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신라 진흥왕 11년(550년)에 신라의 영역으로 되었으며, 경덕왕 16년(757년)에 명주라 하였고, 고려 충열왕 34년(1308년)에 강릉부로 개칭 되었다. 공양왕 때에는 강릉대도호부가 있어 북쪽으로 원산에서 남쪽으로는 울진에 이르는 동해안 일대를 관할하였다. 조선시대로 들어 태조 4년(1395년)에 강원도로 개칭하였고, 고종 33년(1896년)에 강릉군으로 되어 21개면을 관할하였다.
일제 시대인 1931년에 강릉면이 강릉읍으로 승격 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인 1955년에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을 합하여 강릉시로 승격과 동시에 강릉군을 명주군으로 개칭 분리 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 강릉시, 명주군을 통합하여 통합강릉시로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즈므 지명 유래
태장봉 안쪽에 있는 마을 전체. 마을 한가운데 助山이 있는데 이산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밋밋하게 생긴 조그마한 봉으로 봉 주위에 큰 소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다.
날밀에서 보면 이곳으로 해가 지는 마을이 되는데 "해가 지는 마을"이란 말이 줄어서 "저무는 마을 → 저무말 → 즈므" 로 되었다는 설과, 또 이곳 출신의 인사가 쓴 점상일기(店上日記)란 책이 있는데 "점상 → 점위 →저뮈 → 저무 → 즈므"로 되었다는 설도 있다.
3) 경포 지명 유래
경포동은 1998년 10월 1일 강릉시 조례 288호에 의해 유천동, 죽헌동, 운정동, 저동을 하나의 행정동으로 합친 동으로, 동의 면적은 23.21 ㎢이고 19개통 91개반이 있다. 유천동은 강릉군 정동면 지역으로 1914년 죽오리를 병합하여 유천리라 하다가 1955년 9월 1일에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유천은 다시 상유천(윗느릅내)과 하유천(아랫느릅내)으로 나누는데 상유천은 땅재봉을 중심으로 서쪽마을이고, 하유천은 북동쪽 마을이 된다. 지변동 또한 강릉군 정동면 지역으로 1914년 池前理와 池後理를 합하여 지변리라 하고 1955년 9월 1일에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예부터 이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날 저녁에 前洞사람들과 後洞사람들이 망우리를 돌리다가 달이 뜨면 탱주나무거리에 있는 다리에 와서 횃불을 들고 다리밟기를 하고, 또 죽헌마을 사람들과 횃불싸움을 했다. 다리를 먼저 밟는 동네가 농사 풍년이 든다고 하여 주민들간에 치열한 다툼이 있었는데 ,동네 전체 주민이 횃불싸움에 참여했고, 큰 사고없이 싸움이 끝나면 마을로 돌아와 막걸리를 마시며 흥겹게 놀았다.
죽헌동은 강릉군 정동면 지역으로 1914년 백교리를 합하여 죽헌리라 하고 1938년 정동면이 경포면 개칭 당시 죽헌리, 대전리로 경포면에 편성되어 있었으나 1955년 9월 1일 강릉읍, 경포면, 성덕면을 병합하여 강릉시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동을 합쳐 죽헌동으로 개칭하여 오다 1998년 10월 1일 경포동에 합쳐졌다.
운정동은 강릉군 정동면에 딸린 지역으로 1914년 선교리를 병합하여 운정리라 하다가 1955년 경포면이 강릉시에 편입될 때 난곡동과 합쳐 행정동을 이루다가 1998년 10월 1일 경포동에 합쳐졌다. 경포면이 정동면이였을 때 유천리, 대전리, 조산리등 3개리가 있었으나, 일제때 하남면을 없애면서 하남면을 반으로 갈라 저동리, 안현리는 정동면에 편입시키고,산대월리, 방동리는 사천면에 편입시켰다.
그후 조산리는 없애고 운정리를 만들었다. 조선조 중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漁村 沈彦光이란 분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살아서 그후부터 운정리라 했다
저동은 원래 강릉군 하남면 지역으로 1914년 저동리라 하여 저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정동면이 경포면으로 개칭 당시 저동리, 안현리로 경포면에 편성되어 있었으며, 1955년 9월 1일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마을에 모시가 많이 자라 모시골이 한자로 되어 苧洞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