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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가난으로 찌든 손가락
내가 에드문드 아저씨에게 나의 걱정들을 얘기했을 때 아저씨는 퍽 진지하
게 대해 주셨다.
"네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거냐?"
"그래요, 아저씨. 이사할 때 루씨아노가 함께 가지 않을까봐 걱정이
돼요."
"제제, 넌 그 박쥐가 너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니?"
"그럼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니? 진심으로?"
"물론이죠. 틀림없어요."
"그래? 그렇다면 그 박쥐는 꼭 함께 갈 거야. 좀 늦을지는 몰라도 얼마 후
엔 꼭 너의 이사한 집을 찾아갈 거야."
"난 벌써 박쥐에게 우리가 이사할 집의 주소를 가르쳐주었어요."
"잘했구나. 그렇다면 더욱 찾아가기 쉽겠지만 만약 가지 못한다면 그건 다
른 약속이 있기 때문일 거야. 그때는 가지 형제나 친척들을 보내게 될 거
야. 그래도 너는 다른 박쥐란 걸 눈치채지 못할거야."
그래도 나는 걱정이 된다. 루씨아노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면 주소를 가르
쳐주었어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 작은 새들이나 사마귀나 나비에게 물어서
온다면 참 좋으련만......
"제제, 걱정하지 마라. 박쥐에게는 방향을 알 수 있는 감각이 있단다."
"네? 뭐가 있다구요?"
아저씨가 방향감각이 무엇인지 자세히 가르쳐주셨을 때 나는 아저씨의 지
식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나의 고민거리가 다 없어졌기 때문에 나는 우리
가 이사가게 된다는 사실을 이웃들에게 얘기를 해 주려고 거리로 나왔다.
어른들은 모두들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제제, 너의 집 이사한다면서? 잘 된 일이구나. 넌 참 좋겠구나, 응?"
그런데 기뻐하지 않는 한 사람은 비리낑뉴였다.
"제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자주 놀러오고 사이좋게 지내자꾸나.
그리고 참! 내가 말했던 얘기 생각해 봤니?"
"그게 언제라고 했지? 비리낑뉴?"
"내일 오전 8시에 <방구>시내 오락장 앞에서야.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
으니 주인이 장난감을 한 트럭 사오라고 했다는 거야. 너도 함께 갈래?"
"루이스를 데리고 갈께. 그런데 나도 얻을 수 있을까?"
"그럼! 네가 벌써 어른이 된 줄 아니? 요 꼬마녀석아?"
그가 내 곁에 다가왔을 때 나는 아직도 어리고 작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
다. 그것도 비리낑뉴보다도 훨씬 작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얻을 수 있을까? 얻고 싶어. 그럼 내일 아침에 거기서 만나자."
나는 집에 돌아와 글로리아 누나 곁에서 맴돌았다.
"제제, 너 무슨 일이니?"
"누나! 내일 아침에 루이스와 나를 시내에 있는 <방구> 오락실 앞까지 좀
데려다주면 좋겠는데. 장난감을 가득 실은 트럭이 온대."
"제제, 누나는 내일 너무도 할 일이 많아. 옷도 다려야 하고 이삿짐을 꾸
리는 잔디라 언니도 도와야 하고 또 밥도 지어야 하고......"
"<레알렝고> 시에서 사관생도들이 많이 온대."
글로리아 누나는 루디라고 부르는 영화배우인 루돌프 발렌티노의 사진을
사진첩에 모으는 것 외에도 사관생도라면 무작정 좋아하는 버릇이 있다.
"아침 일찍 사관생도들이 오는 걸 어디서 봤니? 이 뚱딴지 같은 녀석아.
까불지 말고 나가서 놀기나 해."
누나는 때리기라도 하려는 기세로 나왔지만 난 가만히 있었다.
"누나! 난 괜찮아. 하지만 루이스에게 데리고 가겠다고 벌써 약속을 했단
말야. 루이스는 아직 어리잫아. 그만한 또래의 애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생
각만 한단 말이야."
"이 녀석아, 내가 못간다고 몇 번이나 말했니? 그리고 네 말은 모두 핑계
야. 네 녀석이 가고 싶으니 그러는 거지? 살아가노라면 크리스마스는 매년
있는 거야."
"누나! 내가 만일 죽는다면?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지 못하고 죽어버
린다면 어떻게 해?"
"넌 일직 죽지 않아. 아마 모르긴 해도 에드문드 아저씨나 베네디뚜 씨의
두배는 더 살 걸. 자, 이제 그만 귀찮게 하고 나가서 놀아, 응?"
그래도 나는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계속해서 누나를 귀찮게 했다.
누나가 일어서면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애원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애
원하는 듯한 눈은 누나에게선 언제나 좋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의자에 계속 앉아 누나가 우물에 물을 길러 가는 것을 보고 있었으며, 또
방으로 빨래감을 가지러 들어오면 침대에서 턱을 받치고 누나를 바라보았
다. 견디다 못한 누나가 폭발하고 말았다.
"제제, 너 몇 번이나 얘기해야 말을 듣겠니?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말고 나
가서 놀기나 해."
