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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로움 (요한복음 5:1-10)
1 베데스다(2-3절)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실상 그 명절이 어떤 명절인지 말씀에는 적혀있지 않아 해석이 분분하지만 굳이 그 명절이 어느 명절인지 요한이 기록하지 않은 것은 5장의 예수님의 역사 에 그 명절이 어느 명절이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 라 불리는 한 연못을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2절 말씀에 그 연못에는 행각 다섯이 있다고 증거한다. 행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행각(行閣,colonnade)은 기둥이 열을 지어 서 있는 건축 구조물을 말한다. 베데스다 연못에 행각 다섯이 있다는 것에 기인하여 이 행각이 구약의 율법서, 즉 모세오경을 상징하고 모세의 율법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즉 행각 다섯 개로 둘러싸인 베데스다 연못은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과 그에 온전한 복음에 비할 수 없는 뭔가 불완전한 율법의 지배를 받는 장소 임을 드러낸다. 베데스다 라는 이름은 아람어 ‘베트 헤스다’의 헬라어 음역으로 ‘자비(은혜, 긍휼)의 집’이다.
1888년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의 어머니라 전해지는 성 안나를 기념하여 지어진 성안나 수도원 구내에서 위 아래에 위치한 두 연못이 발견되었는데 이 연못이 2천년전 베데스다 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 깊이가 최소 7-8 미터 이상 되기 때문에 실제로 일부 사본의 기록대로 천사가 내려올 때 물이 동하는 간헐천과 같은 현상을 일으켰던 곳은 그 큰 연못의 주위에 있었던 작은 웅덩이 였을 것으로 전해진다. 이천년전 사람이 한두명 간신히 들어갈만한 작은 웅덩이 라면 그 경쟁률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베데스다 연못의 그 웅덩이에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병자, 그리고 앞을 못 보는 맹인들, 또 다리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 등등이 누워서 물이 끓어오를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보시라! 또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을 가셨던 때는 명절 때 였기 때문에 수많은 순례객들이 명절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있었고 또 그 가운데는 베데스다 연못의 신기한 소문을 들어 구경삼아 그곳에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 아닌가?
실제로 그 연못이 동할 때 들어가면 환자가 치료되었는지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 같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은 환자가 모여들었고 물이 동할 때 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웅덩이 하나로 들어가려고 다른 사람을 제치고 그 웅덩이로 떼를 지어 달려가는 아비규환 의 모습이 물이 움직일 때마다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기대한 치유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받는 일들이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살아보겠다고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갔으나 오히려 생존경쟁의 장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상황과 환경, 자신의 처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원망을 키워나가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38년된 병자이다. 이런 그의 상처받은 심정과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오늘의 본문 7절말씀에 드러난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각색 병자들이 모여 있고 또 소문을 듣고 그 신기한 장면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구경꾼들, 또 명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 등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홍수가 나면 먹을 물이 없다는 말처럼 사람은 많은데 정작 이 38년 병자를 물이 동할 때 재빨리 못에 들어가게 도와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아픈 사람들, 즉 병자들이 자기가 먼저 또 자기만 물이 동하는 못에 들어가겠다고 이 38년된 병자를 제치고 밀치고 못으로 뛰어가는 일만 반복이 되었다. 그러기에 이 병자는 사람
은 많은데 정작 자신은 그 사람들 때문에 더 상처받고 낙망해있는 악순환의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병을 고쳐보겠다 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가지고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갔다가 거기서 몸과 마음의 상처와 병을 더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이 38년된 병자의 군종속의 고독, 이 병자의 이 어떤 외로움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의 마음 일 수 있다.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워 위로와 힘을 얻기 위해 교회에 왔으나 이런저런 상황들과 사람들로 인하여 위로와 힘을 얻기는커녕 몸과 마음의 상처만 얻고 신앙의 손해를 보며 고민하고 계시지는 않으신가?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가지고 다같이 오늘의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읽자!
