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20425B364F86A7C019)
1901년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한 릴케는 1906년에는 조각가 로댕의 전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아 잠시 그의 비서로 일한다. 릴케의 섬세한 시어는 언어의 거장으로 인정을 받게 되고, 말년에 발표한『두이노의 비가』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등은 보들레르와 맥을 같이하는 서구시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를 받는다. 특히『두이노의 비가』에 쓰인 언어의 엄격성과 대담한 이미지, 피카소나 파울 클레 등에서 영향을 받은 조형예술의 기반 위에 축조된 상상의 세계 등은 그의 천재적 업적으로 평가된다.
1926년 백혈병이 악화되어 발몽 요양소에 머물며 치료를 받으면서도 시를 쓰고 발레리의 작품을 번역했던 릴케는 그해 12월 29일에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라롱의 교회묘지에 안장된 릴케의 묘비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다음 시구가 새겨져 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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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롱교회의 릴케의 묘지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