누나의 호통에도 난 그대로 버티고 앉아 있었다. 누나가 어떻게 나오더라
도 나가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기 때문에 꼼짝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누
나는 나를 번쩍 안아서 문 밖으로 나가 뒤뜰에 내려놓고는 방으로 들어가
방문과 문들을 모두 잠가버렸다. 그래서 난 할 수 없이 집안 이쪽저쪽을 돌
아다니며 창문으로 누나를 쫓아다니며 쳐다보았다. 그때 먼지를 털고 방을
정리하던 누나가 나를 보자 이번엔 창문마저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안쪽에
서 창문을 모조리 잠가버렸다. 이제 창문이란 창문은 열려 있는 곳이 없었
다.
"야, 이 악마야! 털이 빠진 러시아 고양이야! 넌 사관생도한테 절대 시집
가지 못할 걸. 난 네가 가죽 장화도 닦아 신을 여유가 없는 쫄병한테 시집
가길 빌겠어."
공연히 시간만 버린 것 같아 난 한 마디 쏘아붙이고 밖으로 나와 놀기로
했다. 길거리에 나오니 나르디뇨가 웅크리고 앉아 넋이 나간 듯 뭔가를 들
여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처음 보는 큰 딱정벌레가 성냥갑속으로 만
든 수레를 끌고 가고 있었다.
"와!"
"굉장히 크지? 어때?"
"나랑 바꾸자."
"뭐하고?"
"나한테 그림딱지가 있는데 그것하고."
"몇 장하고?"
"두 장하고."
"제제, 이렇게 큰 딱정벌레와 겨우 딱지 두 장하고 바꿔?"
"그까짓 딱정벌레는 에드문드 아저씨 담벽에도 많아."
"그럼 세 장하고 바꾸자."
"그래, 그 대신 고르면 안 된다."
"그건 싫어. 두 장 정도는 골라 가져야지."
"좋아."
내게 <라우라 라 블란따>는 여러 장 있어서 그걸 한 장 주고 나머지는 <후
드 깊슨>과 <퍼스머 루스밀러>를 골라 가져갔다. 난 딱정벌레를 호주머니에
넣고 그곳을 떠나왔다.
* * *
"빨리 해, 루이스!"
글로리아 누나는 빵을 사러 가게에 갔고 잔디라 누나는 의자에서 책을 읽
고 있었다. 난 루이스가 오줌누는 것을 거들어주고 나서, 우물가로 가서 우
리는 세수를 하고 나서 방으로 들어왔다. 루이스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양말
을 신겨주었다. 그리고 단추를 채워주고 빗을 찾아 머리도 예쁘게 빗겨 주
려 했으나 머리는 차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생각 끝에 포마드를 바르
려고 했으나 끝내 포마드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부엌에 가서 돼지기름을 조
금 손에 묻혀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약간 냄새가 나긴 해도 괜찮구나."
루이스의 머리에 돼지기름을 바르고 빗질을 하니 머리는 아주 단정해서 머
리통이 등에 양텅을 뒤집어 쓴 성 조앙같이 보였다.
"루이스! 머리 헝클어지지 않게 가만히 있어. 나도 옷을 갈아입을께."
바지와 하얀 셔츠를 입는 동안에도 나는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루이스! 정말 귀엽고 예쁘구나. <방구> 시에서 아마 너만큼 예쁜 애는 없
을 거야."
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다음 해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신어야 할 운동화를
신으면서도 동생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깜찍하고 예뻤기 때문에 마치 어릴 때의 소년 예수처럼 보였다. 루
이스는 선물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야. 동생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틀림없
이...... 글로리아 누나는 식탁에서 상을 차리고 있나 보다. 빵을 사온 날
에는 포장지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난 루이스의 손을 잡고 누나에게 다가갔다.
"누나! 루이스 아주 예쁘지? 내가 해 줬어."
난 누나가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아무 말없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볼 뿐
이었다. 누나가 고개를 내렸을 때 두 눈엔 눈물이 고여있었다.
"제제, 너도 아주 예쁜걸."
누나는 무릎을 굽혀 나의 머리를 가슴에 안으며 말했다.
"오! 산다는 것이 우리에겐 왜 이토록 힘이 드는 걸까?"
누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들의 옷매무새를 다정스럽게 고쳐주었다.
"난 너희들을 시내에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말했지? 지금도 마찬가지야, 제
제. 누난 할 일이 많아. 우선 식사를 해. 그리고 생각을 해 보자. 나는 같
이 가고 싶어도 몸치장 할 시간이 없어."
누나는 커피가 담긴 손잡이가 있는 컵을 앞에 갖다논 다음 빵을 썰었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까짓 좋지도 않은 장난감을 얻으려고 저렇게 애를 쓰다니, 그리고 그들
은 가난뱅이에게 골고루 장난감을 나누어줄 수도 없을 텐데......"
누나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래, 이러한 기회가 다시는 없을지도 몰라. 너희들이 간다고 하니 말릴
수도 없고. 그러나 어떻게 하지? 너희들이 너무 어려서 너희들만 보낼 수도
없고......"
"누나! 걱정마, 내가 데리고 갈께. 손을 꼭 잡고 가면 되잖아. <리오-상파
울로>의 건널목을 건너지 않아도 되니까."
"제제, 그래도 위험해."
"괜찮아, 누나. 난 방향감각이 있거든."
"누구에게 그런 말을 배웠니?"