2. 네가 낫고자 하느냐?(6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우리 주님께서는 군중속의 고독을 느끼며 실의와 원망, 절망에 빠져있는 이들이 가득 모여 있는 그 연못가에 찾아오셔서 38년이나 병에 걸려 몸과 맘이 만신창이가 되버린 병자를 보시며 그의 병이 오래된 것을 아시고 사랑과 긍휼이 가득한 음성으로 병자에게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예수님의 질문에 38년된 병자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우리가 살펴보았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는 질문에 “예 그렇습니다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선생님 같으시네요. 네 병이 낫고 싶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계시다가 물이 동할 때 나를 저 연못에 좀 넣어주세요!” 라고 그 병자가 답을 했다면 그것은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동할 때 일번으로 들어가 병이 고침 받기를 원하는 38년된 병자의 입장에서 가장 완벽한 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병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은 그 마음을 동문서답 하듯이 쏟아내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라는 그의 말은 병이 낫고자 하는 의지 보다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과 오랜 병세에 찌들어 버린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바라보며 나는 이곳에서 병이 나을수 없겠다 하는 극심한 좌절감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 그리고 사람들은 많으나 자신을 돕는 이들은 없는 상황 속에서 오는 원망과 절망감이 어우려져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시는가? 이제 다같이 8절 말씀을 함께 읽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께서 무너져버린 자존감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그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일어나라는 말씀이다! 그가 일어날 수 있었으면 38년동안 널브러져 있었겠는가? 그리고 12-13절에도 나오듯이 지금 38년된 이 병자는 자기에게 일어나라는 사람이 예수님인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요 5:12-13)
그러니 38년된 병자의 입장에서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갑자기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더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였던 것이다.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는 38년 동안이나 환자이니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는 그의 안된다는 생각, 원망의 생각, 부정적인 생각의 자리에서 주의 권능과 능력을 힘입어 일어나라는 명령이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들라는 말씀은 땀에 쩔어있을 그 거적떼기 같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는 이제
더 이상 병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니 그 자리가 필요 없다는 선포이며 그것을 믿고 따르는 순종의 행위를 할 것을 말씀하심이다. 또 걸어가라 는 말씀은 이제 주위사람들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이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못에 들어간다고 사람들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그런 모습에서 당당히 치유받은 자의 모습으로 간증자로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일어나시라! 자리를 드시라! 걸어가시라! 현실과 상황의 안된다는 생각에서 일어나십시요! 과거의 아픈 흔적의 자리를 드십시요! 그리고 예수님 손 붙잡고 남은 인생의 여정을 힘입게 걸어가십시요! 그 말을 들은 이 38년된 병자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다같이 9절 말씀을 받들어 읽자!
3.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8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예수님께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시자마자 그 사람은 바로 나아서 자리를 들어갔다 할렐루야! 그 치료가 얼마나 순식간에 임했는지 곧 이라는 부사가 나타낸다. 곧 이라는 말로 쓰인 헬라어 유데오스(ευθεως) 는 곧 당장 즉시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직후 이 38년된 병자가 일어설수 있을까 일어서볼까 말까 고민할 틈도 없이 즉시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38년간 그 병을 고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좋다는 약, 민간요법, 잘 고친다는 의사 들 다 만나러 다니다 백약이 무효하니 이제 베데스다 연못까지 와서 널브러져 죽어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마자 즉시 그는 일어났고 자리를 들었고 걸어갔다! 오늘날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붙드는 분들에게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역사를 하나님께서는 허락해 주신다.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38년된 병자처럼 몸과 마음에 상처 받아 쓰러져 있는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주님의 강권적인 만지심과 그 역사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삶으로 간증하는 복된 삶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축원한다!
내 아이는 뭘 먹고 사는가?
