아가네.
석구년심 난전설 石狗年深 難轉舌
돌로 된 짐승은 오래되어 말이 없고
동대치멸 단수두 銅臺稚滅 但垂頭
구릿대는 쓰러져 머리를 숙였구나
주관별유 상심처 周觀別有 傷心處
둘러보아 유난히 가슴 아픈 곳은
선죽교천 연불유 善竹橋川 咽不流
선죽교 개울물이 흐름없이 흐느끼네.
선비는 김삿갓의 시를 듣고 나더니
김삿갓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감격 어린 어조로 말을 한다.
"선생! 저는 선생께서
시에 이처럼 능하신 분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선생 같은 어른을 만나게 된 것은 다시없는 영광입니다."
"무슨 말씀을 ..
오늘, 나를 위해 수고를 마다 않고 이곳까지 인도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올시다.
저는 하루에 한번씩 이곳 선죽교를 찾는 것을
일과로 삼는 사람입니다."
선비는 이같이 말을하며 저물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선생과 같은 어른과 그냥 헤어지기는 너무나 섭섭합니다.
마침 날도 저물어 오고 하니
읍내로 들어가 "앉힘술집"에서
술이라도 한잔 나누시면 어떻겠습니까?"하며,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술이라면 나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앉힘술집'이란 어떤 술집입니까?"
김삿갓은 술집 이름이
처음들어 보는 터라 선비에게 물었다.
선비는 김삿갓과 함께 읍내로 걸으며 말한다.
"조선 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 가자
개성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큰 변화가 왔습니다.
벼슬길은 아예 외면을 하게되었고
모두가 장삿길로 나서게 된 것도 그런 변화의 하나이지만
앉힘 술집이라는 명물 술집이 생겨나게 된 것도
그때부터의 일이었지요."
"나라가 바뀌게 되면 백성들의 생활에 변화가 따르게 마련이겠지요.
그러나 개성에만 있다는
앉힘 술집은 보통 술집과 어떻게 다른지 여간 궁굼하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개성 사람들이 장사에 전념하다 보니
중국과의 거래가 빈번해져서
남자들이 집을 오랫동안 비우게 되는 때가 많아졌습니다.
앉힘 술집이란 남편이 장사차 집을 비웠을때,
가정 부인이 부업삼아 간판을 내걸지 않고
알음 알음으로 알고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술을 파는
일종의 내밀 술집이지요.
그러기에 앉힘 술집에서는
술과 안주값을 얼마 달라고 직접 말하지 않아요.
얼마를 먹었든
손님이 알아서 주는 대로 받는 것이 특색이지요.
게다가 앉힘 술집은 술맛도
빗은 아낙의 솜씨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맛이 매우 좋고요,
안주도 한번 다녀간 손님의 취향에 맞춰 주어
기막히게 좋습니다."
김삿갓은 그렇지 않아도 출출해 오던 판인데
안주가 기막히단 소리를 듣자
입안에 침샘이 샘물처럼 솟아 나왔다.
"술값을 주는 대로 받는다고 하니
세상에 그처럼 인심 좋은 술집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아까부터 배가 출출하던 판이니
어서 가십시다."
김삿갓은 선비를 재촉하여 술집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있어 이렇게 물어 보았다.
"술값을 손님이 알아서 주는 대로 받게되면,
필시 얌체같은 손님이 없지 않을 것이고,
그런 경우는 술집의 손해가 클텐데,
그래가지고서야 장사가 되겠습니까?"
"개성 사람들은
그처럼 경우에 벗어나는 짓을 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무슨 일에 있어서나 경우 바르기로는
개성 사람들을 당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개성 사람들이라고 모두 성인 군자는 아닐 것이고..
개중에 먹고 마신 술값을 적게 내미는 이도 없지는 않을것 아닙니까?"
김삿갓은 짐짓 개성 사람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선비의 의중을 떠보았다.
그러자 선비는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데
"그런 이를 만나게 되면
주인은 적게 내민 술값이라도 아무 말 않고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한 사람이 다시 오게 되면
그때는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하고
슬며시 따돌려 버립니다."