"에드문드 아저씨한테 들었는데 루씨아노는 그런 감각이 있대. 난 루씨아
노보다 크니까 감각이 더 많을 거 아냐?"
"그렇다면 잔디라 언니에게 말해 볼까?"
"그냥 나둬. 잔디라 누나는 책이나 읽고 애인이나 생각하며 아무것도 상관
하려고 하지 않아."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서 그 쪽으로 가는 사
람이 있으면 너희들을 데리가 달라고 부탁할께......"
나는 늦을까봐 방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누나를 따라 밖에 나가 기다렸지
만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시간만 흘러갔다. 그때 한 사람이 지나갔
다. 우체부 빠이샤 아저씨다. 아저씨는 모자를 벗어 흔들어 보이며 누나에
게 인사를 했다. 글로리아 누나는 아저씨에게 우리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아저씨는 누나의 부탁을 들어주셨다.
누나는 동생과 나에게 차례로 볼에 키스해 주며 조금 안심이 된다는 듯 웃
으며 말했다.
"요 녀석아! 머리가 벗겨진 군인과 가죽구두가 어떻다고?"
"누나, 그건 농담이야. 누나는 꼭 어깨에 별이 여러 개 달린 공군과 결혼
하게 될 거야."
"제제, 그런데 왜 또또까 형과 같이 가지 않니?"
"또또까 형은 가시 싫대. 우리와 같이 가는 게 귀찮아서겠지 뭐."
우리는 길을 떠났다. 우체부 아저씨는 앞서 가면서 집집마다 우편물을 나
눠주며 가셨다. 그러면서 우리와 같이 가고 있었다. 한참 걷다가 <리오-상
파울로> 거리에 다다르자 아저씨는 웃으시며 말했다.
"제제, 난 너무 바빠서 안 되겠구나. 너희들 때문에 아저씨의 일이 늦어져
요. 이제 위험한 곳은 없으니 너희들끼리 저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리고는 우편가방을 메고 급히 가버렸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화가 났
다.
"바보 고양이 같은 녀석! 누나에게 우리를 데려다주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길거리에 애들을 버리고 그냥 가다니."
나는 할 수 엇이 동생의 손을 꼭 쥐고 걸어갔다. 나의 걸음도 점점 느려지
기 시작했고 동생은 벌써부터 피곤한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루이스, 힘을 내. 다 왔어. 그곳에는 장난감이 많아."
그 말을 듣고 걸음이 조금 빨라지더니 다시 처지기 시작했다.
"형! 다리 아파."
"그럼, 내가 조금만 업어 줄까?"
루이스는 팔을 벌려 나의 등에 업혔다. 그애는 마치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쁘로그레수> 거리에 오자 나도 헐떡거리기 시작해서 루이스를 내려서 걷게
했다.
"루이스, 조금만 걸어가."
그때 교회의 종소리는 8시를 알리고 있었다.
"어떡하지? 그곳에 일곱시 반까지는 가야 했는데, 하지만 트럭에 가득 싣
고 온다고 했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거야."
"형, 이제 발이 아파."
나는 동생의 발을 내려다 보았다.
"신발 끈을 조금 느슨하게 해 보자."
동생과 나의 발걸음은 더욱 느려만 갔다. 한참만에야 겨우 시장근처에 다
다랐고 또 한참 후에 국민학교 앞을 지나 <방구> 오락장을 돌아서 도착했
다.
동생과 내가 기진맥진하여 그곳에 도착하니 그곳엔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모두 자리를 떠난 후였다. 장난감을 쌌던 구겨진 포장지만
길거리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꼬끼뉴 아저씨! 벌써 선물을 나누어줬나요?"
"그래, 다 끝났다. 제제, 네가 너무 늦게 왔구나. 사람들이 홍수처럼 몰렸
었는데......"
아저씨는 문을 반쯤 내리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내 조카들에게 줄 것도 남기지 못했는걸."
아저씨는 문을 마저 닫고 길거리로 나왔다.
"제제,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다음엔 조금 서둘러서 오도록 해라. 일찍 일어
나서 말야, 알겠니?"
"염려마세요, 아저씨."
나는 아저씨에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실망이 컸으며 속았다는
기분에 슬펐으며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루이스, 여기 좀 앉아서 쉬어가자."
"형, 목말라."
"루이스, 로젠버그 아저씨 가게에서 물을 한 컵 달래서 둘이 함께
마시자."
그때서야 루이스는 비극을 눈치챈 듯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더니 눈을
하얗게 뜨고 나를 흘겨보면서 입을 불쑥 내밀어 보였다.
"루이스! 걱정하지마, 너 내 달빛 망아지 봤지? 또또까 형에게 손잡이를
고쳐달라고 해서 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께. 응?"
동생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루이스, 울지마. 넌 왕이야. 아버지가 네게 루이스라고 세례명을 주신 건
루이스가 왕의 이름이었기 때문이야. 왕이 길가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울면 되겠니?"
나는 동생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루이스, 내가 이 다음에 크면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의 자동차와 같은 아
주 멋진 차를 사줄께. 아니, 그보다 멋진 걸로 사줄 테니까 너 혼자만 갖도
록 해, 응? 자, 이젠 울지마. 왕들은 울지 않는 거야."
내 가슴은 슬픔과 쓰라림으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꼭 사준다고 약속할께. 사람을 죽인다거나 훔치지 않고 말야."
