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4. 세 조 실 록[14]
세조 26권, 7년(1461 신사 / 명 천순(天順) 5년) 11월 10일(병오)
함길도 도절제사 강순이 변방의 일을 치계하다
함길도 도절제사(都節制使) 강순(康純)이 치계(馳啓)하기를,
“올량합(兀良哈)의 도만호(都萬戶) 사롱합(沙弄哈)이 와서 고하기를, ‘10월 27일에 올적합(兀狄哈) 1백여 명의 군사가 올량합의 땅에 입구(入寇)하여 사람 4명과 말 1필을 사로잡아 갔는데, 추장(酋長) 김권로(金權老) 등이 4백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가 싸워서 올적합 4명을 쏘아 죽이니, 올적합은 이(利)를 잃고, 숲속에 숨어서 인축(人畜)을 다 빼앗아 가고는 또 5명을 쏘아 죽이고, 말 15필과 활과 화살을 빼앗아 돌아갔는데, 올량합은 남녀 합하여 2명과 말 3필이 화살에 맞았을 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수이(愁伊)에 사는 올량합의 사정(司正) 야질대(也叱歹)가 와서 고하기를, ‘올량합의 나사(羅舍)가 말하기를, 「포주(蒲州)에 거주하는 충상(充尙)이 지난 7월에 화살을 주어 여라두(汝羅豆) 및 니가알(尼加歹)과 약속하고 군사를 일으켜 입구(入寇)하려고 하다가 나가지 모하였는데 그전에 이미 조선(朝鮮)에 입구했기 때문이었으며, 여라두·니가알 등이 다시 충상의 지휘(指揮)를 듣고 입구하려고 이미 7백여 명의 군사를 발(發)한 것을 내가 보고 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은 곧 갑산(甲山)·삼수(三水) 및 모든 진(鎭)과 보(堡)에 이문(移文)하여 엄히 방비하도록 하였으며, 신도 또한 행영(行營)5411) 에 이르러 변(變)을 기다리겠습니다.”하였다. 신숙주에게 명하여 보이니, 신숙주가 아뢰기를,
“대라온(大剌溫)의 성식(聲息)은 이미 평안도(平安道)에 보고되었다고, 또 함길도(咸吉道)에도 보고되었으니, 반드시 허언(虛言)은 아닐 것이다. 계본(啓本)을 등사(謄寫)하여 김질(金礩)과 김계손(金繼孫) 등에게 치서(馳書)하여 유시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註 5411]행영(行營) : 도절제사가 있던 큰 진(鎭)의 영문. ☞
세조 26권, 7년(1461 신사 / 명 천순(天順) 5년) 11월 29일(을축)
한명회와 김종순에게 명하여 함길도의 방어하는 일을 의논토록 하다
상당 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도승지(都承旨) 김종순(金從舜)에게 명하여 함길도(咸吉道)의 방어하는 일을 같이 의논하도록 하고, 함길도도관찰사 강효문(康孝文)·도절제사 강순(康純)에게 유시하기를, “도체찰사 한명회가 지금 그 지경(地境)에 내려가지 못하지마는 여러 종족의 야인(野人)이 다 이미 명령에 따르고, 사로잡아 갔던 인축(人畜)을 쇄환(刷還)하는 것이 끊이지 아니하는데, 평안도에는 재차 변경을 침범해 오니, 경이 이 뜻을 알아서 다시 엄하게 제비(隄備)하라.”
하고, 또 승정원(承政院)에서 전지(傳旨)를 받들어 강효문에게 치서(馳書)하기를,
“도내(道內)에 사변(事變)이 있거든 그전에 보낸 유서(諭書)에 의하여 시행하라.”
하고, 또 종사관(從事官) 이극균(李克均)에게 치서(馳書)하기를,
“야인들이 사로잡아 간 인축을 남김 없이 쇄환하게 하고, 구획(區畫)에 마음을 써서 사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하였다.
세조 26권, 7년(1461 신사 / 명 천순(天順) 5년) 12월 16일(임오)
평안도 도관찰사 김질이 변방의 일을 아뢰다
평안도 도관찰사(平安道都觀察使) 김질(金礩)이 아뢰기를,
“이번 12월 초6일 이만주(李滿住) 관하(管下)의 후라(厚羅)에 거주하는 도만호(都萬戶) 기산(其山)과 우포주(右浦州)에 거주하는 만호(萬戶) 자읍파(者邑波)·사직(司直) 도도(都道) 등이 만포(滿浦)에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들이 듣건대, 인가대(麟加歹)·가창합(加昌哈)·이권치(李權赤) 등이 11월 사이에 날랜 군사 3백 명을 뽑아 가지고, 조선(朝鮮)에 입구(入寇)하여 인축(人畜)을 많이 사로잡아 가지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동창(童倉) 관하(管下)의 마수구(馬愁口)가 이두리(李豆里)에게 말하여, 이두리는 우리들로 하여금 변고(變故)를 고(告)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나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강순(康純)에게 유시(諭示)하여 이르기를,
“근일에 야인(野人)으로 내조(來朝)하는 자와 그 종인(從人)이 그 전에 비하여 점점 많아지니 경(卿)은 마땅히 짐작하여 그 종자(從者)를 줄이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