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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두 번째 장소
처음엔 ‘까보 끄루스(Cabo Cruz)’ 마을에서 두 달여 모든 일정을 마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초반의 너무 좋았던 분위기에 비해 뭔가 자꾸만 부정적인 일도 생기는 데다,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 부근에 사는 R과 M 부부의 초대도 있고 해서, 새로운 분위기로 바꿔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그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에겐 쿠바에서의 두 번째 행선지가 되는 셈이었다.
가, 또 하나의 여정
새로운 장소로 가기 위해선 당연히 여행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쿠바에서 여행하기가 쉽지 않던 내 입장에서는, 그 여정마저도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안녕! ‘까보 끄루스(Cabo Cruz)’#
그동안 질질 끌던 바닷가 마을 ‘까보 끄루스(Cabo Cruz)’를 떠나는 일이 급박하게 진행됐다.
결국 마지막 식사인 점심을 윌리암이 가져 왔고,
그걸 먹고 후식까지(망고 큰 걸로 하나) 먹은 뒤 설거지를 하는데,
다시 윌리암이 나타났다.(그는 그렇게 불쑬불쑥 나에게 나타나곤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인야, 차 출발 시간이 2시 반으로 앞당겨졌다는데요." 하는 것이었다.
원래 4시 반이라더니, 그건 매우 잘 된 일이었다.
그렇잖으면 중간 기착지인 ‘바야모(Bayamo)’란 도시엔 밤 8시에 도착해서, ‘산티아고(Santiago de Cuba)’에 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당연히 호텔에서 하룻밤 신세를 져야 할 텐데,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해서 바야모에 도착하면 다음 행선지에는 오늘 밤 안에 도착할 가능성도 있을 터라서......
그래서 내가 서둘러 망고 껍질 등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려니까, 오늘도 윌리암이 자기가 버리겠다고 그릇을 빼앗아 갔다.(그는 그런 건 너무 잘한다.)
고마워서, 난 오늘도 웃고 말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앞당겨진 만큼 나는 또 그만큼 바빠졌던 것으로, 서둘러 설거지를 하고,
윌리암 동생에게 숙박비 이틀 치를 지불하고는... 바삐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고도 1시간 반의 여유가 있어서,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옷도 갈아입은 상태였는데, 다시 윌리암이 나타났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버스가 곧 떠난다는데요?" 하기에(여기는 뭐든 정확한 게 없다.),
일단 무거운 짐 가방부터 테라스에 내놓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가 잠깐 테라스 그늘에 있던 의자에 앉기에, 그 틈을 이용해 마지막으로 그와 사진 한 장 함께 찍으려고, 테라스 난간에 디카를 놓고 자동으로 조절하는데,
이상하게도 지난번에도 그러더니(윌리암이 여기 바닷가와 마을 전반적인 곳을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 줄 때), 그와 함께 사진만 찍으려 하면 이 놈의 카메라가 말을 잘 안 들어, 오늘도 해매고 있었고, 막 되려고 하는 참에,
“어? 차!” 하면서 윌리암이 서두르기에,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던 내가,
“잠깐만! 내가 너 있는 곳에 가기만 하면 되는데......” 하는데 보니, 마을 모퉁이에 그 버스가 나타났다.
그러니, 사진이고 뭐고, 그가 아래도 튀어 내려가 일단 차를 세워놓았고(그는 동작도 빠르다.),
나는 내 짐을 챙기고, 그가 다시 올라와 내 큰 짐가방을 들고 버스 앞으로 가기에 나도 뒤따라 내려갔는데,
기사가 내려와 내 짐가방을 버스 짐칸에 넣는 사이에도, 이 동네 사람들이 나가려고 벌써 와르르 버스로 몰려들고 있었다.(쿠바는 어디를 가드라도 대중교통수단이 잘 돼 있지 않아, 버스를 타려고 아우성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윌리암, 나 떠나는 모습 사진 몇 컷만 남겨 줘.” (내 까페에 여기 소식을 전할 때, 내가 떠나는 모습의 사진이 필요했기 때문)했더니, 내 핸드폰을 달라기에,
“니 핸드폰으로 찍어야 보내줄 수 있잖아?” 했더니,
“하필이면 지금 핸드폰이 없어요. 집에다 놓고 왔나 본데......” 하는데, 일이 안 되려고 그러는지 그런 일까지 발생해서(그건 극히 드문 일이어서),
나는 일단 내 핸드폰을 그에게 넘기고 버스에 오르게 되었고, 그가 그런 내 모습을 몇 컷 찍는가 싶더니 곧바로 내 핸드폰을 다시 나에게 돌려주었는데,
그것으로 그와는 이별이었다.
(내가 버스에 타려던 순간 윌리암이 운전기사에게 600뻬소를 건네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덕분인지(?)) 나는 맨 앞좌석에(좋은 자리) 앉을 수 있었다.(그가 사전에 그런 식으로 부탁해 둔 듯)
그리고 몇 사람 마을 아이들이 버스에 더 타는 과정에서도 안에 타 있던 사람들마저 어찌나 요란하게 떠드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아무튼 버스가 출발을 했다.
그런데 그 조금 아래인 윌리암 집을 지나자 버스가 또 섰다. 거기에도 몇 사람이 서있었던 것으로, 그들을 싣느라 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그러는 과정에도 운전기사와 손님들에게 돈을 받는 조수(?) 사이에 언쟁이 있었는데, 어찌나 많은 사람을 태웠는지(이들은 버스 안에서도 어찌나 떠들어대는지) 정신 차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창을 두드리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윌리암 아닌가.(좌우간 그는 ‘홍길동’이다.)
