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은 이웃나라인 조선의 주체민족이다. 그러나 근대에 적지않은 조선족이 우리나라 동북지구로 옮겨와 살았으므로 조선족은 우리나라 동북지구 민족의 하나이기도 하다. 동북지구 민족의 원류를 논의하지 않고서는 조선족의 원류도 논의할 수 없다. 동시에 우리나라 동북지구와 조선은 단지 강 한줄기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만큼, 두 나라의 각 종족간은 서로 흔히 오고가고 융합되었다. 이 때문에 역사상 일찍부터 우리나라 동북 민족의 원류와 조선민족의 원류의 관계는 몹시 복잡하게 얽혀있다. 조선민족의 원류를 정확하게 인지함으로써, 우리나라 각 민족 인민의 단결을 촉진시키고, 중국-조선간의 우정을 적극적으로 도모할 수 있다.
조선민족은 그 형성과정 중에 세계 기타 민족과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끊임없이 많은 민족 맟 종족성분과 융합되었다.
조선민족의 주요 원류는 일설에 의하면 조선반도에 가장 일찍부터 살던 韓과 穢라고 한다. 그들의 조상은 구석기 시대부터 줄곧 조선반도에 살았다. 韓종족은 남방계 몽골인종에 속하며 조선반도 남부에 살았다. 穢종족은 북방계 몽골인종에 속하며 조선반도 북부 및 우리나라 동북지구에 살았다. 韓과 穢 두 종족은 일찍부터 인구가 많았으며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그들은 조선반도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문화의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의 商•周 시대 (BC 11세기), 본디 우리나라에 살던 요동지역 동이인이 요동반도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상 왕조의 귀족인 기자가 동쪽으로 가서 조선을 세웠다는 기록은 당연히 이 일을 사서상으로 반영된것이다. 조선반도 북부에 분포하는 요동식 고인돌과 비파형청동검도 당연히 조선반도로 들어간 동이족의 유적이다.《후한서•동이전》에 “昔武王封箕子于朝鮮, 箕子教以禮義•田蠶, 又制八條之教.”라고 하였다.《삼국지•동이전》에도 같은 기사가 있다. 고조선은 기자가 동쪽으로 이끌고 온 상나라 사람(동이인의 한갈래)과 조선반도 토착 예인(穢人)과 결합하여 이루어졌음을 표명한 것이다.
기자가 조선에 갔다는 설에 대해 중국외의 사학계에서는 논쟁이 되고있는데 두종류의 다른 견해가 있다. 북한의 많은 학자가 “기자동래설”을 부인하며, 소수가 역사사실로 여긴다. 남한사학계에는 기자가 존재했다고 여기고 “국사”에 집어넣을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또 기자가 조선에 있었음을 부정하고, “화북문화”가 조선에 전해져 들어갔으며, “아울러 그것은 특정인물 즉 기자의 동래와는 서로 연관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학계는 기자조선설을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으며 후세 사람들의 견강부회일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가 하면 기자조선설이 성립가능하다고도 여긴다. 그러나 논의가 불일치함에도 불구하고 쌍방 모두 우리나라의 화북지역의 문화가 조선반도에 들어갔음이 틀림없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기자와 연관짓지않더라도 일부 한족의 조상이 일찍이 청동기 시대 및 그 이전에 조선반도에 옮겨가 살았음이 사실이 되어야 할것이다. 다음으로, 기자가 고조선을 세웠다는 주장은 조선반도에 일찍부터 사람이 존재했음을 부정하는것은 아니다. 이것은 쌍방 모두가 공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량으로 사서에 기재된 “기자동주설”을 가볍게 보고 쉽게 부정하는것은 부당하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이것을 부정하는 강력한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사마천의《사기》는 고대 사적중에 기자에 관한 기술을 종합하여 《송미자세가》에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 《조선열전》중에 명확하게 당시 조선후의 성이 箕라고 적으며 그들이 기자와 계승관계에 있음을 비추고 있다. 역시 믿을 만하다.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해서, 연나라 사람이 요동을 점유하고 고조선의 서부 땅을 공격함에 따라 요동에 살던 이인(夷人)과 새로들어온 연인(화하족의 한갈래)과 융합된 새로운 연인의 형성이 촉진되었다. 이들은 머지않아 진(秦)이 들어오는 바람에 오늘날의 한족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반도의 이인(夷人)은 그 땅의 예인(穢人)과 융합되어 고조선족을 형성하였다.
기원전 2세기, 우리나라 진•한 교체기에 중원이 전란에 휩싸여 “燕•齊•趙民避地朝鮮者数萬口”하였다.” 한나라 초에 연나라 사람 위만이 새(塞)를 나가 동쪽으로 “度浿水, 居朝鮮之西界秦故空地上下障. 满誘亡党(중국 이민)衆稍多, 乃攻準, 準逃亡.” 하고 위만은 위씨조선을 세웠다. 위씨조선의 수립은 연나라 사람이 조선반도 북부까지 나아갔음을 표명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기씨의 후예인 기준(箕準)은 남쪽으로 옮겨가서 韓의 왕이 되었다. 또한 진나라 때 일부의 한족 사람이 진나라의 부역을 피해 조선반도 동남부로 도망가서 그 땅의 토착 韓족과 결합하여 한나라 때의 진한을 형성하였다. 북방민족이 조선반도 남부에 진입한것이다.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위씨조선을 멸망시키고, 조선반도 북부에 낙랑 등 군현을 설치하여 한족이 거듭해서 조선반도에 한걸음 나아가 살게 되었다.
