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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부흥과 하나님의 선하심의 나타남
출애굽기 33:18-23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우리는, 부흥이란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 응답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에 직관적 인식을 내포합니다.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느끼고 체험적으로 의식하라는 뜻입니다. ···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부흥을 통해서 찾아오실 때, 시대나 장소를 불문하고 교회가 그러한 간증을 매우 보편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기록을 볼 때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러한 안목과 언뜻 보게 하심과 직관적인 인식을 주셨습니다만 특히 다른 어떤 것들을 계속 행해 나가십니다.
···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이 주로 선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의 성품의 나타남이요, 그의 인격과 그의 속성의 나타남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여기서 가르치는 교훈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무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통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말하는 것은 놀랍지만 사실입니다.”
1. 눈에 보이는 것을 지나치게 추구함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서 매우 선하고 특별한 이유 때문에 이 점을 모세에게 강조하셨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가 볼 때 모세는 우리가 장관(壯觀)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해 너무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롭게 대접을 받고 하나님의 자비하신 기도의 응답을 받은 모세가 감히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장관과 같은 것을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소원은 우리의 성품 속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속에 있는 타락과 죄의 결과라는 데 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어떤 눈에 보이는 나타남을 원합니다. ··· 그것들에 대해서 말하고 그러한 것들을 믿는 성향이 있습니다-비상한 것, 장관에 속한 것, 어떤 눈에 보이는 환상, 어떤 꿈, 어떤 특이한 환상 등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입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매우 부드럽게 다루십니다. ‘좋다, 내가 너에게 네가 요구하는 노선을 따라서 무엇인가를 허락하겠다. ···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과 내 성품과 내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아는 더 깊은 통찰력과 총명을 네게 줄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데서 보는 모든 것보다도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그러한 것을 요구합니다. ···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십니다. ··· 우리의 궁극적인 필요는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하나님의 선하심 속에서 우리에게 가능합니다. ··· 제가 믿기로는 ‘모든’이라는 말에 강조점이 있다고 봅니다. ··· 하나님께서 마치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에 대해서 불확실한 것 같다.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고 약속하였다. 또한 네가 나에게 요구한 여러 가지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너는 아직도 확신이 없는 것 같다. 너는 ‘영광을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구한다. 모세야 사실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겠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에게 주장합니다. 부흥의 때에 교회에 찾아오는 최상의 축복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깊게 아는 지식입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 주심
“구약성경에 친숙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 이름은 성품을 나타냅니다. ··· 그 인격의 권세는 이름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 그 사람의 성품과 그 일이 이름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정확히 같습니다. ··· 출애굽기34:6-7은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그것이 바로 그 이름의 반포입니다. 모세가 땅에 머리를 숙이고 경배했다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매개체로 하여 그에게 그의 선하심을 계시하셨고, 하나님 자신에 대한 진리를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의 문제거리입니다. 여러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 피곤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불행하거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까? 때로 의문이나 불확실성에 가득 찬 자신을 발견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이 굳고 심각해진 것을 발견합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으로 자신에 관하여 계시하신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친히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여호와로라 여호와 하나님이로라’, ‘여호와 엘로힘’은 합성명사입니다. 그 합성명사를 통해서 그처럼 명백하게 가르치는 것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엘로힘: 능력의 창조주 하나님
“이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창조주로서 모든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칭호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칭호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칭호는 복수명사로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암시하고, 또 이 능력의 개념을 특별히 우리에게 전달해줍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능력은 한정이 없고 그 능력은 영구합니다. ···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요점입니다.”
2) 여호와: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그런 다음에 다른 칭호가 거기에 붙어 있습니다. ‘여호와로라, 주 하나님’ ··· 이 이름은 우리가 지극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 관한 가장 보배로운 진리를 계시하실 때 언제나 선택하시는 이름이 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 만일 우리가 그 이름의 의미에 속한 어떤 것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전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도 달라질 것이고 교회의 전체 상태도 변화될 것입니다. 교회가 두려워하고 걱정스러워하고 염려하고 또 자신의 상태와 전체적인 상황을 해결하려고 매우 바쁘게 그처럼 애를 쓰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을 여호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 이름을 통해서 자신의 본질적인 성품을 계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칭호가 뜻하는 바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 그는 존재하십니다. 그는 혼자서 존재하십니다. 시작도 끝도 없으십니다. 이 칭호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하나님의 영구한 성격과, 영원부터 영원까지와, 스스로 자존하시는 분임을 우리에게 암시해 줍니다.
이 이름은 또한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암시합니다. ··· 우리는 시간에 속해 있습니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 분은 해 아래 계신 분이 아니라 해 위에 계십니다. ··· 그 분은··· 영원하고 불변하고 전능하며 전지하며 어느 곳에나 있는 자로 존재할 것입니다.