그러니까 차가 다시 서는 걸 보고, 그가 자기 집에 뛰어가서 핸드폰을 가지고 나와 또 내 사진을 찍었던 것으로,
그가 그렇게 눈치도 빠르고 행동도 빠르다는 게 다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밖에서 활짝 웃고 서 있는 그를 보니,
그제야 헤어진다는 사실이 실감났고 또 감상적인 생각도 들어,
'저 친구가 참 좋은 사람인데... 물론, 앞으로도 서로 연락을 하겠지만......' 하면서,
“그동안 고마웠다, 윌리암! 너를 잊을 수는 없을 거야.” 하고 내가 손을 들자,
“나도요......” 하며, 그가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눈)은 평상시와는 뭔가 달랐다.
그렇게 버스는 출발했는데, 그것이 '까보 끄루스'와의 이별이었다.
아니, 윌리암과의 이별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가 내 까보 끄루스에서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
*
'까보 끄루스' 마을의 '진입로'이기도 한, 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숲길'을 역으로 지나면서 나는,
'무슨 인연인지는 몰라도 낯선 쿠바에 와, 이 구석 마을까지 찾아왔다가... 결국 이렇게 떠나는구나......' 하는 감상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데 버스가 '니께로(Niquero)'에 도착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숲길을 벗어난 또 다른 해변 ‘꼴로라도(Colorado)'에 닿는가 싶었는데, 운전기사가 10분간 선다며 내리던데,
그만 내리는 게 아닌 많은 승객들도 뒤따라 내렸고, 기사가 그 옆의 한 집에 들어가더니 뭘 하는지 10분이 넘어도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내렸던 승객들도 그 해변으로 몰려가 뭔가 길거리 음식을 사먹는 등, 마치 '휴게소'에서 휴식하는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도 그 마을의 어떤 사람들은 웬 바나나를 그렇게 차의 짐칸에 싣던지, 더 이상 실을 공간이 없을 것 같은데도(이미 실은 생선이며, 보따리 들이 넘쳐나는 것 같은데도) 쑤셔넣었고, 한참 만에 나온 기사가 차에 올라 크락션을 울리자 승객들이 다시 차에 올랐는데, 그 뒤로도 10여 분이 지나서야 버스가 출발을 했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 한 사람이 타지 않았다며 또 서서, 그가 정신없이 뛰어와 차에 오르는 촌극도 빚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닌, 니께로에 도착하기까지 두세 차례 더 반복되는데, 차가 설 때마다 내리는 사람은 적은데 타려는 사람들은 줄을 지어 난리였고, 그 놈의 바나나는 사람들마다 들고 와서 차에 실어,
'도대체 왜 바나나가 이들에게 그리 중요하다지? 그리고 그 많은 바나나를 어디로 들 가져간다지?' 하고 내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버스가 결국 ‘니께로’에 닿았는데, 의외로 내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이제는 그보다 더 큰 도시인 '만사니요(Manzanillo)'를 거쳐야 했는데, 거기 역시 중간중간에 버스가 설 때마다 사람들이 내려 바나나를 짐칸에서 꺼내는 등,
그렇게 '야라(Yara)'라는 도시에 버스가 서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이(원래 버스가 거기서 출발했던 듯) 내렸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승객들이 거의 대부분 내리느라 시간이 엄청 걸리기도 했지만,
갑자기 기사가, 버스 세차를 한다며 나머지 몇 명의 승객들을 내리라기에, 나도 그들을 따라 내려 그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버스를 그 옆 세차장에 옮기는가 싶더니, 본인이 콤푸레셔로 직접 세차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다렸는데, 그 시간이 무려 한 시간 반이 넘어가는 것 아닌가......
나야 속에서 불이났지만,
'이놈의 버스, 가는 거야, 마는 거야......' 하고 속으로만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다른 승객들은 이런 일은 보통이라는 듯 자기들끼리 웃어가며 떠들고만 있었고,
결국 그 기사가 온몸이 땀과 물로 흠뻑 젖은 채 일을 하다가 또 거기 어딘가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까지, 나는 그냥 그의 처분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이미,
‘오늘 밤 산티아고에 도착하기는 글렀구나!’ 하고 포기한 상태였다.
결국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땅거미가 지는 쿠바의 들판 길을 달려 목적지인 ‘바야모(Bayamo)’에 닿으니, 이미 8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니까 중간에 그렇게 어영구영 기사 맘대로 지체하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그 버스가 제대로 ‘바야모’에 도착만 했어도 어찌 됐든 ‘산티아고’에는 밤에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결과적으론 내가 그 밤에 ‘산티아고’로 갈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가봤자, 자정 넘은 시각에 도착할 텐데, 차도 없는 것 같던, 나를 마중나오기로 돼 있던 R은 어쩌면 잠도 못잘 상황에 처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좌우간 너무 애매한 시각에 '바야모'란 도시에 도착했던 나는, 어찌됐든 거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산티아고에 갈 수밖에 없는데, 여전히 나는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비아술' 버스표를 살 수조차 없는 처지여서(내 카드로는 결재가 안 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국인만을 위한 '옴니버스'를 타려고 시도도 했지만,(내가 내리자마자 산티아고 행 버스가 한 대 있기는 했는데, 공교롭게도 한달 반 전 내가 산티아고에서 갑작스레 ‘바야모’로 올 때, 야매로 나를 태워준 바로 그 운전 기사 차였는데,
내가 그를 알아 보고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나마 태워달라고 사정을 하자,
나를 모른 척하는 것도 모자라, 도망까지 가면서(나중에 들으니, 이제 그런 식으로 했다가는 당국에 처벌을 받는다고도 했다.), 펄쩍 뛰는 바람에 그 버스를 그냥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그 상황을 '산티아고 데 쿠바'의 R에게 알려야 했던 나는, '비아술' 버스 사무실에 가서 내 사정얘기를(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한 다음 부탁을 해서 R에게 전화를 걸기까지는 했는데,
그가 받고 인사만을 하는데 전화가 뚝 끊기고 말았다. 그랬더니 그 직원이,
"이건, 상대방의 전화에 돈이 떨어져서 그렇거든요?" 하기에, 이번에는 그의 부인인 M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건 또 불통이어서, 이래저래 나는 그들에게 연락도 제대로 못한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하는 수 없었다.
