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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
1.
M&A 시장에서 가장 큰 위험은 비이성적으로 높은 가격을 써내 고가인수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다. 경제학에서 승자의 저주와 관련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1950년대 미국의 유전개발 과정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유전을 개발하면서 원유 매장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골라 석유회사들을 상대로 경매에 부쳤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영리하게도 경매 이전에는 누구도 해당지역을 시추할 수 없도록 조건을 달았다. 경매 대상 유전의 객관적인 실제 가치를 어떤 석유회사도 알 수 없는 정보 불균형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석유회사 입장에서는 유전을 낙찰 받기위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야만 한다. 하지만 불길하게도 경매 낙찰은 곧 자신이 유전의 실제 가치를 초과한 높은 금액을 써냈다는 말이 된다.
통계적으로, 경매에 참여한 모든 기업의 입찰 가격은 유전의 실제 가치를 중심으로 정규분포, 즉 좌우대칭의 종 모양 분포를 이루기 때문이다. 결국 실제 가치를 가장 많이 초과한 금액을 지불한 대가로 낙찰자의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올해 최대 금융리스크는 고가 인수
승자의 저주는 섬뜩한 어감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대형 M&A와 관련해 심심찮게 등장하는 낯익은 용어가 됐다. 외환은행 인수경쟁이 불붙자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무리하게 과당경쟁을 할 경우 소위 ‘승자의 재앙’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은 LG카드 매각경쟁이 본격화 되자 “인수경쟁이 격화돼 자칫 LG카드의 내재가치에 비해 인수가격이 지나치게 올라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승자의 재앙을 우려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까르푸, 대우건설 등 잇따른 대형 M&A 과정에서도 승자의 재앙에 대한 우려가 어김없이 따라 붙었다. 물론 인수경쟁 당사자들의 발언은 경쟁사들을 견제하기 위한 엄포용일 수도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이 연초에 올해 우려되는 가장 큰 금융 리스크로 적정 가격을 초과한 M&A 대금 지급을 꼽았다는 것이다. 이는 황 회장이 M&A 대상의 몸값이 지나치게 치솟는 상황을 부동산이나 금리 리스크보다 훨씬 심각한 위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내 PEF 관계자는 황 회장과 동일한 판단을 좀더 직설적으로 들려준다.
이 관계자는 “IMF 이후 싼 값의 매물이 쏟아져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국내에서도 비싼 가격에 인수해 망가지는 사례가 나올 시점이 됐다”며 “미국에서는 10조원에 기업을 인수했다, 결국 어쩔 수없이 큰 손해를 보고 2조원에 되판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많은 기업들이 고가 매수로 인한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겁 없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가 매입 후 대금 지금을 위해 차입한 자금의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거기다 모기업의 현금흐름으로도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룹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랜드는 대형 할인점 업체들을 물리치고 까르푸를 품에 안는데 극적으로 성공했다. 까르푸 인수를 위해 동원한 이랜드의 자기자본은 불과 3천억원. 전체 1조7천억원의 인수대금 중 8천억원은 까르푸 매장을 담보로 한 대출로, 3천400억원은 후순위채권으로 충당했다. 또한 나머지 2천700억원은 재무적 투자자들이 투자했다. 이랜드는 까르푸 인수에 따른 금융비용을 향후 2년간은 연 650억원, 그 이후에는 연 900억원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까르푸 노조는 “1조4천500억원에 이르는 차입금의 이자 비용만 해도 700억원(연리 5%적용)에 달한다”며 “까르푸의 연간 순이익 68억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까르푸에서 번 돈으로 이자나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한다. 애초 업계에서는 까르푸 인수가격이 1조2천억원을 넘어설 경우 투자금액을 회수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랜드는 이런 우려에 대해 까르푸 32개 점포의 리뉴얼링을 통해 내년부터 정상 영업에 들어가면 현재 바닥 상태인 까르푸 매출을 3조원대로, 영업이익은 6%로 끌어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럴 경우 금융비용 충당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랜드는 IMF 이후 유동성 위기로 어려움을 겪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재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그동안 저돌적인 M&A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지만, 이것이 미래의 성공까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6조9천474억원에 달하는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금액도 또 다른 논란거리다. 인수협상 과정에서 국민은행은 당초 주당 1만4천700원을 제시했고, 하나금융은 1만5천원, DBS는 가장 높은 1만6천원을 써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인수가격을 주당 1만5천400원으로 높여 하나금융과 DBS를 물리치고 하나은행을 차지했다. 국민은행은 외환은행을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인수했다는 지적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거 한미은행 매각 당시 주가 순자산비율(PBR)은 1.95배, 제일은행은 1.89배였던 반면, 국민은행의 인수가격은 이 수치가 1.76배로 훨씬 낮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이 제일은행이나 한국씨티은행보다 규모가 크고 포트폴리오도 독점적인 부분을 갖고 있어 인수가격 자체는 오히려 예상보다 낮았다는 설명이다.