한•위 시대, 조선반도 남부에는 韓종인 마한, 진한 변한이 살고 있었다. 사서에는 마한이 54국 10여만호을 총괄한다고 한다. 진한, 변한은 각각 20국이다. 합이 78국이며, 모두 다해 20만호로 약 100만인에 가깝다.
서기 1세기가 시작되자, 본디 압록강 유역에 살던 고구려인이 마침내 점점 남하하여 조선반도 북부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서기 4세기에는 낙랑군을 점령하였다. 장통(張統) 등과 같은 일부 한족 사람은 요서로 옮겨가 조선반도에서 물러났다. 일부 한족 사람은 조선반도에서 고조선인 및 예인과 함께 조선에 머무르면서 고구려인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마침내 서로 융합되어 새로운 민족이 생겼다. 동시에 고구려인의 일부가 남하하여 조선반도 남부의 韓인과 결합하여 백제국을 세웠다. 진한(남쪽으로 왔던 진나라 사람과 그 땅의 토착 韓인과 결합하여 형성)의 후예는 신라국을 세운다. 조선반도는 초보적인 3개로 병열된 작은 민족을 형성한다.
7세기, 신라와 당나라는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다. 오래지않아 당나라 군사는 압박되어 조선반도로 부터 철수당한다. 신라는 기본적으로는 조선반도를 통일하고 조선반도를 처음으로 신라민족으로써 민족을 하나로 일치시킨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동북부는 발해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발해족은 속말모화(粟末摸和) 및 고구려 유민과 기타 예맥이 융합된 민족이다. 고구려 민족의 일부는 흩어져 우리나라 중원 지역에 옮겨살게되어 한족 속에 보태졌다. 또 일부는 발해족 속에 보태지고 일부는 신라 민족에 보태졌다.
10세기,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발해인을 서쪽으로 옮겨간다. 일부 발해인은 남쪽의 신라에 투신하여 신라족에 보태진다. 그리고 동시에 원래 목단강(牡丹江) 상류에 있던 여진인이 남하하여 조선반도 동북부를 차지한다.
10세기 초, 왕건이 고려왕조를 세웠다. 신라인을 고려인으로 고쳐부른다. 고려인과 신라인이 다른점은 전자가 발해인 10여만을 흡수한 것으로 주체는 변함이 없다. 고려인과 고구려인은 근본이 다르다. 고구려인은 중국과 조선 양국의 국토를 가로질러 있었지만 조선반도 남부의 古민족까지는 포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에 반해 고려인은 순수한 조선반도의 일개 민족에 속한다.
서기 14세기, 이씨조선이 세워졌다. 이 민족을 다시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이후 일시적으로 조선반도 동북부에 살던 여진인의 일부가 북쪽으로 옮겨가 여진족인 만족의 일부가 되고, 일부는 남쪽으로 가서 조선민족에 보태진다.
조선민족은 비록 장기발전 과정중에 많은 민족을 흡수하였으나 그들의 주체는 예와 韓이었으며 나중에 대량의 한족 사람(한족 조상의 한갈래인 동이)와 고구려인도 보태진것이다.
조선민족이 우리나라 동북지구에 옮겨와 산것은 청나라 때 부터의 일이다. 청 왕조는 전국의 각 민족을 만주인의 손으로 통치하기위해 만주인을 전국 각지로 보내니 동북지구가 매우 황폐화되어 조선인이 비로소 북으로 두만강을 건너 우리나라 동북지구에 들어왔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나라 동북지구의 일개 민족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장기간 동북에 거주한 토착민족이 결코 아니다. 과거 학술계에 일종의 착오가 있어 우리나라 고대 동북지구의 부여인, 고구려인 모두를 조선족의 선조라고 여겼다. 우리나라 고대 동북지구의 부여인과 고구려인의 상당한 일부가 오늘날의 조선족에 보태졌지만 더 많은 이가 우리나라의 한족 중에 보태졌다. 현재 우리나라 동북에 있는 조선족은 고대 우리나라 동북지구에 살던 고구려인의 후예가 결코 아니다. 설사 그들이 갖고 있는 고구려인의 혈통을 설명해본다해도, 그것은 조선반도내에 있던 일부 고구려인 혈액을 지니고 있는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것이다.
이런것들을 똑똑히 밝혀, 중국과 조선 각 민족은 원류가 같으면서도 차이가 있는 관계임을 정확하게 인식해야한다. 또한 중국 각 민족(특히 동북 여러 민족)과 조선민족이 서로 혈육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확실히 인식해야한다. 동북지구 세상을 어떤 민족에 귀속시켜 둘 필요없이 어떤 과분한 영향 을 주며 중국-조선간은 사이좋은 논쟁을 진행하자. 비록 역사상의 어떤 고민족의 원류에 대해서는 학자간에 다른 견해가 있기도 하지만, 중국-조선 각 민족간에는 혈육처럼 불가분한 관계가 있음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위에, 학자들은 같은 것은 취하고 다른 검은 보류하면서 계속 논쟁을 하자. 이런 논쟁의 목적은 공유점을 찾고, 단결을 촉진시키는 것이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