'이것도 운명인가 보다!' 하고, 스스로 뭔가를 결정할 수밖에.
물론 방법은 두 가지였다.
지금 무리를 해서(합승 택시를 잡아타고라도) 산티아고에 가는 것과,
하룻밤을 여기 '바야모'에서 자고 내일 출발하는 것(내일도 나는 버스를 공식적으로는 탈 입장이 못 되는데).
그런데 만약 지금 합승 택시를 타고 산티아고에 간다고 해도, 자정 무렵에 도착할 텐데,
'거기 어디서 밤을 새운단 말인가?' 하고 나는 벌써부터 겁에 몸서리까지 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럴 바엔 차라리 여기 ‘바야모’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일찍 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 우선 호텔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도시는 상당히 커보였는데, 어디로 가서 호텔을 찾을지 막막해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닐 일이 더 힘들고 끔찍해, 결국,
'내가 공항에서도 비행기를 7-8 시간은 보통 기다리는 사람인데, 여기서 그 정도 못 기다리겠어?' 하는 심정으로, 그 버스 대합실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여기 쿠바는 밤에도 '깡통버스'가 운행되기 때문에(승객들이 꾸준히 어딘가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런 큰 도시의 버스터미널에는 밤새도록 승객들이 붐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는, 그렇지만 대합실 안은 답답했기 때문에 아예 밖으로 나와,
야외 휴게소에서 앉아기다리기로 했다.
5 . 22
#유명한 성당이 있는 산촌 ‘꼬브레(Cobre)’#
밤을 새우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차피 나 같은 다른 승객들도 제법 있었기 때문에, 지루하기는 했지만 위험하지는 않게 ‘바야모’ 터미널에서 밤을 새웠던 나는,
새벽 5시가 되자 주변이 활기를 띄면서 합승 택시들도 나타나기에,
그 중 하나를 타고 ‘산티아고 데 쿠바’로 향했다.
물론 나는 몹시 지친 상태였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한참을 달리는데 먼동이 트고,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산악지역으로 접어든 듯 멀리 안개에 덮인 골짜기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연출하고 있었고,
해발 고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줄곧 내리막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내리막이 어찌나 길던지, 중간에 도시 몇 개를 지나는데도 끝나질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8시 반이 넘어 ‘산티아고 기차 역’에 도착했는데, 한 달 반 전에 우리가 만났던 곳이기도 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택시 기사의 전화로 ‘R’과 통화를 했는데,
그는 날더러,
"내가 지금 나갈 테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세요." 라고만 했다.
'글쎄,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건지......'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그들에겐 차가 없는 모양이었고, 그들은 '꼬브레'라는 산촌에 살기 때문에, 현지에서 교통편이 없으면 언제 나오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시간을 정확하게 정할 수가 없었을 거라는 추측은 할 수 있었다.
이 나라는 가난하기 때문에, 나도 이젠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아야 했고, 또 거기에 맞춰줘야 했던 것이다.
'산티아고 데 쿠바' 기차 역 앞 광장의 한 벤치에 앉아,
얼마나 기다렸을까?
정확한 시간을 재지는 않았지만, 두어 시간은 지난 듯했는데,
멍하니 앉아 역 쪽을 바라보고 있는 내 쪽으로 한 사람이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오는데, 그가 바로 ‘R’인가 보았다.
그렇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데 보니, 활짝 웃는 모습이, 그였다.
그렇게 반갑게 악수를 한 다음, 그와 어젯밤에 있었던 경위를 설명했는데,
그가 어젯밤 전화가 끊긴 뒤 바로 돈을 충전한 뒤 ‘비아술’(내가 전화를 걸었던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는데, 그가(비아술 버스 회사 직원) 나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를 않았던 게 우리 쌍방에게 불안에 떨게 하고도 시간을 상당히 뺏어간 결과를 빚었던 것으로 나타났고,
"나쁜 놈!" 내 입에선 욕이 절로 나왔다.
외국인(나)이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면, 그리고 자기네 손님이었는데, 조금만 신경을 써줬다면 우리 둘 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더구나 나는 그 뒤로도 그 사무실에 두어 차례 더 들락거렸음에도, 그는 시치미를 뚝 떼며 나에게 R에 대한 얘기를 단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잠도 못 자고, 물론 R과는 통화도 못한 채(쌍방이 답답한 상황에서) 새벽 5시에 합승택시(1200뻬소. 그리고 200뻬소는 삐끼에게)를 타고 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R은 그 사이 ‘까보 끄루스’의 윌리암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나를 보낸 뒤, 윌리암의 입장에서는 '바야모'에 도착했을 내가, 어떻게 산티아고에 도착했을지 궁금했을 터였다. 그러니까 그 버스회사 직원의 냉대로, 우리 세 사람이 밤새 불안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바로 윌리암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한 과정은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R은 드디어 ‘꼬브레(Cobre)’로 가기 위한 여정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그들 부부가 살고있는 마을로 찾아가는 행로였는데, 그다지 멀지는 않았지만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만 했고, 두 번째 깡통버스를 탈 때는 오늘도 R이 임기응변(꼼수(?))으로, 거기 터미널에서 우리가 출발 시간 전에 대기 중이던 버스에 먼저 짐을 싣고 탄 뒤, 버스가 승강장으로 가 다른 승객들을 실었기 때문에, 그나마 편하게 앉아서 올 수는 있었다.