선비는 그렇게 말을 하다가
어느 골목 어귀에서 발을 멈추고,
"우리가 지금 찾아가는 집은 바로 저기 보이는 집입니다."
김삿갓이 선비가 가르키는 집을 보니,
여늬 여염집과 다름 없는 집이었다.
그 집앞에 이르러 선비가 대문고리를 잡아 흔들며
안을 향하여 작은 소리로 주인을 불러댓다.
"아주머니 계시오? 나, 교동 생원이오.
오늘은 손님 한 분과 같이 왔소이다."하고 말하자,
주인 아낙네는 목소리만으로도 누가 왔는지 알아 보는 듯
반갑게 나와 대문을 열어주며,
"어서 오세요. 안방으로 드시죠." 하고 정중히 맞아들인다.
선비와 일행인 김삿갓을 안방으로 인도하는 것을 보니,
선비는 이집에선 상객上客으로 대접 받는 것 같았다.
35, 6세로 보이는 주인 아낙네는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단정하게 꽂고 있는 품이
어디로 보아도 현모 양처형의 가정 부인이었다.
"매우 깔끔한 인상의 저 여인이 이 집 안주인 입니까?"
"그렇습니다. 살림살이도 물샐틈 없이 잘하지만
음식솜씨가 좋기로도 소문난 부인이지요."
김삿갓 , 자리에 앉으며 문득 생각해 보니
선죽교를 찾다 만난 이 선비와 아직 통성명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김삿갓이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선비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고보니, 아직 인사를 못드렸습니다.
저는 구름처럼 떠돌아 다니는 김삿갓이라고 합니다."하고
정식으로 인사를 청했다.
그러자 선비는 두 손을 설레설레 내저어 보이며 말한다.
"뜻에 맞는 사람끼리 술잔이나 나누다 헤어지면 그만이지,
구태여 통성명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교동골에 살고 있으니
교동 생원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교동 생원이라고 자칭한 선비는 끝내 본명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마침 그때 주인 아낙네가 주안상을 들여왔다.
그런데 커다란 소반위에 얹힌 것은,
보쌈 김치 두 보시기에 소주 한 주전자만 달랑 놓였을 뿐이었다.
김삿갓은 기가 막혔다.
"아니, 이게 바로 개성 명물인 '앉힘 술집'의 주안상이라는 겁니까?"
교동 생원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이것은,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기에 지루할 터이니,
기다리는 동안 입놀림을 하라는 전주상前酒床입니다.
진짜 요리는 조금 더 기다려야 나올 테니,
그동안에 심심파적으로 소주로 목이나 축입시다."
손님이 요리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어주려고
전주상을 내온다는 것은 처음 들어 보는 소리다.
그렇다면 손님에 대한 이곳 개성 술집의 배려는
명물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보쌈김치를 안주삼아 소주 몇 잔을 나누고 있노라니까,
그때부터 본격적인 술 안주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나온 안주는 쇠고기 수육과 돼지 편육이었다.
김삿갓은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많은 진수 성찬을 먹어 보았지만, 이날처럼 맛있는 쇠고기를 먹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삶은 고기는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앒게 저며져 있었고
크기 또한 적당해서 한 입에 먹기도 좋았지만,
입안에 넣으면 슬슬 녹아 버릴 만큼 기가막혔다."
"아니, 쇠고기를 어떻게 요리했기에
입 안에 넣기만 하면 슬슬 녹아 버리는 것입니까?"
김삿갓은 수육을 연방 집어 먹으며 칭찬을 하자
교동 생원이 대답한다.
"개성은 워낙 요리를 잘하기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요리를 잘하기로 이렇게 까지 잘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나는 요리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수육은 푹 삶은 쇠고기덩이를 두레속에 담아
우물 속에 넣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쓸 만큼 베어낸 뒤
다시 끓는 물에 중탕을 해가지고 종잇장처럼
고기결에 따라 솜씨있게 썰어 내온 것입니다."
"고기 맛이 이렇게 좋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하긴.. 정성을 그렇게 들였으니 고기 맛이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쇠고기 수육도 좋지만 제육 편육도 자셔 보세요.
