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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순종하는 온전한 믿음으로 성숙하는 달☜
생명의 양식(진리의복음)을 등한히하면, 사탄에게 영생(永生)의 기쁨을 빼앗기게 됩니다.
창24:3-4절) 신부(新婦) 찾기
이 세상에서 참으로 나에게 가치(價値)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라면, 땅 끝까지 가서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미국이나, 영국 혹은 이태리나 독일 심지어는 중국이나 러시아까지 유학을 가서 공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사업(事業)하는 사람들은 이슬람이나 공산국가 심지어는 남미까지 가서 사업해서 돈을 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자기 배우자(配偶者)를 찾기 위해서 땅 끝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크리스천에게 배우자를 찾아서 아름다운 결혼을 하는 것은 유학이나 사업보다 더 중요한 일임을 볼 수 있습니다.
잠31:30절)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요즘 크리스천 젊은이에게 있어서 배우자를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에서 부흥(復興)이 식어지니까 예수 믿는 좋은 젊은이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남녀(男女) 모두 결혼의 기준(基準)이 아주 까다로워지게 되었고, 결혼할 연령이 남성이나 여성들의 숫자가 잘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신앙이 없는 불신자들 중에도 배우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데, 신앙이 좋은 사람을 구하려니까 배우자(配偶者)를 구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이삭이 나이가 마흔 될 때까지 신부(新婦)를 구하지 못하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 드디어 집에서 가장 충성된 종을 불러서 땅 끝까지 이삭의 신부(新婦)를 찾아오라고 맹세(盟誓)를 시키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이름도 없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디에 가서 이삭의 신부(新婦)를 찾을 수 있을까? 아브라함은 자기 종에게 하나님의 사자(使者)가 앞서서 네 길을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면서‘무조건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은 기적적으로 이삭의 신부(新婦)를 찾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올바른 배우자를 찾고,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Ⅰ.가장 중요한 임무
아주 귀중한 복(福)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고, 큰 나라를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중요한 약속(約束)이 아브라함이 아주 늙을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드디어 자기가 가장 믿는 종을 불러서 이제 자기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盟誓)하라고 하면서 이삭의 신부(新婦)감을 찾아 나서라고 명령했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하게 기다리기기만 하던 아브라함이 이제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브라함의 나이가 너무 늙어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으로 하나님께서 이삭의 신부(新婦)를 구해주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이삭이 배우자(配偶者)를 구하지 못하니까 아브라함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집의 모든 소유(所有)를 관리하는 종을 불러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 끝까지 가서 이삭의 신부(新婦)감을 구해오는 것이었습니다.
24:2절)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아브라함이 자기 종에게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盟誓)하라고 한 것은 아주 중요한 의식(儀式)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하면, 이 종은 자기가 죽을 때까지 이 맹세의 약속을 지키든지, 아니면 주인이 죽고 난후에도, 이 맹세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죽을 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가 죽고 난 후에도 종이 끝까지 이삭의 신부(新婦)를 찾도록 맹세를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종은 아브라함이 죽었다고 해서 이삭의 신부(新婦)감을 찾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이 종은 아브라함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함으로 아브라함이 살았든지, 죽었든지, 상관없이 어떻게 해서든지, 이삭의 신부(新婦)를 구해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종이 이 맹세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는 이삭의 신부(新婦)를 찾아서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 종은 자신의 사명(使命)을 다했기 때문에 이 맹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삭의 신부(新婦)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신부(新婦)가 종을 따라오지 않겠다고 거절했을 경우입니다. 이때에도 이 종의 책임은 면제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렇지 않고 이 종이 이삭의 신부(新婦)를 못 찾았을 경우에는 몇 달이 걸리든, 몇 년이 걸리든, 끝까지 전 세계를 뒤져서라도 이삭의 신부를 찾아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의 재산(財産)전체를 책임지는 종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많이 있었을 텐데, 아브라함은 이 바쁜 종을 불러서 자기가 죽고 난 후에도 끝까지 이삭의 신부(新婦)를 찾아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맹세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제 아브라함 자신에게나 다른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이삭의 신부(新婦)를 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집에는 하나님의 복(福)이 있는데, 이 복(福)의 상속자를 만들어내야만 했고, 더 멀리 내다보면, 결국 인류(人類)를 구원할 자손이 이 신부(新婦)를 통해서 태어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나 종에게는 이삭의 신부(新婦)를 구하는 일이 이 세상 어떤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종을 보내면서 이삭의 아내를 찾기 전에는 절대로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명령하고, 종에게 맹세시켜 보냅니다. 즉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이 죽든, 살든, 이 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삭의 신부(新婦)를 찾아야만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生涯)에도 이런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한평생 나의 삶을 두고 추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그 목적(目的)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價値)를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16:26절)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온 천하(天下)를 얻고도, 자신을 찾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기 종에게 이삭의 신부(新婦)를 찾는 대전제(大前提)를 말해주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基準)을 제시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시한 조건 중 하나는 *가나안 족속의 여자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4:3절)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이삭의 결혼(結婚)이 이토록 늦어진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가나안 땅에서는 순결(純潔)한 여자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는 성적(性的)으로 문란(紊亂)해서는 안 되고 순결(純潔)한 여자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여자들이 아름답고, 매력적(魅力的)이기는 하지만, 성적(性的)으로 문란(紊亂)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자(富者)였고, 이삭도 멋있었기 때문에 그 땅에서 신부(新婦)감을 구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지만, 가나안 여자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의 신부(新婦)는 정절(貞節)이 있고, 깨끗한 여자여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의 종에게 두 번째로 요구한 것은 *절대로 이삭을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4:6절)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아브라함이 둘째로 요구한 것은 *신부(新婦)될 여자의 믿음*이었습니다. 