지금 하는 내 말은 진실한 마음이 하는 소리였지 결코 내 마음속에 있는
작은 새의 소리가 아니었다.
'왜 이래야만 하는 걸까? 어째서 착한 아기예수는 나를 싫어하지? 외양간
의 황소나 당나귀 새끼까지 좋아하면서 왜 나만 싫어하는 걸까? 그는 내가
악마와 같은 어린애라서 내 동생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 걸까? 만약 벌을 주
는 거라면 이렇게 천사와 같이 착한 내 동생에겐 옳지 않은 일이야. 하늘에
사는 천사들도 우리 루이스처럼 착하지는 않을걸......' 그런 생각을 하자
바보처럼 눈물을 흘러내렸다.
"형, 왜 울어.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흘리는 거야. 난 너처럼 왕도 아니잖아. 난 아무
데도 쓸데없는 나쁜 애, 그리고 못된 애,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야."
* * *
"또또까 형, 새 집에 또 가본 적이 있어?"
"아니, 가본 적 없어, 넌?"
"난 틈만 있으면 자주 가."
"그건 왜?"
"밍기뉴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야."
"밍기뉴란 또 어떤 악마지?"
"그건 내 라임오렌지나무야."
"썩 좋은 이름이구나! 너는 그런 생각을 해내는 데는 아주 천재야."
형은 빙그레 웃으면서 나의 달빛 망아지를 상상해 보는가 보다.
"그래 그 나무는 어떠니?"
"좀처럼 자리지 않는 것 같아."
"제제, 아무 때나 늘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자라지 않는 것 같은 거야.
그리고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없어. 어때, 이 손잡이가 네가 바라는 손잡이
로 됐지?"
또또까 형은 달빛 망아지를 들어보였다.
"그래 형! 형은 어떻게 뭐든지 그렇게 잘 만들지? 닭장, 새장, 울타리와
문짝까지 말야."
"제제, 그건 모든 사람이 다 나비넥타이를 맨 시인이나 박사가 되려고 태
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러니 너도 배울 생각이 있으면 배울 수 있
어."
"형, 난 못할 거야. 그런 걸 잘 하려면 소질이 있어야 되잖아."
형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에드문드 아저씨의 말씀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부엌에서는 딘디냐 할머니께서 포도주에 적신 식빵을 만들고 계셨다. 그
빵은 크리스마스 만찬에 쓸 것인데 우리집은 그게 고작이었다. 나는 또또까
형에게 불평을 해댔다.
"제제, 그것마저 없을 뻔했어. 내일 점심에 과일사라다를 만들어 주도록
돈을 주신 분도 바로 에드문드 아저씨란 말이야."
또또까 형은 오락장 앞에서 루이스와 내가 겪었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
인지 열심히 내 일을 해 주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적어도 루이스만은 내
가 쓰던 낡은 것이지만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내가 제일 아
끼고 사랑했던 달빛 망아지를 말이다.
"또또까 형!"
"응?"
"크리스마스 날 정말 우린 선물을 받지 못할까?"
"아마 못 받게 될 거야."
"솔직하게 말 좀 해봐, 형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나를 아주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나쁜 애는 아니야. 문제는 네 핏속에 악마의 기질을 다분히 갖고
있다는 것이야."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엔 그 악마가 나가 주었으면 좋겠어.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지금의 악마 소년에서 착한 아기예수가 내 마음속에 태어났
으면 해. 그렇게 기도할 거야."
"제제, 혹시 아니. 내년에라도 태어날는지. 그렇게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
고 나처럼만 해봐."
"어떻게 형?"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를 않잖아. 그래야만 기분도 상하지 않는거야. 아기
예수도 모든 사람들이 말하듯 그리 좋은 애는 아니야. 신부님도 천주교리가
가르치는 대로 꼭 실천하시지는 않잖아?"
형은 말을 잠깐 멈추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해야 좋을지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형, 무슨 소리야?"
"좋아, 말하지. 너는 장난꾸러기라서 선물을 받지 못한다고 하자. 그렇지
만 루이스는 어떻지?"
"루이스는 천사같은 애야."
"그럼 글로리아 누나는 어떠니?"
"누나도 마찬가지야."
"음...... 형은 가끔 내 물건을 빼앗아 가긴 해도 착한 편이야."
"그리고 잔디라 누나는?"
"그저 그런 편이야. 나쁘진 않아."
"그래? 도 라라 누나는 어떠니?"
"때릴 땐 아주 아프게 때리지만 그래도 역시 좋아. 언젠가는 내 나비넥타
이를 만들어 줄 거야."
"또 엄마는?"
"엄마는 너무 좋아. 나를 때릴 때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아프지 않
게 살살 때리시거든."
"아빠는 어떻구?"
"아빠에 대해선 잘 모르겠는데. 아빠는 운이 없는 분 같아. 나처럼 우리
식구들 중에서는 악마같은 사람일지도 몰라도."
"그렇다면 네 말처럼 우리 식구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구나. 그런데 왜
아기예수는 우리 식구에서 잘 해주지 않느냐 말야. 화울라베르 박사집에 가
봐. 음식이 가득 차려진 식탁이 있어. 빌라보아스댁도 그렇고 라이문드 빼
즈 댁은 말할 것도 없어."
