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6장 1-11절
찬송가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호세아서의 후반부인 4-14장은 북이스라엘 백성의 심각한 타락에 대한 지적과 경고, 용서와 회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호세아 5장에서 여호와께서는 사자처럼 이스라엘을 찢으시고 전염병으로 그들을 치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6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찢으셨으나 다시 낫게 하실 것이고, 여호와께서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를 힘써 알며 그분께로 돌아가야 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기회(1-3절)
(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1-3절은 호세아서의 전체 주제를 드러내는 핵심 단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1-3절이 선지자의 선포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와 각성의 고백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선지자의 선포로 보는 것이 적합합니다. 선지자는 암울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소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힘차게 선포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 힘써 하나님에 대해 알자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겠다는 내용입니다.
(3A)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알자’에서 ‘알자’라는 원어는 단순한 지식뿐만 아니라 인격적, 경험적 지식을 함께 아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얻는 여호와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얻는 인격적인 친밀함을 모두 포함합니다.
예를들어, 교역자가 교우들의 주소와, 연락처, 가족관계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교우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교우와 만나 함께 시간들을 보내면서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고, 본인이 살아온 환경은 어땠는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요즘 힘든 일이나 기도제목은 무엇인지, 본인의 습관은 무엇이 있는지 등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 이러한 세세한 부분들까지 잘 알고 있어야 어느 정도 그 사람에 대해 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성경에 나와 있는 지식에만 그쳐 하나님을 알아서는 안되고 우리가 매일 매일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힘써’라는 단어는 ‘뒤쫓다’, ‘따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여호와를 좇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우리가 여호와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따르자’라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여러 일들 속에서 참 분주히 살아가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예배화, 예배의 생활화’가 되어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고 그분이 가신 길을 묵묵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모습이 우리의 가정, 직장,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3B)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새벽 빛 같이 어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은 변함없이 영원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비, 늦은 비’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보통 ‘이른비’는 10-2월 사이에 내리는 강수량이 많은 비로 곡식의 파종에 매우 필요한 비를 가리키고, ‘늦은비’는 3-4월 사이에 내리는 비로 추수하기 전 곡식을 여물게 하는 유익한 비를 가리킵니다.
이와같은 비유는 햇빛과 비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함없이 신실하시며, 가장 필요한 순간마다 나타나 일하시는 분임을 확신하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간절히 기대하며 소망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건강, 물질, 자녀, 직장, 인간관계 등 많은 것들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삶 속에서 때 마다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러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4-6절)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인데, 그들이 할 일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사나 번제가 아니라 진실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임을 선포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섬김보다 바른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교제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대할 때 속마음을 잘 숨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분명히 잘 아십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경건의 모습에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4장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인과 그의 아우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과 아벨은 똑같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제물을 드렸습니다.
(창 4:4-5)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그의 제물만 받으셨고 안받으셨다는게 아니라 누구와 누구의 제물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하셔서 제물 자체만을 보고 받으시는게 아니라 바로 제물 드리는 당사자의 중심을 함께 보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누구와 누구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는 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순간 뜨거워 보이는 회개와 예배가 아닙니다. 감정의 자극을 받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뜨거운 믿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지만, 위기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식어지는 신앙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이것저것 다 따르는 가운데 예수님도 따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회개는 가벼운 후회의 눈물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을 전적으로 바꾸는 완전히 돌이키는 행위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겉모습뿐인 뉘우침으로 하나님을 결코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받아 주십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심판을 피하지 못함(7-11절)
(7-8)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이미 5장에서 하나님이 책망하시고 경고했던 내용들이 6장에서는 심화되고 다시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역했는지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길르앗은 피로 물들고, 심지어 제사장 무리는 강도떼와도 같이 세겜으로 가는 길에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인명과 지명을 언급하시며 그들의 죄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고 이방 나라들의 도움을 구했던 어리석은 이스라엘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 내 계획보다 당연히 위에 두며 ‘우리들의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나안’을 바라보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에 힘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인 1-3절 말씀을 읽으며 말씀의 끝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기도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을 더 이상 두려워 할줄 모르며 우상을 섬겼던 어리석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찢으셨으나 낫게 하시며 치셨으나 싸매어 주신다는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참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더욱 정직하고 진실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 어떤 일보다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여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기를 힘쓰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 내 계획보다 당연히 위에 두며 ‘우리들의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나안’을 바라보며 살아가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