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플롯
내용 스포 있음. 알고 봐도 재미 있지만 그래도 싫은 사람은 영화 보고 읽어 보시길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며 혼자 사는 '리'(케이시 애플렉)는 어느 날 형 '조'(카일 챈들러)가 심부전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맨체스터로 향한다. 하지만 결국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이 조카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으로 지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혼란에 빠진 '리'는 조카와 함께 보스턴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패트릭'은 떠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한편 전 부인 '랜디'(미셸 윌리엄스)에게서 연락이 오고, 잊었던 과거의 기억이 하나 둘 떠오르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줄거리)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영화는 모든 정보를 한번에 알려주지 않고 현재와 과거에서 느껴지는 간극을 중심으로 관객들이 호기심을 자아내도록 한다. 이 두개의 시간 축은 영화 러닝타임 상 대략 50분 즈음인 리가 조의 죽음 이후 조의 변호사를 통해 자신이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씬에서 한 번 모이면서 관객들이 계속 느꼈을 간극을 해소해 줌과 동시에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작중의 캐릭터에게는 문제상황)을 가지게 한다.
오프닝 장면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온 리, 조, 어린 패트릭이 낚시를 하는 과거 장면이다. 세 사람은 사이가 돈독해 보인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현재의 리가 나오는데 건물의 잡역부로 일하는 시퀀스가 나온다. 이 시퀀스에서 리는 무뚝뚝하게 사람을 응대하고 자신에게 무례한 고객에게 욕을 하는 등 마찰도 일으킨다. 오프닝 장면에서 영화의 분위기 그리고 리의 모습과는 크게 대비가 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바에서 혼술하는 리의 장면이다. 전 장면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뚝뚝하고 옆의 여자가 작업을 걸어도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어딘가 영혼이 나간 듯 보이고 술집의 다른 남성들과 싸움이 붙기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씬에서 리는 본인의 원룸에 돌아와 소파에 앉아 티비를 틀어놓은 채 맥주를 마시고 티비도 끄지 않은 채 잠이 든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현재의 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첫 장면에서 나왔던 과거의 모습과의 대비를 통해 리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관객들이 호기심을 가지도록 해준다.
그 다음 장면에서 리는 일을 하다 조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병원이 있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향한다(영국의 맨체스터가 아니고, 미국 북동부에실제로 있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명칭의 도시다). 리가 급하게 맨체스터로 향하는 운전길에 마치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에 스치듯 맨체스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고 있는 리의 모습이 교차편집으로 들어온다. 빨리 형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야하기 때문에 조급한 현재의 리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밝은 모습이다. 또한 영화가 진행되면서 알게 되겠지만 리에게 맨체스터가 어떤 곳인지, 맨체스터로 돌아가는게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일종의 복선 같은 장면이라고 할 수도 있다. 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조는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상태이고 리는 시신을 확인하고 몇몇 절차를 거친 뒤 조의 아들 패트릭에게도 소식을 전하러 그의 학교로 간다. 패트릭의 학교로 운전하며 가는 시퀀스에서도 중간중간 마치 과거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처럼 과거의 장면들이 교차편집으로 들어온다. 오프닝 장면과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배에서 세 사람이 낚시를 하는 장면, 낚시가 끝나고 리가 본인의 집에서 그의 아내 랜디와 두 사람 사이에서 나은 딸 두명과 함께 하는 장면이 나온다. 리가 본인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이 과거 장면은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리는 결혼을했었고 어린 딸도 두명이 있었다. 그리고 장면의 분위기를 봤을 때 리의 가족도 엄청 화목해 보인다. 무슨 이유로 리는 맨체스터를 떠나게 되었고 지금은 왜 혼자 살고 왜 이렇게 반사회적인 사람이 되었고 그의 딸들은 현재 어떻게 된건지? 그리고 영화는 맨체스터에 리가 오고 나서 만난 사람들의 반응을 한 번씩 보여주면서 리가 맨체스터에서 일종의 유명인사임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이러한 정보들로 리가 과거에 맨체스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패트릭을 만난 리가 조의 부고를 알려주고 패트릭도 조의 시신을 확인한다. 시간은 흘러 밤이 되고 조의 집으로 오는 리와 패트릭. 리가 차고 문을 어떻게 여는지 모르는 것에서 그가 맨체스터에 오랜만에 오는 것이라는 정보를 준다. 