제육은 워낙 보쌈 김치에 싸서 먹어야 제 맛이
나는 법입니다."
김삿갓 제육을 김치에 싸서 먹어보니,
그것 역시 형용하기 어려운 별미였다.
"개성 보쌈 김치는 그 맛이 최고입니다."
이렇게 술과 함께 맛있는 안주를 정신없이
먹먹고 있노라니
이번에는 가을에 부친 전유어 煎油魚 가
들어왔다.
상에는 먹다 남은 고기 안주를 거두어 내고
기름에 갓 튀긴 생선을 상위에 올려 놓았는데
생선을 한 입 베어 물면 입 속에서
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혀까지 목구멍으로
함께 넘어 가버릴 지경이었다.
이어서 이번에는 녹말에 부친 따뜻한 파전이
나오고, 잠시 뒤에는 일정한 크기로 깍은
날밤 生栗 이 나왔다.
음식의 맛도 맛이지만 만든 사람의 정성이
여간 알뜰할 수가 없었다.
술을 한바탕 마시고 나니
조금 전에 거두어 내간 수육에다
부침개까지 버무려 끓인 매운탕이 나오는데,
고기와 전유어로 끈끈해진 입 맛을
얼큰한 매운탕으로 개운하게 씻을 수 있도록
주인 아낙이 배려한 것인데
이 맛 또한 천하의 일미였다.
김삿갓은 술과 안주를 이 처럼 맛있게 먹어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교동 생원은 술을 마실 만큼 마시고 나더니
정색을 하며 김삿갓에게 말을 한다.
"이제 그만 일어 납시다.
,앉힘 술집,은 보통 술집과 달라서
술을 다 마셨거든 곧장 일어나는 법입니다."
"알겠습니다.
내 일생에 오늘 밤처럼 맛나는 술과 안주를
먹어 보기는 처음입니다."
김삿갓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교동 생원은
주인을 부른다.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와서 아주 잘 먹었소이다.
값은 모두 얼마죠?"
"처분대로 해 주십시요."
교동 생원이 이미 말한대로,
주인 아낙네는 자기 입으로 술값을 말하지 않았다.
교동 생원은 얼마간의 돈을 내밀며
주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돈을 넉넉히 드릴테니,
뒷날에 이 손님이 혼자 오시더라도
한번 더 대접해 주시오."
그러면서 김삿갓을 돌아보며 말한다.
"이 집 음식이 선생의 입 맛에 맞으시는 모양이라
미리 넉넉하게 돈을 맡겼으니,
혼자서라도 한번더 들려, 술과 안주를 드시기
바랍니다." 하는 게 아닌가?
김삿갓은 생생원의 배려에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윽고 거리로 나서니 밤은 깊어 가는데
거리에는 개미 새끼 한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김삿갓은 교동 생원과 작별을 하고
밤거리를 혼자 걸어가며..
(나에게 술을 사준 교동 생원이라는 사람은
도데체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일까?) 라는
의혹이 자꾸 들었다.
하루에 한 번씩 선죽교를 찾아가는 것을
일과를 삼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범상치 않은 사람이 확실할 것인데
그러나 더는 그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그야 어찌되었던,
이제는 잠자리를 구해야 할 판이었기에
김삿갓은 길가에 있는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계집아이가 나오더니
대문을 열어 볼 생각은 아니 하고
대문 안에서 누구냐고만 묻는다.
"나는 길을 가던 나그네로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지고 싶으니
주인 아저씨께 그렇게 여쭈어라."
그러자 계집아이는 대뜸..
"우리 집은 여인네만 사는 집이예요.
외간 남자를 들일 수 없으니 다른 집으로
가보세요."
그 한마디를 매정하게 내뱉고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허허...개성 인심 참 고약하다.
여인네만 사는 집이라면 남자 손님을 더욱 반갑게
맞아 들여야 옳은 일인데,
그 집 마누라는 음양의 이치도 모르는가 보구먼."
김삿갓은 혼잣말로 익살을 부려 보며
이번에는 커다란 기와집 대문을 두드려 보았다.
이번에도 계집아이가 나오더니..