창 37:3-5,48-15-16,49:25-26
I. 사람은 뭘 먹고 사는가?
그리스 신화의 조각가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각가는 자기가 사랑하 고 싶은 여인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인상을 만들어 놓고 아침마다 사랑한다고 고백을 합니다. 손등에 키스를 합니다. 또 밖에 다녀오면 꽃을 선물하곤 했습니다. 마침 그 마을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 어지는 축제가 있었습니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축제에서 자기가 만든 이 여인상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소원을 빕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 며 역시 여느 때처럼 꽃을 선물합니다. 사랑을 고백합니다. 손등에 키스를 합니다. 그런데 손등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낍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 니깐 이 조각이 사람으로 바뀌는 겁니다. 뿅! 짠! 그리고 사람으로 바뀌어서 뚜벅뚜벅 걸어 나옵니다. 이걸 교육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라 이름합 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간절히 기도하면서 축복의 말을 쌓아가면 엄마 아빠가 말한 대로 우리 아이들이 바뀌어간다는 겁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될 거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자기가 자신에게 말을 하는 대로 인생이 만들어진다 하는 게 피그말리온 효과입니다. 교육학자들이 흔히 하는 얘기로 우리 어린이들은 백지장과 같다. 그 인생이, 마음이 그래서 선생님이 엄마가 아빠가 평생 그에게 해주는 말로 인생의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간다. 어린이 마음 백지장이라고 합니다. 심의백지설이라고 하는 존 로크(John Locke)의 주장이지요. 사람은 뭘 먹고 사는 것일까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거기 나오는 주인공은 미하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잘못을 범해서 이 땅으로 쫓겨납니다. 네가 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가서 세상 사람들이 뭘 먹고 사는지 숙제를 풀면 네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을 돌아다닙니다. 사람들 은 맛있는 밥을 먹고 살까? 좋은 옷을 입고 사는 것인가? 마지막에 ‘아하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것이구나!’ 이걸 깨닫는 순간 등에 있던 황금 날개가 쫘악 빛을 발하면서 하늘로 훨훨 날아 올라간다는 것이지요. “사람은 뭘 먹고 사는가?”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읽어보면 어릴 때부터 마지막 날까지 항상 반복적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항상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한단다.” 첫 번째, 축복의 말씀을 먹고 산다는 겁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요셉이 입고 있던 옷이 있어요. 색동옷입니다. 성경에는 채색옷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엄마)가 요셉을 사랑해서 입힌 옷이었습니다. “사랑”의 옷을 입고 산다는 겁니다. 두 번째, 사랑을 먹고 산다는 겁니다. 여러분 요셉? 그랬을 때 어떤 그림이 머릿속에 지나갑니까? 요셉은 꿈꾸는 소년이었습니다. 맞아 요셉은 꿈을 먹고 살았어. 세 번째, 꿈을 먹고 산다는 겁니다. 목사님은 어린 시절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 걸 보았어요. 대통령 후보자들이 시골까지 와서 강변에서 수많은 사람들 모아놓고 연설하는 걸 들었어요. 그때 ‘나도 저 자리에 서서 연설했 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통령이 뭔지도 모르고 누가 “영모 뭐 될래?” 물으면 “대통 령!”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시골교회에 목사님이 안계시고 전도사님이 계셨어요. 이 전도사님이 항상 나를 꼭 품에 안고 축복을 했어요. “영모는 훌륭한 목사가 될 거야.” 나 대통령 될 건데? 아니야, 영모는 훌륭한 목사가 될 거야. 축복을 매일 같이 해주셨어요. 이 전도사님의 축복을 먹었는지 어린이 류영모는 동산에 올라가서는 대통령이 될는지 목사 가 될는지 모르지만 설교하고 연설하는 연습을 했어요. 솔방울 주워놓고 세워놓았어요. 돌멩이를 주워서 세웠어요. 그리고는 “사랑하는 돌멩이 여 러분... 사랑하는 솔방울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답니다.” 설교하는 연습을 했어요. 그래서 류영모 어린이는 자라서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목사님이 되었을까요? 목사 님이 되었지요. II. 