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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하는 산행 이야기
서산 해미읍성- 해미순교성지- 황금산- 삼길포 여행기
- 열리지 않는 여인의 마음을 기다리며 -
서산 황금산!
작년에 처음 이 산의 아름다움을 인터넷에서 접하고 오래도록 꿈꿔왔던 산이다. 작년 가을부터 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고 드디어 이번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자유산행으로 기획하게 되었다.
<서해에서 동해를 보다! 숨겨진 보물 해식절벽과 코끼리 바위. 절정의 아름다움.> 등등 . 서산 황금산을 표현하는 말들과 다른 사람들의 산행기를 읽어보면서 꼭, 기필코 가보리라는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토요일. 원만하면 그냥 쉬고 아침에 일어나 산에 가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두세 시간만 간단하게 일하고 들어온다는 것이 그냥 꼬박 밤을 새워 일하게 되었다. 새벽 5시 30분 귀가. 아내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한숨도 안자고 어떻게 산에 가냐고 한다. 그래도 아직 젊은데 하룻밤 잠 안 잤다고 180미터짜리 산을 못 갈까 보냐며 안심을 시키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였다. 샤워를 하니 기분이 한층 상쾌하다. 몇 달을 기다려온 황금산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사진으로 보니 너무 예쁘던데....
6시 35분. 집을 나섰다. 어제 맡겨놓은 김밥을 찾고 약속장소인 아울렛 4거리로 가니 김태복 형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아직 7시 10분전. 태복이 형님은 같이 대리운전을 하는 형님으로 내가 몇 년 전 안양지역 대리운전 조합 회장을 할 때 큰 병이 걸려 모금도 해 주고 그랬던 분이다. 살 확률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기적같이 회복하셔서 오월엔 딸 시집보내고 아들도 잘 풀린다고 한다. 내가 산에 같이 가자고 해서 오늘 처음 함께 산행하자고 나오신 것이다.
조금 기다리니 한 두사람 씩 모이기 시작하여 안양에서 타실 분들은 다 오셨다. 오늘 산행에는 내가 조대표를 맡고 있는 성당 ME모임에서 2쌍의 부부와 성당 친구 요한의 부인인 카타리나 자매가 함께 하였다. 우리 수사사 식구들은 워낙 친절하고 착하시니까 금방 어울릴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금정으로 이동하여 예약된 분들을 모두 태우고, 팔탄에서 선녀와 나무꾼 부회장님 부부를 태우고 출발. 오늘의 산행 동무는 총 20명. 24인승 버스로 가니까 거의 꽉 차서 가게 된다.
차안에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우리가 준비한 김밥을 한 줄씩 나누어 드리고, 운정님께서 찬조한 맛있는 떡도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오늘의 일정과 등산 안내가 적힌 복사지를 나누어 주었다. 어제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7시에 안양을 출발하여 9시부터 황금산 산행을 하는 것이었으나, 밀물일 때 가면 해안 절경을 볼 수 없다는 정보가 있어 밀물 시간을 알아보니 10시 19분이 만조, 오후 4시 57분이 간조로 나온다. 9시부터 산행을 해서는 정확히 만조시간과 겹쳐지게 된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산행을 하자 마음먹고 어제 고민 끝에 서산 해미읍성과 삼존미륵불을 관람하고 산행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차 안에서 간단한 설명을 드리고 해미읍성으로 가기 위해 해미IC로 진출하여 해미읍성에 8시 40분에 도착하였다.
1. 해미읍성
(정문인 진남문에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라본 해미읍성의 외곽은 참 정갈하다는 표현이 들 만큼 깨끗하게 관리도고 있었다. 7~8미터 정도의 성곽도 그렇고 바닥에 깔린 바닥재도 예쁘게 꾸며져 잔디와 잘 어울리었다.
해미읍성은 사적 116호로 지정되어 있고, 조선시대 때에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성이라 한다. 또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군관으로 부임하여 약 10개월간 근무하셨던 곳이고, 천주교 순교지역으로 무려 3천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 곳 해미읍성에서 순교하였다 한다.