고가 인수의 덫, 줄이어 대기
금융권에서는 가계금융 중심인 국민은행과 기업금융 중심인 외환은행의 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반대의 분석도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가계금융 위주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금융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가계금융과 기업금융의 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지나친 조직 비대화로 인한 비효율성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구조조정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지난 6월22일에는 대우건설의 인수자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결정됐다. 금호아사아나그룹이 써낸 인수가격은 6조6천억원. 채권단 보유지분 72.1%를 전량 이수하는 조건으로, 입찰에 나선 5개 컨소시엄 가운데 최고가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인수로 단숨에 재계 8위, 건설업계 1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다음 날 대우건설 인수기업인 금호산업의 주가는 무려 8.16% 급락하며 20일 최저가를 기록했다.
같은 날 대우건설 주가도 5.26% 하락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대우건설의 향후 전망이 밝지 않다는 시장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고가 인수 후유증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만 해도 2조원대로 평가되던 대우건설 인수가는 주가 상승과, 채권단의 매각 규모 확대 등으로 2배 이상 뛰었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출혈경쟁으로 인수가격이 당초예상보다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김영진M&A연구소장은 “전체 인수대금 가운데 4조원 가량을 콘서시엄에 들어온 재무적 투자자들이 넣게 된다”며 “대개 재무적 투자자들은 연 10% 정도의 수익률이 보장되어야만 들어오는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앞으로 이 정도 수익률을 맞춰주는 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무적 투자자들에 대한 배당과 이자로 지급해야 하는 비용만 대우건설의 1년 영업이익 4천억원을 넘는 4천~5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건설 인수 후 2년 동안 주요 자산을 매각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것도 큰 변수다. 이에 따라 향후 2년간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매가 제한이 풀리면, 서울역 대우빌딩과 베트남 호텔 등 보유 자산을 매각해 현금 흐름에 숨통을 틀 수 있게 된다.
과열경쟁 양상을 빚던 LG카드의 경우, 매각 방식이 공개매수로 결정될 경우 인수 가격이 더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M&A업계에서는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대기업들이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M&A 시장에 대거 뛰어들고, 중견업체들이 무리한 자금 동원을 통해 인수가격을 올릴 경우, 실제로 승자의 저주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향후 진행될 현대건설, 대우조선, 대한통운, 동아건설, 쌍용건설 등의 매각 과정이 결코 순탄치 많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
[기고] 공공의 적과 승자의 저주 [중앙일보] 노동조합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가 잘 정비된 나라일수록 역설적으로 실업률이 높다. 베커 교수는 이를 '승자의 저주'로 표현했다. 종국적으로 승자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승자의 저주는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다. '분열의 정치'일수록 그렇다. 위정자에게 대립구도는 지지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정치적 수단이다.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구악을 일소하고 기득권층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 국민은 솔깃하다.
이런 작업은 통상 개혁으로 포장된다. 때로는 대중의 분노가 '개혁의 땔감'으로 쓰인다. 위정자는 손가락을 들어 저기가 '악의 소굴'이라고 찍어 주면 된다.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대중은 누군가에게 화살을 돌려 자신의 처지를 위무 받으려 한다. 위정자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10년 동안 개혁 장사만 해도 먹고살 수 있다"는 한 여권 인사의 말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강남.서울대.삼성은 이제 '공공의 적'이 되다시피 했다. 부동산으로 치부해 서민에게 박탈감을 안겨주고, 입시 과열로 학부모의 등을 휘게 했으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사회세력화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남 사람은 투기세력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떠받치는 중산층의 구성원일 뿐이다. 서울대는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인재의 산실이다. 삼성은 나라 살림을 살찌우는 글로벌 기업이다. 변칙과 반칙이 능해 글로벌 기업이 된 게 아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것은 삼성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X파일은 수구언론과 재벌, 구정치인을 한 번에 낚을 수 있는 꽃놀이패다. 불법 도청 자료의 증거 능력을 부인하는 '독수독과(毒樹毒果)론'을 모를 리 없건만 국민의 알권리를 앞세운다. 미국의 경우를 보자. 닉슨은 불법 도청으로 중도하차한 초유의 대통령이다. 당시 도청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불법 도청으로 민주당이 어떤 피해를 봤는지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닉슨의 탄핵 사유는 국가공권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그 자체였다. '혐의'만으로 당사자를 국감 증인으로 세우겠다는 호기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편 가르기는 인과관계의 도치로 정책 혼선을 유발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양극화 문제다.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분배를 중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양극화는 저성장의 결과다. 우리의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1%의 성장률 감소는 7조원 이상의 소득 '기회 손실'을 유발한다. 국내총생산 중 월급의 비중을 45%로 잡으면, 1% 저속성장으로 연간 3조원의 월급이 날아간다. 이는 연봉 2000만원의 일자리 15만 개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경기가 악화되고 사람값이 떨어진다. 분배 논쟁은 사회안전망 구축을 요체로 하는 빈곤대책으로 대체돼야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배 아픔의 해소가 아닌 빈곤해소이다.
