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말하는 하멜 표류기 설명(일본어)
에도시대, 오란다인이 본 반도 사람들(조선)의 리얼한 생활에 경악 !
'조선유수기(朝鮮幽囚記)'로 보는 반도(조선)의 진실. ※ 幽-그윽할 유/囚-가둘 수
1655년 제주도에 파선하여 온 하멜 표류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제주도 산방산 앞에 하멜표류 유적지가 있습니다)
※ 오란다人 - '오란다'는 옛날 일본에서 네덜란드 사람을 칭하는 말입니다.
【衝撃】江戸時代・オランダ人が見た●●半島の人々のリアルな生活に驚愕!「朝鮮幽囚記」から見る半島の真実 - YouTube
<간단 요약 발췌>
- 하멜은 네덜란드인으로 회계관계의 일로 무역선에 승선했었다.
- 1655년 무역선이 파선하여 제주도에 상류했다. 65명의 승선인 중 36명이 사고를 당했다.
- 조선관아의 보호..라고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구속 당했다. (그 당시 외국인을 대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듯)
- 본국으로 보내 달라고 했으나 무시 당했다.(그 당시 교통편 마련에 엄두가 나지 않았을 듯)
- 종주국인 청국에서 사신이 오자 하멜 등을 감추었지만, 몇 사람이 몰래 빠져나가 청국사신에게 본국에 보내달라고 애원,
그러나 조선은 청국 사신을 매수하여 그 사람들을 몰래 처형했다.
- 그 후로 조선의 노예 생활이 시작됐다. 당시 조선시대는 권력자 맘대로의 독제정권이었다. 벼슬아치에게도 보수를 주지
않아 그들은 자기 집 노예들을 혹사시켜 살았다.
- 당시 백성들의 삶은 서로 훔치고 속여 먹는 생활이 다반사였다. 장기간의 그러한 생활은 결국 '민족성' 化 되었을 것이다.
- 전염병을 싫어해서 전염병 환자는 산속 오막살이 집에 격리시키고 누구도 찾아가지 않았다.
- 남존여비 사상이 심해서, 아내를 사소한 문제로 내쫒는 예가 많았고. 아이까지도 딸려 내보냈다.
- 아내를 죽여도 그럴 듯한 사유가 있으면 처벌하지 않고 무시됐다. 한류 드라마에서 보는 그런 로멘틱은 텍도 없었다.
- 비위생적 생활, 굶주림, 혹독한 감시와 작업에 참다못해 죽는 사람이 많아 16명만 살아남아 탈출하였다.
- 일본 고도렛도(五島列島)에 착륙하여 구원을 요청했다. 일본 에도막부가 조선에 남아있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여
하멜과 함께 그들을 본국에 귀국시켜 주었다.
- 그 후 하멜이 표류기를 썼는데... 당시 조선인들은 가난과 빈곤은 '중국과 일본의 침략 탓'이라고 했다며, 자기 나라
빈곤을 남의 나라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일본 침략은 1592년부터 5년간 뿐이었는데, 70년이 흐른 1660년까지도
일본 탓을 하고 있었다.
- 당시 이씨조선 백성들은 서로 속이고, 도둑질을 일삼아서, 그 사람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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