산티아고 도심에서 버스를 탄 뒤 채 한 시간도 안 돼 '꼬브레(Cobre)' 마을에 도착했다.
산중의 한 분지 마을이었는데, 일단 그 분지의 중심이랄 수 있는 곳에 성당이 있었고, 내가 머물 숙소는 그 성당의 뒤에 있는, 무슨 ‘수도원’을 개축한 ‘알베르게’ 식 건물이었는데, 그래선지 천장도 높고 복도도 넓어 더군다나 그 곳에선 마을을 내려다 볼 수도 있는 좋은 위치여서 시원한 점이 우선 맘에 들었다. 나는 어디든 그렇게 확 트인 곳을 좋아하니까. 더구나 값도 싸고 깔끔하기까지 해서,
'이 산골에 이런 숙소가 있다니!' 하고 놀랄 정도였다.
아마 성당에 순례를 오는 사람들을 위한 숙박시설이라 그런가 보았다.
그런 뒤, 제일 먼저 성당 앞에 있는 마을의 한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데,
'무슨 이런 식당이 있어?' 할 정도로 최악이었다.
맛이 없는 건 물론, 양배추 잎을 몇 조각 잘게 썰어놓고 간도 돼있지 않은 걸 샐러드라고 내왔는데, 그런 샐러드는 평생 처음이자 말도 안 되는 음식이었고, 음식점 자체에 파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밥맛이 다 달아나서 나는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그래도 R은 꾸역꾸역 그걸 먹기에 기다리다) 미련 없이 나왔는데,
다시 숙소로 돌아오자, 인터넷에 목말라 있을 나를 위해 R이 줄곧 인터넷 접속을 시도하기에('불르투스'를 이용하면 무료로 접속이 가능하다면서) 거기에 호응해주느라 힘이 들었다.
물론 그 때문에 결국 인터넷을 하게는 되어 좋았는데,
나는 너무나 피곤한 상태여서 잠을 자고 싶은데,
그는 돌아갈 생각을 안 해서(그렇다고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에 맞춰주느라 내가 혼났다.
결국 그가 돌아간 뒤에야, 겨우 샤워를 할 수 있었고 바로 침대에 누울 수도 있었다.
나에겐 쿠바에서의 '또 하나의 힘든 여행'이었고, 새로운 일정이 시작되고도 있었던 것이다. #
*
잠에서 깨어보니 어느새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저녁을 먹어야겠기에, 그렇다고 여기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것도 아니라서 밖에 나가야만 했다.
그런데 마을에 나가 보니, 낮과는 달리 한산한 거리에는 식당이나 먹을 거리를 파는 곳은 없었고, 겨우 과자 부스러기만 파는 곳이 한 집 있어서, 그거라도 사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까보 끄루스’를 떠나 올 때 윌리암이 가져가라고 억지로 쑤셔넣었던, 그래서 무게가 나가 불평을 해왔던 큰(무거운) 망고 하나가 있어서, 과자와 그 걸로라도 저녁을 때울 수 있었다.
그래서 망고 껍질을 벗기고 있는데(칼이 없어서 이빨로 껍데기를 뜯어가며), 2층 복도의 열린 기둥을 통해 누군가가,
"인야!" 하고 부르기에 보니, 저 아래서 R이 나를 부르고 있었고 그 옆에는 M도 손을 흔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먹을 것(샌드위치 두 개.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거리) 망고 3개, 그리고 R이 직접 만들었다는 망고 쥬스 한 병에다 ‘휴지’ 하나, ‘칼’ 등을 가져왔는데,
정말 '마음의 선물' 그 자체여서, 내가 뭘 어찌 할지를 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배도 고프던 차에, 더구나 나를 먹이려고 가져왔던 먹거리라,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들과 내 그동안 쿠바에서 지내왔던 상당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얘기 중에 ‘M’(여자)이 졸기에(그녀는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병든 어머니를 수발한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R’은 얘기가 끝이 없어,
“시간은 많으니, 다음에 또 하기로 하고,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떠밀듯 그들을 보내고,
내 쿠바에서의 '두 번째 장소'인 '꼬브레(Cobre)'에서의 첫잠을 자게 되었다.
6 . 23
나, 초대
여기 ‘꼬브레(Cobre)’에 오면서, 아니 오기 전부터 나에겐 숙제 하나가 있었다.
이들 ‘M’과 ‘R’ 부부에게 맛있는 식사 한 끼를 초대하는 일이었다.
#맛있는 식사 한 끼#
얘기는 우리가 알았던 한 달 반여 전으로 넘어가야 한다.
(물론 여태까지의 이야기에도 포함돼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간략하게나마 그 얘기를 덧붙일 수밖에 없다.)
내가 쿠바에 도착해 수도 ‘아바나’에서 바닷가 마을 ‘까보 끄루스’를 찾아가던 길에, 계획이 어긋나 엉뚱한 도시였던 여기 ‘산티아고 데 쿠바’에 내린 날 아침,
물 한 병 제대로 사 마실 수 없는 여기 사회 구조에 질린 상태에서, 내가 가야할 곳에 버스표 예매도 안 되어(내 비자카드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어딘가 가려고 정거장에 나왔던 이들과 우연히 역 앞 벤치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내 딱한 사정을 듣고 이들 부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자기들 출발 시간 전에 나를 ‘까보 끄루스’에 가야 할 중간 거점 도시인 ‘바야모(Bayamo)’까지 가는 버스를 태워 보낸 일이(비록 불법이었지만) 우리의 인연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목적지로 가는 길이 어긋나 있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나였는데,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 쿠바에서의 초반 일정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상황에서, 정말 기적 같이 이들이 나타나 나를 도와, 그 톱니 바퀴의 일부분이던 여정이 제대로 맞춰지는 결과를 맺었던 것인데,
그 과정에서(길지 않았던 두어 시간 가량의) 나는 이들에게,
“내가 ‘까보 끄루스’에 도착해 집만 잘 구한다면, 이 고마움의 대가로 당신들을 초대하겠다!”고 호언했던 일과도 연결이 된다.