난생 처음 또또까 형의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내 생각엔 아기예수는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만
태어났다고 생각해. 조금 자란 소년예수는 부자들만을 소용있는 사람들로
보았던 거야. 제제, 이제 이런 말은 그만해 두자. 이런 말을 하면 죄가 된
데."
형은 풀이 죽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망아지만 쓰
다듬고 있었다.
* * *
그날, 우리 식구들로서는 얼마나 가슴 아픈 만찬이었는지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울적한 성탄의 만찬을 대하고 있었다. 축복을 알리며 제야의 종
소리가 들려올 때 모두들 말없이 식사를 했고 아빠는 면도조차 하지 않은
채로 새벽 미사에도 참석치 않으셨고 식빵을 조금 맛보는 정도이셨다. 더욱
슬펐던 것은 아무도 얘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
기예수의 축복된 탄생이 흡사 우리집에서는 추도식같은 분위기로 감돌았다.
아빠는 모자를 집어들고 말도 없이 슬리퍼를 신으신 채 나가버리셨다. 아
빠가 왜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셨는지 알 것 같다.
딘디냐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며 에드문드 아저씨에게 돌아가
자고 말씀하셨다. 에드문드 아저씨는 또또까 형과 나의 손에 500레이스 짜
리 은화를 쥐어 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마 돈을 더 주고 싶으나
돈이 없으셨거나 아니면 아저씨의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던 돈이었는
지도 몰랐다. 난 아저씨를 껴안아드렸다. 그것이 성탄절 밤의 유일한 포옹
이었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버리셨다. 아마 방에서 혼자 울고 계시겠지.
식구들 모두가 울적하고 슬픈 표정들이었다. 라라 누나는 에드문드 아저씨
와 딘디냐 할머니를 배웅해 드렸다. 그리고 두 분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서 중얼거렸다.
"딘디냐 할머니와 아저씨께서는 너무 늙으셔서인지 만사에 지쳐버리신 것
같아."
깊어가는 성탄절의 밤에 교회에 종소리가 멀리 울려퍼지고 밤하늘을 꽃으
로 수놓는 폭죽은 성탄을 축복하는 이웃들에게는 행복한 밤이 되었지만 우
리집 식구들에겐 가장 슬펐던 밤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글로리아 누나와 잔디라 누나는 설겆이를 하고 있었다.
누나들은 울었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애써 보
이지 않으려 하면서 말을 했다.
"얘들아! 이제 밤이 깊었구나. 자야 할 시간이야."
그리고는 우리을 둘러보며 이곳에는 더이상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슬픔을
맛본 어른들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성탄절밤에 쓰디 쓴 서러움을
맛본 비참한 사람들뿐이었다.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전기회사에서 전기를 끊어버려 대신 밝혀놓은 등불
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일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우리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잠들어 있는 어린 루
이스 왕자님이었다. 나는 동생 루이스의 발 밑에 달빛 망아지를 놓아 주었
다. 귀여운 루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조용하게 속삭였다.
"귀여운 녀석......"
등불이 꺼져 어둠이 온통 휩싸인 속에서 나는 형에게 물었다.
"오늘 식빵 맛있었어, 또또까 형?"
"모르겠어. 한 입도 먹어보지 않았으니까."
"형, 왜?"
"목에 무엇이 걸린 것 같아서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어. 제제, 이제 잠
이나 자자. 잠이 들면 모두 잊게 되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제, 어딜 가려고 그러니?"
"문 밖에 운동화를 내놓으려고."
"그냥 놔둬. 그러지 않는 게 좋아."
"아니야, 밖에 놓아 볼 거야. 혹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형! 난
선물을 갖고 싶어. 단 하나만이라도 새 것으로 그리고 나만을 위한 선물을
말야."
나의 말을 들은 형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배게 빝에 머리를 묻어버렸다.
* *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형을 불렀다.
"형, 같이 나가 볼까?"
"너 혼자 가 봐."
"그래, 나가 볼께."
난 방문을 열고 나갔다. 하지만 실망한 나를 기다리는 듯 운동화는 텅 비
어 있었다. 또또까 형이 눈을 비비며 따라나왔다.
"그것 봐, 제제. 내가 뭐라고 했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한 마음이 나를 울렸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은
증오와 슬픔 바로 그것이었다. 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
았다.
"왜 우리는 가난한 아빠를 갖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말하며 운동화를 바라보는데 나의 눈 앞에 슬리퍼가 보였다. 아빠
가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아빠의 눈은 슬픔으로 젖은 채 커져 있었으며 마
치 <방구> 시내에 있는 영화관의 화면같이 보였다. 너무 슬퍼서 울고 싶어
도 울지 못하는 쓰라린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지나가셨다. 형
과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아빠는 옷장 위에 있던
모자를 집어들고 말없이 나가버리셨다. 그때서야 형은 내 팔을 때리면서,
"제제, 넌 나쁜 녀석이야. 뱀같이 고약한 녀석. 그러니까......"
화가 치민 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형! 난 아빠가 거기 계시는 줄 몰랐어."
"나쁜 녀석, 인정도 없는 바보. 너도 아빠가 오래 전부터 놀고 계시는 걸
알고 있잖아. 그래서 난 어제 밤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거야. 너도 어른이 되어 아빠가 되면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
픈 것인지 알게 될 거야."