(해미읍성의 성곽 - 돌을 정갈하게 쌓아 올렸다)
정문인 진남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성 전체의 모습이 거의 한 눈에 들어온다. 왼편으로는 초가집, 정문으로는 기와집들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언덕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성곽으로 올라 성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진남문 망루에서 들어가지 말라는 푯말을 못 본체하고 들어가서 망루의 큰 북도 한번 살짝 두들겨 보았다. 하지 말라는 것은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 아닐까? 날씨가 흐려 정확하게는 보이지 않지만 서해의 모습도 보인다. 성곽 안쪽으로는 흙으로 길이 나 있고 쑥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내를 비롯한 여인네들은 그 쑥 뜯기에 바쁘다. 그냥 시장에서 천원어치만 사면 잔뜩 일 것을 여인들의 마음은 또 그게 아닌가보다. 여인들을 뒤로 하고 성곽을 따라 걷자 근사한 소나무 숲이 반기고 있다. 다른 나무들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일부러 소나무만 조성한 것 같다. 붉은색을 띄는 해송 소나무를 보니 왠지 신선한 마음이 들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해지는 느낌이다. 이 멋진 소나무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어린아이처럼 늘어진 소나무가지에 매달려 보기도 하였다. 뒤쪽으로 오니 동산 지역이라 성곽이 높지 않았다. 대신 20미터 앞쪽으로 개울을 파 놓아 적들이 쉽게 성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이 눈이 띄었다. 지금은 근사하게 개울을 돌로 쌓고 정리해 놓았지만 해미읍성을 개발하기 전에는 그냥 개울가였다고 한다. 읍성도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보잘 것 없었던 것을 이렇게 잘 정비해 놓았다고 고향이 서산이신 나무꾼 부회장님께서 설명을 곁들여 주신다.
(성곽을 따라 흙길이 놓여있고 깃발이 바람에 날려 근사하다)
(읍성 안쪽으로는 멋진 해송들이 펼쳐져 있다)
(뒷쪽은 산이라 개울을 파 적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은 이렇게 잘 정비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그냥 개울이 있었다고 서산이 고향이신 나무꾼 부회장님이 알려주신다.)
(소나무에 매달려 장난을 쳐본다 - 소나무야 미안해! 내가 좀 무겁단다.)
(오늘 보았던 소나무 중 가장 멋진 소나무)
언덕에 있는 정자에 오르니 해미읍성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으로 소나무 숲과 어울리는 대나무 숲이 있어 정겹다. 아래에서 올라오시는 관광객에게 순교지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가운데 기와집과 그 앞에 나무 한그루를 가르쳐 주시고, 그곳을 보고 읍에 있는 성지를 꼭 들러보라 하신다. 과연 기와집에 들러보니 가운데 곤장을 치는 형틀이 있고 옥사 등이 재현되어 있다. 곤장을 보니 무게나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이런 걸로 한 대 맞으면 뼈도 못 추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아킬레스를 누여놓고 곤장을 때리는 시늉을 해보았다. 앞에 회화나무는 그 가지에 철사를 걸어 사람을 매달고 고문을 하였던 나무라 한다. 한쪽이 시멘으로 보강되어 있어 이 나무의 아픔 과거와 오랜 연륜을 보는 듯하다. 이곳에서 3000명이 순교하셨다고 하던데, 참 종교의 힘이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아킬레스를 누여놓고 곤장을 떼리는 시늉을 하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고문하는데 쓰였다는 회화나무 - 가지에 철사를 걸고 사람을 묶어 고문하였다한다)
순교자의 상념에 잠겨 하늘을 보니 멋진 연이 떠 있다. 하나는 로켓 모양이고 또 하나는 여인의 모습니다. 아마 춘향이나 어우동을 빗댄 그림 같다. 순교자를 생각하는 착찹한 마음을 접고 연을 보면서 진남문으로 나오니 마침 대문을 지키는 포졸들이 근무를 시작하는 모양이다.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준비한 족발에 나무꾼님께서 가져오신 구기자술로 순교자의 생각으로 더워진 목을 적셨다.
(해미읍성을 방어했던 무기 중 하나 - 신기전(?))
(진남문을 나서니 들어갈 때는 없었던 포졸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하늘에는 춘향이를 닮은 연과 로켓을 닮은 연이 멋지게 떠 있다)
1시간 정도면 대충 해미읍성을 둘러볼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볼거리가 있어 참 좋았다. 안내문을 보니 갖가지 행사들을 많이 하던데 서산 지역을 방문하시는 분이시라면 잠깐 시간을 내어 들려볼 것을 권한다.
2. 해미순교성지
(해미 순교성지)
아까 순교나무를 가르쳐 주셨던 아주머니 말씀이 생각나 순교성지에 가자고 해서 들렀다. 성지에서 보았던 둥그렇고 빨간 지붕이 있는 곳을 당연히 성지라고 생각했으나 거기는 개신교 교회이고 개울 건너 조금 더 떨어져 있다. 성당을 대충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순례자인듯한 분이 성당 뒤편을 가보라고 한다. 과연 성당 뒤에는 여숫골이라는 돌 석상과 더불어 성지로서의 다양한 조형물들이 있다.