국정의 반환점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생활 형편의 개선이다. "경제가 늘 국정 제1순위"였다는 항변은 공허할 뿐이다. 경제는 결과로 말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정치 과잉과 이념 과잉이 투자심리와 기업가정신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경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심리'와 '흐름' 그리고 '유인'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불확실성을 없애 경제심리를 안정시키고 경제자원의 흐름이 순조롭도록 시장친화적 경제정책을 구사하면 된다. 그리고 시장 기회를 포착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완화하면 경제는 활력을 얻게 된다.
참여정부에 허용된 시간은 많지 않으며 노령사회가 코앞에 닥쳤다. 이제라도 실사구시정책을 펴야 한다. 있지도 않은 공공의 적을 가공으로 만들어 공격하면, 승자의 저주를 부를 뿐이다. 조동근 명지대교수.경제학
3.
2004/4/3(파이낸셜) [여의도칼럼] ‘승자의 저주’/정홍주 성균관대 보험문화연구센터장·경영학부 교수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승자가 되면 손해를 본다. 주식, 부동산, 경품 등의 입찰에서 최고가를 제시한 자에게 낙찰되지만 그는 내재가치를 초과하여 제시한 가격으로 인해 실제로는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최초의 주식공모(IPO) 가격 또는 부동산분양 가격은 시가보다 낮게 저평가 발행된다. 즉, IPO에서 최초투자자(낙찰자)의 손해를 보전해 주기 위해 최초 공모가격은 내재가치 이하로 제시된다.
아파트, 주상복합건물 등 부동산 분양시장에서 볼 수 있는 매우 높은 경쟁률은 시가보다 낮은 분양가격에 기인한다.
당첨되면 소위 ‘대박’이 가능한 시가 이하의 분양가격은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함이다. 최고가 낙찰방식을 채택한다면 낙찰자들은 큰 손해를 피하기 어렵다. 사업자에 비해 정보량이 많지 않고 경쟁적이며 또한 쉽게 흥분하는 개인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승자가 손해 보는 현상은 노동시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시카고대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 교수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강한 나라일수록 실업률이 높다. 노동조합이 강하면 기존 노동자의 근로안정성은 보다 강화되지만, 이로 인해 사용자들은 보수적 신규채용 태도를 취하게 된다.
청년노동시장의 높은 실업률은 중장년 노동자의 취업률을 초과하게 되고 결국 국가전체의 실업률을 높이게 된다는 것이다. 심하게 말해서 아버지는 일하고 두 아들이 노는 구조가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져야 한다. 기존 근로자의 해고가 용이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규 근로자의 채용이 용이해진다.
베커의 주장이 옳다면 실업률을 낮추는 기본방향은 단순하다. 즉, ‘승자의 저주’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동조합은 스스로 몸을 낮추며 사업자들을 상대로 지나친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 사업자들이 보다 부담 없는 가운데 신규채용을 확대하면 된다.
오늘날 세계경기는 회복국면에 진입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업률은 여전히 높다. 그중 우리나라는 특히 높은 편이다. 또한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이 지적하는 최대의 경영리스크는 노사분규라고 할 정도로 노동시장은 불안하다.
한국기업들이 중국, 인도,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한다. 이런 해외진출 국내기업 중 현지적응 실패로 큰 손해를 본 기업도 적지 않다. 결국 서로에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많은 기업이 국내에 있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일하는 구조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일 없듯 국내 노동조합의 강성화에도 나름대로 배경이 있을 것이다.
