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암 신경준의 여암유고 번역본
들어가기 전에(Prologue)
2023년 1월 4일(수) 저녁 고등학교 선배님이자 산경표를 지으신 여암 신경준 선조님의 직계 장손인 신청호님께서 먼친척임에도 잊지 않고 나에게 보내주신 책이다 영원히 잊지 못할 감격이다
곧 바로 문자나 전화로 고마움을 보내드리려고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불쑥 문자를 보내드리기 송구해서 일단은 책 겉표지에 나와 있는 영조의 여지도 소서를 읽으며 산경표 내용이 있는 책이 여지도라는 것을 확인할수 있었고 부연하여 박용수님의 산경표를 같이 검토하며 조상님께서 지으신 유고집을 밤을 지세우며 읽고 또 읽는데 이글을 쓰기 위해 수박겉핥기식으로 읽을 수밖에 없어 송구한 마음이다
앞으로 시간이 허락한다면 원문과 번역문을 일일이 타자하여 그 내용을 널리 전파하고자 한다
여암 신경준의 여암유고
번역 : 경기대 문학박사 이기범
발행처 : 순창문화원
발행일 : 2022. 11. 30
저자 : 신경준
자 순민 호 여암 생몰 : 1712~1781(69세) 본관 : 고령
조선조 숙종38년(1712) 전북 순창읍 남산대에서 태어났다 순창의 명문가인 고령신씨로 신장의 오형제중 삼남이며 신숙주의 막내동생인 신말주의 10세손이다 조선후기의 문신 실학자 동부승지 병조참지가 되어 팔도지도와 동국여지도를 완성하였으며 실학을 바탕으로 한 고증학적 방법으로 한국의 지리학을 개척했다 그는 시인 문인이며 공학자 실학자 언어학자 지리학자 등 통달하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주요저서로는
운해훈민정음 일본증운 언서음해 평측운호거 거제책 병선책 수차도설 논선거비어 의표도 부앙도 소사문답 직서 장자변해 강계지 산수경 도로고 산수위 사연고 군현지제 동국문헌비고 여지고 산경표가 수록된 여지편람 등 등이 있다
그동안 내가 일부나마 읽은 것은 소사문답, 장자변해, 도로고, 여지고이며 여지편람중 건책인 산경표는 내 전공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번역하여 그대로 답사까지 한 산경표전문가라고 자처하고 있다
운해훈민정음은 송학 시조의 한사람이라는 소옹의 황극경세성음도를 본보기로 하여 일종의 운도를 만들려고 전개한 이론으로서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깊이 문자론을 전개한 학술적인 업적이었다
동국문헌비고 내의 여지고에서는 산경이라는 이야기는 없으며 산천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히려 산수고에서 산경이라는 용어로 표현이 된다
산경은 말안해도 수경을 포함하니 산천이나 산경은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산경표가 동국문헌비고의 여지고에 있다는 이야기는 약간의 착오가 있는 것 같다
산경표는 신라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백두대간을 그 기둥으로 삼고 거기에서 파생된 산줄기 강줄기 등을 있는 그대로 파악해서 조선조 여암 신경준이 1769년 영조의 명을 받아 옛부터 발달해온 군현읍지도와 지리서를 근간으로 하여 그 때까지 축적된 지리학적 지식과 정보를 학문적인 체계를 갖추어 족보형식으로 편찬한 우리나라의 지리정보 종합서다
이런 산경표는 박용수의 산경표를 보면 동국문헌비고를 집필하기 1년전인 1769년에 쓰여진 여지편람중 건책이 산경표라고 한다 그 내용은 여지고 산수고 여지편람 전부 신경준이 편찬하였으며 기술 형식만 다를뿐 그 내용은 전부 같다고 볼수 있다
여지편람내 제목이 아예 산경표라고 기록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산경표라는 용어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누구라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고유명사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야 할 그 어느나라에도 없는 우리의 지리인식체계를 만천하에 알릴 소중한 자료이므로 어느 개인은 물론 나라에서도 글자 한자 바꿀수 없는 것이다
고로 현존하는 산경표가 들어간 이름을 달고 있는 모든 저서는 위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내용을 주장하는 개인 개개인의 생각일뿐이며 그런 내용을 책으로 내서 혹세무민해서는 안될 것이다 누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지명과 산줄기의 흐름 등 지리인식체계를 어느 개인 한사람이 지형도를 보고 단시간에 만들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루 속히 정리를 해서 본래의 산경표로 돌려주어야할 사항인데 산악인 지자체 정부 등 등은 그 심각성을 전혀 인식을 못하고 오히려 인용하고 시설물을 만들고 부추기는데 일조를 하고 있어 그 폐해의 심각성이 너무 커서 어디서부터 고쳐야될지 고민이 깊어진다
일갈하고 다시 원위치하여 여암유고집을 소개하기에 앞서 그의 세보를 잠깐 살펴보자
高靈申氏歸來亭公派世譜 (旅菴 申景濬과 紫霞 申京秀를 중심으로 발췌)
1세 시조 成用 : 고려 중엽 그전에는 고려 개국공신 평산신씨 신숭겸이었음 묘소는 경북 고령군 쌍림면 산주동 가야기맥 만대산
2세 康升
3세 仁材
4세 思敬
5세 德鄰 묘소는 전남 곡성군 오산면 가곡리 호남정맥 연산
6세 包翅 묘소는 上同
7세 檣 묘소는 경기도 파주군 어동면 검산리 한북오두지맥
8세 孟舟 仲舟 叔舟 묘소는 충북 청주시 문화재로는 보물613호 문충공 보한제 영정 松舟 末舟 묘소는 전남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 광암 선영 호남설산단맥 매봉산 선영, 설부인과 씽묘, 장인장모 쌍묘도 인근에 있음 문화재로는 보물728호 서예가 화가 배 설씨부인 권선문
9세 洪 묘소는 전북 순창군 순창읍 남산대 호남아미단맥