··· 그러나 이 칭호에는 또 다른 놀라운 암시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자신에 관해서 언제나 그 칭호를 사용하십니다. ··· 출애굽기 6:2-3에서 우리는 이와 같이 읽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그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그 이름을 이미 사용하시기는 했지만 이 특별한 개념과 의미를 그 이름에 부여하지는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비상한 계시를 주시는 이 시점에서, 그 칭호를 규정지으시고 그 칭호의 내용을 보여주시고 그 칭호의 충만한 뜻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 창조하신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그렇게 계시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아갑니다. 그 이름은 사람과 언약하실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서 언제나 사용하는 칭호입니다. ··· 하나님, 자존하시는 하나님, 사람에게 얽매일 수 없는 하나님께서 말하자면 자신을 낮추사 사람과 조약을 맺으셨다는 것, 바로 그것이 복음의 충만한 영광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특별한 언약을 맺고 계십니다. 그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됩니다-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여기서 모세에게 이 언약 관계를 상기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스스로 맹세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칭호에 내포된 마지막 큰 진리로 이끌어 줍니다. 곧 하나님은 구속주라는 것입니다. 그는 창조자시며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엘로힘’, 하나님이란 칭호가 그 모든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함축합니다. 그는 구속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 3:7).’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구속주 하나님께서 내려오시고 강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섬세하게 그런 차원에서 그 칭호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속주로서 하나님에게 해당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 첫째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그는 죄책을 결단코 면제치 않으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선하심을 계시하실 때 모세가 그 하나님의 전능과 함께 가장 강하게 의식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었습니다. 그가 땅에 머리를 숙이고 경배했다는 것을 말씀 속에서 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언뜻 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다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을 나타냅니다. 이사야서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언뜻 보게 되었던 순간에 그는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6:5)’라고 말했습니다. ···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한 체험을 하는 순간 자기들이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했었는데 이제 자기들이 전적으로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신들이 죄인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것이 없었던 신앙부흥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구속주 하나님을 우리가 대면하게 될 때 이해하는 첫 번째 요점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고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의 죄를 자녀손에게까지 물리며 또 그 자녀손 삼 사대까지 물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를 징벌하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기각시킬 수 있으며 비웃을 수 있고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어겨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 ··· 하나님은 자신이 그런 분이라고 계시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계시하신 다음에 다른 것을 계속 계시해 나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구속하실 것이라는 의도에 대한 계시입니다. 여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 그러나 우리가 그 말씀을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즉시 다른 수식을 붙이고 계심을 여러분은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시고 나서,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라고 덧붙이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죄책을 결단코 면제시키지 않으시리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 성품에 들어 있는 이러한 여러 가지 것들을 분리시켜 온 것이 비극입니다. ··· 사람들은 이 성경에 계시된 것보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았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하는 식으로 그러한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 관해서 계시하신 공의와 의를 떼어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죄책 가진 자를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 그가 용서하실 때 의로운 방식으로 용서하십니다. 그가 우리의 죄책을 제거하실 방식으로 마련하셨습니다. ··· ‘나는 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낼 것이다. 죄책을 그에게 담당시킬 것이다. 나는 그를 벌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그 죄책은 옮겨질 것이고 나는 그 죄책을 벗은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자비롭게 대하고 은혜롭게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방식으로만 그런 일이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부흥의 시대마다 언제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모든 영광스러운 속성이 이처럼 기이하게 결합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며 동시에 의로우신 분입니다. ···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이 함께 계시되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이 다 여기에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3) 주권자 하나님
“제가 언급해야 하는 또 다른 칭호가 있습니다. ···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 그것은 하나님의 값없고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그는 그것을 스스로 계시하셨습니다. ··· 나의 성도들이여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이 계시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을 떠나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합니다. ··· 그는 토기장이요 저는 진흙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인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 만일 제가 받아야 마땅한 것이 있다면 지옥일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그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의 위대한 원리입니다. ···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리고 제가 때로 생각하기로는, 부흥의 때에 하나님의 주권의 문제처럼 뛰어나 보이는 특징이 없다는 것입니다. ··· 부흥은 하나님 자신의 때에 일어나지 어떤 다른 때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여드린 바와 같이 찰스 피니의 부흥에 대한 특강에서 비극적인 실수가 바로 그것입니다. ···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가장 부흥이 일어나지 않을 만하다고 하는 그때에 일으키십니다. 부흥이 오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때는 부흥이 보편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도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그 부흥을 이상한 곳에서 행하십니다. 부흥이 어디서부터 시작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 우리는 다음 부흥이 큰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두 세 사람밖에 없는 작은 마을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 부흥에 대해서는 어떤 규칙들을 정할 수가 결코 없을 것입니다. ··· 부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주권에 두셨습니다.
··· 우리가 이것들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해야겠습니까? 오직 한 가지밖에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되풀이하여 말해야 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3-36).’ ***
첫댓글 주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들, 제가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을 되돌아 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이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