그들도 내 제의(초대)에 흔쾌히 응했고(지금 돌이켜 보면, 그당시의 이들은 아마 속으론 웃었을 것이다.),
나는 중간 기착지인 ‘바야모’에 도착해서 또 하나의 기적 같은(?) 일로 별 무리 없이 목적지인 ‘까보 끄루스’에 도착했는데,
2-3일 간의 우여곡절 끝에 겨우 방은 구했지만,
내가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되다 보니(그건 꿈같은 일로,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여기 쿠바의 사회 구조를 너무 모른 채 현지에 왔던 것이다.), 이들 부부를 초대하는 일은 정말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급하고 황망하게 버스를 태워 나를 보낸 그들의 입장에서도,
‘이 사람(나)이 제대로 가기나 했을까?’하는 생각에서 자유롭지가 않았을 터였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내가 연락을 하기도 전에(인터넷이 힘들다 보니 연락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내가 현지에 잘 도착해서 지내는지 묻는 메일을 두어 통 보내올 정도였다.
나 역시 ‘까보 끄루스’에 도착해, 겨우 윌리암의 도움으로 인터넷을 접한 뒤에야 가까스로 그들에게 답을 할 수 있었는데,
‘방은 얻어서 잘 지내고 있지만, 약속했던 초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미안하다.’ 는 답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들의 답이 이어졌는데,
자기들은 다 이해한다면서도, 혹시 내 쿠바 체류 일정 중, 다시 ‘산티아고 데 쿠바’ 쪽으로 올 계획이 있다면, 이번에는 자기들이 나를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기 주변도 구경시켜주고 싶다며.
그렇지만 여기 쿠바 자체 내에서의 여행이 하도 복잡해서, 나는 가급적 움직이지 않으려고 선뜻 그들의 초대에 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 내가 여기 지도를 보다가 관심이 가는 한 구간이 생기게 되었다.
쿠바의 제일 아래쪽은 산악지역이라는데, 우리나라 동해안처럼 긴 해변을 따라 도로가 있었고(20번 국도), 어쩐지 가(구경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것으로,
이 20번 도로가 바로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내가 머무는 ‘까보 끄루스’가 속한 ‘그란마(Granma)’지방의 ‘삘론(Pilon)’이란 곳까지 거의 일직선상의 해안도로여서,
내가 나중에 쿠바를 떠날 때 며칠 전 쯤 거기 까보 끄루스를 출발해 그 도로를 지나 산티아고에 들렀다가 ‘아바나’로 가면 될 거란 내 편할 대로의 계획을 세우면서,
이들 부부에게 알렸더니, 대환영이었다.
그래서 나는 윌리암을 다그쳐, 그 여행을 주선해줄 것을 요구했는데(내 유일한 쿠바에서의 여행계획이어서),
그러면서 들으니, 그 20번 도로를 통과하는 공식적인 교통편이 없다고 했고, 그래도 내 의지가 꺾이지 않자,
현지 '삘론(Pilon)'에 산다는 윌리암의 친구를 통하게 되었는데,
그 길로의 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도로는 있으나 아직 정비가 안 된 데다, 해안 산악(절벽)지역이라 낙석이 빈번하기도 해서, 그 길로의 여행은 역시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들 삘론에 사는 사람들마저도 산티아고에 갈 때는, 거리 상 두 배가 넘는 먼 길로 돌아(바야모를 통과해서) 다닌다는 말도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꼴이었다.
그렇다고 이들 부부에게 ‘못 간다’는 통보를 하기도 미안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그들의 실망이 클 것 같아)
그러던 차에 ‘까보 끄루스’에 머무는 일들에 부정적인 요소들이 자꾸 생겨나다 보니(모기, 같은 숙소에 묶는 사람들의 무례함, 일도 못하면서 시간만 때우고 있어서),
‘이럴 바엔 분위기를 한 번 바꿔보자!’ 하고,
오히려 처음 계획보다 더 긴 3주간의 일정으로 여기에 온 것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나의 첫 번째 과제는, 이들에게 맛있는 식사 한 끼를 대접하는 일이었다.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여기는 물가가 싸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고, 또 그러고도 싶었던 게 내 본심이다.
그런데 여기 쿠바는 그런 것마저 쉽게 되는 나라가 아니었으니......
그들이 날을 잡았고, 우리 셋이는 다소 느긋하게 여기 ‘꼬브레’에서 '산티아고'에 가기 위해 깡통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쿵쾅거리며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의 내리막 길을 달리는데,
내가 여기 산악지역의 가장 높은 산이 얼마나 되는지가 궁금해서 물으니, 이들은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어 모르고 있었던 듯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2008m라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남한(지리산: 1905m)과 비슷한 높이라고 봐도 될 터였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그런 쪽에 관심있는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웃기도 했는데,
갑지가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여기는 한 번 비가 내리면 무섭게 쏟아지는데, 오늘도 그랬다.