또한 패트릭과 대화를 하는 장면들에서 과거와는 다른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보도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낸다. 리도 그렇고 패트릭도 조의 시한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두 사람다 겉으로는 크게 내색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패트릭은 집에 자신의 친구들을 부르고 본인의 여자친구가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도 되는지 리에게 물어본다. 이 장면에서도 리는 “콘돔 쓰라고 말해줘야 하는거야?” 같은 대사를 하면서 패트릭을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장면에서 리에게도 자식이 있었고 현재 시점에서 그들도 패트릭과 또래였기 때문에 리가 그들을 계속 키웠다면 당황하지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조의 변호사를 찾아가고 조가 남긴 유언장을 확인한다. 이 장면에서 리는 본인이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는이러한 사실을 알고 엄청 당황하고 자신을 후견인으로 지목한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영화는 마침내 지금까지 관객들이 가졌을 궁금증들을 풀어주는 과거의 장면들을 보여준다. 과거의 어느 날 리는 본인의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놀고 있었고 밤 늦게까지 술과 코카인을 하고 시끄럽게 굴자 랜디가 친구들을 모두 내쫓는다. 리는 바로 자기는 싫었는지 거실 난로에 불을 피워놓은 채 맥주를 사러 마트로 향한다. 마트로 향하는 길에리는 자신이 벽난로의 안전망을 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지만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걸음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비극은 일어났고소방관에 의해 랜디는 구출되지만 두 사람의 자식들은 결국 모두 불에 타 죽는다. 리는 경찰 조사를 받게 되는데 코카인을 한 것이 위법도 아니었고 단순히 사고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그냥 풀려나지만 경찰서에서 권총 자살을 시도하는 등 본인은 큰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이 정보를 리가 자신이 후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 드러낸 이유는 리가 왜 그토록 반사회적이게 되었고 동시에 그가 후견인이 되기를 꺼려하는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비극 이후 리에게 맨체스터는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고,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는 것이 망설여 지는 것도 본인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도있다는 트라우마 때문이다. 리가 단순히 금전적, 현실적 문제들 때문에 후견인이 되기 꺼려하는 것이 아니다. 리는 본인 스스로 남의 위로는 거부하고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영화에서는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리 본인이 스스로를 죄인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이 영화에서 리의 심리의 핵심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던 구성이 겉으로 드러난 사건만 봤을 때는 알기 어려운 리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플롯인것이다. 또한 이 장면 이후에 리와 패트릭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방향을 제시하며 기대감을 자아낸다. 어떻게 보면 리는 상실을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고 패트릭은처음으로 상실을 겪게 된 사람이다. 또한 리는 상실을 극복하지 못했고 패트릭은 앞으로 극복하는 삶을 살아나가야 할 사람이다. 위 장면 이후에도 영화는 가끔씩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데 이 때의 핵심은 과거의 리와 현재의 패트릭의 대칭에 있다. 이것도 기회가 될 때 자세히 다룰 것이다. 그리고 엔딩 까지 보면 알게 되겠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관객의 기대와는 어쩌면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끝맺으며 이 영화만의 유니크함을 보여준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보면서 영화가 사람의 심리를 얼마나 탁월하게 다뤄낼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이 영화에 있었던 일이 실화는 아니지만만약에 그런 상황을 가정한다면 아마도 우리가 집 소파에 앉아서 보는 뉴스에는 “코카인에 취해 벽난로 안전망을 까먹은 A씨, 비극으로 이어져…” 대충 이런식으로 나올 것이다. 팩트가 중요한 법원, 자극적인 사건이 중요한 미디어 에서는 다룰 수 없는 감정을 짚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인것 같다. 요즘 부쩍 이성이 강조되는(이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이성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내 마음속을 유난히 울린 영화이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인물의 감정선을 잘 담아낸 좋은 영화이다. 또한 플롯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알게 된 영화다. 플롯을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상호작용을 만드는것인 것 같다. 정보를 필요에 따라 드러내기도 감추기도 하면서 장면과 장면이 함께 작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