난 형의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난 아빠를 못 봤단 말야. 형, 정말이야."
"내 곁에서 없어져. 넌 정말 쓸모없는 나쁜 놈이야. 어서 꺼져!"
나는 밖으로 뛰어 나가 아빠의 다리를 붙잡고 실컷 울고 싶었다. 난 나쁜
놈이며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며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러나 난 무엇을 어떻
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다가 침대에 주저앉아 구석에 놓여있는
텅 빈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 마음이 붕 뜨고 텅 비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비어만 있었다.
"왜 내가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그랬을까? 그렇지 않아도 모두들 오늘따
라 슬퍼하고 있는데, 점심 식사 땐 아빠를 어떻게 쳐다보지? 그땐 난 과일
사다라조차 삼키지 못할 거야."
아빠의 슬프고 커다란 눈이 영화관의 화면처럼 공중에 매달려 나를 바라보
는 것만 같았다. 발꿈치로 구두통을 차다가 퍼뜩 한 생각이 내게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하면 아빠가 나를 용서해 주실지도 몰라.
나는 또또까 형의 구두통에서 구두약을 꺼냈다. 그리고는 구두통을 챙겼
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채 구두통의 무게도 잊은 듯 거리로
나왔다. 나는 마치 아빠의 슬픈 눈 위를 고통을 주면서 걷는 것 같았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었기에 어른들은 자정미사나 만찬 등으로 모두들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길에는 아이들만 몰려나와 장난감을 비교하기도 하고 자랑
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가게에서 사기도 하며 놀고 있었다. 이러한 눈 앞의
광경들이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행복한 저 애들은 모두 착한 애들
이겠지. 누구도 나와 같은 행동을 한 아이는 없을 거야. 나는 미제리아 이
포미(재난과 기아) 가게 부근에서 손님이 있나 보려고 다가갔다. 이 상점은
오늘 같은 날에도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재난과 기아라는 간판을 달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곳에는 슬리퍼나 파자마를 입고 있
는 사람은 있으나 구두를 신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침을 굶었는데도 배는 조금도 고프지 않았다. 내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배고픈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가 고파지면 내 마음은 더 아파지는
것이다. <쁘로그레수> 거리까지 나와 시장을 한 바퀴 돈 다음 로젠버그 씨
댁 빵집 앞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날씨가 점점 더 뜨거워지자 어깨에 맨 구두통이 어깨를 쓰라리게 만들어
여러 번 구두통을 바꿔 메야만 했다. 목이 타서 공동수도가로 가서 물을 마
셨다. 그리고는 내가 입학하게 될 국민학교 교문 앞 층계에 주저앉았다. 그
리고 구두통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온 몸의 맥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나
는 인형처럼 무릎에 얼굴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아니, 할 일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아예 얼굴을 무릎에 묻어버리고 앉아 있었다. 생각대로 하지 못하
고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구두통을 툭 치면서 낯익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기에 얼굴을
들어보니 오락장에서 일하시는 꼬끼뉴 아저씨였다.
"이놈아! 구두닦이가 돈을 벌지 않고 잠만 자면 어떡하니?"
아저씨가 구두통 위에 발을 얹어놓자, 난 우선 헝겊으로 문지르고 구두를
적신 후에 조금 마른 다음 구두약을 조심스럽게 발랐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바지를 조금 올려주시겠어요?"
아저씨는 나의 요구대로 응해 주셨다.
"오늘은 구두를 좀 닦았니?"
"아뇨. 오늘은 아무도 닦질 않아요."
"그럼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냈니?"
"그저 그랬어요."
내가 구두통을 솔로 두드리자 아저씨는 발을 바꾸어 올렸다. 나는 같은 방
법으로 다른 한 쪽의 구두를 다 닦고 나서 통을 두드리자 아저씨는 발을 내
려 놓으시며,
"얼마니, 제제?"
"200레이스예요."
"왜 200레이스만 받지? 다른 애들은 400레이스를 받는데."
"제가 일류 구두닦이가 되면 그렇게 받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못
받아요."
아저씨는 500레이스짜리 지폐를 주셨다.
"아저씨, 다음에 주세요. 거스름돈이 없는 걸요."
"됐다. 나머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것이니 네가 갖도록 해라. 그럼
도 만나자 제제."
"메리 크리스마스, 아저씨!"
아저씨는 사흘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내가 구두를 닦으러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주머니 속에 돈이 좀 생기자 다시 기운이 나고 용기가 생겼다. 어느덧 오
후 2시가 넘으니 사람들의 왕래를 많아졌으나 손님은 없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먼지를 털어 달라는 사람조차 없었다. <리오-상파울로>의 도로
변 전봇대에 기대어 서서 작은 소리로 외쳐 봤다.
"손님, 구두 닦으세요."
"구두 닦으세요. 아저씨! 가난한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를 도와주세요."
그때 저쪽에서 멋있는 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멈추어 섰다. 나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소리를 쳐봤다.
"선생님! 가난한 살마들의 크리스마스를 도와 주세요."
옷은 잘 차려입은 부인과 어린아이들이 차창 밖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
다. 그 부인은 동정어린 목소리로,
"쯧쯧, 가엾기도 해라. 저렇게 어린애가. 여보 저 애에게 뭘 좀 도와주세
요."