그러자 승객들이 급하게 깡통버스의 천막을 내리는데, 이미 한 쪽이 찢겨진 틈으로 비가 들어와서 그걸 잡고 있던 손이며 팔뚝이며는 이미 다 젖은 상태로,
그런 가운데도 버스는 달려 겨우 산티아고 시내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몸의 거의 반절이 젖도록 뛰어 대합실로 들어가서야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한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겨우 비가 멈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지저분한 도심을 그런 소나기들이 이따금 말끔하게 청소해주는 효과는 있어 보였다.
그렇게 비가 멈춘 산티아고 도심을 걸으면서,
‘M’이 도심에 있는 식당의 가격에 관심을 갖는 것 같기에,
“M, 오늘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맛있는 걸로 먹어도 되니까, 너무 염려 마!” 하고 내가 나서서 당부를 할 정도로 나는 들떠 있었고,
그녀도 알았다는 듯 수긍을 하면서도 그런 행위를 멈추지는 않았다.
그런데 산티아고 도심은, 낙후된 차량들의 달리는 소리와 경적 등으로 시끄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며, 그 차들에서 나오는 매연에 숨이 막혀 제대로 도심을 걷고 싶은 생각도 사라질 정도로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어디, 맘 편히 걸을 데가 없네!” 하고 내가 짜증을 내자 그들도 동조는 했지만, 사실이 그랬던 것이다.
그러면서 M이 이미 준비가 됐다던 자신의 ‘교육에 대한 프로젝트’를 어딘가 관청에 제출하는 일을 마친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맛있는 식사를 할 기대에 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정작 식당을 찾으려니 그게 쉽지가 않았다.
식당 찾기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여자인 ‘M’도 자꾸 고개만 가로저으며 쉬 정하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름 산티아고에서는 차가 안 다니는 상가의 거리를 지나고, 이어서 항구에도 도착한 뒤,
“그럼, 차라리 바닷가의 식당에서 먹지, 뭐! 어딜 가거나 바닷가의 식당 중에는 분명 ‘맛집’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고 내가 말하자, 그들도 동조를 하는 모양새였는데,
그럴 싸 하게 뵈는 두 곳의 바다 위 식당이 있었는데, 거기도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식사를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종업원들만 일할 의욕도 없이 멀뚱멀뚱 오가는 사람들만 구경하고 있어서,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담?’ 했지만, 이게 쿠바의 현실이었다.
(현지인마저 믿기 어려워하는...... 그러니, 나 같은 외국인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바닷가 식당도 찾지 못한 채 가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두세 곳 들른 식당도, 사람들은 있었는데 우리가 찾아가고 싶던 그런 곳은 아니었고, 먹거리 자체도 형편없다 보니,
“이거, 맛있는 식사 한 끼 하려고 했더니, 이렇게 돌아다니다 점심 시간 다 놓치겠네!” 하자 그들도 웃었지만,
이즈음부터 나는 뭔가를 포기해야만 했다.
이들도 그랬는지 모른다.
내가 이따금 한 마디씩 불평을 해대는 걸 그들도 그대로 수용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도심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비를 피해 상가의 처마 밑에서 우두커니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여기는 생필품이 부족한 국가라, 우산 같은 것도 살 수도 없고 팔지도 않으니, 그렇게 비를 맞거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가 내리는 산티아고 도심은 마치 유럽의 어느 지저분한 도심 같을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였고 기온도 제법 내려가서 선선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내가,
“우리, 작전을 다시 세워, 꼭 산티아고가 아니라 해도, 게중 맛있는 음식을 하는 집에서 점심 먹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더 늦기 전에 어디든 들어가서 배를 채워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이들도 동의해서,
그 얼마 뒤 겨우 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
거기도 가관이었다.
겉보기도 그렇고 안에도 분위기는 그럴싸 했는데, 지저분한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우리가 들어가 한 식탁에 앉자, 여 종업원이 와서 음식 주문을 받았는데,
식탁에 컵 두 개가 놓여있던 상태에 우리가 세 사람인데도 컵 하나를 더 가져오지도 않을뿐더러, 물마저 가져오지 않아서, 내가,
“물 안 주나요?” 하고 묻자, 그제야 겨우 물만 가져와 잔을 채워주기에,
“우린 세 사람인데, 왜 컵은 하나 더 안 줍니까?” 하고 항의 겸 물었는데도, 그저 웃기만 할 뿐, 그에 따른 반응(새 컵을 가져오는 것)은 없었다.
사람 환장할 노릇이고, 바로 여기가 쿠바였다.
그렇다고 거기서 그냥 나올 수도 없었다. 겨우 찾아 들어갔던 식당이었으니까.
게다가 비가 내린 뒤라 우중충했고 파리도 많아 짜증만 가중되고 있었다.
그 한참 뒤에 가져온 음식은 더 가관이었다.
한 사람 앞에 달랑 접시 하나. 그 안에 우리가 시켰던 ‘생선 튀김' 조금하고, 여기 ‘유까’ 튀김을 내왔는데(유까는 그냥 잘만 쪄와도 풍성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인데, 조리했다는 게 차라리 않는 것만 못한), 입맛이 싹 가시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저 웃으며 먹기는 했지만(난 겨우 생선만 몇 조금 발라먹고, 유까는 건들지도 않았다.), 기가 막혔다.
실컷 벼르고 별러 도시에 나와서까지 먹으려던 점심이 그따위라니!
그렇게 먹자마자 나는 바로 계산서를 요구했다.
그런데 계산서는 144 쿠바 뻬소.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이었다. 그러니까 싸서 좋은 게 아닌,
‘이렇게 받아서 식당 운영을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까지 절로 들었던 상황이었는데,
세 사람이 먹은 값이, 달러로 치면 1 달라 조금 넘는 수준일 뿐이었던 것이다.