내 아이는 말씀(축복)을 먹고 산다. 사람은 뭘 먹고 사는가? 첫 번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산다. 엄마 아빠의 축복의 말씀을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만들고 마지막 날 사람을 빚어서 만들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물을 줘야겠는데, 이 세상에 있는 꽃들에게, 나무들에게 없는 선물이 뭘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고기, 동물들에게 없는 가장 좋은 선물이 뭘까? 생각하다가 말하는 권세, 말하 는 능력을 선물로 주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받은 말하는 선물로 자기 인생의 집을 지으면서 살아가는게 사람이라고 하는 겁니다. 누에고치는 뽕잎을 갉아 먹어요. 그러고는 입에서 실을 만들어서 입에서 실을 뿜어댑니다. 그리 고 하얀 집을 지어요. 자기가 지은 집에 쏙 들어가서 거기서 살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말씀을 귀로 먹어요. 자기 마음으로 먹어요.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우리 아들은? 우리 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내 귀에다 말씀을 먹여요. 축복을 먹여요. 그러면 자기 마음속에서 있었던 이야기 를 자꾸 기억하게 돼요. 그러면서 자기가 말한 대로, 자기가 들은 대로, 자기 집을 짓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좋은 말을 많이 들으면은 좋은 인생의 집을 지어요. 나쁜 얘기를 많이 들으면 나쁜 집을 짓고 살아가는 거예요. 이 이야기가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성경이 잠언이라는 성경이에요. 잠언에 보면 사람이 말하는 대로 자기 집을 짓고 산다는 이야기가 120구절! 12구절이 아니에요 잠언에 120구절이 나와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어요.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고 바다와 육지 가 나뉘어지라! 말씀하시니 바다와 육지가 나뉘어졌어요. 이 세상에 꽃들과 나무들이 생겨 라. 하늘에 별들이 생겨라.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온 세상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준 선물, 말하는 권세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고 하니? 잠언 18장 21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권세)에 달렸나니” 사람이 죽고 사는 것, 사람이 훌륭하게 되고 나쁘게 되는 것이 혀의 힘(권세)에 달렸나니 그랬습니다. 내 입이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죽음의 인생이 될 수도 있고 생명의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항상 좋은 말을 해야 되는 거예요. 아침에 세수하고 거울을 보고 나오면서 “너, 오늘도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거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거든.” 좋은 말을 자기 자신에게 해야 돼요. 부모들은 나쁜 말이 툭 튀어나오려고 하다가도 입을 닫고 좋은 말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말을 자꾸 아이에게 먹여야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격려의 말, 칭찬의 말, 믿음의 말이라고 하는 겁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너 반드시 잘할 거야. 믿음의 말, 긍정의 말을 많이 들으면 긍정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거예요. 불행의 언어, 나쁜 말을 많이 들으면 자기 인생에 나쁜 집을 지으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 비방하는 것, 더러운 말, 나 못해, 싫어, 난 할 수 없어, 남을 무시하는 말을 들으면서 살아가게 되면 그런 인생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지금 말을 해요. 목사님이 말을 하니까 여러분에게 목사님의 말이 전달되잖아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러분 에게 전달되기 전에 제일 먼저 듣는 귀가 있다. 내가 말을 하는데 내 귀가 제일 많이 듣는 거야.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어떨 때는 이 사람이 듣고 어떨 때는 저 사람이 듣고 어떨 때는 요런 사람이 들어요. 그런데 자기가 말하는 건 항상 자기에게 들어요. 이것을 언어에서는 “부메랑의 법칙”이라 이름해요. 부메랑 알아요 여러분? 부메랑을 여기서 휘익 던지면 쑝쑝쑝쑝쑝쑝쑝쑝쑝 자기에게 다시 돌아와요. 그게 부메랑이예요. 사람이 자기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다시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는게 뭘까요? 말이예요. “사람이 ...