그러나 남편인 아저씨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저런 아이들은 교활하고 나쁜 애들이야. 저 녀석은 자기가 어리다는 것과
크리스마스를 이용해서 동정을 바라고 있어."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도와 주고싶어요. 이러 오너라, 꼬마야."
부인은 지갑을 열더니 차창 너머로 손을 내민다.
"고맙지만 받지 않을래요. 저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고 정말 돈이 필요
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날 나온 거예요."
나는 구두통을 어깨에 메고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은 화낼 기운도 없었다.
그러자 차의 문이 열리고 한 아이가 내게로 달려왔다.
"자, 이거 받아! 엄마가 전해 주랬어. 우리 엄마는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
는 걸 믿으신대."
그 아이는 나의 주머니에 500레이스 짜리 지폐를 넣어주고는 내가 고맙다
는 인사말을 건네기도 전에 달려가버렸다. 오직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시간은 벌써 4시가 넘고 있었다. 아버지의 그 슬픈 눈은 아직도 나를 녹여
버릴 듯 나의 마음 속에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10또스땅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재난과 기아>
상점에서 싸게 주던가 모자라는 돈은 외상으로 해 주고 나중에 갚도록 해
줄지도 모른다.
어느 집 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때 나의 시선을 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구멍이 뚫어진 여자용 스타킹이었다. 나는 스트킹을 주워 손에 감아
보니 무척 부드럽고 늘어지는 것이 뱀을 만들기에 훌륭했다. 스타킹을 구두
통에 집어 넣으면서 마음 속으로 오늘 같은 나른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자
신과 싸웠다. '이 다음에 해야지. 오늘만은 장난을 말자.'
빌라보아스 댁이 가까워졌다. 그 집은 바닥이 전부 시멘트로 되어 있고 넓
은 정원도 있었다. 세르지뉴가 멋진 자전거를 타고 정원 사이를 돌고 있었
다. 나는 담장 사이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는 빨간색이었고 부속들
은 팔나색이었고 노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자전거는 번쩍번쩍 빛이 나고
있었다. 세르지뉴는 나를 보더니 커브도 돌고 찌익찌익 소리를 내며 페달을
밟아 보이며 자랑했다. 그러더니 내게로 가까이 다가와서,
"어때, 멋있니 제제?"
"그래,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것 같아."
"더 가까이 와서 봐."
세르지뉴는 또또까 형과 나이가 같았고 같은 반이었다. 나는 그의 에나멜
구두와 흰 양말, 빨간 가죽 허리띠를 보고 맨발인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거기다가 그의 구두는 모든 것을 반사시켰다. 심지어는 아빠의 눈까지도 그
반사되는 빛 속에서 번뜩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제,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야, 정말 멋진 자전거야, 형.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거야?"
"그래 맞아."
그는 자랑을 더 하고 싶었는지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대문을 열고 다가왔
다.
"굉장한 선물을 받았어. 뭐냐면 전축 한 대, 양복 세 벌, 동화책 1세트,
색연필 1타스, 그리고 장난감도 큰 상자로 한 세트를 받았는데 그 속엔 프
로펠러가 달린 비행기와 하얀 돛단배가 들어 있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인 채 또또까 형이 아기예수는 부자들만 좋아
한다던 말이 생각났다.
"왜 그러니, 제제?"
"아무것도 아니야."
"참! 넌 선물 많이 받았니?"
난 대답할 기운도 없어 고개만 가로저었다.
"정말로 하나도 받지 못했단 말이야?"
"금년에 우리집은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기로 했어. 아빠가 아직도 놀고
계시거든."
"아무렴 그럴 수가 있니? 그래서 밤이나 호도 그리고 포도주도 너의 집엔
없단 말이야?"
"그저 딘디냐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식빵과 커피만 마셨어."
세르지뉴는 무슨 생각을 하더니,
"내가 만약 초대한다면 오겠니?"
나는 곰곰히 생각해 봤다. 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는 고프지만 그의
초대에 응해 줄 생각은 없었다.
"들어가자 제제. 우리 엄마가 너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해 주실거야. 과자
도 많이 있어."
그러나 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지금까지 잘 참아왔고 더 이
상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마음의 상처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
는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
'더러운 깜둥이 녀석을 집안으로 끌어들이지 말라고 했잖니? 세르지뉴!'
"싫어! 형의 말은 고맙지만 말야."
"그래! 그럼 우리 엄마한테 밤이랑 과자랑 싸달라고 한다면 가져다 루이스
줄래?"
"안 돼. 난 일을 끝내야 돼."
그때서야 세르지뉴는 내가 앉아 있는 것이 구두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제, 하지만 오늘 같은 날 누가 구두를 닦겠니?"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10또스땅밖엔 벌지 못했어. 그중에 500레이스는
동냥으로 받은 거야. 아직도 2또스땅이 더 있어야 돼."
"뭣에 쓰려고 그러니, 제제?"
"말할 수 없어. 그러나 꼭 필요해."
세르지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내 구두를 닦아 줄래? 10또스당을 줄 테니까."
"싫어. 난 친구에게선 돈을 안 받아."
"그러면 내가 돈을 준다면? 그러니까 빌려 준다면 받겠니?"
"조금 늦게 갚아도 돼?"
