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내부의 신돌석장군 흉상과 전경>
▶ 신돌석 장군 약력 ◀
본관은 평산(平山), 자(字)는 순경(蕣卿)이고, 호(號)는 장산(壯山) 본명은 태호(泰鎬)
이다.
이명(異名)은 돌석(乭石), 태홍(泰洪), 태을(泰乙), 대호(大浩)이며, 태백산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78년(고종 5년) 11월 3일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당시는
영해군 남면 복평리)에서 출생하여 퇴계(退係)의 방계인 육이당(六怡堂)이중립(李中立)
에게 학문을 배웠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10여명의 동지를 규합하
여 영해 의병진을 창군, 활약하다 1896년 고종황제의 명으로 해산했다.
1905년 11월 을사5조약이 일제에 의해 강제체결되어,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1906년
3월 장군도 영릉의병진(暎陵義兵陳)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다시 창군하니 각처에서 모여
든 동지가 300명이 넘었다 한다. 그 때 장군의 나이 29세였다. 장군은 최고 3000여 명
의 의병을 거느리고 경상남북도, 강원도, 충청도에 걸친 넓은 지역에서 항쟁한 의병장
이기도 했으나, 일월산, 백암산, 대둔산 등지에 요새를 두고 소수정예로 적을 섬멸하는
게릴라전에도 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