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예수님 사랑해요. 나는 하나님 좋아해요. 나는 예수님을 믿어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요. 나는 천국을 믿어요. 그렇게 늘 말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걸 “믿음”이라 이름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도 결국 “말”이라고 하는 겁니다. III. 내 아이는 사랑의 옷을 입고 산다. 첫째, 나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먹고 산다. 엄마, 아빠의 축복의 말씀을 먹고 산다. 두 번째, 나는 사랑을 먹고 산다. 이 당시 이 나라 사람들은 옷이 없었어요. 큰 천조각 하나를 가운데 구멍을 뽕 뚫고 목을 쏙 내밀어요. 그러고는 허리띠로 그 옷을 동여매요. 그럼 그게 옷이다. 그런데 요셉은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요셉을 사랑해서 채색옷을 입었다. 이 채색옷은 공주가 입는 옷이야. 왕자님이나 입는 옷이야. 요셉의 집이 부자였던지 공주나 왕자님이 입는 채색옷을 입혔던 거야. 이것은 예쁜 옷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옷을 입고 살았다는 거예 요. 사람은 둘째 뭘 먹고 사느냐? 사랑을 먹고 산다. 어떤 사람이 크리스마스날 약혼녀 사랑하는 여인과 파티를 즐기려고 계획을 하 고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명령이 떨어졌어요. 빨리 지금 이 짐을 다른 나라로 옮겨야 되니까 비행기를 타고 즉시 출국하세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를 즐기지 못하고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바다를 날아가는데 태평양 한가운데 서 태풍을 만난 거예요. 회오리바람에 비행기가 소용돌이 치면서 바다에 풍 덩 빠졌어요. 신문에서는 비행기 추락! 모든 사람 실종! 사망! 모든 사람들 에게 보도가 되어졌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바다에 빠져서 마침 바다 위에 떠다니는 판자 조각을 하 나 품에 안았어요. 그리고 배구공이 바다에 떠 있길래 그걸 주워서 헤엄을 쳐서 가다 보니까 저기 무슨 섬이 있어요. 가봤더니 조그마한 무인도예요. 거기서 풀을 뜯어먹고 날고기를 잡아먹고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면서 배 구공에다가 사랑하는 애인의 얼굴을 그렸어. 눈, 코, 귀, 입을 그리면서 견뎌 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그 무인도 옆으로 지나가는 배가 있어서 손을 흔들 어서 구조되었어요. 몇 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봤더니 사랑하는 약혼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줄 알고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거예요. 무인도 에서 혼자 살 때는 잘 살 수 있었어요. 마음에 꿈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행 복할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돌아와 보니 애인이 시집을 가버렸잖아. 다른 남자의 아기를 낳아서 잘 살잖아. 그때부터 이 남자는 방황하기 시작해요. 바 다에 추락해서 무인도에서 표류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에 표 류한다. 내 마음에 사랑을 빼앗겼을 때에 방황한다. 이 영화 이름이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표류, 방황입니다. 진정한 표류는 바다에 떨어졌을 때, 무인도에서 혼자 살 때에 캐스트 어웨이가 아니고 바로 사랑을 잃어버렸 을 때에 캐스트 어웨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캐스트 어웨이의 교훈입 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그리고 설교가인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을 아세요? 이 사람이 평생 제일 많이 한 설교가 탕자의 이야기예요.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예요. 엄마 아빠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에는 과식이 없다. 특별히 사랑하는 자녀가 잘못될 때에, 엄마 아빠를 실망시켰을 때에, 잘못된 길을 갈 때에 그때 진정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나눠 줘야 할 때이다. 사랑에는 과식이 없다! 빌리 그래함의 아들은 프랭클린 그래함(Franklin Graham)이에요. 얼마 전에 한국에 왔다 갔어요. 프랭클린 그래함 아들이 청소년시절에 갱단에 들어갔어요. 오토바이 폭주족이 됐어 요. 어린아이가 술을 마시고 다녔어요. 총을 쏘면서 다녔어요. 어쩌다가 집에 돌아오면 눈물 로 기도하는 엄마 아빠를 볼 수 있었어요. “너는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 품으로 돌아올 거야.” 축복의 말을 남겼죠. 