10세 公濟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군 부곡리 한북오두지맥
11세 遂
12세 碩潾
13세 拺 : 신경준과 신청호로 직계자손으로 이어짐 潝 : 신경수로 방계자손으로 이어짐
14세 克淳 : 이계공 공제파 尙深 : 주부공 상심파
15세 澐 楺
16세 善泳 時棖
17세 淶 檢
18세 景濬 묘소는 전북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호남무이지맥 섬진강변 공적비는 전남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 광암 호남설산단맥 매봉산 應澄
19세 浩權
20세 宇祿
21세 賢模
22세 鳳求
23세 鐘休
24세 澤雨 묘소는 전남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 광암 호남설산단맥 매봉산
25세 元植 묘소는 전남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 광암 호남설산단맥 매봉산 석실묘 형 병식 묘소는 전남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 광암 호남설산단맥 매봉산
26세 淸浩 : 여암 신경준의 직계 장손 여암유고집이 나오기까지 실제적인 업무를 관장함 善浩 묘소는 전남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 광암 호남설산단맥 매봉산 석실묘 대동아전쟁 강제징집 참전 후유증으로 44세때 의료사고 사망 신숙주의 후손으로 민속사학자이자 독립투사인 단재 신채호와 같은 항열
27세 京秀 산줄기연구 및 답사가 산경표 번역 실제 남한의 모든 산줄기 답사중 제 種秀 선교사
28세 熙健 계리사
29세 0圭
30세 鐘0
31세 0永
32세 相0
33세 0燮
34세 在0
35세 0鐘
위 세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경준은 시조부터 8세손인 신말주의 10세손이며 시조부터는 18세손이고 그의 직계 종손인 신청호는 18세손이며 시조부터는 26세손이고 신경수는 방계로 19세손이며 시조부터는 27세손이다
참고로 민족사학자이자 독립투사인 단재 신채호는 8세 신숙주의 집안으로 시조부터 26세손이다
여암유고집은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신경준이 집필한 원고들을 모아 1910년에 그의 직계 후손인 신익구 등이 활자로 간행한 책을 이번에 이기범 경기대 교수가 번역하여 순창문화원에서 2022년 11월30일 발간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순창 신경준 생가를 방문한 위당 정인보는 “신경준이 국정을 담당하는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가 일본에게 절대 패망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일본을 능가했을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1939년부터 그의 5세손 신재휴와 같이 여암전서를 간행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작품들이 발간되지 못하고 단행본으로 여러대학교 도서관에 분산 보관되고 있는 실정이며 많은 작품들이 일본의 분서갱유 등을 통해 소실되어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혹시 천재일우의 진귀한 인연으로 보존된 책자가 있다면 소장하고 계신분들의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후 1976년 다시 여암전서를 경인문화사에서 출간하였는데 그동안 빠졌던 도로고 훈민정음운해 등이 실렸으나 여전히 발간되지 못한 작품들이 많다
이번에 순창문화원에서 출간된 여암유고 내용을 큰제목만 소개하고자 하며 앞으로 시간이 허락한다면 책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순차적으로 소개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제1권
그의 절친이였던 이계 홍양호의 해제 여암유고서 시(詩) 사(辭) 서(書) 서(序) 기(記) 발(跋) 설(說) 찬(贊) 명(銘) 문(文)
제2권
잡저1 소사문답
잡저2 거제책 시칙 체 의 성 격(格)
잡저3
잡저4 순원화훼잡설
비명(碑銘) 갈명(碣銘) 묘지명((墓誌銘) 행장(行狀) 전(傳)
부록 행장 묘갈명 제문 만사(輓詞)
영조의 여지도소서 여암유고 발문 : 직계 후손인 신익구, 신기휴
꽃과 나무 곤충 등 모든 사물을 관조하며 지은 수많은 시 서 문 등 등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는 일이고
맨 뒤에 나오는 산경표와 관련된 영조대왕이 직접 지은 여지도 소서(小敍)를 풀어쓰는바 여지고는 신경준이 맡아서 편집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꼭 찝어서 확인을 해주었다
영조가 직접 지으신 여지도 소서(영조어제여지도소서)
무릇 지도가 있으면 차례와 예가 있다 이 지도는 처음에 동국문헌비고에 함께 수록하고자 하였으나 문헌통고에 이와같은 예가 없기 때문에 여러 논의를 거쳐 이 이름으로 하였으니 이름하여 여지도이다
경도의 양도로부터 팔도의 도, 리, 산, 천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모두 갖추었다 이 책의 편집은 신경준이 오로지 맡아 이룬 것이다
360주의 대소와 원근이 한번 펼치면 손바닥 펼치듯이 분명하다 간략히 전말을 기록하여 특별히 지도 위에 쓸 뿐이다 내가 즉위한지 46년 경인년(1770년) 주명절 상한에 쓰다
자헌대부 행 용양위 부사직 이최중이 이 교서를 받들어 삼가 쓰다 그때가 1770년이다 산경표는 그 전 해에 지은 여지편람 내에 있으니 여암 신경준이 1769년에 집필했음이 틀림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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