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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 14
더 좋은 피! 예수님
(히 10:1~39)
히브리서 10장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좋은 피가 이루신 놀라운 결과에 대하여 언급한다(1~18절). 마침내 긴 신학적 논의를 마친 그는 이어서 그의 서신의 대미를 장식하는 긴 권면을 쏟아낸다(10:19~13장). 아울러 긴 권면을 시작하면서 친절하게도 일곱 절에 걸쳐서(10:19~25) 지금까지 논의한 신학을 세 가지의 현저한 확언으로 요약하여 가다듬은 후, 앞으로 취급할 긴 권면의 요점을 역시 세 가지로 축소하여 제시하고 있다. 비록 일곱 절에 불과하지만 많은 성경 연구가들은 이 구절을 ‘축소판 히브리서’라고 부른다. 과연 바울이 앞으로 전개하려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부상시키려는 핵심 사상은 무엇일까? 그 힌트를 우리는 10장의 나머지 권고(26~39절)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A. 본문의 이해
1. 그리스도 피의 참 유익(1~18절)
“1 율법(제사제도, 의문의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16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바울은 그의 긴 신학적 논의를 마치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이 이루신 놀라운 유익을 입증하고 있다. 그것은 14절에서 언급한 대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는 것이다. 반면에 1절에서는 의문의 율법(제사법)의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매일 그 일이 되풀이 되어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가 온전함을 줄 수 있었다면 어째서 제사가 계속 되풀이 되었겠느냐는 논리이다. 단순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논리이다. 그래서 첫 절에서 바울은 “(의문의)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실체와 참 형상은 무엇인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어떻게 의문의 율법이 요구하는 희생 제사를 그치게 하였는가? 제사를 폐지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죄짓기를 그치면 된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시편 40:6~8절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9절)다고 제시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가 인간을 대표하여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낱낱이 행하심으로 제사를 그치게 하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죄를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리”(10, 12절)심으로 영원히 죄를 없이하지 못하는 제사제도를 폐하셨다. 이로서 다음의 말씀이 마침내 응하게 되었다.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17절).”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세워주신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8절)는가? 그것은 그들이 순종을 예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삼상 15:22)다는 것과 악을 그치고 의를 행하기를 지속적으로 가르치시고 호소하셨다(사 1:16~17). 그러나 그들은 제사의 의도를 왜곡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는 제사를 지내시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셨다.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행하시고 자신을 드려 죄를 온전히 없이 하심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원히 온전케 되기 전에 먼저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여기서 “거룩하게 된 자들”의 원어적 의미는 “거룩하게 되고 있는 자들,” 즉 성화의 과정에 있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그리고 미래에 거룩함을 받는 모든 자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거룩하게 하시는가? 당신의 십자가의 희생을 믿고 받아들인 자들 마음 속에 임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역은 계속된다.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한다. 새 언약의 백성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법을 그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여 두신다고 하였는데(16절) 그러면 다윗의 고백처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라고 노래하게 될 것이다. 완전한 성화는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빌 1:6)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2. 축소판 히브리서(19~25절)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소위 ’축소판 히브리서‘라고 불리는 위의 일곱 절은 지금까지 바울이 히브리서를 통해 논의한 신학을 먼저 세 가지로 가다듬고 있으며(19~22절), 이어서 앞으로 취급할 긴 권면의 요점을 역시 세 가지로 축소하여 제시하고 있다(23~25절). 그러므로 이 일곱 절을 파악하는 것은 곧 히브리서의 진수를 밝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히브리서의 신학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
(1) 접근 – 하늘 성소(하나님 보좌)에 들어갈 수 있다.
(2) 정결 - 죄된 양심들로부터 정결케 된 마음을 지니고 있다.
(3) 예수 – 하늘에 크신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다.
풀어서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의를 갖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된 특권이라는 것이다. 신앙은 확신이다. 우리의 확신은 감정적 황홀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밝힌 위의 사실들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그 사실들이란 먼저 지금도 살아계신 한 인격체이신 예수이고, 둘째로는 그가 성취하신 일이다.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나 세상 끝에 오직 예수만이 남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1)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자(23절). 그리스도께서 모두에게 구원을 가져오셨다. 그러나 구원은 자동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붙들어야 한다. 의심과 믿음은 의지여하에 달려있다. 둘 다 내 의지로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믿고자 하는 의지를 행사해야 한다.
(2)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24절). 의심과 불신은 나눔으로써 증가하듯이 믿음도 그렇다. 이는 내 믿음을 강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또한 내 믿음을 남에게 보여 알게 하는 결정적 수단이다.
(3) 모이기를 폐하지 말자(25절). 왜 바울은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을까? 당시에는 모이는 것이 위험했다. 집회를 금지하는 칙령이 반포되었으며 박해가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하였다면 오늘날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모임이라는 것은 한 목적과 마음을 전제로 한다. 마찬가지로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것은 더욱 한 마음으로 뭉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마처럼 마귀는 함께 하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의심으로 사로잡는다. 성령을 기다리는 자들은 주님의 오심이 가까울수록 제자들처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며 모여 있을 것이다.
3. 엄숙한 경고 (26~39절)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일부러)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배도자가 드리는 제사는 주님의 피라 할지라도 속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남자와 함께 있으면서 용서하라는 여자를 남편이 받아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산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용서가 무의미한 것이다. 한 때 주님과 그의 말씀을 기뻐하였고 내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알았고 하늘의 즐거움을 고대했던 사람이 그리스도 대신에 무모한 죄를 택하고 은혜에서 떨어지고 표류하는 자가 되는 것이 가능한가? 바울은 ‘그렇다’고 말한다. 선과 악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이 여전히 사람 속에 있다. 언제든지 양방향 중 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사도는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짐짓”(일부러)이다. 의지적 선택이 결국 운명을 좌우한다. 그러므로 (1) 담대함을 버리지 말고(35절), (2) 인내하라(36절). (3) 마지막으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합 2:4; 롬 1:17). 재림이 지체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라(37~39절). 순례자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산다.
B. 본문의 결론과 적용
오늘 본문도 역시 ‘예수님이 최고’시라고 증거한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의 핵심주제가 되는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봉사가 그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죄인인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결케 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자. (2)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 (3) 모이기를 폐하지 말자. 비록 주의 재림이 지체되고 있지만 세상의 조롱을 거부하고 담대함과 인내로서 믿음을 가진 자답게 오직 믿음으로 살자.
2013.7.16
Crossabbath Gopel Ministry
안식일복음 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