즉 이삭의 신부(新婦)가 될 사람은 이삭을 보지도 않고, 오직 말만 믿고 따라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의 신부(新婦)는 아브라함의 종의 말만 듣고, 따라올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여자라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모두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신부(新婦)를 보지 않고, 말만 듣고, 따라올 수 있는 여자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일까? 그것은 역시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를 찾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만 찾기만 하면, 왕(王)의 결혼식(結婚式)은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삭의 결혼(結婚)이 이토록 늦어졌던 것은 이삭의 신부(新婦)를 그 땅에서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삭이 기다리는 동안에 이삭의 신부(新婦)는 막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종에게 내리신 가장 중요한 명령은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신부(新婦)의 자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신부는 순결(純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 외(外)에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자여야 합니다. 결코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모두 *사도(使徒)들이 전하는 말만 듣고서도 따라올 수 있는 자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지만, 오직 생명의 말씀만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계시록에서 구원받은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계14:4-5절)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신부(新婦)가 되려고 하면, 다른 어느 것도 보지 않고, 생명의 말씀만 붙들고,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이삭의 신부(新婦)는
*네가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使者)가 너를 인도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24:7절)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아브라함은 누가 이삭의 아내이며, 또 언제 어떻게 해서 그 여자를 찾을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자(使者)를 먼저 보내어서 신부(新婦)를 만나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믿음으로 순종(順從)해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중요합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준비해주시는 것입니다.
Ⅱ.아브라함의 종의 순종
아브라함의 종은 너무나도 막연한 임무를 지니고 집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도대체 이 넓은 세상 어디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삭의 신부(新婦)를 찾아내겠습니까? 주인(主人)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자(使者)가 먼저 길을 인도하신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사자(使者)는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믿음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의 종이 하나님의 구체적(具體的)인 인도하심을 받아서 정확하게 그 신부(新婦)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식적(常識的)으로 생각해 볼 때,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신부(新婦)를 만나는 것은 *태평양(太平洋)에서 바늘을 줍는 것보다 더 어렵고 막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은 두 가지 방향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찾았습니다. 하나는 아무 방향이나 가지 않고, 큰 전제(前提)를 하나 가지고 갔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의 친척(親戚)을 먼저 찾자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친척(親戚)은 가나안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을 알고, 경건(敬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城)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24:10-11절)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낙타를 성 밖 우물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아브라함의 종은 일단 옛날 아브라함이 살았던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나홀의 성(城)까지 가서 성(城)밖 우물곁에 낙타의 무릎을 꿇리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신부를 찾아야 할까? 이때 아브라함의 종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거나, 처녀(處女)마다 만나서 *결혼(結婚)하고 싶지 않느냐?* 고 물어보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어렴풋하게 자신이 목표(目標)한 곳에 다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으로 이삭의 신부(新婦)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종은 하나님께서 *이삭의 신부(新婦)를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24:13-14절)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 대담(大膽)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자기는 도저히 이곳의 처녀(處女)들을 일일이 조사할 수도 없고, 조사한다고 해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물 길러 나온 여자 중에 자기에게 물을 마시게 할 뿐 아니라, 낙타에게 물까지 주겠다고 하는 처녀가 있다면, 이삭의 신부(新婦)인 줄 알겠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의 종은 처음부터 아무 처녀(處女)나 붙들고, 물을 달라고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지금까지 착실하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라왔습니다. 이 종의 생가에 목적지(目的地)가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신부(新婦)를 알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이 이렇게 기도한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신부(新婦)될 사람을 물 마시는 것으로 시험(試驗)을 하려는 것일까?
일단 고대(古代)사회에서 외간(外簡) 남자가 여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우물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親切)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마 저녁 시간에 물을 길으러 나온 여자들이라면, 모두 바쁜 여자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빨리 물을 길어 가서 집안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낙타 한 마리가 하루 종일 사막(沙漠)을 걸은 후에 마시는 물의 양은 약 한 드럼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낙타 열 마리라고 하면, 열 드럼의 물을 길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 한 사람이 열 마리의 낙타(駱駝)에게 그것도 자기 낙타도 아닌 다른 사람의 낙타에게 이 많은 양의 물을 준다는 것은 *보통의 사랑과 열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종은 *내 주인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면, 적어도 남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적극적인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삭의 신부(新婦)가 *다른 것은 최고가 아닐지 몰라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최고인 여자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이 종은 *이삭의 신부(新婦)될 사람이 남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이등, 삼등, 하는 여자라면, 신부(新婦)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쳤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5:17절)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하나님의 가족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나, 아들은 남들을 돕는데 있어서 시간을 가리지 않는 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부분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뒤질 수 있습니다. 즉 공부는 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뒤진다면, 곤란합니다.