다른 곳에서 한 사람이 먹어도 이보다는 비싸야 할 음식이었는데, 어디서 찾다 찾다 겨우 들어왔다는 식당이 그 모양이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머물고 있는 여기 ‘꼬브레’의 시골 식당도 점심 한 끼에(1인분) 500뻬소 하는 데도 있는데, 도시에 있는 식당이 세 사람이 먹었는데도(음식은 형편없었지만) 144뻬소라니! 뭐가 조화가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나라다. 그러니, 슬플 수밖에 없다.)
아니, 누가 싼 음식을 달라고 했던가?
좀 더 성의 있고 깔끔하게, 먹음직스런 음식을 해서 비싸게 받으면 될 거 아니던가?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이들은 사회주의 체제에 찌들어, 좀 더 열심히(남들보다 잘) 해서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지 하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어차피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굶어죽지는 않고 살 수 있으니까.
내가 별 다섯 개의 호텔에 가서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서 대접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그러면서 나는 여기 별 다섯 개의 호텔에서는 어떤 음식을 해서 파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웬만큼 비싼 식당에 가서 먹어도 될 정도의 ‘한 끼 식사비용’은 그들의 호의에 대한 대가로 흔쾌히 지불할 수도 있었는데,
깔끔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서 파는 식당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 역시 나도 잘은 모르지만) 가난한 쿠바 사람들에겐 조금만 비싸게 받아도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돈이 없는데 외식을 어떻게 하겠는가?), 음식 값을 낮출 수밖에 없고,
음식 값이 낮으니(터무니없이 싸니) 좋은 재료를 사와 음식을 할 수가 없는 구조고,
그러니 식당(규모로는 제법 괜찮아 보였는데) 운영이 잘 될 리 없을 거고, 종업원들 처우도 좋을 수가 없을 테니,
누가 일을 열심히 할 것이며, 일할 의욕이나마 나겠는가 말이다.
(이건, 누가 가르쳐줘서가 아닌, 나 스스로 정말 절로 알게 된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하물며 쿠바에서 제법 큰 도시인 여기 ‘산티아고’가 이런데,
지난 번 ‘까보 끄루스’에서 ‘안토니오’ 영감님과 거기 읍내인 ‘니께로(Niquero)’에 갔을 때도, 나는 그 영감님께 맛있는 식사 한 끼를 대접해드리려고 했는데, 식당으로 가는 대신 자기 여동생 집으로 나를 데려 간 것 역시 이런 상황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을 일이었다.
음식을 제대로 만들어 파는 식당이 없으니 무슨 식당을 찾아갈 것인가 말이다.
그 시골은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가 없을 테니까.
아,
그렇게...... 모처럼 ‘보은의 의미’로 ‘맛있는 식사 한 끼를 대접하리라’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쿠바의 씁쓸한 현실에 허망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나절을 식당을 찾아 돌아다녔던 나마저 희망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나야 그렇다고 쳐도 이들 부부도 그 사실을 미리 감지하지 못했던 걸까? 미리 알고 있었다면, 미리 불가능하다고 얘기해줬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기색조차 없었던 것이다.) #
그리고 이 건 그 며칠 뒤에 이어진 이와 유사한 일인데, 여기에 언급해야겠다.
#또 다른 예#
그 며칠 뒤, 나는 그 부부와 다시 '산티아고 데 쿠바'에 나갈 일이 있었고,
도심에서 M의 둘째 아들(R의 아들은 아닌)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위와 비슷한 일을 반복해서 겪고 있었다.(그래서 이 부분에 소개하는 것이다.)
어딘가 가서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일을 보느라 시간이 어중간하게 지나서, 하는 수 없이 도심의 여기저기 식당을 찾아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가, 한 이태리식 스파게티 집에 들어갔다.
거기도 겉보기엔 상당히 좋았고, 또 웨이터도 정장을 입고 무게감 있게 주문도 받는 등,
'잘 찾아온 식당 같군!' 하고 앉아 있었는데,
날은 더운데, 우리가 식탁에 앉아 있아도 물도 안 갖다 주기에,
"여기에 뭔가 특별히 마실 건 없나요?" 하고 내가 물으니,
파인애플 주스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여기 네 개 갖다 주세요. 지금 당장!" 하고 급하다고 얘길 하자,
'지금 당장' 라고 강조한 내 말에 그들이 킥킥대며 웃기까지 했는데......
그렇게 가져온 쥬스는 약간 싱겁긴 했어도 자연의 맛이긴 했고, 시원해서 좋았는데,
모두들 다 마신 뒤,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데, M의 아들이(열 다섯이라고 했다.),
"에이, 여기에 벌레가 있네!" 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하고 내가 질겁을 할 수밖에. 그렇잖아도 쿠바 어딜 가거나 청결 문제에 긴장을 풀지 못하던 나라,
‘허긴,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지나가진 않겠지. 여기 쿠바에서....’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 종업원을 불렀다.
"이봐요, 여기 벌레가 있다는데요?" 하자,
"어디요?" 하고 그가 그 아이의 컵을 들고 살피던데,
"내가 봤어요. 그 안에 있을 걸요." 하고 그 아이가 뾰로통하게 말을 하자,
그가 황급히 컵을 가지고 돌아갔는데,
그 뒤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런 상황이라면,
"죄송합니다!" 하면서, 새롭게 쥬스를 가져온다던지, 그 쥬스를 모두가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도 몹씨 불쾌한 심정이었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그렇다고 새 쥬스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새 컵을 가져다 주는 것 역시 아닌... 그저 그걸로 끝인 모양이었다.
