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오셨다"
(마리 가르멜 수녀)
땅이 꽁꽁 얼었다. 겨울다운 추위가 시작된 것이다. 매서운 추위를 지낸 땅에 농사를 지으면 해충 없이 풍작을 이룰 수 있다고 어르신들은 말씀하신다. 실제로 추위가 밋밋한 겨울을 지냈던 요 몇 년은 낯선 벌레떼의 습격으로 작물들이 피해를 입었다. 올 겨울은 얼마나 겨울 다울까 그러면서도 도시 속 음지에서 추위에 떨고 계실 많은 분들을 기억하게 되는 오늘이다
처음 생태적 삶을 꿈꾸는 농사 소임을 받았을 때, 나는 물론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여정이란 것 알았지만, 마치 광야에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랐다. 광야에서 길을 찾을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침반이다. 당신 나에게 나침반은 ‘말씀’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말씀은 나에게 나침반이다.
말씀 때문에 행복한 수도자가 되고 싶었다. 무엇을 잘하고, 무엇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 때문에 해옥할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싶었다. 지금은 ‘생태적 삶’이라는 고급스러운 말로 우리 삶을 표현하곤 하지만, 처음에는 철저히 농부로 살았기에 이 삶에 대하여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어려운 일’ 정도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신앙인이면서 농부로 살 때 필요한 지표를 세우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적 동인을 당장 눈앞에 드러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는 것에 익숙하므로, 방향을 찾으며 느리게 걷는 우리의 여정을 답답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땅을 돌보며 사는 우리에게 말씀은 더욱더 씨앗처럼 다가왔다. 말씀이 성장과 관계 모든 것을 새로이 바라보게 하는 렌즈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을 삶 안에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감사를 드릴 때도, 아름다운 것을 볼 때도, 기후 위기와 코로나19와 같은 아픔의 직면할 때도, 말씀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 주었다. 말씀에서 길을 찾을 때면 조급하지도 않고, 비교하지 않으며,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묻다가도 주님의 계획 안에서 모든 의지를 내려놓게 된다.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나침반으로 삼는다지만,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다 보면, 문득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마리아와 요셉을 보면 더 잘 알아볼 수 있다. 자신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더라도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른 두 분을 통하여 예수님이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바람에 그치는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바라심을 알아차리는 지점을 발견한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의 바라심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삶을 내어주는 자리에서 계속되고 있다. 세상 곳곳에서, 우리 마음 안에서…
주변 사람들과 생명을 가만히 데려다 보면 알 수 있다. 말씀이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을 뵐 수 있다는 것을. 저 많은 생명도 “말씀이 이루어지소서” 하고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곳에 예수님이 오셨다. 가장 크신 분이 가장 낮고 작은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