아들이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먼 도시에 가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합니다. 총을 쏩니다. 술을 마십니다. 그날 밤 호텔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데 탁자 위에 기도원에서 비치해 놓았던 빨간 성경책이 한 권 있었어요. 어릴 때 늘 보던 성경이니까 잠도 안 오고 그냥 읽었어요. 거기서 엄마 아빠의 말씀이 생각이 났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어요. 돌아와서 아버 지의 대를 이어서 세계적인 전도자 프랭클린 그래함이 된 거예요. 타임즈지에 빌리 그래함 아버지와 프랭클린 그래함 아들의 이야기가 실렸어요. 자녀들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먹고 산다. 부모의 눈물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사랑에는 과식이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첫째, 우리 어린이들은 축복의 말씀을 먹고 산다. 두 번째, 사랑을 먹고 산다. IV. 내 아이는 꿈을 먹고 산다. 우리 어린이들도 요셉? 그랬을 때 생각나는 게 뭐예요? “꿈꾸는 소년”이었습니다. 꿈을 먹고 산다는 겁니다. 돌이켜보니까 목사님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받은 축복이 뭘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약속을 어디서 받았을까? 생각해보니까 목사님은 어릴 때 꿈 파는 가게 두 곳을 만났다. 첫 번째 꿈 파는 가게는 교회였어요. 어린 시절에 동리 내 친구들은 교회를 안 나가는데 나는 엄마를 따라서 교회를 나갔어요. 엄마를 따라 교회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시골에서 살지만, 하늘만 보이는 시골 산골에서 살았지만 나는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될 거야. 늘 꿈을 꾸었던 거예요. 어린 시절에 예배당이 건축되는 걸 보고 달려가서 아저씨 이 집에 누가 살아요? 하나님이 사신데. 와 우리 하나님 좋으신 분, 부자인가 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러 교회에 왔어요. 거기서 꿈을 꾸었어요. 꿈을 샀어요. 그리고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갔다. 마침 고등학교가 예수 믿는 학교야. 학교 가는 날마다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는 학교예요. 전국에서 어쩌면 전세계에서 이런 학교가 유일한 학교인 것 같아요. 거기서 3년 동안 매일 교장 선생님의 훈화 설교를 들으면서 살았어요. Boys, be ambitious. 여러분 꿈을 꾸세요. 야망을 가지세요. 여러분의 삶의 환경이 어려울수록, 여러분의 앞길이 보이지 않을수록, 고난과 시련이 여러분을 덮칠수록 여러분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Don't give up, hold on. hold on. never, never, never... 너무 열심히 설교를 하다가 교장선생님이 틀니를 하고 계셨는데 Don't 그러면 틀니가 푹 빠져나왔어요. 내려오셔서 틀니를 주워서 수건으로 닦아서 입에 넣고 계속해서 never, never, never... 설교를 했어요. 그래서 꿈을 샀어요. 그 학교는 꿈을 파는 곳이었어요. 하나님이 쓰는 사람은 공부를 잘하는 어린이, 건강한 어린이들 중요하지만 꿈꾸는 어린이를 하나님이 쓰시는 거예요. 꿈대로 축복하여 그 꿈을 이루어줌으로써 그 인생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거예요. 꿈을 꾸고 꿈을 나누면서 사는게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겁니다. 2002년 지금부터 22년 전에 서울에서 월드컵 경기가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4강에 올라갔 어요. 아마 그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내가 죽기 전에는 우리가 월드컵 4강에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가 없을 거예요. 내 생각은 그래요. 그래서 4강을 내가 봐야 되겠다. 내 생애에 이런 경기를 못 보면 평생 후회할 거야. 마침 그때 카드섹션(card section)을 하는 거야. 전세계를 향하여 카드를 손에 들고 수백 장 카드를 들고 사람들이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카드를 들면 월드컵 상단의 한쪽면 전체가 꿈, 별... 이런 카드섹션을 했어요. 목사님과 목사님의 딸이 월드컵 경기장에 갔는데 앉다 보니까 꿈 자에 첫 번째 꺾여지는 ‘ㄱ’자 그 모퉁이에 딸 단비랑 둘이 나란히 앉았어요. 앞에 선 사람의 손짓에 카드를 탁 올리고 카드를 탁 내려놓 아요. 나는 카드 한 장밖에 안 보여. 한국에서 전세계에 알리는 메시지가 있었어요. 꿈은 이루어진다! 여러분 사람은 꿈을 먹고 살아가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제자들 곁을 떠나셨어요. 이 세상을 떠나셔 서 우리가 돌아가게 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러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셨어요. 