"그래, 네 맘대로. 나중에 구슬로 갚아도 되니까."
"그렇다면 빌려 줘."
세르지뉴는 주머니에서 2또스땅을 꺼내 주었다.
"제제, 난 돈이 많이 있으니 걱정마. 아직도 저금통엔 돈이 가득 들어 있
어."
나는 자전거의 바퀴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정말 멋있는 자전거야."
"네가 좀 더 커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 타게 해 줄께. 좋지?"
"응. 정말 고마와."
* * *
나는 구두통을 메고 흔들며 <미제리아 이 포미> 상점으로 달려갔다. 나는
가게문을 닫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었다.
"아저씨! 고급담배 남았어요?"
아저씨는 나의 손에 놓은 돈을 보고는 담배 두 갑을 집어주었다.
"설마 네가 담배를 피우는 건 아니겠지, 제제?"
그때 뒤에서 누가 말했다.
"어린이에게 그게 무슨 소리야!"
돌아보지도 않고 아저씨는 웃으며 대꾸를 한다.
"그건 자네가 이 녀석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 이 녀석은 못하는 것이 없는
장난꾸러기야."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담배를 손에 굴리면서 마냥 기쁘기만 했다.
"아저씨! 이게 좋을까요? 저게 좋을까요?"
"그거야 네 맘이지."
"하루 종일 아빠에게 선물을 사 드리기 위해 일을 했어요."
"정말이냐? 제제, 아빠는 너에게 뭘 선물로 주셨는데?"
"못 받았어요.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우리 아빠는 아직도 실업자라는 것
을. 지금 제 뱃속의 형편과 아빠의 형편이 똑 같은 걸요."
"만약 아저씨께서 담배를 원한다면 어떤 담배를 고르시겠어요?"
"물론 둘 다 좋아! 그리고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아빠들은 다 기쁜거란다."
"그럼 이걸로 싸주세요."
아저씨는 정성스럽게 포장을 하셨다. 아저씨는 감격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가게에 있는 사람들도 이젠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포장한 담배를 내
게 주려다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리신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듯 하시더
니 아무 말도 하시지 못했다.
나는 돈을 지불하며 빙그레 웃었다.
"아저씨! 크리스마스 기쁘게 보내세요."
나는 조금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갔다.
집안엔 어둠이 깔려 있었고 부엌에선 등잔불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
다. 식구들은 모두 외출을 했는지 아빠 혼자 허공을 바라보신채 식탁에 팔
로 턱을 받치고 계셨다.
"아빠!"
"왜 그러니, 제제?"
아빠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원망도 없어 보였다.
"온 종일 어딜 갔었니?"
나는 구두통을 아빠에게 들어 보였다. 구두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에
서 포장해 온 것을 꺼냈다.
"아빠! 풀어보세요. 아빠에게 드리려고 선물을 샀어요."
아빠는 그것이 비싸다는 것을 아시고 놀라시더니 빙그레 웃으셨다.
"어때요 아빠? 맘에 드세요? 제일 좋은 담배래요."
아빠는 흐뭇한 얼굴로 담배를 뜯어 냄새를 맡으셨다. 그리고 피울 생각도
하지 않으셨으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한 개피 피워보세요, 아빠."
나는 부엌에 나가서 성냥을 가지고 와서 아빠의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당
겨드리고 피우시는 것을 보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기분이 매우 착
찹해졌다. 불을 붙여드리고 난 성냥개비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나니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종일 괴롭혔던 고통이 산산조각 흩어지는 것 같았
다.
나는 수염을 깎지 않아 텁수룩한 아빠의 얼굴과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
무 말도 하질 못하고 다만 울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아빠, 아빠......!"
내 목소리는 흐느낌 속에 점점 줄어들었다. 아빠는 나를 안아 주셨다.
"제제, 울지 마라. 네가 마음이 이렇게 약하다면 일생 동안 울어야 할 날
들이 너무도 많을 거야."
"그게 아니에요. 난 정말 아빠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뜻으로 말한 게 아
니었어요."
"알고 있다, 그래서 아빤 화도 내지 않았지 않니?"
아빠는 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시고 안아 주셨다.
"이젠 됐지?"
"네, 아빠! 이제 괜찮아졌어요."
나는 손으로 아빠의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영화의 화면 같
았던 아빠의 눈을 지워버리듯 손으로 아빠의 눈을 쓰다듬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아빠의 큰 눈이 언제까지나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았다.
"자, 피우던 담배를 마저 피워야지!"
나는 아직도 서러움에 목이 메어 말을 더듬었다.
"아빠! 저를 때려 주세요. 가만히 맞기만 할께요, 아빠......"
"아내야. 괜찮아, 제제!"
아빠가 나를 바닥에 내려 놓으셨을 때 나의 가슴 속의 한숨도 땅으로 가라
앉는 것 같았다.
아빠는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 오셨다.
"글로리아 누나가 너를 주려고 과일사다라를 조금 남겨두었단다."
나는 사라다를 입에 넣었으나 심킬 수가 없었다. 아빠가 곁에서 먹어주셨
다.
"먹어라, 제제! 맛있지?"
나는 아빠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처음 몇 숟갈은 짠맛이 나는 것 같
았다. 눈물이 섞여 있는 사라다를 먹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