(순교자들의 비석)
(인공 연못의 한 가운데에서-성모의 샘과 자비를 구하는 것 같은 조형물)
(야외 광장에서 아내와 함께)
조선시대에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수많은 백성들이 유교의 법질서에 반하면서 순교하게 되었다. 그 형식적인 이유가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안 지낸다.’는 것인데 유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모에 대한 제사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개나 돼지에 다름없는 짐승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걸 우상숭배라 주장하는 천주교를 나두는 것은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일이었으니 금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융통성 없는 유교의 기득세력과 천주교의 신흥세력이 부딪치면서 수많은 민중들에게 죄와 고통과 죽음으로 내 몬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지금은 천주교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물론 유교적 제사와 형식은 조금 다르지만) 오히려 권장하고 장례 때에는 연령을 위한 기도(연도)를 유교의 곡소리를 흉내 내어 기도하고 있으니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것만 옳다고 하면 참으로 불행한 사태가 온다. 현대의 지구는 하나의 마을과 같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중동지방의 이스라엘과 이슬람의 충돌, 또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 같은 이슬람 내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의 충돌,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천주교와 개신교의 충돌. 이러한 것들이 결국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고 나만 옳다는 편견을 가지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당시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종교를 지키려 했던 당시의 천주교 신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과연 무엇이 진리인가? 이 말은 또한 빌라도가 죽음을 앞 둔 예수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성서에는 이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진리는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다. 진리가 고정되면 그 다음부터 할 일이 없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은 인정할 수 없다. 현대 종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다. 내 것만이, 내가 믿는 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모두 우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함께 온 ME 식구들이 성지를 좀 천천히 둘러보는 바람에 시간을 지체하였다. 11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만조와 간조의 중간이 되는 오후 1시쯤 해변가에 도착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성지를 돌아보고 모인 시간이 10시 40분. 미륵마애불을 둘러보고 가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그냥 황금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천주교의 성지도 들렀으니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마애불의 온화한 미소도 보았어야 하는데 황금산이 빨리 오라 부르는 것 같다.
3. 황금산
해미성지에서 약 40분을 달려 황금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산 입구로 들어오는 길은 비포장에 공사 중. 처음에는 버스기사님이 길을 잘못 든 줄 알았는데 이 불편하고 좁은 길이 황금산 가는 길이 맞다고 한다. 황금산이 유명해진 것이 얼마 안 된다 하니 아직 진입로조차 제대로 닦여있지 않다. 조금 실망한 기운을 뒤로 하고 버스에서 내려니 이미 큰 버스들이 여러 대 보인다. 주차장 주변도 다른 관광지나 산행지 같지 않게 정비가 되어 있지 않고, 각종 해산물을 파는 포장마차 형 천막들만 몇 채 놓여있다. 아무튼 황금산의 해안 절경을 꿈꾸며 11시 29분에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힘들지 않다. 첫 번째 이정표를 지나니 조금 오르막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간벌이 되지 않아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 능선에 올라 사거리에서 정상 방향으로 올라간다. 오르막이긴 해도 힘들 정도는 아니다. 가는 길 생강나무 한 그루가 노랗게 물들어 지금이 봄임을 말해준다. 양지쪽 진달래로 간신히 보라색 꽃망울을 보여주고 있다. 정상에 도착하니 11시 53분. 산행 시작한지 24분 만에 정상에 도착하였다. 몇 년간 산행을 하였지만 출발해서 24분 만에 정상에 도착한 산행은 참 처음이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황금산의 정상은 쉽게 자신의 머리를 내주었다. 정상에서 서해를 보니 소나무와 참나무들 사이로 서해바다가 펼쳐있다. 날씨가 썩 좋지는 않아 바다가 멀리 보이지 않고, 하늘도 스모그로 뿌옇게 흐려있다. 여기 정상도 나무들을 대충 정리하고 전망대 한 곳 정도를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름 노랗게 봄을 뽐내는 생강나무와 아직 몽울조차 작은 진달래)
(황금산 정상에서 본 서해 풍경 - 앞에 나무들을 정리하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황금산 정상에서 함께 간 산동무들과 함께)
(황금상 정상에서 아내와는 따로 한 컷- 아내는 지난 주 강화 마니산에서 하산길에 굴러서 허리가 몹시 좋지 않은 상태이다)
정상에는 사당이 있는데 <황금산사>라고 한다. 임경업 장군의 초상이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문이 잠겨 있어 실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잘 보이지는 않았다. 이 작은 사당도 좀 정비해서 개방하고 사당의 의미와 임경업 장군의 이야기 등의 안내문이 있다면 산을 찾는 사람들이 역사공부도 하고 작은 즐거움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상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황금산 종주길로 내려간다.