대문안에서 누구냐고 묻더니 대뜸 말을 하는데,
"우리 집에는 손님을 재워 드릴 방이 없어요.
다른 집으로 가 보세요." 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한참을 걸어 가다가
이번에는 조그만 초가집 대문을 두드려 보았다.
그 집에서는 바깥 주인이 직접 나와
누구냐고 물어 보더니,
"우리 집에는 장작이 떨어져 방을 데워 드릴 수가
없으니 다른 집에 가보시오." 하며 엉뚱한
핑게를 대며 거절해 버리는 것이었다.
(거절하는 이유도 유만 부동이지,
뭣이? 장작이 떨어졌다고?
송송악산 기슭에 살면서 장작이 떨어졌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야?)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다고 재워주지 못하겠다는데
싸울 수도 없는 말이 아닌가?
김삿갛은 이곳 저곳, 잠 잘곳을 찾다가
어느 집 대문 앞에서 깜짝 놀랐다.
웬 송아지 만큼 큰 개 한 마리가 덤벼드는 바람에
몸을 피하다가 자칫 발을 헛디딜 뻔했다.
"이크, 웬 개새끼야?. ..."
둔탁한 쇠소리가 났다.
"쩔렁.. 웬 소리지? ..."
김삿갓이 매고 있던 봇짐을 풀어 보니,
그곳에는 꽤많은 엽전이 줄에 꽤여 있었다.
(이게 웬 돈이냐 ?....)
곰곰히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봇짐을
풀어 본 때는 지난 번 개풍에 들렸을 때 뿐이므로..
이 돈은 아마도 개풍 군수 강호동 사또가
전별금으로 몰래 넣어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허허.....
참 재미있는 세상이야."
김삿갓, 곤궁한 가운데 돈을 보니..
이제는 어엿한 주막에 들어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그네를 내쫓는 개성 인심에는
한 마디 측흥시가 없을 수 없었다.
읍호개성 하폐문 邑號開城 何閉門
읍호가 개성인데 대문마다 왜 걸어 닫았으며
산명송악 기무신 山名宋嶽 豈無薪
산 이름이 송악인데 장작이 없단 소리는 무슨 말인가
황혼축객 비인사 黃昏逐客 非人事
저녁 손님 내쫓는 인사가 세상에 이디 있나
예의동방 자촉진 禮儀東方 子燭秦
아이고야, 예절 바른 나라에서 그대들만은 상놈일세.
방랑시인 김삿갓 (70회)
곽 노인이 말한 "팔도의 특성"
개성을 떠난 김삿갓이
예성강禮成江 물줄기를 따라 이틀쯤 거슬러 올라가니
그때부터는 사람들의 말씨도 다르거니와 얼굴조차 다르게 보였다.
(여기가 어딜까 ? )
사람들의 사투리가 정겹게 들려와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어디인지 물었다.
"여기는 황해도 금천 땅이라오."
김삿갓은 이곳이 황해도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불현듯 복받쳐 오르는 어린 시절의 향수에 가슴이 젖어왔다.
김삿갓은 어린시절, 황해도 곡산谷山에서 7년을 살았었다.
그러니까 이곳 금천에서
2백 여리만 더 올라가면 곡산이 아니던가?
사투리가 정겹게 들린 이유가 이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황해도의 지세는
멸악 산맥이 황해도를 동,서로 갈라 놓고 있다.
서쪽은 바다가 가까워
연백 평야와 재령 평야 같은 들판이 많지만
곡산이나 신계 같은 곳은 서쪽으로는 멸악 산맥이 가로막고 있고,
북쪽에는 언진 산맥이 덮어 누르고 있는데다,
남쪽에서는 마식령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한낮에도 해를 구경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험학한 산악 지대다.
선천군수 겸 병마 절도사를 지낸
김삿갓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어이없이 항복하자,
김삿갓의 어머니 이씨는 어린 자식들을 살리려고
머슴이었던 김성수의 고향인 곡산으로 피신한 것도,
곡산이 그처럼 첩첩 산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김삿갓의 나이는 겨우 네 살이었다.
그러기에 영문도 모르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곡산으로 오게된 김삿갓은 천진 난만하게 뛰놀며 글만 읽었다.