소위 세계의 공장인 차이나 쇼크의 직격탄을 한국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받고 제조업과 공장 일자리를 빼앗긴다. 또한 세계 최고수준인 한국의 정보통신기술은 한국의 서비스업에도 일자리를 축소한다. 기업의 사무자동화와 개인생활의 정보화, 즉 인터넷뱅킹, 인터넷교육, 인터넷쇼핑 등은 한국이 세계 최고로 앞서간다.
따라서 제조업·서비스업, 육체노동·정신노동 가릴 것 없이 일자리가 감소한다.
노동수요가 감소하는 가운데 노동공급량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으로 대학교 설립이 자유화되고 대졸자가 급증했다. 또한 과거 가정에 머물며 남성과 보완적 역할을 하던 여성들이 사회활동증가 및 취업기간 장기화로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경합적 관계로 전환했다.
주택가격 불안, 인구 노령화, 사교육비 과다, 대형재해 빈발 등으로 한국인의 노동공급 욕구는 강화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불안정한 금융시장 및 금융기관 그리고 기업의 취약한 재무구조는 경영환경변화에 민감하다. 리스크는 더 많은데 리스크를 보유할 능력은 오히려 더 부족하다. 따라서 탄탄한 선진국 기업들은 흡수할만한 외부환경변화에 한국기업은 취약하다.
이 상황에서 신규 투자는 적지 않은 위험이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지는 구조에서 노동조합의 활동은 자연 경직화된다.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가 변해야 한다. 그러나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공급자가 우선 변해야 한다. 노동, 제품, 교육, 의료, 언론, 행정 등 모든 부문 공급자들이 스스로 몸을 낮춰야 한다.
소비자의 세계화, 소비자 주권시대가 전개되는 가운데 공급자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 패자 내지 ‘저주받은 승자’가 된다.
2004/4/13(한국)
4.
기업인수·합병(M&A) 시장에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는 말이 있다. M&A에 성공한 기업이 가격을 너무 높게 지불함으로써 M&A 성공 뒤에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가리킨다.
1990년대 초에 있었던 AT&T의 NCR 인수가 대표적인 예다. AT&T는 1991년 3월28일, NCR을 74억8000만달러(주당 110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는 AT&T가 당초에 제시했던 85달러보다도 29.4% 높은 수준이며, M&A 계획이 발표되기 전의 48달러보다는 130%나 뛴 가격이다. AT&T는 이렇게 비싸게 NCR을 인수해 93년부터 96년까지 30억달러 가량을 손해 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를 전후해 ‘승자의 저주’ 함정에 빠진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일은증권을 인수한 제일은행, 대구종금을 인수했던 태일정밀 등이 경영위기에 빠졌다. 지금도 비싸게 산 자회사 때문에 골치를 앓는 기업이 있다.
기업들이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은 경영자들이 과거의 성공으로 지나친 낙관주의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인수 대상 기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내가 인수하면 시너지효과를 발휘해 높은 경영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통제에 대한 환상)이 시장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사들이게 된다.
소니가 삼성전자에 밀리고, 포드가 GM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GM이 다시 경영위기에 빠졌으며, 복사기의 대명사였던 제록스가 경쟁에서 뒤쳐진 것도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지금까지의 성공이 너무 강해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예스맨’ 조직이 고착돼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데 늦었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 함정은 주식시장에서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주가가 많이 올라 주식으로 돈벌었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주가의 추가상승에 대한 자신감이 확산될수록 함정은 많아진다.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번번이 깨고 주가가 계속 상승하면 조심해야 한다는 신중론의 목소리는 적어지고, 강세론자의 주장은 더욱 강해진다.
올들어 ‘비관론자’로 여겨지던 임송학 전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과 유동원 씨티그룹글로벌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중도하차한 것은 그런 조짐의 하나로 여겨진다. 코스피지수가 연말에 1400을 넘고 내년에는 1600에 도전할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이 대세(마켓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주가는 일치된 견해와 반대로 움직였던 적이 많았다.