(황금산사 - 저 문이 잠겨져 있어 아쉽다)
(정상에 산악회 리본들이 있어 우리 수사사 리본도 하나 묶었다)
4거리 이정표를 지나 지도상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에 닿았다. 감시초소는 없고 지난 해 곤파스 태풍의 영향인지 나무들이 많이 잘려져 있다. 오른편으로는 산업단지가 잘 보인다. 바닷가에 보기 좋게 펼쳐진 산업단지가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잘라놓은 나무들을 몇 개 옮겨와 의자와 탁자를 만들고 간식타임을 가졌다. 가져온 술과 음식들을 나누면서 우리 산행 팀은 좀 더 친해지고 즐거워진다. 돼지껍질을 누른 것과 뼈없는 닭발 무침이 참 별미이면서 맛있다. 막걸리 두어잔과 맛있는 안주를 허기를 달래고 서해 바다를 감상하러 왼쪽 편으로 갔는데 아뿔사! 감시초소가 능선 아래로 처박혀 있다. 아무래도 곤파스가 초소를 뿌리 채 날려버렸나 보다. 초소에서 바라본 바다 위엔 독도를 닮은 두 개의 섬이 한가로이 떠 있다. 온누리 총무님이 스펀지에 제보하자고 한다. ‘서산 황금산 앞 바다엔 독도가 있다’라고....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본 - 서산 산업단지의 모습)
(능선 아래로 처밖힌 산불감시초소가 애처롭다)
(황금산 독도 - 생긴 모습이 꼭 닮았다)
헬기장을 지나 계속 진행하니 양쪽으로 보이는 바다와 소나무들의 향기, 편안한 오솔길이 참 정겹다. 서산시에서 정비만 잘하면 참 좋은 산과 관광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계속 진행하니 반대편에서 다른 산행팀이 올라온다. 물이 꽉 차서 해안길로는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속으로 ‘물때를 알고 와야지’하며 얕잡는 마음을 가졌다. 나의 계산상 우리가 해안에 도착하는 1시쯤이면 물이 빠지기 시작하여 원래 계획대로 해안을 따라 이동 할 수 있으리라.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너무 편안하게 산행을 한터라 완전 힘들게 느껴진다. 허리가 좋지 않은 아내에게 조심을 당부하면서 로프에 의지해 천천히 내려가다 보니 사진에서 나오던 주상절리의 멋진 모습이 나타난다. 바위들이 오랜 시간 파도와 힘겨루기를 하며 깎이고 깎이어 날 선 칼 같이 펼쳐 있다. 먼저 도착한 우리 팀이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서해에서 보는 동해의 모습. 동해의 파란물감을 탄 하늘색바다의 모습만 닮았더라면 정말 그리 말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으나, 초록에 황색을 섞어 놓은 듯 흐릿한 서해바다의 색깔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이 정도면 참으로 멋진 풍경이다. 넓은 갯벌만을 생각하는 서해에서 이런 광활한 바다의 모습은 짜장 찾기 어렵다.
(황금산의 자랑 - 끝 해변의 주상절리)
오후 1시. 드디어 주상절리 해변 그 끝에 닿았다. 멋진 조각가의 작품인 듯 바위 하나하나가 참으로 멋있게 깎여있다. 바위 위에 올라 서해를 바라보며 소리도 질러보고, 큰 소리로 노래도 해 본다. 누가 시작했는지 바다위에 물수제비를 띄어본다. 남자 회원들이 힘자랑을 하듯 모두 넓적한 돌멩이를 찾아 몇 번 씩 서해 바다에 자신의 힘을 띄어본다. 올망졸망 아기자기한 굴들이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강대빵님은 일부러 쇠갈고리를 만들어 오셨다. 도구를 이용하니 굴 껍질을 벗겨내기가 참 쉽다. 초장이 없어도 굴이 짭짜름하다. 소주 한잔에 자연살 굴 몇 점을 먹어본다. 이 맛을 바다내음이라고 하는 걸까? 비릿하면서도 그리 역겹지 않은 그러나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굴 맛. 강대빵님은 바닷가 출신이신지 우뭇가사리를 닮은 해초도 뜯어 오신다. 초장에 찍어 먹어보니 그런대로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즐겁다. 산적님과 심산님은 해벽 갈라진 바위틈에 몸 하나를 간신히 멋지게 끼워 넣고 담배를 즐긴다. 해안 낚시 할 때 이렇게 하면 바람을 맞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산을 잘 타시는 소옥영님은 아직 다 빠지지 않은 물을 피해 해안을 따라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바위위로 올라가 정탐을 하신다.