그것은 이미 30년 전의 일이었지만
김삿갓의 기억 속에는 그 시절이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후에 김삿갓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면서
어머니를 따라 양주, 광주, 평창, 영월, 등지로 3년이 멀다 할 만큼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지금도 누가 "고향이 어디냐 ?" 하고 물어 본다면,
"내 고향은 황해도 곡산이라오."하고 대답하고 싶을 만큼
곡산에 대한 추억이 너무도 많았다.
물론 황해도에서는 곡산과 함께 보고 싶은 곳이 너무도 많았다.
해주海州와 구월산九月山도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이 이끄는 곳은 역시, 곡산이었다.
(그렇다 ! 이번 겨울에는 아무데도 가지 말고 곡산에서 보내기로 하자!)
생각만 하여도 가슴 벅찬 흥분이 일었다.
이렇게 황해도 금천으로 들어선 김삿갓은
첫날밤을 어느 서당에서 자게 되었다.
산골 훈장이라면 의례
입성이 꾀죄죄하고, 언동도 옹졸한 법이다.
그러나 "선풍재仙風齊"라는 그 서당의 훈장은
구렛나루가 허연데다가 풍채가 유난히 좋아서
마치 신선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풍채가 저렇게도 좋은 양반이 무슨 할 일이 없어,
이런 산중에서 훈장 노릇을 하고 있을까?)
이름이 곽호산 이라고 하는 훈장은
김삿갓과 수인사를 한 뒤, 묻는다.
"보아하니 귀공은 공부를 많이 하신 선비 같은데,
이런 산중에는 무슨일로 오셨소? "
"저는 워낙 역마성을 타고나서,
명산 대천으로 떠돌아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명산 대천으로 떠돌아 다니기를 좋아하신다니,
그거 참 좋은 팔자시구료.
말만 들어도 귀공의 팔자가 부럽소이다."
"팔자가 기박해서 거지처럼 떠돌아 다니는데,
뭐가 부럽다는 말씀입니까?"
"그나 저나 선생은 본시 이 고장 어른이 아니신 것 같은데,
어떤 사연이 계시기에 이런 산골에서 서당을 열고 계시옵니까?"하고
김삿갓이 물어 보았다.
그러자 곽호산 훈장이 "허허".. 웃으며 말을 하는데,
"나는 본시 한양 사람이라오.
내 조부께서 벼슬을 지내시다가 이리로 귀양을 오게 되셨지요.
나는 삼 십년 전에 조부님을 따라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산수가 하도 좋아 조부님이 세상을 뜨신 뒤에도
이곳에 그냥 눌러 살고 있다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심심 파적거리이구요."
그리고 이번에는 김삿갓에게 다시 묻는다.
"그래, 명산 대천을 두루 찾아 다니신다니,
각 도의 풍습과 인심은 어떠합디까 ? "
"아직 삼남 지방은 가보지 않아,
뭐라고 말씀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함경도와 강원도, 그리고 경기도는 이미 다녀 보았는데,
각 도마다 사투리도 달랐지만, 특히 사람들의 기질은 제각각 다른 것 같습니다."
"잘 보셨소이다.
귀공이 보기에는 함경도와 강원도,
그리고 경기도 사람들의 기질은 어떻게 달라 보이더이까?"
"글쎄올시다.
뭐라고 한마디로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함경도 사람들은 끈기가 있어 보였고,
강원도 사람들은 부처님 처럼 순박해 보였고,
경기도 사람들은 말은 잘하지만 미덥지가 않아 보였습니다."
"잘 보셨소이다.
그러기에 옛날 어른들은
팔도의 특색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아시오?"
김삿갓은
옛날 어른들이 팔도 사람들의 특징을
어떻게 말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훈장께 솔직하게 물어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저는 과문 (寡聞)한 탓으로
옛날 어른들이 팔도의 특색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모르옵니다.
선생은 저의 무식을 깨우쳐 주소서."
"귀공이 무식하다니, 무슨 말씀을...!"