그러니 나만,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하고 그들의 눈치를 살폈을 뿐, 우리 일행도 더 이상 항의도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국은 스파게티를 내오기에, 그럼에도 아무런 사과도 없기에,
"그럼, 물은 안 주나요?" 하고 내가 짜증스럽게 물었는데,
"예, 물 안 줍니다." 하는 거 아닌가.
이럴 수가! #
이게 쿠바였다.
#돌아오는 길#
여기 대중교통 수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인데,
굴러다니는 ‘깡통버스’거나 ‘탱크’나 ‘장갑차’ 같은 차량들(버스로 이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초반, 나에겐 커다란 충격이기도 했지만),
그런 차량들마저 제대로 탈 수가 없어(수요는 많은데 운행차량이 적어서) 주민들은 아우성인데,
이 날 도심에서 꼬브레 마을로 돌아오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전히 이들의 차량 운행 방식을 잘 모른다.)
맛있는 식사를 하러 도심에 나갔다가, 오히려 집(숙소)에서보다 못한 점심을 먹었지만,
그래도 돌아와야만 했다.
그런데 ‘꼬브레’ 방향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이들 부부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5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다음 버스는 7시가 넘어야 있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돌아가면 M의 어머니(병환 중)에게 안 좋으리라는 등..... 물론, 그렇게 간격이 긴 버스를 타게 되면 또 밀려있던 승객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렇게 되면 버스를 타는 것부터 가는 내내 시달릴 게 불을 보듯 빤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자 눈치가 빠른 ‘R’이, 어딘가로 걸어가자고 했다.
여기는 몇 가지 다른 종류의 차량이 운행되기 때문에(버스 요금도 다르다고 한다.), 다른 쪽에 가서 거기로 통과하는 버스를 타려는가 보았다.
그래서 셋이서 걷기 시작했는데, 보통 걷는 게 아니었다.
내 느낌으론 버스 서너 정거장은 족히 걸었던 것 같은데,
거기는 ‘꼬브레’에 가는 길목이었고, 거기엔 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그런 차량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차량 두어 대가 지나갔고, 사람들이 태워달라고 손을 들어도 그 차량들은 그냥 지나가기도 했고, 한 대는 사람들을 태우는데, 정말 ‘콩나물시루’그 자체였다.
이 더운 날씨에 쿵쾅거리는 버스에 사람들이 미어터진 상태로 달리게 될 터라, 그 모습만으로도 나를 질리게 했다. 앞으로 어떤 버스를 타고 돌아가게 될지......
그런데 이들은 서로들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나 보던데,
어떤 사람이 다른 곳으로 버스 노선이 변경되었다며(새로운 버스일 수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
이들 부부도 그 쪽으로 가자며 나를 불렀다.
그렇게 또 다른 곳으로 가서 길가에 서 있었다. 아니, 다리가 아프기도 했는데 마침 거기에 콘크리튼 벽 무너진 게 있어서 거기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어떤 군인 같은 젊은이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큰 길 앞쪽으로 뛰어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R도,
“인야, 빨리 뛰어요!” 하며 뛰기 시작했고,
나와 M도 뛰기 시작했다. (나야, 영문도 모른 채 뛰었다.)
그렇게 한 200m나 달렸을까?
저 앞 쪽에 깡통버스(게중 좀 양호한)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고, 거기 정류소에 있던 사람 몇몇이 그 차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우리도 그 차를 타야하는가 보았다.
물론 나는 제 시간에 도착해 버스에 올랐지만, 여자인 M이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도 그 버스에 오를 수는 있었다.
그렇게 뛰었기 때문에 우리 셋이는 버스에 탈 수 있었고, 더구나 그 버스는 게중 양호한 상태로 좌석까지도 남아 있어서 우리는 모두 앉을 수 있었는데, 정말 행운도 함께 했던 것이라 기분도 좋았다.
그렇게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고,
큰 사거리를 지나 조금 전 우리가 앉아 있던 그 곳으로 진입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버스가 멈추기를 바라며 손까지 흔들기 시작하던데,
당연히, 나는 버스가 거기에 멈춰 그 사람들을 태울 줄 알고, 그 짧은 순간에도,
‘한 정거장 전까지 뛰어가 버스를 탔던 게 좌석까지 잡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데,
웬걸?
이 버스는 거기에 서질 않고 그냥 내빼는 것이었다.
그러니 손을 흔들던 사람들은 또 망연자실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데,
그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하마터면 나는 울 뻔했다.
내가 약삭빠르게 이 버스를 타고 좌석까지 잡았다고 행복해 했던 게 그들에게 너무 죄스럽고 미안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저 가련한 사람들은 저렇게 애를 태우고 있는데, ‘운이 좋았다’며 행복해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권리를 다 빼앗고, 거기다 그들을 태우지도 않고 도망치는(약 올리며) 버스의 편한 좌석에 앉아서 가고 있는 내 모습이(어찌 나만 그럴 것인가. 여기 버스 운행시스템이 그렇다니,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슬펐다.
쿠바가 슬펐고, 내가 쿠바에 있는 것도 슬펐다.
그래도 깡통버스는 쿵쾅거리며 산악지역의 오르막을 계속 오르고 있었다. #
'아, 나는 여기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해가 안 되거나 못할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선지 너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내가 이 나라를 비하하고 깔보려고 온 것도 아닌데, 얘기를 하려다 보면 그렇게 돼가서,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도 어쩔 수가 없다. (제 3자인)내 눈에 보이는 이들의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사람들은 자신들의 현실파악을 하는지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몰라서 그러는지, 그런 것과는 무관한 듯 자기들끼리는 또 웃어가며 잘만(?)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도 이방인인 나는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슬프게만 느껴지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그게 잘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