(산적대장과 심산님께서 바위 절벽 갈라진 틈에 몸을 맡겼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옹기 종기 모여있는 산동무들)
나는 바람을 맞고 싶어 조그만 바위위에서 바다를 향한다. 생명은 이 넓고 깊은 바다에서 시작되어 육지로 올라왔다. 생명의 바다. 그래서 바다는 사람들에게 동경과 향수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바다만 보면 설렌다. 바다만 보면 꿈을 꾸게 된다.
(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소옥영님)
(멋진 황금산 앞바다의 모습)
1시가 넘었는데도 물이 아직 꽉 차 있어 해안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계산상으로는 만조와 간조의 중간쯤이면 해변이 드러나야 되는데 좀 당황스럽다. 서해는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금방 줄어든다는 나무꾼 부회장님의 말에 용기를 얻어 기다리기로 한다. 물이 빠지길 기다리며 가지고 온 간식과 술을 다시 나눈다. 계산이 맞는다면 오후 2시가 되기 전에 해변이 보이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바람은 차가워지고 시간은 더디 간다. 사람들은 지쳐가기 시작하고 물은 분명 빠지고 있으나 바닥이 들어날 것 같지는 않다. 2시쯤 ME 식구들이 철수한다. 회원들이 오늘 산대장인 나의 결정을 기다리고 나는 망설이고 망설인다. 이제 곧 물이 빠질 것 같은데 열리지 않는 처녀의 마음처럼 이 바다는 나에게 그녀의 속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가 보다. 지도를 몇 번이나 다시 꺼내어 본다. 해변가로 진행을 해야 해식창문이며 해식동굴을 볼 수 있는데 물때를 맞춘다고 해미읍성도 들르고 해미성지도 들르며 시간을 지체했는데 그 상상의 광경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다. 2시 20분. 참지 못하고 먼저 올라간 ME 빈첸시오 형제가 전화가 온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여기는 절벽이라서 썰물이 된다 해도 바닥이 드러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망설이다 철수 결정을 내린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며 자꾸만 자꾸만 뒤를 돌아다본다.
지도상의 길을 따라 되돌아오다 몽돌해변으로 내려가 본다. 그러나 먼저 내려갔다 올라오는 아킬레스가 여기서도 해안을 따라 돌아갈 수는 없다는 말을 한다. 길인지 길이 아닌지 작은 길을 따라 되돌아온다. 길을 걷다보니 지도상에는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 헬기장을 경유하지 않고 헬기장과 산불감시초소의 중간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코끼리바위라도 보아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마음도 뒤숭숭하고 벙벙해서 시간체크 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사거리 갈림길에서 코끼리 바위 쪽으로 내려서니 벌써 3시 7분이다.
코끼리바위는 일종의 해식창이다. 바위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이 바다 쪽으로 길게 늘어져 마치 코끼리의 코를 연상시켜 지어진 이름이다. 밀물일 때는 그 끝이 바다에 잠겨 훨씬 더 멋있다고 한다. 지금은 간조가 가까워진 시간이라 코와 해변이 드러나 있다. 폼을 잡아 사진도 몇 장 찍고 코끼리 코를 통과해 건너편 몽돌해변으로 가는 길이 제법 만만치 않다. 원래는 이렇게 아슬아슬한 해벽 바윗길을 걸어왔어야 하는데 그런대로 이곳에서 해벽 트레킹의 맛을 느껴본다. 아까 끝 길 해안가보다 여기 있는 굴이 훨씬 더 크다면 강대빵님이 특유의 갈고리로 굴을 따 주신다. 아쉬움을 달래며 놀고 있는데 선두팀이 벌써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온다. 함께 있는 분들에게 철수를 명령하고 이정표로 올라오는데 군인들이 일요일 쉬지도 않고 해변가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옮기고 있다. 병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사거리 갈림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3시 40분이었다.
