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3:1-6 나로 푸르게 하신 하나님
휴스턴 제일 연합 감리교회를 섬기셨던 찰스 알렌 목사님께서 쓰신 ‘하나님의 마음 치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사업을 시작해서 큰 회사로 성장시킨 한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사장은 성공 가도를 달려와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한 가지 갖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행복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긴장에 싸여있었고, 염려와 걱정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받던 중 목사님을 좀 만나보라는 권고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알렌 목사님은 이 사람에게 처방을 써주었습니다. 1주일 동안 하루에 다섯 번 시편 23편을 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번, 아침 식사 후에, 점심 식사 후에, 저녁 식사 후에 그리고 잠자리에서 들면서 한번 시편 23편을 진실한 마음으로 읽으라고 부탁했습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시간 맞추어서 약을 먹듯이 꼭 처방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놀랍게도 이 사업가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아침 시편 23편을 통해 우리의 영육이 푸르길 원합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나’라는 말을 열일곱 번씩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만나고 경험하고 깨달아 배운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길 축원합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고 나는 양입니다. 양은 목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고생만 하고 결국은 실패합니다. 인생은 한계성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나는 양이니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물량적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소유가 많아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관계적 만족입니다. 주님이 다른 사람의 목자시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나의 목자시니 만족합니다. 사람이 나의 목자시면 부족합니다. 피조물은 나의 목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라는 사실로 만족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절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2)
누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고 하셨습니까?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입니다. 나와 관계가 없다면 그렇게 하실 이유가 없겠지요. 남의 양이라면 책임질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시고 내가 주님의 양이기 때문에,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남의 양이고 남의 목자라면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야곱아 나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우리는 창조자 하나님의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값을 주고 사신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양은 배가 부르고 목마름이 없고 위협하는 것들이 없어 안전할 때에 풀밭에 눕습니다. 양은 겁이 많아 흐르는 물은 무서워서 못 마십니다. 그래서 풀잎 끝에 있는 이슬을 마시거나, 우물(샘)물을 마시거나 잔잔하고 고요한 물가에서 물을 마십니다. 그래서 양을 잘 아는 목자는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가 없는 양은 자신이 목자 역할을 하여 푸른 초장을 찾아다녀야 하고 쉴 만한 물가를 찾아야 합니다. 힘들고 위험합니다. 그러니 양은 목자가 절대 필요하고 그 인도함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뒤늦게 애굽 왕이 이스리엘 보냄을 후회하고 군사를 동원하여 뒤를 급히 추격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은 매장지가 없어 여기로 데리고 나왔느냐, 인도했느냐고 원망했습니다.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친히 인도하신 목자 되신 하나님을 불신하여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좀 거칠고 힘이 든다고 목자이신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우리를 죽이려고, 칼에 망하려고, 사로잡히게 하려고 우리를 인도했냐는 것입니다. 인도하는 목자를 못 믿었습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합니다.
나침반을 못 믿으면, 내비게이션을 못 믿으면 본인이 나침반이 되어, 내비게이션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를 못 믿으면 본인이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과는 뻔한 거 아닙니까? 목자이신 하나님을 믿으세요. 내 인생, 내 내세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신 줄 아십니까?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신 1:33)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르게 하리니” (출 23:20)
목자는 무작정 끌고 다니지 않습니다. 잔잔한 물, 쉴만한 물가가 어디 있는지 먼저 찾은 후에 양을 그곳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니 양은 그냥 믿고 따라가면 될 줄 믿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3절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소생시키다”라는 말은 “제 자리로 데려다준다.”라는 뜻입니다. 양은 초근시여서 방향을 잃고 길을 잃어버립니다. 방향치에다 길치입니다. 그런 양을 찾아 목자가 제 자리로, 제집으로 데려다주는 것을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나옵니다. 목자가 그 길 잃은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실패한 후 먼 나라에서 깨닫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돌이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소생시킨다는 것입니다.
양인 우리가 왜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까요?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신 8:12-14)
성도가 배부르고 번성, 증식, 풍성하게 될 때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어떤 마음이 교만한 마음일까요?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을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신 8:17, 18)
내 능력과 내 힘으로 성공했다,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말한다면 이미 목자 되신 하나님은 사라지고 대신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게 교만입니다. 잘 나갈수록 목자이신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책임지셨다. 목자가 하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목자는 자기 이름을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의의 길’이란 안전한 길을 말합니다. 안전한 길로 목자는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4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목자가 양을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할까요? 의문이 생깁니다. 광야를 통과해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듯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풍성하고 좋은 꼴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의 처지에서는 참 힘든 시기입니다. 두렵고 무섭습니다. 목자를 이해할 수 없어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를 죽이려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데리고 왔습니까?” 불평과 원망할 수 있습니다. 목자를 불신하면 그렇게 됩니다. 목자를 신뢰한다면, 생명까지 양을 위해 바치는 선한 목자로 믿는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윗처럼 “더 좋은 꼴, 더 풍성한 꼴을 먹이기 위해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신다.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목자 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주님 손에 있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니 목자 계신 이곳이 제일 안전하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시 23:5)
하나님께서는 다윗 한 사람을 위해 진수성찬을 친히 준비하여 차려 주시고 원수들 앞에서 식사하자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같은 혈통이 아니면 식사를 같이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식구끼리 식사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다윗은 내 식구다. 나는 다윗의 편이다. 내 가족, 내 편을 다윗을 건들면 나를 건든 것이니 건들지 마라. 건들면 나한테 혼난다.’라고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름을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5)
손님을 초대하여 우대와 존귀의 표시로 머리에 기름을 바릅니다. 하나께서 다윗 한 사람을 연회에 초청해 특별 대접을 해주셨습니다. 다윗 머리에 기름을 발라 ‘다윗은 나의 특별한 사람이다’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은 다윗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6절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 23:6)
“따른다”라는 말은 “붙어 다닌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은총이 날마다, 내 평생에 나에게 붙어 다닐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우리 인생 끝에 죽음이 오면 ‘하나님의 집’인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가 너의 목자가 되어줄게!’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으면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 나의 아버지가 됩니다. 나는 주님의 양, 주님의 자녀, 주님의 것이 됩니다. 그러면 목자이신 하나님이 나를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책임지고 인도하십니다. 천국까지 인도하신 줄 믿습니다. 혹 길을 잃고 방황할 때도 제 자리로 데려다 놓으시고 나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음침한 골짜기나 어디서나 지켜 보호하시며 원수 앞에서나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표나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시니 목자 되신 주님 때문에 내 잔이 넘치게 됩니다. 나의 삶이 푸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나로 푸르게 하신 하나님을 목자로 절대 믿고 인도함을 받고 따르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여호와 나의 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