주가는 상승탄력을 받으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지금 안 사면 늦을지 모른다’는 조급증이 주식매수로 이어져 상승이 가파르다. 하지만 ‘뛰어들기 승차’가 위험한 것처럼, 빠르고 화려한 시세는 급락이란 가시를 품고 있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주가가 오를 때는 상승의 혜택을 맘껏 누리되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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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규제, 멍드는 금융
5.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협상 기술이 필요하다. 정부나 기업의 협상 전문가가 아니라도 협상의 심리학이나 협상의 핵심전략 정도는 알아두어야 약삭빠른 장사꾼의 먹잇감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물며 국가의 운명을 거머쥐고 강대국과 벌이는 협상은 그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최근 한반도에서 미국을 상대로 담판을 벌이는 두 협상은 협상의 교과서에 실릴 만큼 훌륭한 사례를 보여준다. 그 하나는 북한이 핵무기를 거머쥐고 미국과 벌이는 벼랑 끝 협상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이 “집착”하는 자유무역협정 즉 FTA라는 것이다. 협상의 심리학이나 전략이라는 측면에 제한하여 말한다면, 협상 관련 서적을 조금만 뒤적여 보아도 하나는 협상의 본보기가 될만한 사례이고 하나는 협상의 기본원칙조차 무시한 가을바람에 새털 격인 이상한 게임임을 알 수 있다.
이 협상의 게임을 느긋하게 즐기기에는 속이 편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협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봄을 가져 올지도 모를 북한이 벌이는 협상은 현재 진행 중이고 ‘선진국 도약의 발판’이 되게 할 수도 있다는 한-미 FTA는 8차 협상을 마치고, 3월 19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리는 고위급 회담만 남겨두었다. 북한의 협상은 초반전으로 협상 게임의 전 과정을 분석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한-미 FTA협상은 고위급 회담만 남겨두었으므로 지금이 바로 이 협상을 분석하고 학습하여 그 결과를 고위급 회담에 반영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이다.
성공적인 협상은 심리전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유능한 협상자는 협상 테이블에서 승리하는 동시에 상대도 승리했다는 지속적인 느낌을 들게 해 주어야 한다. 서투른 협상가는 상대가 졌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협상에서 많은 양보를 하면 상대방은 기뻐하기보다 ‘저주’한다. 사람은 어떤 합의에 이를 때마다 좀 더 얻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하게 마련이다 즉 “승자의 저주”가 존재한다. 미국은 “승자의 저주”로 지금 괴로워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너무 쉽게 양보해 버린다면 협상자들은 그들을 사랑스럽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보기보다 멍청이나 봉으로 간주해 버린다. 흥정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결코 아니다.
협상 전문가는 ‘협상의 성사 여부에 너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라’라고 당부한다. 양보와 관련하여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양보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한미 FTA는 한국이 ‘섣달에 장가들고 정월에 아들 재촉하듯’ 서둘렀다. 그것은 협상을 요청하며 먼저 미국이 요구한 ‘협상을 위한 4대 선결 조건’을 들어준 것에서 비롯되었다. 한미 FTA 협상 4대 선결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약값 재평가 제도 개정안을 취소하고 미국의 압력에 '약값 인하'도 중단하였다. 둘째,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한국 정부는 2006년 1월 26일 축소를 발표하였다. 셋째, 광우병 파동 때 금지된 쇠고기를 2006년 1월 13일 다시 수입하였다. 넷째,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강화 방침을 취소하며 2005년 11월 6일부터 수입차 적용을 2년간 미루기로 했다. 이는 협상전문가가 이야기하는 “좋은 출발을 위해서 유인책을 제공하라”라는 의미를 잘못 받아들인 대표적 오류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의 협상전문가들은 우리가 협상을 위한 4대 선결조건을 받아들이자, 한-미 FTA에서 추가적인 조정의 여지가 상당히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협상은 자신의 의지에 대한 테스트이자, 아무리 단편적인 가치라도 놓칠 수 없는 전투이다’. 협상에서 한쪽이 어떤 틀 속에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가 에 따라 상대방은 어떤 행동을 할 것 인지를 결심하게 된다.
협상의 핵심전략은 먼저 ‘협상을 통한 합의안에 대한 최선의 대안’(BANT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즉 협상이 실패 했을 때 한쪽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 얼마나 강력한가에 따라 협상력이 정해진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핵무기”라는 강력한 대안을 마련해 두었지만, 우리는 한-미 FTA 협상을 하기 전에 정부, 정치권, 및 언론에서 이를 만들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 협상에서는 협상 실패 시 강력한 대안을 가지지 못하면 협상을 주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협상을 수용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한-미 FTA협상에서 우리가 가진 ‘협상 실패 시 최선의 대안’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를 비밀이라고 생각한다면 협상의 기본도 모르는 것이다.