(코끼리바위와 멋진 안경님)
(코끼리 바위 해변에서 바라본 해벽과 소나무)
(몽돌(?)해변의 모습 - 말은 몽돌인데 실제는 몽돌이 아니고 그냥 자갈이다)
(제법 물이 많이 빠져 두개로 갈려져 있던 독도(?)가 붙었다)
황금산은 정말로 작은 산이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고작 20여분. 능선길과 해변길을 아무리 천천히 걷는다 해도 3시간 30분이면 충분할 것 같다. 다만 물 때를 정말 잘 맞추어야 한다. 완전 간조시간에 맞추어 해변가에 도착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진입로와 등산로를 잘 정비하고 돈의 여유가 있다면 밀물 때도 해벽을 따라 걸을 수 있게 해안과 해벽을 따라 절벽 다리를 놓는다면 정말 멋진 관광지가 될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서산시 관계자가 본다면 신중하게 고려해 볼 것을 권장하고 싶다.
(끝 해변에서 돌아가는 길은 정확한 길은 아니다. 헬기장을 거치지 않고 왔기에 적당히 상상하여 그려 넣었다)
4. 삼길포 항
산행을 마치고 20여분을 달려 삼길포항으로 간다. 삼길포항은 1년여 전 TV에 소개되는 것을 보았다. 배에서 어부들이 직접 잡은 물고기로 저렴하게 회도 떠주고 경치도 그만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서산에 온 김에 들러서 회나 주꾸미가 있으면 먹고 가자해서 들렀다. 가는 길에 어느 대기업의 호텔식 콘도가 산 중턱에 웅장하게 서 있다. 나도 돈이 많으면 저런 곳에서 폼 나게 골프도 치고 잠도 자고 하겠지만 내겐 그런 능력은 없으니 그냥 이렇게 산에 다니는 것으로 만족한다.
삼길포항에 도착하니 제법 큰 항구이다. 해변 쪽으로는 배들이 쭉 늘어서 회를 팔고 있고, 안쪽으로는 그 회를 먹게 해주고 매운탕을 끓여주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온누리 총무님에게 회원들을 데리고 식당에 가 있으라 하고 나는 몇 명을 데리고 회를 사러 바닷가로 갔다. 부두에 늘어선 배들. 많은 사람들이 회를 뜨느라 정신이 없다. 가격표를 보니 모두가 똑 같다. 좀 속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회한접시 먹지 않고 가는 것도 그렇고 도다리와 우럭을 15만원어치 썰어달라고 했다. 저울은 넉넉하게 달아주신다. 도다리 8Kg에 새끼 도다리 세꼬시는 서비스. 광어 3Kg을 회로 뜨고 매운탕거리를 만들었다. 회를 뜨는 동안 너울성 파도가 몇 번이 나 밀려와 배들이 심하게 요동친다. 앞에 방파제가 길게 누워있는데 그 장벽을 피에 용케도 파도가 밀려들어온다. 시소를 타는 것 같아 나쁘지는 않았다. 배 뒤로는 갈매기들이 떼 지어 앉아있다. 우리가 잡고 남은 부스러기를 던져주자 갈매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저 갈매기들은 야생이 아니야. 저건 양식갈매기야!’ 생각을 한다.
회를 떠서 식당으로 오니 모두가 우리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매운탕거리는 식당에 맡기고 회는 골고루 나누어 준다. 김밥 두 줄이 들어가는 투명 비닐상자 10곽에 세꼬시 서비스 4곽. 세꼬시는 뼈 채 썰어서인지 생각보다 양이 많다. 양은 그런대로 많았지만 회 맛은 좀 그렇다. 지난 1월 설악산을 들르면서 동해 간성에서 자연산 회를 먹었었는데 모두 그것과 비교하는 눈치이다. 동해의 푸른 바다에 살던 고기랑 황해의 누런 물에 살던 고기랑 어떻게 맛이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세꼬시는 먹을 만 하단다. 수사사 건배 1번, 2번, 3번이 모두 순배로 돌아가고 즐겁게 뒷풀이는 끝이나고 6시 30분에 서산을 출발하여 8시 30분에 안양에 도착하였다.
나름 길고 길었던 하루의 여행과 트레킹이 끝났다. 아침 7시에 안양을 출발, 저녁 8시 30분까지 의미 있고 즐거운 하루였다. 산은 산이요, 바다는 바다란다. 그렇게 오늘 하루의 삶을 나는 즐겼고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이 행복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2011년 3월 27일 서산 해미읍성, 여숫골 순교 성지, 황금산, 삼길포를 여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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