곽 훈장은 김삿갓을 어떻게 보았는지,
깎듯이 존대를 해주면서,
"좋은 벗이 멀리서 오셨으니
우선 술이라도 한잔씩 나누면서 애기합시다."하며
사환 아이더러 안에 들어가 술상을 차려 내오라고 이른다.
이윽고 술상이 들어 오고
술잔을 기울여 가며 김삿갓이 다시 물었다.
"선생께서 알고 계시는
옛 어른들로부터 전해져오는
팔도 사람의 특색을 들려 주십시오."
"허허 .. 귀공은 지식욕이 대단하시구료.
그러면 내가 옛어른들이 이르는 팔도 사람들의 특색을
적어 보이지요."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써보이는 것이었다.
1. 京畿道는 거울 속에 비친 미인(鏡中美人)
2. 江原道는 바위 밑에 앉은 늙은 부처님(岩下老佛)
3. 咸鏡道는 흙탕밭 속에서 싸우는 개(泥田鬪狗)
4. 黃海道는 돌투성이 밭을 갈고 있는 소(石田耕牛)
5. 平安道는 숲속에서 달려 나온 사나운 호랑이(猛虎出林)
6. 忠淸道는 맑은 바람 부는 밤의 밝은 달(淸風明月)
7. 全羅道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버드나무(風前細柳)
8. 慶尙道는 첩첩 태산 속의 험준한 고갯마루(泰山峻嶺)
김삿갓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어느 어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비유가 모두 그럴 듯합니다.
저는 아직 다른 지방에는 가보지 못해 잘 모르겠습니다만
강원도를 암하노불이라 하였고 ,
함경도 기질을 이전투구에 비유한 것은 어쩐지 수긍이 갑니다.
경기도의 특색을 경중미인에 비유한 것도 그럴 듯하고요."
"하하하, 귀공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나 또한 남도 지방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고향이 제각기 다른
내 친구들을 두고 따져 본 일이 있는데,
모두들 그 비유가 옳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살고있는 지역에 따른 자연 환경의 영향으로 각 지방의 특색이 형성되는 모양 입니다."
"물론 그럴겁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니까요. 그러나 황해도를 석전경우라고 하는 것은 약간 어색한 것 같은데,
선생은 그 점을 어떻게 생각 하시옵니까?"
곽 노인은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보기에는 황해도 기질을 석전경우에 비유한 것도
옳은 표현인 것 같아요.
소란 놈은 다소 우둔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아첨을 하거나 군림을 하려는
동물이 아니거든요.
자기 일 밖에 모르는 소가
돌밭을 꾸준히 갈아 나가고 있다고 했으니,
그것이 어찌 황해도 사람들의 기질이 아니겠소이까?
나는 이래서 황해도 사람들을 좋아하는 거예요."
"황해도 사람들의 그런 기질이 마음에 드셔서
한양에 돌아가지 않으시고 이곳 황해도에 뿌리를 내리신 겁니까?"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요.
남에 일에 간섭하지 않고 자기 일에만 충실한 것이
황해도 사람들의 특색이 아니겠어요?"
곽노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귀공은 고향이 어디시지요?"하고 물어 본다.
"집이 강원도에 있으니까
제 고향은 암하노불에 해당하는 강원도 입니다.
그러나 저는 열 살이 넘을때 까지
황해도 곡산에서 자랐으니까,
황해도가 고향이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는 않을 것 입니다."
"그래요?
첫눈에 보아도 어쩐지 황해도 사람 같다 싶었다오.
그러면 이번에는 어렸을 때의 고향인 곡산을 찾아가시려오?"
"곡산을 일부러 찾아 나서는 것은 아니나
정처없이 다니다 보니 불현듯 곡산에
가고 싶었습니다."
"고산종승 타산호 故山終勝 他山好
아무리 좋은 산천도 고향산천만 못하다. 라고
어렸을 때 자란 고향이 그리우신 모양이구료.
고향이란 머릿속으로 그려볼 때는 아름답기
그지 없으나,
떠난지 오래 되었다면
막상 고향에 가더라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실망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지요.
가실 때 가시더라도 이왕 내 집에 오셨으니
며칠 묵으면서 이 근방 산수 구경이나 하시고
떠나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