Ⅲ.드디어 발견한 신부
아브라함의 종의 이 무모(無謀)한 기도는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을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종의 수준에 맞추어서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이삭의 신부(新婦)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24:15-16절)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리브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먼저 물 길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니, 리브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종에게 물을 줄 뿐만 아니라, 더위에 지친 낙타들을 보고, 낙타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하면서 부지런히 물을 길어서 구유에 물을 붓고, 또 우물로 달려가서 물을 깃고 있습니다.
여기서 리브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리브가를 아셨고, 아름답게 키워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리브가를 드디어 모든 사람 앞에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삭의 아내라고 해서 기도원에서 몇 년씩 수도(修道)만 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리브가는 아주 아름답고, 건강하며, 사랑에 넘치는 처녀(處女)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이 세상에서 누가 봐도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는 결코 광신자(狂信者)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더럽고, 추(醜)한 자기 욕심으로 달려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느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신앙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합리적이며, 매력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의 식구들을 만나서 다른 것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즉 자기 주인 이삭이 얼마나 재산이 많은 부자(富者)인지, 그리고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설명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리브가의 가족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이 종의 말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24:50-51절)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리브가의 식구들은 아브라함의 종의 말을 듣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종의 말을 의심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아무리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하더라도 자기들이 하기 싫으면, 얼마든지 싫다고 우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이삭을 데리고 와야 결혼(結婚)을 시키겠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삭에게 신부(新婦)로 주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가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리브가의 식구들은 믿음이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이 결정하신 것은 거부(拒否)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福)을 받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떨어지자 말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기적(奇蹟)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그래도 순종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끝까지 반대(反對)하고, 방해(妨害)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패역(悖逆)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짧은 머리로 다 이해할 순 없습니다. 우리는 이루어진 과정(課程)을 보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믿어지면,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당장 내일 날이 밝자 주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나도 지나친 요구가 아닐까?
그러나 이 종의 자세는 대단히 신중(愼重)했습니다. 우선 이 종은 리브가의 모든 식구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干涉)으로 된 것이며, 이런 것은 이 일이 중요하고, 급하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믿음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럴 때에는 한 시간이 빨리 하나님의 뜻을 완성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여유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끝마쳐야 합니다.
이 종은 신부(新婦)를 또 무사히 집에까지 데리고 가야 자기가 한 맹세에서 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받을 수 있는 유혹(誘惑)은 지금까지 수고한 것에 대하여 보상(補償)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지금 여기에 오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고생을 했고, 또 신부(新婦)를 기적으로 잘 찾아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 종은 *이삭의 결혼의 일등 공신*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디까지나 종은 종이어야 합니다. 즉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끝까지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를 붙들고, 늘어지는 자들에 대하여 냉정(冷靜)할 수 있어야 합니다.인정(人情)이 하나님의 뜻을 망칠 때가 나무나도 많습니다. 리브가의 식구들은 아브라함의 종을 설득하기 어려우니까 리브가 본인의 의사(意思)를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24:57-58절)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가족들이 리브가에게 묻겠다고 한 것은 리브가에게 물으면, 여자들은 거의 다 *가족과 더 있다가 가겠다*고 말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3가지 거짖말 *노처녀= 시집 않가겠다. *장사꾼= 장사않된다. *노인- 내가 어서 죽어야지.
그러나 리브가는 단호하게 *이 종을 따라 가겠다*고 했습니다. 즉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렇게 간섭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의 말을 들으면서 리브가는 성숙(成熟)한 여인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가족에게 매달리지 않고,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마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인들은 남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변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순간부터 성숙(成熟)한 사람이 되기 시작합니다. 어느 정도로 변했는가 하면,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순간에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는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배우자(配偶者)를 만나고, 평생 자신의 할 일을 찾아서 간다고 하는 것은 이삭이 리브가를 찾는 것만큼이나, 막연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먼저 천사들을 보내어 길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따라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준비해놓은 복(福)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리브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생각을 다 버린 것처럼 우리도 성숙(成熟)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종처럼 끝까지 충성(忠誠)하는 존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576장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오늘의 묵상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고전8:3)
▣알림(긴급2)
▷추계(秋季)성례전은 순종 행사로 12월 30일까지 *대심방* 국내-국외 스마트폰으로 (지역. 장소.날짜.시간)을 조정하여 초청하는 셀(cell)가족 순으로 출장 시행합니다. 아니면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작성제출해야 소통하는 교갱원소속 A급 셀(cell)로 새출발 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에 보물 쌓을 創立member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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