그러면서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얘야 이 세상에서 너희들이 살아갈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혼자 이 세상에 살아가는게 아니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한단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주실 거야. 성령님이 오면 너희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꿈을 꾸게 된단다. ♪마지막 날에 내가 나의 영으로...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 주의 영임하 면 성령이여 임하소서 성령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마지막에 성령이 오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게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사람을 쓰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유럽이란 나라가 더 이상 땅을 개발할 수가 없었어요. 스페인 사람들은 소문을 듣자 하니 남미라는 나라가 있는데 무진장한 지하 자본들, 은금보화가 묻혀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 은 부자가 되기 위하여 남미를 향하여 배를 타고 갔어요. 돈을 찾아 남미를 찾아갔던 사람들 은 모두 다 가난하게 살아요. 스페인어를 많이 쓰는 나라가 참 많이 있지요. 멕시코를 제외하 고 나면 15-16개 나라가 되는데 그 나라 그 어마어마한 땅덩어리, 그 나라에서 1년 동안 버는 돈하고 조그마한 우리나라가 버는 돈하고 똑같다. 그만큼 가난하게 사는 거예요. 돈을 찾아갔던 이 사람들은 지금 돈도 잃어버리고 믿음도 잃어버리고 요즘 많이 돌아오고 있어서 감사한 일이에요. 그러나 영국의 청교도들은 지하자원이 묻혀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예수 잘 믿기 위해서 북미로 갔어요. 미국 땅으로 간 거예요. 거기서 예수를 잘 믿는 기독교 국가를 건설했고 무진장한 지하자원이 묻혀있는 땅에서 지금도 세계 를 다스리며 사는 나라가 된 거예요. 하나님을 찾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축복의 말씀을 먹고 산다. 나는 사랑을 먹고 산다. 나는 꿈을 먹고 산다. 엄마 아빠 여러분!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학교를 보내는 것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맛있는 밥을 먹여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도 소중한 일입니다. 좋은 옷을 입혀서 아이의 자존 감을 살려주는 것도 귀한 일이에요. 그러나 오늘 어린 날을 맞이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나의 축복의 말씀을 먹고 산다. 이 아이는 사랑이라는 옷을 입고 산다. 이 아이 가 꿈꾸는 대로 하나님이 축복하고 산다. 가난한 목사의 집안이 있었어요. 아이가 19명이에요. 목사님 사모님의 이름은 수산나였습니 다. 목사님은 늘 교회일로 바쁘니까 목사님의 사모님 수산나가 19명의 자녀들을 키우는데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세수를 하고 온집안에 모여 그날 주시는 길지 않은 짤막한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이 외우게끔 합니다. 조금 길면 며칠간에 걸려서 외우게 합니다. 예배를 드려 요. 예배를 드리며 묻습니다. “너희들은 누구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너희들은 어떻게 세상을 살겠느냐?” “위대한 사람이 되어서 살겠습니다.” “누가 너희를 위대하다 말씀하셨느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너희들이 꿈꾸고 기도하는 그 일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매일 밤 똑같은 패턴으로 예배를 드리고 엄마의 말씀을 따라 했습니다. 19명의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유럽 전역을 살려내는 감리교 창설자, 유럽의 대부흥을 일으켰던 요한 웨슬리, 우리가 부르는 많은 찬송을 만들었던 찰스 웨슬리, 11명의 모든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훌륭한 어린이가 된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날, 우리 가슴속에, 엄마 아빠의 가슴속에, 우리 어린이들 가슴속에 이 말씀이 새겨져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는 그날까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거야. 축복의 말씀을 내 아이들에게 먹일 거야.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살 거야. 이 아이에게 사랑의 옷을 입혀야지. 나는 꿈꾸며 살 거야. 이 아이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게 있어. 나는 꿈이야. 성령님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오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