어떤 협상이든 유보가격, 즉 협상 포기 한계선을 미리 정해두어야 한다. 그런데 한-미 FTA 협상은 ‘협상 가능영역’을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양보를 계속하는 정황으로 볼 때 유보가격 조차 정해두지 않고 협상을 시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협상에서 필요한 제일의 덕목은 인내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범 아가리에 날고기 넣듯” 준비도 없이 협상을 시작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내심마저 갖지 못하고, 유보가격조차 포기하며 조바심을 낸 것은 아닌가 반문해 보아야 한다.
협상을 계속하면서 지속적인 평가와 준비, 즉 학습을 위한 계획이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 평가는 협상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이므로 협상가가 활용하는 전술의 일부로 삼아야 한다. ‘상대방이 내 의도대로 게임을 하고 있는가’, ‘누구의 관점이 협상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물어 보아야 한다. 8차에 이르는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을 겸허하게 듣고 평가하는 과정은 없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게임을 숙달하는 기본이다”라고 협상 전문가가 말한다.
이번 한-미 FTA 협상에 들어간 외교관들은 협상의 체결을 위해 지나친 몰두와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자신감과 몰두는 협상과 같이 어렵고 불확실한 모험을 감행할 때 용기를 준다. 그러나 지나친 자신감과 몰두는 무모한 짓을 하게 한다. 그들은 자신의 경력관리에 가장 도움이 되는 집단을 위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아가 패배를 견딜 수 없어 하고, 협상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지 않으며, 협상체결에 대한 강한 욕구가 경제적 분별력을 압도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했다. 자신에게 그러한 반성 능력이 설사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었어야 했다. 동의에 기초하지 않은 협상자에게는 불패신화가 존재하며, 리더들이 모순된 증거로부터 차단되어 있으며, 구성원들이 오직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는 집단사고의 징후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한-미 FTA 협상은 국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분열되어 있다. 따라서 다양한 이해 관계의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를 먼저 요구해야 했다.
한-미 FTA 협상은 거래와 관계를 혼동하여 협상이 진행 되었다. 협상은 상호승리 (win-win) 게임인 통합적 협상과 상호경쟁(win –lose) 게임인 배분적 협상이 있다. 한-미 FTA 협상은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우선시 되는 협상이라기보다는 거래를 위한 배분적 협상이다. 그런데 외교통상부는 한국의 미국에 대한 관계를 고려해서인지 줄곧 양보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배분적 협상에서 거래를 통해 상대방이 크게 당하면 불신과 정보공유 거부의 악순환이 야기된다. 오히려 협상을 통해 관계를 강화하려면 섣부른 양보를 피해야 했다. 국민이 한국의 안보를 가장 위협하는 국가로 미국을 지목하는 것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계속된 미국의 지나친 요구와 정부의 무분별한 양보가 낳은 결과일 수 있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협상의 기법을 충분히 활용했다. 주저하는 협상자로 4대 선결조건을 요구했으며, 무역촉진권한 만료시기인 3월 말이라는 시간 압박전술과 의회에 보고하고 협의하는 상위권한 이용전략을 충분히 활용했다. 반면 한국은 총체적 전략, 전술의 부재를 보여 주었다. 국회와 협상과정을 협의하지 않았으며, 의회에 체결의사를 통보할 의무도 지지 않으며, 의회의 체결 동의 시한조차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 협상은 협상의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채 진행되어, 이미 너무나 많이 양보한 것을 되돌려 놓을 수 없기에 이제는 이 협상을 철회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이 협상이 체결된다면 이는 다음 정권 때 반드시 청문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한-미 FTA 협상은 ‘투자자 국가 소송제”의 “제외해야” 에서 “할 수도 있다”등 있을 수도 없는 후퇴를 거듭함으로써 선진국으로 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경제 몰락의 발판이 될 것이다. 현 정권뿐만 아니라 국회도 책임을 내버린 반성을 해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기득권 세력의 협상에 대한 찬성만을 홍보할 것이 아니라 반대자의 목소리도 실어 그것이 충격과 놀라움이라는 플린칭(flinching) 효과를 내게 하여 협상에 힘을 실어 주었어야 했다. 그래야, 미국은 그들이 요구한대로 순순히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며, 한국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은 우울한 게임이다. 전 국민이 즐길 수 있는 명승부의 게임이 아니라 협상의 기본 원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허술한 게임이다. 정말 프로게이머가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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